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란저우)

여행 2016. 8. 14. 21:25

기차의 2층 침대에서 자고 있는데 갑자기 창문으로 사슴들이 뛰쳐 들어왔다. 자던 사람들이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뛰어내려 다른 칸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을 뒤쫓으려 했지만 큰 사슴 한마리가 내 가까이 달려드는 걸 느끼고 구석에 가서 웅크렸다. 사슴은 다가와서 나를 핥기 시작했다. 끈적한 침이 귀와 볼에 옷 곳곳에 붙어 끈적거렸다. 나는 싫어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또다른 사슴 한마리가 다가와 내 오른쪽 뺨을 핥았다. 나는 계속 소리를 지르며 내 몸을 더 작게 만드려고 했다. 놀라서 눈을 뜨니 꿈이었다. 밤새 달린 기차는 지금 어디쯤 왔을까. 창밖으로 풍경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완전히 알아채기도 전에 다시 잠에 들었다. 기차는 이제 목적지인 란저우로 진입했다. 열린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보니 주위가 너무 아름다웠다.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 들어온 것처럼 만물이 선명하고 생생하게 다가왔다. 내가 지금까지 다닌 여행지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내 옆의 엄마에게 말했다. 기차는 주위의 산 높이 만큼 오르기도 하고 강물처럼 굽이쳐 돌기도 했다. 수면 위에 화려하게 옷을 입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 인도인으로 보였다. 허공에서 들리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의 동작과 부드럽게 출렁이는 수면이 번갈아 눈에 들어왔다. 너무 아름다워서 평생 이 장면을 잊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기차는 곧 란저우역에 멈추었고 나는 엄마를 따라갔다. 엄마는 채식을 시작했다며 가게에서 채식주의자를 위한 가루 음식을 샀다. 가게 창밖으로 할머니가 지팡이를 짚고 느리게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나는 여전히 2층 침대 위에 누워있었고 창밖으로는 온통 황톳빛의 산과 강이 보였다. 이 풍경 때문에 본래의 빛깔보다 더 검게 보이는 나무와 풀이 뒤늦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잠에서 완전히 깨자 아까 다시 잠에 들기 전에 슬몃 보았던 그 낯설고 황량한 풍경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곧 란저우역에 도착할 거라고 했다. 시안에서 이곳까지 여덟 시간이 걸렸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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