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8건

  1. 2015.08.16 7, 8월 메모
  2. 2015.08.13 메모
  3. 2015.06.15 헌정 2
  4. 2015.06.10 요즘
  5. 2015.05.15 위하여 2
  6. 2015.05.07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7. 2015.03.30 꿈을 꾸었다 빛을 보았다
  8. 2015.03.14 어긋나 버렸다.
  9. 2015.03.09 죽음
  10. 2015.01.26 물뿌리

7, 8월 메모

일상 2015. 8. 16. 15:00

1.

<인사이드 아웃>

슬픔이 없는, 오직 기쁨만으로 순수한 기억을 갖고 싶다. 난 되려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는 슬픔 없이 떠올릴 수 없는 내 모든 기억들이 슬펐다.

기쁨이 캐릭터가 참 좋았다. 라일리를 위하듯 그렇게 내가 행복하기를 진심을 다해 노력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기쁨이란 존재가 있었을 거라는 상상에, 삶이 끔찍해져버린 숱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더욱 슬퍼졌다.

 

 

2.

<잡식가족의 딜레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과하게 느껴질 법한 순간마다 결코 그 과함의 경계를 넘지 않는 연출의 노련함에 감동했다. 고기와 살아있는 돼지가 붙는 몽타쥬는 맥락을 아무리 다듬어도 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잡식동물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불편은 하되 그 불편의 정도를 미세하게 조정하면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큐. 오로지 먹기 위해 가축을 가혹하게 사육시키는 문제에 대한 충격은 이미 예전에 받고 이내 잊었는데, 이번엔 차분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그나저나 감독은 마지막의 두 컷(돼지고기와 살아있는 돼지)을 이어붙이는 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을까? 

 

감독의 “돼지가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이후에 이어지는 일들이 이 다큐의 중심 이야기이지만 역시나 내 관심은 저 말에 더 오래 머문다. 저 마음을 강하게 와닿게 하는 디테일을 더 보고 싶다.  

 

 

3. 옮긴 것들.

나는 세계가 영화에 의해 구원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나에게 있어 영화는 세상이고 나의 여행이다. 나는 나를 경탄케 할 수 있는 작은 이상향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며 영화와 함께 그 여행을 생각한다. _테오 앙겔로풀로스

 

‘소멸되어 사라지는 것보다 시간 앞에 옅어져 가는 삶’이 펼쳐진 우리의 공간에 관한 작업을 해 나갈 예정이다. _<재>를 만든 오민욱 감독 소개 중에서

 

 

4.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산전수전 다 겪어봤으니 내 심정을 더 잘 이해하지 않겠나.”

그 순간 내가 놀라웠던 것은 갑자기 아버지가 이해가 되어서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도 아닌 내가 산전수전을 다 겪어봤다고, 사실 여부를 떠나 딸에 대한 당신 나름의 이해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메모

일상 2015. 8. 13. 18:00

 

신기주: 모든 젊은 세대가 과거 세대의 잘못에 반기를 드는 건 아닙니다. 2000년 12월 월간 『말』에 기고한 글에서 보니까, 젊은 교수 한 분이 등장하더군요. 교수님께서 진중권 교수의 용어를 빌려서 비유한 마이크로 파시즘을 행한 직접적인 당사자였죠. 그 젊은 교수는 이명원을 탄압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지적 신념을 지키는 것처럼 굴었어요.

 

이명원: 그래서 진실에 대해선 단순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렇게 복잡하게 계산하면 자기 자신부터가 왜곡되니까요. 대학에서 학생들한테 리포트를 써오라고 하면 가끔 어딘가에서 베껴서 제출해요. 그 젊은 교수는 학부 1학년생의 리포트 표절은 문제 삼으면서 학계 전체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에 대해선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태도였죠. 오히려 학부 1학년생과 달리 문학계를 상징하는 사람의 표절에는 가중치가 붙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이명원 인터뷰: 신경숙 표절과 문학권력”에서, <인물과 사상> 208호

 

내가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건 충분히 알고 있던 것이고 이제는 그런 생각의 습관에서 좀 벗어나보려 노력해야 하지 않나 싶다. 사실 나는 이것이 내 미덕이라고 생각해왔다. 언제나 늘 기준, 어떤 지점을 바라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주 판단을 유보하고 복잡한 상태로 두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해야 할 일들도 있을 것이다. 그걸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새로운 문제겠지만.) 하지만 적어도 내가 가까이에서 ‘겪었던’ 사태들에 관해선 진실이 무언지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후에 느꼈던 절망감이 이를 증명하는 것 같다. 이 절망감과 마주해야 한다. 바라보는 것을 넘어 내가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있어야겠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헌정

