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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병아리

일상 2010. 7. 14. 23:00



그러게. 내 말이 맞지.
좋아하는 게 얼마나 무서운 건데.


_드라마, 위대한 계춘빈





 내 나이 아홉 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병아리를 키웠다. 한참 고민하다 한 마리 골랐을 때의 설레임과 손에 쥐어지던 이상한 뼈의 감촉이 기억난다. 처음엔 너무 예뻐서 하루종일 쳐다보고 붙어서 같이 놀 거리를 찾았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니 조금 시들어지길래 마루에 돌아다니는 게 정신사납기도 해서 시끄럽다싶으면 베란다에 내놓곤 했다. 흔히 그리 되듯이.     어느 날 방에 틀어박혀 동생이랑 한참 놀다가 빗소리를 들었다. 별 생각없이 또 몇 십분을 놀다가 번뜩 병아리가 생각났다. 미리부터 불길한 예감에 휩싸여 도저히 베란다문을 열지 못 했다. 몸이 저리도록 너무 쩔쩔매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용기내 열었는데, 비에 맞은 병아리가 문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들일 생각을 하기도 전에 너무 징그러워서 바로 문을 닫아 버리고 동생과 소리지르며 방으로 뛰쳐 들어갔다. 그리고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엄마가 병아리 시체를 치웠을 것이다. 두 눈을 바로 뜬 비에 젖은 병아리의 클로졉된 얼굴이 꽤 오래 떠올랐고 잊고 살다가도 불현듯 떠오르고 또 말다 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되게 세게 그 이미지가 다가 왔는데, 죄책감에 방구석에서 울며 편지를 써서는 이층 내 방에서 편지를 날려 보냈었다.    이제 그 이미지나 죄책감은 거의 사라졌는데 그 병아리가 아직 나를 붙잡고 있는 게 있다. 그건 내가 어쩌지도,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그냥 받아들일 만한 그 무엇이다. 처음엔 무서웠던 그 병아리 눈이 이젠 내게 점점 서글프게 보인다.  그렇게 희미해져 간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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