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사장에 누워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한 볕에 내 몸에 붙은 모래들이 피부를 파고드는 것 같았다. 그때 어디선가 더운 바람이 굴러와 한 줌의 모래를 귀 안에 뿌렸다. 귀 안에서 버석거리는 소리가 났다. 소리는 점점 커지더니 얼굴로 퍼지며 눈과 코를 간질였다. 문득 잠에서 깼다. 서서히 내 의식이 열리는 동안 그 소리는 멀어졌다. 새벽 늦게까지 내리던 비는 이제 완전히 그친 것 같다. 정오의 강한 볕이 내 얼굴로 쏟아지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정오에만 잠깐 허락되고 마는 볕이다. 고개를 돌리자 창틀을 오가는 쥐가 보인다. 어떻게 여기로 들어온 걸까. 이곳에 이사 온 후 가끔 꿈에서 들리던 버석거리던 소리는 너였을까. 쥐는 창틀에 낀 물에 젖은 꽁초를 갉아먹기 시작한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생명체의 모습은 귀엽다. 솟은 등뼈의 모양을 머릿속으로 한 번 따라 그려본다. 햇빛 속에서 등 위에 돋은 털들이 잘 보인다. 건강해 보이는 저 털이 금방이라도 여름의 나무처럼 높고 무성하게 자랄 것만 같다. 시선을 느꼈는지 쥐가 나를 돌아본다. 작고 새카만 눈. 눈 안이 환하다. 저 눈에 보이는 모습은 내 지각으로 보이는 풍경과 많이 다르겠지. 저 작은 머리통에도 내 머릿속에 든 것과 같은 모양의 뇌가 있다. 그 작은 뇌에 뻗은 수많은 핏줄들을 상상하니 귓속이 간지럽다. 무엇을 보았는지 모를 쥐는 다시 고개를 돌려 꽁초에 얼굴을 파묻는다. 몸에 해로운 건 먹지 마. 좋은 건 못 먹더라도. 나는 중얼거리며 꽁초를 치우려고 몸을 일으킨다. 그때 쥐의 머리통만 한 시시오의 발바닥이 나보다 앞질러 쥐를 친다. 고양이는 고양이구나. 시시오는 쥐를 잡아먹을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발톱을 세우지 않은 발로 쥐를 툭 치더니 그저 이리저리 뒤집으며 괴롭힌다. 쥐는 소리도 없이 죽은 듯 가만히 있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스팔트 바닥은 빠르게 마르고 있었다. 산책 중인 직장인들의 다리가 보인다. 거의 매일 이 다리들을 본다. 대부분 낯익고 간간이 낯선 이 다리들을. 사람들이 얇은 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물이 튀면서 반짝거린다. 내가 있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빛이다. 좁은 골목을 지나려는 차에서 비켜서느라 똑같은 치마와 구두들의 무리가 내가 있는 창에 가까이 붙는다. 근처에서 보았던 치과의 직원들인 것 같다. 누군가 음료를 다 마신 플라스틱 통을 흔드는지 얼음이 부딪치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는 방충망을 열고 시시오의 뒤통수를 쓸기 시작한다. 그 뒤통수보다 큰 내 손길에 시시오의 눈이 감겼다 떴다 한다. 그리고 반대 손으로 시시오의 발을 툭 때린다. 그 틈을 타 쥐가 창밖으로 달아났다. 다시 방충망을 닫고 시시오의 뒷덜미를 들어 품안에 데려와 꼭 안았다. 짧고 낮은 고양이의 신음. 이내 밖에서 무언가가 푹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팽팽한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차가 친 거겠지. 그리 생각해보아도 순간 온 몸에 모래알처럼 돋는 소름을 견딜 수가 없어 빠르게 커튼으로 빛을 가려버린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