일상 2015. 6. 15. 00:53


최근 수업에서 들은 ‘헌정의 글쓰기’가 자주 생각난다. 선생님은 앞으로 그런 글쓰기를 해보고 싶고, 그것이야말로 글쓰기의 원천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신문을 읽다 시인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의 생일마다 생일시를 쓰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시인의 말이 관련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이런 글쓰기는 처음 해보는 거라 놀라웠어요. ‘나’를 생각하지 않고, 자의식으로 언어를 고르지도 않고, 오로지 ‘대상’을 생각하고, 이 마음이 읽는 이에게 잘 전달될까를 고민하는 글쓰기요.” (박연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요즘

일상 2015. 6. 10. 00:14



1.
지난 한 해의 경험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성추행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위에 참여한 것이다. 고민했던 것을 남기고 솔직한 심정을 글로 정리해보고도 싶다. 되지 않는다. 시도조차, 시도하고자 하는 마음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다시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경험의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채로 성폭력 문제들과 다시 대면하게 되면 어쩌나 싶은 걱정 때문이다. 나는 내 변화가 새로운 각성과 다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느꼈던 무수한 회의와 혼란까지 포함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정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2. 
책의 어느 구절을 읽다가 엄마의 일기장이 생각나서 오랜만에 꺼내보았다. 서울에 지내는 동안 쓴 일기들이다. 그걸 두고 간 것도 잊어버리고 신경쓰지 않는 게 내 엄마. 일기는 온통 화, 우울, 슬픔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다시 꺼내 읽지 않았다. 다시 읽으며 새삼 마음이 먹먹해지는데 많지 않은 일기들에서 “윤미 좋아하는 과일, 고구마를 사러 시장에 가야겠다.”가 두 번이나 나와 혼자 웃었다. 나는 과일이 정말 좋다. 할머니가 되었을 때 과일 장사를 하고 있으면 좋겠다. 그럴 형편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엄마는 늘 과일을 넉넉하게 챙겨주었다. 어릴 적엔 대문밖엘 나서기 직전까지 입에 과일을 물고 있었다. 내가 엄마에 관한 다큐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건 참 뻔한 말이지만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언제나 늘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들다 보니 내 욕심까지 투명하게 드러나 버려서 좀 쑥스러웠다. 나와 엄마 사이의 지나치게 가깝지 않은 거리가 우리의 연대를 더 강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3.
아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최근 들어 그렇게 되었다. 이유 없는 증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들자 언제고 이 화를 꼭 풀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4.
어제 수박을 많이 먹고 자서 새벽에 두어 번 깼다. 가장 마지막에 깬 것은 새벽 다섯 시경이었는데 다시 이불 위에 누우니 창문 너머로 하늘이 파랗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반수면 상태로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불어온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살짝 더 깨어난 정신으로 새소리를 들었다. 기분이 좋았다. 이런 종류의 기쁨은 여행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배낭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부쩍 자주한다. 더 오래오래 떠나 있고 싶다. 거기에 머무르고 싶다.  


5.
롤랑 바르트 수업에서 선생님이 “생은 아이들 같은 것, 화초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자주 살피고 꾸준히 물을 공급하는 것. 아직은 아이들과 화초의 긍정적인 면만 보고 싶다.


6.
욕망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것만으로도 구질구질해서 그동안 들여다 보기도 싫었던 내 욕망들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게 되는 걸까. 생각 이상으로 이 수업이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위하여

일상 2015. 5. 15. 19:46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머릿속을 환하게 하는 말들. 근래 만난 그 어떤 문구들보다 좋았다. 그리고 내가 아직까지 이런 말에 설렐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매일 아침 병원에서 그저 세상을 관찰하던 소년 볼탕스키는 어느 날, 대로를 지나는 사람들을 세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러다 600만 명이 됐을 때 그는 중얼거린다. “모두 죽었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이 600만명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이해하려 했다. 그는 아티스트가 된 후, 전쟁 속 죽음을 넘어 보편적인 죽음이라는 근원으로 들어갔고, 거대한 집단학살이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를 꿰둟어 보고자 탐구했다.

