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장례식에 집 나갔던 이모부가 찾아왔다. 껌을 씹고 있었다. 누구보다 내 아버지를 위해 조문하고 싶었을 거란 진심은 알겠지만, 저런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로 이 사람이 망가진 것은 아닌가 싶었다. 엄마는 화가 나 이모에게 전화를 하러 나가버렸고, 나는 이모부와 마주 앉았다. 내놓은 육개장은 먹을 생각이 없는지 그는 소주부터 깠다. 꽤 미남이었는데, 선명한 쌍꺼풀 수술 자국과 왠지 부자연스러운 얼굴 때문에 대화에 집중이 잘 안 됐다. “윤미야, 내 행복해 보이제?” 이모부는 대뜸 물었다. 그러더니 이내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돈을 벌어도 쓸 데가 없으니까 이제는 나를 위해 산다. 새 삶을 살기 위해 성형수술도 했다. 젊어 보이고 싶었는데 보톡스 수술이 잘된 건가 모르겠다. 얼마 전 첫 해외여행으로 중국을 다녀왔는데 사진 좀 보여줘야겠네. 그나저나 너도 한잔해라. 그래도 너는 이 집안사람들이랑 기질이 좀 다르지 않냐. 그러니 말을 해봐라. 내 행복해 보이제? 나는 대답은 않고 “잘 지내시는 거죠?”라고 물었다. 이모네 가족 사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이모부가 가족 구성원을 많이 힘들게 하자 자녀들은 약자인 어머니의 편을 들었다. 이제는 아버지가 집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염려된 사촌이 신경을 많이 썼지만 그때마다 이모부는 앙심을 가득 품은 내색만 보였다고 한다. 사촌은 아직도 자신의 결혼식에 아버지를 불러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소주 한 잔을 받아 마시고는 이모부가 보여주는 중국 여행 사진을 보았다. 이렇게 마주보고 있으면 성형수술로도 늙은 얼굴을 감출 수가 없는데, 바다를 배경으로 웃고 있는 사진 속 이모부는 십 년 이상은 젊어 보였다. 행복해 보였다. “윤미야 말해봐라. 내 행복해 보이제?”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순진한 질문을 계속 하는가. 그냥 그렇게 보인다고 해줄 만도 한데 나는 계속 대답을 미뤘다. 그때 아버지가 내 옆에 앉았다. 아버지가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묻자 다 아는 수가 있다며 이모부는 웃었다. 그 사람 속에 능구렁이가 들었다고, 우리를 괴롭히려고 온 거라며 이모는 어서 그를 쫓아내라고 했다. “그래도 아버지 위로해 주고 싶어서 일부러 조문 온 것 같아요.” 내 말에 이모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이모와 사촌들이 번갈아 계속 전화를 했다. 걱정해주는 건 고마웠지만 이 상황을 빨리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냥 이모부가 떠나고 싶을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님, 많이 힘드시죠. 나 진짜 형님 때문에 멀리서 왔어요. 형님 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끄덕거리기만 했다. 이럴 때 보면 정말 어머니 말대로 아버지는 곰 같아 보였다. 친척이 급하게 불러 아버지는 다시 일어났다. 이모부는 그새 소주 한 병을 비웠다. “가족들이 나를 버렸잖아. 그래서 나는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행복하다. 진짜. 그래서 고맙다.” 나는 왠지 이 말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이모부 왜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만 말해요?” 이모부는 술 한 잔을 따르고는 몇 초간 조용하더니 말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독한지 모른다.” 그 말을 들으니 이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가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사실 내가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나에게만이라도 그 말을 해주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저 행복하냐고 계속 물어대는 이 사람에게 연민이 들면서도 자신의 고통만 중요해 보이는 게 답답했다.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자기정당화를 거쳤으며 그래서 굳어졌을 마음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때 아버지가 내 옆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는 아버지를 무심코 돌아보았는데 눈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이 후드드 떨어지고 있었다. “왜 울어요.” 휴지를 건넸다. 나는 아버지가 우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에게 화가 나면 울었고 또 내 인생을 존중받기 위해 많이도 울었는데 말이다. 두 사람이 소주 한 잔을 주고받는 사이 나는 아버지와 이모부를 번갈아 보았다. 두 사람이 행여나 느낄 연대감을 생각하면 심란하면서도 그 마음에 대해 관심이 가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이모부는 쉽게 떠났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애인이 두 시간을 넘기자 계속해서 전화를 했다. 결국 이모부는 일어섰다. 떠나면서 내 손을 꼭 잡더니 또 한 번 물었다. “내 행복해 보이제? 나 행복하데이.” 이모부의 순진함에 나는 결국 져버렸다. 엄청 행복해보여요. 그러니까 꼭 잘 지내세요. 이모부가 탄 차가 떠나고 옆에 서 있던 아버지가 말했다. “김 서방은 좀 별나제. 나는 저렇진 않다.” 그 말에 나는 그만 푹 웃어버렸다. 웃고 나니 심란했던 기분도 좀 나아지는 듯했다. 조문객들을 다 돌려보내고 사람들은 곳곳으로 흩어져 잠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할머니 영정사진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장례식장의 탁 트인 공간에서 자는 게 적응되지 않아 몸을 잔뜩 웅크렸다. 너무 피곤한데 빨리 잠에 들지 않았다. 이모부의 행복 타령과 아버지의 눈물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오래 마음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마음을 쓴다 해도 좁혀지지 않을 그 두 사람과 나와의 어떤 거리에 대해 가늠해 보았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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