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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17 단편 다큐의 미덕 (2)
  2. 2009.12.13 그리운 내 님이여 (1)

단편 다큐의 미덕(알바당 선언(17' 30'')/최신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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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장님은 최저시급제를 지키지 않는 건가”
'우리나라 알바 시급은 또 왜 그리 짠가!' 주변의 이야기에서 소재를 얻는다는 신춘 감독은 극장 매점에서 알바를 하며 느꼈던 문제의식을 다큐로 제작했다. 그리고 딱 그 정도만 이야기한다.  

이 다큐는 간결하다. 사장에게 말해서 시급을 올리겠다는 미션이 다큐의 주된 이야기다. 하나의 해프닝이다. 마지막 검은 화면엔, 신춘 감독의 미션이 실패로 끝났다는 걸로 끝맺는다. 주된 장소도 극장 안이 전부다. 극장이란 공간을 벗어나는 건 단 한번,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온 친구에게 일본에서의 알바경험담을 듣기 위해 친구의 집 근처와 카페를 간 몇 컷 뿐이다. 문득 상상해본다. 이걸 마이클 무어가 만들었다면? (뭐 좀 무리 있는 비교이긴 하지만) 아마, 다시 사장님을 찾아가서 될 때까지 따지다가 그래도 안 되면 노동부를 찾아가서 시급 책정의 정당성을 따져 묻고, 확성기 들고 청와대 앞에 가서 대통령 나오라며 좀 만나자고 소리를 질렀을지도 모른다. 

물론 마이클 무어 식의 시나리오는 장편이기에 가능하다. 다큐를 만들려는 대부분은 이런 소재를 장편으로 풀려 할지도 모른다. 최저 시급의 문제, 고용주들의 문제, 나아가 대학생이나 88만 원 세대의 문제로 까지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이 소재를 말이다. 신춘 감독의 다큐가 이런 문제를 암시하지 않는 건 아니다. 자연스레 배어 나온다. 그렇다고 딱히 심각하지도 않게.  

잘못하다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이야기를 구겨 넣으려 하다가 역효과를 줄 수도 있는 이 소재를, 신춘 감독은 영리하고 소박하게 만들어서 적당한 재미와 강한 임팩트를 준다. 재밌는 상황 하나를 가지고(일단 이 상황으로 다큐를 만들면 재밌겠다는 밝은 눈) 극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이것저것 다양한 이미지를 발견해 재밌는 몽타주들을 만들었다. 또 하나, 다큐 안에 감독이 개입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캐릭터가 드러나기란 쉽지 않은데, <알바당 선언>에서는 감독 캐릭터가 잘 드러나서 재밌다. 안 되면 말고의 용기와 정의감, (정말 안 되니 말았지 않았는가. 그래서 모순적인 제목이 더 재밌다. 알바생들이 단결해서 투쟁할 여유가 있겠는가, 한푼 더 못 받아도 몇푼 나올 구석 있으면 다행 

다큐라고 하면 힘부터 빡 들어가기 쉽다. 꼭 장편다큐를 생각해서, 길고 지난할 시간을 뚝심으로 이겨낼 의지부터 다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엄청난 소재를 찾거나, 아니면 일상적인 소재에서 시작해 점점 정치적인 의미들을 발견하면서 길게 끌어가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든 감독이 하고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내기 위해서)

그렇지 않다면 딱히 구성도 없고 별 내용도 없이 무의미한 이미지들만 나풀거리는 습작이거나, 감독의 욕심이 많아 소화하기 힘든 그저 러닝 타임만 짧은 다큐가 많은 것 같다. <알바당 선언>을 보고나서 느끼는 건, 쫀쫀하게 쫙 짜인 단편, 많은 얘길 하지 않아도 보는 사람들이 알아서 읽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그런 단편 다큐들이 참 귀하다는 것.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그리운 내 님이여

인용 2009.12.13 23:41




그리움에서 그림이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림 그리다가 그리워하다..
뭔가 통하는 게 아닌가 싶어.
그리워하는 건 계속 반복하는 거잖아 그래서 쓰고 또 쓰고 여러번 쓰고
그래서 틀린 게 훤히 들어다보이게 그런 식으로 표현했는데..


다큐멘터리 <앞산전> 에서.



이진경 화가를 다룬 다큐 앞산전.
이 다큐를 보다 이 장면이 너무 좋아서.
화가의 폼하며 앉은 모양새며,
더욱이
물감이 흘러내리게 글을 쓰고 그걸 어설프게 가려보려 덧칠해둔 저 그림이 너무 좋아서.
저 느낌이 너무 좋은데 뭐라 표현을 못 하겠고나ㅎ


덧칠하다. 고쳐쓰다. 감추지 않는다...
(일부러 의도하는 것이라 해도) 잘못된 것을 뜯어내고 새 종이에 쓰는 게 아니라 흔적을 남기고 계속 가는 그런 방식에 요즘 꽂혀 있음. 

한유주는 그녀의 한 소설에서, 글을 쓰는 도중에 자신이 고쳐쓰고 있다는 사실마저 쓰더라. 지나친 강박증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여튼 그게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일종의 태도의 문제라고 느꼈기 때문인데, 모든 것을 쓸 수 있다고 전제하고 쓰는 것과 쓸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쓰는 것은 다른, 그런 차이랄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