아침 열 시 수업을 듣기 위해 종로로 가던 버스, 졸다가 깨면 눈썹 사이로 들어오던 햇살의 이미지가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창으로 들어오던 봄빛, 창가를 자주 서성이던 선생님의 움직임, 말과 말 사이의 약간 긴 침묵마다 강연 제목처럼 꿈꾸는 듯 혹은 우울한 듯한 표정을 짓던 그 얼굴. 내가 2007년 4월에 처음 듣게 된 김진영 선생님의 벤야민 강의에서였다. 그때 옮겨둔 벤야민의 말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사랑 안에서 영원한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사랑 안에서 영원한 여행을 찾는다." 

선생님도 그랬을까. 나는 벤야민보다 벤야민을 이야기하는 그의 강연에 더 홀려버렸다. 이후 십 년간 그의 강의를 자주 혹은 긴 공백 이후 다시 찾았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강연에서 얻는 감정이나 주목하게 되는 지식도 달라졌던 것 같다. 이 과정이 앞으로도 당연히 계속될 거라 믿었고 살면서 그런 게 있다는 게 큰 의지가 됐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다시는 김진영의 강의를 들을 수 없다는 사실에 서러운 감정이 밀려왔다. 그렇게 위독하신 줄 알았으면 잠시라도 소통했을 텐데, 지난 십 년 동안 수업에 간간이 나타나던 일개 수강생이 있는데 내가 당신에게 정말 많은 걸 받았다고, 덕분에 내 영혼이 조금은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고. 정말 그랬으니까. 왠지 낯간지러운 자유라는 말을 지금만큼은 당당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강연은 하나의 체험이었다. 벤야민을, 바르트를, 아도르노를, 프루스트를, 또 그들을 매개하는 선생님의 말을 모조리 다 흡수하고 싶어 열중하다가도 어느 순간 말 하나, 문장 하나를 붙잡고 먼 곳으로 가 있는 나를 발견했고 가끔은 수업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선생님의 구두코가 보였다. 동그랗고, 단정하고, 소박하던. 좁은 바닥이 망망대해처럼 한없이 넓어지고 그 위에서 부드러우면서도 엄격하게 움직이던 구두코의 움직임. 언젠가 수업시간에 그렸던 그 구두코 그림이 내 방 어딘가 깊숙한 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그게 자신이 바라는 바라고 했다. 강연을 듣다가 드는 딴 생각, 그게 진짜라고. 나 김진영이 하는 강의가 아니면 결코 유발될 수 없는 그런 효과가 있다고. 정말 그랬다. 그게 나를 자유롭게 했던 것 같다. 생애 첫 배낭여행을 떠나면서 그의 블로그에 있는 글들을 모조리 출력해서 가져갔었다. 한 장씩 읽으며 버렸고 잊고 싶지 않은 문장은 옮겨 적었다. 히말라야 자락에서 사라졌을 그의 글들. 그때 옮겨 적은 글이 있다. 

"바르트의 어머니가 또한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의 목소리를 평생 한번도, 그건 안된다, 라고 말해본 적이 없는 목소리 (R.바르트 『카메라 루시다』), 그러니까 죄와 회개 같은 건 알지도 못하는 묻지도 않는, 오로지 위안과 구원만을 알고 있는 절대적 사랑의 목소리."(김진영)

내가 마지막으로 들은 강연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생은 아이들 같은 것, 화초 같은 것." 자주 살피고 꾸준히 보살펴야 한다고. 그냥 이 말이 너무 예뻐서 자주 되뇌었다. 생은 아이들 같은 것, 화초 같은 것. 생은 아이들 같은 것, 화초 같은 것, 생은……. 그러고 보니 그 강연의 마지막 시간에 선생님이 자신이 쓴 소설을 읽어주었다. 수줍으면서도 들뜬 목소리, 그리고 곧 멀리 날아갈 것처럼 꿈꾸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우울한 그 표정, 얼굴.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