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수 감독/유영길 촬영 감독
서울아트시네마


임철우 소설가는 '곡두운동회' 라는 작품으로 접했다. 마을주민들이 좌우로 갈리어지고 생과 사를 오간 반나절의 시간 속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소설엔 이념도 모르는 주민들이 이념때문에 죽게 되고 그 생과 사를 결정하는 국가의 폭력을 담았다. 여기서 곡두는 허깨비를 뜻한다. 이념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이 이념때문에 죽어야 하는, 그 이념의 허구성. 그래서 소설 속 한 아이의 생각은 정곡을 찌른다. 운동장을 새끼줄로 나누고 좌 우로 갈려진 주민들과 그들을 지휘하는 반란군의 모습을 보며 '하나의 운동회' 같다고 하는 시선이.

임철우 작가는 집요하게 이념의 문제가 가져다 준 한국 역사의 아픔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의 소설들을 조합해서 하나의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가 '그 섬에 가고 싶다' 이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고향에 묻기 위해 문재구는 아버지의 꽃상여를 배에 싣고 고향친구 김철과 함께 섬으로 향한다. 하지만 섬에 가까워지자 섬사람들의 맹렬한 반대가 시작된다. 이는 문재구의 아버지인 문덕배와 마을 사람들의 아픈 기억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일단 사람들만 마을에 들어온다. 시인인 김철은 마을을 돌며 지난 시간을 회상한다. 영화는 김철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섬마을의 풍경과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 준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의 한국사람들의 생활을 자세히 보여준다. 어느 날 갑자기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되는 누구네 집 엄마, 떠돌이 장수와 과부댁의 만남, 딴 집 살림을 차리고선 늘 섬밖으로 나가는 재구의 아버지 문덕배, 밖으로만 떠도는 남편에 곱추인 딸 때문에 힘들어 하는 문덕배의 아내, 그리고 곱추인 딸의 죽음,
미리 영화의 간단한 내용을 본 나는, '이데올로기로 인해 억압당하는 주민들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면서, 열린 카메라 구도를 통해 화해의 공간을 모색한다'는 설명을 잊을 정도로 대부분의 내용이 섬마을 사람들의 일상을 보여주는데 할애된다.
  곱추인 딸이 죽고
반쯤 미친 문덕배의 아내를 문덕배가 섬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선 며칠 안되어 바로 새 여자를 마을에 들여오자, 마을 사람들은 그를 멍석에 말아 심하게 팬다. 이 사건이 마을 사람들이 학살당하는 계기가 된다. 니들이 뭔데 나를 심판하냐며 소리지르며 문덕배는 섬을 떠난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인민군이 섬에 들어 온다. 인민군은 섬마을 사람들을 국민학교 운동장에 불러 모은다. 운동장엔 새끼줄로 금이 그어져 있다. 이 새끼줄은 사람들을 사상에 따라 분리시키고자 하는 도구다. 약삭빠른 몇몇 마을 사람들은 인민군 만세를 외치며 자신이 반동분자를 색출해 내겠다고 나선다. 날도 뜨거운 여름 한 낮, 이념도 뭣도 모르는 마을 주민들은 순식간에 생사가 갈린다. 지주나 공무원, 경찰들은 우로 몰려 죽게 됐다. 그때 문덕배가 등장한다. 인민군들은 인민군이 아니라 정부군이었다. 정부군은 섬에서 나온 문덕배의 멍이 든 얼굴을 보고선 무슨 일이냐고 묻고, 문덕배는 좌익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애매한 말을 흘렸다. 그 한마디에 정부군은 섬의 좌익
들을 색출해 내고자 연극놀음을 한다. 일부러 인민군이 되어 교묘하게 좌익을 처단하겠다는 거였
다. 순식간에 상황은 반전되고 사람들의 원망은 문덕배에게 향한다. 그제서야 덕배가 변명해보았
자 소용없다.
그리고 이 날은 죽은 마을주민들의 공동제사 날이 된다.
그러니 마을주민은 죽어도 죽은 문덕배의 상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갈등은 최고조로 치닫고 화가 난 마을 이장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문덕배의 상여에 불을 지른다.

카메라는 저 멀리 빠지고 한스런 판소리가 흐르고 불에 타버린 상여를 육지로 끌어 올리는 마지막 장면. 어쨌든 살아남은 자들에겐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 짙푸른 밤, 저 멀리서 보이는 두런
두런 상여를 끌어 올리고 있는 조그만 사람들은 아픈 역사로 인해 겪은 기억만큼 사는 일이 고단
해 보인다. 그래도 살아가겠지. 그렇다면. 그렇다면! 