 

-“세상엔 선명한 진실이 별로 없잖아요. 또 그래야 이 사람 저 사람 다 자기를 투영해 볼 수 있고요. 예술은 정교하지 않을 때 포용력이 커지고, 보는 이들이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져갈 수 있어요. 너무 꽉 차고 선명하면 관객이 마음 붙일 데가 없어집니다.”

 

-“우리 인간들은 매우 착한 일을 할 수도 있고, 아주 악한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권력이 생기면 두려움이 없어져요. 예전에 파리는 ‘유대인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한다’는 고약한 법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우리집 고양이가 이웃 아주머니댁에 오줌을 싼 거예요. 정말 좋은 이웃이었는데, 그날 저녁 찾아왔더라고요. 오늘 밤 안에 당장 고양이를 죽이지 않으면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날 우리 고양이는 죽었어요. 이는 권한을 갖게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네 살, 다섯 살 그때일 거예요. 사람들은 모두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무수히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서웠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일까? 왜 그랬을까?’ 그때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한 거죠. 분명히 그들은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면 어떨까요? 권한을 갖게 된다면 나 또한 어린아이를 죽일 수 있는 거죠. 멀쩡한 이웃이 고발하는 것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과연 우리 안에 있는 착한 모습과 악한 모습을 조정하는 권력이 무엇인지 그걸 주시하게 됐습니다. 사람이 원인이 아니에요. 우리 내면의 단추를 누르는 자가 종교인인지, 정치인지, 기업인인지, 언론인지 그걸 살펴야 합니다.”

 

 

(프랑스 현대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인터뷰, 경향신문)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나를 포함한 다섯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푸르게 무성한 잔디를 가진 어느 공원이었다

다들 기쁘게 걸어가고 있다고 느꼈는데

갑자기 두 사람이 멈추더니 그중 남자가 손에서 무언가를 던졌다 빛이었다

두 사람은 재빠르게 뒤를 돌아 왔던 길로 뛰어갔다

빛을 본 우리는 경악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작고 동그란 빛은 계속 우리를 따라왔다

우리는 사람이 많은 곳에 다다랐다

그 빛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도망을 쳤다 하지만 멀리 가진 못했다

막다른 길도 아니었는데

우린 고립되었다

교복을 입은 소녀가 그 빛을 손에 쥐었다

모두들 얼어붙었다

소녀는 달려 숲으로 사라졌다

모두들 울며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죽은 소녀가 숲을 나왔다

하지만 나 이외의 죽음을 막진 못했다고

빛을 쥐고 도망친 곳에서 또 사람을 보았다고

그들과 함께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다같이 또 울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어긋나 버렸다.

일상 2015. 3. 14. 21:45


엄마는 어제 점을 봤다며 신나는 목소리로 전화했다. 물론 나에 대한 것은 이번에도 특별하달 게 없어서 그런 거 믿지 않는다며 지속적으로 대꾸하면서도 늘 “또 뭐 물어봤어? 또 뭐? 이건 어떻대?” 하고 묻게 된다. 그러다 아빠 이야기가 나왔다. 점쟁이는 엄마와 아빠의 궁합이 좋다고 했단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난, 그 점쟁이 못 믿겠네, 라고 답했고, 엄마 역시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다면서, 그런데 그거 빼곤 기막히게 다 맞혔다니까, 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갑자기 최근 본 클레르 드니의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이 생각났다. 영화에서 “어긋나 버렸다.”는 말이 두 번 나온다. 어긋나 버려서 일이 그렇게 되었다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게 무너진 한 여자가 그 얘길하며 흐느껴 운다. 내용과 상관없이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원인으로 이 말만큼 강력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게, 어긋나 버린 게 아닐까. 궁합으로도 어쩔 수 없는 한순간의 어긋남 때문에 어느 부부는 돌이킬 수 없이 하지만 헤어지지는 못한 채 서로를 무시하며 살아진 게 아닐까. 그 어긋남이라는 게 따지자면 구체적인 사건일 수 있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거기에 그 무언가들이 들러붙어 벌어진 일처럼 느껴진다. 운명이 될 만큼은 강력하지 못한 어떤 것들이 항시 노려보고 있다가 때를 노려 악착같이 발에 매달리는 느낌. 그래서 벌어진 일들, 형성된 삶들. 하지만 그것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지는 않다. 좋은 궁함-어긋남이라는 상관관계를 두고 생각하다 보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걸 자꾸 상상하게 되어서 오래 할 생각은 못 된다는 걸 금세 깨닫는다. 점쟁이 말로 아빠는 훌륭한 기술자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내가 그의 노동을 굉장히 존중하고 있다는 건 가끔 느낀다.) 하지만 뭔가에 눌려서 그걸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고, 그래서 엄마가 자꾸 잘한다, 잘한다고 칭찬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너무 슬펐는데, 남은 생에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거란 예감과, 실은 내가 굳이 그러길 바라지 않는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왜인지 요즘은 가족을 자주 이야기하고, 자주 생각하게 된다. 가족 개개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관계나 관계 맺음 자체가 낯설어진다. 물리적으로 가족과 멀어진 지는 10년이 다 돼 가는데, 이제야 가족과의 거리두기가 가능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죽음

