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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0 모녀

모녀

일상 2010. 4. 20. 22:54



미뤄뒀던 한강 소설의 후반부를 마저 읽었다.
자려고 누웠는데 너무 슬퍼서 베개에 코를 박고 울었다.

아홉 살, 미시령 절벽에 매달린 버스 안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했던, 평생 그때 살아 남은 것을 후회한 여자와, 그런 여자를 엄마로 둔 또 한 여자는, 그래서 '모녀'라 불리우는 '그녀들'은,  
사는 게 힘들었고 견딜 만큼의 오기는 있었지만 견디다가 몸과 마음이 너덜해진채로 생을 마감했다. 딸을 내팽겨치고 알콜중독자가 된 엄마와 그런 엄마를 닮지 않으려 했지만 또 그러지도 못 했던 딸은 운명이라 할 수 밖에 없는, 제가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짐을 지고 살아가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다.

자신의 엄마가 "감염된 환부처럼, 죽은 짐승의 육체처럼 서서히 썩어가기를 스스로 택했던 이유" 를 알아야만 했던 건, "그녀 바로 자신 안에 그런 충동이 비명을 지르고 있어서, 똑같이 죽어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 이었다. 결국 딸은, 엄마가 삶과 죽음의 경계를 경험한 그 미시령 고개의 절벽에서 자살한다. 모녀 간의 끔찍한 운명의 끈.

그녀들을 아는 한 남자는 말했다.
 "그녀들은 똑같은 눈을 가졌습니다. 그녀들은 살아남지 못했습니다."  


+
내가 울며 잠들었던 건, 어쨌든 나와는 다른 삶이라고 생각했던 엄마의 인생이 사무치게 내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요, 알지도 못 할 것을 감히 아는 체 하는 교만일지 모르겠으나,
아 내가 누군가의 자궁에서 만들어져 태어났다는 걸, 십개 월 간 누군가의 몸 안에서 구르다가 여기로 튕겨 나왔다는 것이 피마르게 뼈저리게 느껴지는데, 그냥 눈물이 뚝뚝 흘렀다. 이해하고 말면 좋을 걸, 잘해야지 하고 착해지고 말면 좋을 걸, 몸과 마음이 서로 먼저랄 것 없이 같이 훌쩍거리는데, 모두, 그래 나라고 할 수 있는 그 모든 게 몰려와선 감염되듯 따라 울었다.   

당신은 아마 죽고 싶었을 거라고, 아닐 거라고 부정해봐도 아무래도 죽고 싶을만큼 힘들었을 거라는 생각이, 아니 그런 느낌이 드는데, 정말 대책 없는 감정이었다. 눈물이란 게 흘러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나는 어느덧 그때 당신의 나이가 되었다. 실타래가 풀리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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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말에, 소설 속 주인공은 생각했다.
 "닥쳐. 도취하지 마. 앞지르지 마. 그녀들은 당신이 원한 것만큼 약하지 않았어."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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