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동갑은 내 친구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이다>

저는 고교평준화 세대입니다. 지금은 서울지역의 사립대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중학교 시절 저는 진로나 학업에나 아무 관심이 없었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았을까요? 미리부터 자신의 진로를 확정짓기도 힘들뿐더러
적성이란 것도 선천적이지만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서 선명해지기도 하는 거니까요.

저는 초등학교 때 음악을 정말 좋아했었습니다. 중학교 때는 본격적으로 노래를 부르기도
했죠. 그렇다고 음악을 진로로 하겠다고 마음먹은 적은 없었습니다. 사춘기라 신세한탄하기
에도 바빴으니까요. 사춘기를 심하게 겪은 저로서는 더욱 방황했습니다. 그래서 성적에는
관심도 없었고 그냥 어영부영하다 운 좋게! 인문계 고등학교로 들어갔습니다.
제대로 된 고교평준화의 혜택을 본 게 아니라 운 좋았던 거긴 하지만, 고교등급제로 인해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모른 채 공부 못하는 아이로 낙인찍혀 고등학교를 갔다면 지금 같은 저의 모습도 없었겠지요. 그래서 학업에 대한 개념이 없던 제가 다시 학업에 대해 생각하게 됐을 때 그나마 열린 기회가 있었다는 게 다행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학업 할 수 있었다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물론 평준화 정책이 제대로 되진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제대로 된 평준화 정책이었다면
실업고, 외고, 과학고 등등 특목고는 일찍이 자신의 길을 찾은 아이들을 위한 특성화고가 되어야 했죠. 하지만 오히려 고교서열을 조장하고 더 좋은 대학으로 가는 통로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얼마 전 집값 떨어진다고 특정 공고를 폐지하라는 사건을 보아도 사회적 인식을
알 수 있지요.

자꾸 교육정책을 바꾸어 보지만, 공교육은 붕괴되고 사교육 열풍은 심화되는 것은 결국
대학입시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뭐라해도 우리들의 목적지는 ‘명문대학’이니까요.
형평성과 자율성을 확대해도 결국은 명문대학이라는 획일적인 목적지가 있으니까
고교평준화도 반쯤만 성공한 정책이 된 것입니다. 아무리 중고등학교 교육정책을 형평성과 자율성을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가도 정말로 개인의 자율성을 극대화한 학생들은 좋은 대학 가기 힘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금 이명박 대선 후보의 삼불정책 폐지로 다시 고교평준화 얘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고교평준화를 폐지하냐 안하냐를 논하는 걸로 가서는 안 될것입니다. 이건 당연한 겁니다.
정책이 나온다면 평준화의 원래 취지인 형평성과 자율성을 추구하도록 그 지점에서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사교육 열풍을 잠재우기 위해서 교육정책을 세운다고 하는데 그 조장의
근본 원인이 뭔지 모르면서 '아니 뻔히 알고있으면서'도 말입니다.

학생 입장에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고 학생들을 다 고려하는 정책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라는 온전히 그 자체가 누릴 수 있는 삶을 고민하는 정책을 말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일때도 단순히 집에서 먼 고등학교에 가야 하니까 싫어, 공부 못하는 애들이 분위기 흐려서 싫어, 이 정도의 생각에서 머물렀을 뿐이니까요. 이건 먼저 경험하신 분들이 잘 알지 않을까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닌데 성적순으로만 평가받는 것이 얼마나 비인격적인 것인지를요. 행복은 성적순이라 혜택을 본 사람들만 정치를 해서 잘 모르시겠다고요? 그렇다면 행복은 성적순이라는 것이 부당한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내보는건 어떨까요. 숫자로는 훨씬 강자일 것이니 말입니다.

지난 2001년 교육부가 교육인적자원부로 이름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이 이름만 보아도 교육철학이 뻔히 보입니다. 지금 국가가 머리 굴리는 건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인적자원으로 잘 키울까를 고민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자본 증식력이 없는 사람은 내다버려도 상관없다는 말과 똑같은 거겠지요.

요새 ‘인적자본’이라는 말이 유행하지요. 저는 왜 이리도 이 말이 싫은지 모르겠습니다. 대학교 게시판에 붙어있는 ‘어떻게 하면 내 몸값을 더 높일 수 있을까’ 라는 주제로 열리는 강연이 왜 이렇게 불편한지 모르겠습니다.

삼불정책에 고교평준화 이야기 등장으로 대선공약의 쟁점은 교육정책이라며 떠들어대는 교육강국 대한민국, 하지만 제대로 된 교육철학이 없고는 어떤 교육정책이 나오든 학생들은 실험대상에 불과할 뿐입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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