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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1.10 더로드, 이런 세상에선 죽는 게 오히려 사치야.


  어떤 영화를 보고 나면, 야무지개 손빨래나 청소를 하고 싶은 마음이 일 때가 있다. 가령, <미술관 옆 동물원>이나 <8월의 크리스마스>와 같은 영화에서, 심은하의 손매무새를 보면, 담박 담박한 그런 장면들을 보면 말이다.  

영화 <더 로드>를 본 후, 얼굴에 살얼음이 낄 듯한 추위를 뚫고 따뜻한 방에 돌아오자마자 내가 한 일은,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한 일이었다. 괜히 쌓아둔 박스를 괜히 뒤적거리고 책장의 책들을 여미는 일. 거기다 밥에 간장과 참기름을 비벼서 아주 맛있게 먹었다면 더 좋았겠지. 그냥, 그러고싶게 만드는 영화들이 있다. 




 여느 재난 영화처럼 멸망해가는 지구의 모습은 없다. 살려고 몰려다니는 사람떼도 없다. 그저 아버지와 아들, 거의 폐허가 된 풍경 위를 닳은 신발로 때가 잔뜩 낀 행색으로 걸어가는 두 사람을 비춰줄 뿐이다. <우주전쟁>을 보았을 때가 기억난다. 재난영화를 보고나면 그렇듯, 내가 하는 모든 고민들이 아주 하찮아지고 이내 무기력해져서 비틀거렸다. 그러다 지치면 좀 더 착해지는 일로 괜히 희망을 품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다 시간이 좀 지나면 영화 내용을 잊는다.

<더 로드>는 울컥, 하는 공포도 엉엉,하는 감동도 없다. 여느 재난영화처럼 스펙타클한 광경도 없다. 여느 재난 영화들이 집중하는 시점과는 다른, 이미 많은 것들이 스러진 직후의 풍경을 담았다.  '아직 살아있는' 지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의 죽어가는, 과 아직 살아있는, 은 많이 다르다. 몇 번이고 생각해보다, 아직은 살아있는, 이라는 표현이 더 맞다는 생각을 한다. 겨우 숨을 할딱거리는 공간. 그 안에 아직 사람들의 흔적이 있다. 그 '흔적들' 때문에 나는 좀 마음이 아팠다. 파괴되는 도시의 모습이나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보다도, 소멸과 상실의 흔적들이 더 강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이 영화, 기대만큼! 엄청 큰 뭔가가 다가오진 않는다. 행복했던 과거와 절망적인 현재를 황금빛과 회색빛으로 교차해 보여주거나, 희망을 주려는 마지막 장면은 작위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이 영화 좋다고 말하고 싶은 건, 소박한 마음가짐을 갖게 해주는 그 느낌 때문이다. 거창해 지지 않고, 야무지고 꼼꼼한 손매무새 같은 것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래 굶다 아버지와 아들은 음식이 가득한 지하장소를 찾는다. 마음이 놓여 조금은 편안한 잠을 잘 수 있게 된 날 밤, 그제야 생긴 여유 덕에 아버지는 잠든 아들의 잠바 주머니를 뒤적여 보게 된다. 그 안에서 나온 부러진 빗, 병뚜껑, 때가 낀 낡은 물건들. 그것들을 책상 위에 쪼롬히 늘어놓는다. 때가 낀 손톱으로 부러지고 망가진 것들을 만지는 손길.  

가장 좋은 건, 아주 오랜만에 하는 목욕 장면이다. 아버지는 때가 잔뜩 낀 아들의 손가락을 거품으로 씻어 주고 뜨거운 물을 머리에 부어 준다. 아이가 칫솔에 치약을 가득 짤아서 입 안에 물 때, 가득 거품내서 양치질 하는 장면들에 코끝이 짠해진다.

먹는 것에 감사해, 편히 잠잘 수 있는 것에 감사해, 내 옆에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 결국 이 영화 이런 얘길 하는 건가 보다 싶어, 착하고 교훈적인 영화구나 싶다. 시시하다 싶다가도, 알고 보면 가장 어려운 건데, 그래 이런 것들은 아무리 강요받아도 좋으니까.  


  

 이 영화는 희망 없는 곳에서 희망을 말한다. 모든 것이 죽어가는데 끝까지 제 아들을 살아가게 하려는 아버지. 


   "죽고 싶단 생각해요?" 

    길에서 만난 노인에게 아버지가 묻는다. 
 

    “이런 세상에선 그것도 사치야” 
 

  왜 그렇게 살아남으려고 할까. 제 아들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은 맹목적이다. 사는 것이 희망도 아니고, 오히려 살아남는 것이 고통인 세상에서 왜 그렇게 살려고 하는 걸까. 차라리 죽고 싶다는 어린 아들을 아버지는 왜 그토록 살리려 하는 걸까. 죽어 버렸고,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자살했고, 죽지 않으면 사람을 잡아 먹으며 살아 가야한다. 그런데도 계속 살아가는 게, '희망'이라 말할 수 있을까. 어떻게든 살아있으라는 말, 진실일까. 아니 진심일까. 

그래서 묻고 싶었는데, 그러자 
"죽으려는 게 오히려 사치" 란 노인의 대답. 여전히 미적지근하지만 나는 입을 다문다. 
잘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잘 걷지도 못 하는 다리로, 조금씩 허기를 해결하며 계속 걸어가던 영화 속 노인의 그 뒷모습 때문에. 그리고 다시 길을 떠나는 노인 뒤에 서 있던, 아버지와 아들의 먹먹한 모습 때문에.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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