시인 김 철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는, 대부분이 마을에서 겪은 추억이다. 그리고 국가에 의해
마을의 일상이 순식간에 깨지는 사건은 상대적으로 짧게 처리됐다. 영화는
허깨비같은 이념
이, 어떻게 마을 사람들의 일상과 관계를 파괴하는지 보여준다.
좌익을 색출하겠다고 사람의 생사를 가지고 연극놀음을 한 국가라는 존재의 폭력은 이미 눈에 드러난다. 그들의 뻔뻔한 행동은 욕을 하고 욕을 해도, 사실 오늘날까지 욕을 먹지만 변함이 없다. 
  하지만 내가 영 찜찜했던 부분은, 자세하게 묘사됐던 섬마을의 일상이 그리 아름답진 않았다는
것이다. "전쟁의 폭력과 대비되는 순수한 일상"이라는 상투적인 대조법이 아니라는 점은 나에게
또 다른 생각을 갖게 했다.
그건 폭력의 일상화. 

  이 영화의 전반부에 묘사된 섬마을 일상엔 슬픔과 한이 서려있다.
특히 여인들에게서 그런 모습이 나타난다. 매일 남편에게 맞던 한 부인은 갑자기 신내림을 받는다. 그리고 문덕배의 부인은 반쯤 미쳐서 섬마을을 떠나 죽는다.
집안엔 신경도 쓰지 않고 외도하는 남편에 곱추인 딸마저 병으로 죽자 문덕배의 부인은 지붕으로
올라가 날이 다 저물도록 내려오질 않는 장면이 있다. 짙어지며 짓누르는 붉은 노을 아래 초가집
지붕 위에 가엾은 새처럼 그녀는 앉아 있다. 그 모습은 그 자체로 한이었다. 또 그녀는 문덕배가
딴 집 살림을 사는 섬 밖 마을에 갔다가 돌아오는 강에서 비를 맞는다. 그때 노를 젖으며 한에 서
린 노래를 부르는 장면 역시 비중있게 묘사된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마을 공동체 생활의 이웃 사랑과 이로인한 정겨움이 드러나면서도 이렇게 고
통스러워 한 여인들의 모습 역시 큰 비중으로 다뤄진다. 
  그리고 이 섬마을 사람들이 문덕배에 가한 폭력 사건. 정신나간 마누라를 내팽겨치고 금세 다른
여자를 마을로 들여온 문덕배는 호되게 마을주민들의 심판을 받는다. 멍석말이로 심하게 맞은 문
덕배가 분노하며 섬마을을 떠난다. 그리고 그의 보복심은 국방군이 섬에 들이닥쳐서 무고한 양민
을 학살하는 계기가 된다. 분한 마음에 국방군에게 스치듯 말한 '마을에 좌익이 있는 것 같다'는
한마디에 마을주민이 학살된 것이다.

  물론 이건 우연성의 문제로 무리한 연결일 수도 있다. 또 그의 평소 행동은 마을 사람들에게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마을사람들이 심판한답시고 마구 패고 쫓아내는 것은 공동체성이라고만 하기에도 찝찝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무척 복잡하고 조심스런 문제다. 

  어쨌든 쉽게 단죄하지 않되 일상의 폭력 문제는 논의대상으로 이야기 돼야 할 것이다.
전쟁으로
인한 폭력 경험은 또 다시 일상으로 스며든다. 그리고 일상 속엔 언제든지 전쟁과 학살같은 사건
이 벌어질 수 밖에 없는 씨앗을 품고 있다. 전쟁이 일상을 단절시킨 것이 아니라 전쟁은 일상의 연
장이라는 거다. 이젠 전쟁이나 폭력이 일상을 부순다 라는 말을 할 때는 그 맥락을 잘 고려해야 겠
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이념대립과 전쟁의 학살 문제는 일상의 회복이 아닌 일상의 혁명을 통해 그 재출현을 막을
수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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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사건을 바탕으로 쓴 '대량학살의 사회심리'라는 논문엔 이런 글이 있다.

'4.3에서 '그들'의 경계를 확장하고, 학살을 정당화한 심리문화적 요소는 무엇인가? 이 글에서는
우리나라 폭력 문화의 한 요소로 죄인에 대한 처벌과 보복 심리를 들고자 한다. 물론 우리나라의
유교적 권위주의나 위계질서 숭상, 제주의 고유한 가족과 공동체 문화 등 다른 여러 문화적 요소
들도 학살 과정에 영향을 미쳤겠지만, 처벌과 보복 문화가 좀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4.3 동안 죄에 대한 인식, 죄인을 규정하는 방식, 죄인을 처벌하는 심리문화는 적의 범위를 확대하고 학살을 정당화한 배경이었다. 또한 보복 심리는 죄인의 처벌 과정과 맞물려 폭력의 상승 작용을 가져온 한 요소였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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