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구마

일상 2010. 8. 29. 00:40

 
까까머리 친구가 만든 인터뷰 질문지


                                그림 같은 사진. 나무 사이로 내리는 빗방울에 가로등빛 부딪치자 저리도 빛난다.
 

.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내이름은 장윤미


. 오늘 그곳에는 비가 왔나요
네. 빗소리 들으면서 깼습니다.


. 여든 살이 되었을 때 무엇이 가장 골치거리일 것 같나요
아침에 일찍 깨는 거. 난 잠과 꿈이 너무 좋은데.


. 무엇을 먹어도 성에 차지 않았던 적이 있나요 그때 먹은 음식들은 무엇입니까
과일 먹을 땐 항상 그래요. 중학교땐 하루에 귤 반박스씩 먹고 해서 다음날 얼굴 누렇게 떠서 가곤 했어요.


. 국민학교 일학년 때 들고다니던 물체주머니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나요
길거리에서 주운 돌. 피아노 학원에서 훔친 연필들.
돌 하나 주워서 항상 발로 차면서 걸어 다녔어요.
땅만 보고 걸어 다닌 거지요.


. 짝꿍을 때린 적은 언제였나요
국민학교 2학년? 덩치 큰 남자 짝꿍한테 하도 꼬집히다가 못 참고 팔뚝살을 비틀었음.


. 아 내가 대체 무엇인가
아 나는 고구마.


. 어머니가 보내준 소포에는 무엇이 들어 있나요
김치 한 통, 다양한 통에 담긴 밑반찬들. 울엄마가 해주는 가장 맛있는 밑반찬은 오징어채. 양념이 걸쭉한 게 술안주로도 좋아요.


. 파리를 손으로 잡을 수 있나요
아뇨. 왜 못 잡을까요. 모기보다 덜 해로워서인가, 터뜨렸을 때 뭐가 나올지 감당 못 해서인가.
그러고보면 파리채는 나름 인간적인 물건이군요. 파리의 시체를 훼손하진 않으니까. 근데 파리 몸에는 대체 뭐가 들어 있을까요.


. 초능력이 생긴다면
바이오맨 5호기 핑크파이브가 되게 해주세요.
핑크파이브가 손가락 두 개로 원을 그리면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막을 만들 수 있어요.


. 당신의 가장 우스운 표정은 무엇입니까
콧구멍 최대로 벌렸을 때


. 귓밥의 냄새를 맡아본 적은 있나요
네. 어릴 때 귓밥을 약봉지에 모은 적이 있는데, 음, 별 냄샌 안나덥디다.


.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주구장창 기도만 한 것은 언제였습니까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 빨래가 덜 말랐을 때 나는 냄새를 표현한다면
냄새가 기억나려 한다는 게 참 신기한 지금.
물고기가 사는 더러운 물 가까이에 있을 때 나는 냄새? 


. 주렁주렁이라는 표현이 가장 어울리는 것은
단감.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 당신의 입버릇은
꼭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이렇게 내 말이 꼭 사실은 아니라는 투의 말들.
그런데 이게 강박 같아서 요즘은 싫어요. 잘 안 고쳐짐.


. 가장 만지고 싶은 것은
구름


. 재래식 화장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나요

나는 똥을 좋아하니까. 그런데 냄새는 못 견뎌함.


. 꿈에서 보았던 가장 믿을 수 없는 광경은
실제로 밖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날, 
천장이 벗겨지면서 비들이 나를 향해 쏟아지던 광경. 누워서 보았기에 더 인상적이었음.


.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이 미웠던 적은
없어요. 부딪칠 일이 없었던 것 같음.


. 아버지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모습은
 된장에 뭘 찍어 드시는 모습


. 당신의 기침소리는 어떤가요
으에이츄


. 하나도 우습지 않은데 한참 웃어야 했던 적은
없어요,


. 비오는 날 혹시 오줌을 싼 적은
왜 그랬는지 우리 중학교땐 아무렇지 않게 비 맞고 집에 가는 애들이 참 많았어요.
여름 폭우가 쏟아지는데 진짜 너무너무 비가 많이 와서 집에 가서 오줌눠도 되는데 걍 걸어 가면서 눴음.
그러니까 비가 내려서 오줌을 눈 거임.


.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었는데요,


.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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