일상 2015. 3. 9. 02:38


꽤 넓은 공터였다. 그곳에 한복을 입은 이모들이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사람이 서럽게 운다는 것의 느낌은 그때 형성된 것 같다. 공터의 끝엔 초가집이 있었고 그 주위로 꽤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집안의 아이들은 멀찍이 떨어져 놀고 있었다. 난 모래바닥에 이것저것 낙서를 하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사촌동생이 저기 무얼한다고 해서 고개를 들었을 때, 형형색색의 화려하고 큰 무엇을 사람들이 하늘로 띄우고 있었다. 올라가는 그걸 보고 엄마와 이모들은 다시 크게 울었다. 엄마는 손으로 허벅지를 치면서 울었다. 사람이 죽어서 하늘로 간다는 말은 저걸 말하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작은 외삼촌의 장례식은 그랬다.

어쩌다 작은 외삼촌 이야기가 나오면 외할머니는 아직도 우신단다.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다 돼간다. 작은 외삼촌이 죽고 나서 외할머니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는 말은 어린 마음에 큰 충격으로 남았다. 외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운 외할머니가 주방으로 가 있을 때만 작은 외삼촌 얘길 하신다. 니들 애미 죽으면 기원이 묘를 둘이 같이 있게 옮겨주고 싶다. 이번 설에는 그런 얘길 처음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상경하는 걸 반대하셨고, 막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하셨다. 그러지 않으신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서울에 자취하는 니 외삼촌들을 보러 갔는데 기원이가 맨밥에 계란후라이 하나만 얹어 먹고 있더라. 그렇게 먹고 지낸 게 병이 된 것 같다고, 명절에 찾을 때마다 그 얘길 꺼내셨다. 그 얘길 꺼내지 않으신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귀여운 얼굴의 외할머니가 약간 굽은 허리로 종종 걸어와 앉는다. 그러면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 손재주 좋다는 칭찬을 시작한다. 어디서 배우지도 않았는데 옷 한 벌을 뚝딱 만들었다고. 흰 비단 한복보다 하얀 외할머니의 머리칼. 그래서 난 온통 새하얀 머리칼만 보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를 떠올리게 된다. 혼자 밥에 계란후라이를 얹어 먹고 있으면 괜히 죽은 외삼촌을 생각하게 된다. 그후로는 본 적 없는, 그때 서럽게 울던 엄마의 얼굴이 겹쳐진다. 가끔 내가 일찍 죽는 상상을 하는데, 엄마가 얼마나 슬플까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상상만으로도 그렇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산 자가 죽은 자 때문에 슬픈 것보다 산 자를 향한 죽은 자의 슬픔이 더 크지 않을까, 그런 짐작도 해보게 된다. 어쨌거나 작은 외삼촌이 외할머니의 곁에 있게 된다면 좋아하지 않을까, 괜히 그런 확신은 든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물뿌리

일상 2015. 1. 26. 00:30


꿈에

푸르고 맑은 파도들을 보았다.

느리게 솟아 올랐다 보다 느리게 가라앉는 파도들의 행렬을.
그 푸르고 맑은 파도 하나에 내 친구가 묻혀 있었다.
눈을 감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아주 먼 곳에서부터 오랜 시간 그러고 온 것처럼.
높이 솟아 올랐다 천천히 내려오는 친구를 바라보는 사이

귀가 열리고 파도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불고 발가락들이 젖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친구를 건져 바다 위로 날아 올랐다. 

손가락들이 젖었다.
발밑에서 물과 나비가 반짝거렸다.

울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을 보았다.

친구는 우리가 물뿌리라는 일본의 한 해변에서부터 날기 시작한 거라고 알려줬다. 
조금 더 바다의 중심으로, 계속해서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