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내가 기억하는 그 영화의 제목은 막연히 이것이었으나, 그 시절 내가 보았던 이 영화의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국민학교에 막 들어가기 전이거나 갓 지난 후였던 것 같다. 사촌들과 얼굴에 열이 발갛게 오를 때까지 놀던 어느 날 우리는 문득 브라운관에 보이던 어떤 이미지 앞에 홀린 듯 모여 앉았고 금세 빠져들었다. 긴 머리의 반을 묶어 정수리 쪽으로 말아 올렸고 발까지 내려오는 하얀 옷을 입은 한 여성이 브라운관 속에서 햇빛 속의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작고 괴상한 존재들이 그녀의 배 위를 스카이 콩콩 타듯 밟기 시작했다. 그녀의 배는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작고 괴상한 생명체들은 점점 더 높이 튀어 올랐다. 그때 그 여성의 표정은 고통스러워 보이기도 아니 어쩌면 즐기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조금 야릇해 보였다. 신비롭고 빙글거리는 느낌으로 남아있는 그 장면들은 내가 처음 감지한 영화적 이미지다. 여전히 사는 동안 불현듯 그 이미지와 느낌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브라운관 속의 그 여성을 오래도록 좋아했는데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유령처럼 무서운 존재가 서서히 친밀해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사로잡혔던 것 같다. 낯선 세계의 문 앞에서 처음 만난 그 존재는 공포와 평온함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주며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아마도 이건 꿈이었을까? 당연히 현실에서 본 영화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시절 꾸었던 꿈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글을 쓰는 동안 문득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 낯선 이미지를 만든 경험이나 영상이 이전에 있었을 것인데, 그건 왜 까맣게 잊고 꿈의 이미지만 남게 됐는지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꿈에서 보는 이미지들이 더 애초의 것인 걸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