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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5.09 빗자루, 금붕어 되다


전주국제영화제상영작/감독 김동주

 

  50대인 장필은 고시원에 살고 있다. 50년이라는 켜켜묵은 그의 역사를 내가 알 순 없다. 다만 그는 지금 벌집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는 신림의 한 고시원에서 살고 있고 광고지를 붙이러 다니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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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CCTV 처럼 장필의 행동을 감시한다. 앵글의 움직임은 전혀 없다. 정해진 몇몇 장소에 서 있는 카메라는 고정된 몇 개의 장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번갈아 보여주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고시원에서 일어날 수 있는 아주 소소한 일상들, 공용 욕실에서 몰래 남의 비누를 쓴다거나 열려 있는 남의 방을 살짝 훔쳐 본다거나 자주 물건이 없어진다거나 하는 디테일들은 감독의 7개월간의 체험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다. (아는 사람들은 낄낄대며 또 씁쓸해 하며 볼 장면들)

1평도 안되는 고시원 방에서 사는 장필은 하루 벌어 하루 쓰며 조금씩 푼돈도 모은다. 그는 나무를 깎아 작품을 만드는 재주도 있다.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인정이 많아 고시원의 젊은 친구에게 전 재산 6만 원도 선뜻 빌려 준다. 돈을 빌려간 젊은 친구는 장필과 비교되는 인물이다. 그는 불성실한데다 노름에 빠져 있고 장필이 맡을수도 있었던 고시원 총무자리도 빼앗는다. 총무로서 고시원을 청소하는 젊은 친구의 비질은 짜증스럽고 엉성하다.

장필은 어느 날 젊은 여자에게 속아 남은 돈을 털어 고물 모니터를 산다. 결국 되팔지도 못한 채 빈털털이가 된다. 한 푼도 없는 장필이 젊은 친구에게 6만 원을 갚으라고 하자 그는 되려 고시원비에서 깎으라고 한다. 우물쭈물 별 말도 못하고 돌아선 장필은 모니터를 속여 판 여자를 처음 만난 골목길에서 마냥 기다린다. 모니터값 23200원을 받기 위해. 결국 여자를 만나고, 조심스레 모니터값을 달라 부탁한다. 여자는 되려 내가 돈없어서 그랬던 건 줄 아냐며 화를 된다. 그리고 장필을 향해 돈을 바닥에 집어 던진다.

그 순간 장필은 흥분했다, 분명 흥분했을 것이다. 그는 우발적으로 벽돌의 집어 그녀 머리를 친다. 카메라 잠시 암전. 다시 켜진 카메라 앞에 여자는 이미 죽어 있다. 이제 장필은 살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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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낮은 계층의 있는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갉아 먹고 있는 모습. 서로의 사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짜증이고 속일 수 있는 만만한 대상이다. 아이러니하지만 너무나 사실인 풍경. 장필의 살인은 미약했어도 존재했던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었을 때, 그와 동시에 자신의 존엄성이 무너졌을 때 벌어졌다. 장필은 말한다. "여자가 솔직하게만 말했어도 죽이진 않았을 거라고."

살인을 저지른 장필은 죽인 여자의 지갑에 든 돈으로 성매매를 한다. 이 장면에 대한 감독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돈이 생겼을땐 여자를 사고 싶은 욕망이 생길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

장필이 살인을 저지른 이후, 카메라는 장필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간다. 왜 삽입된 지 모를 장면들도 간간이 들어가 있다. 살인 이후로 장필은 자신의 욕망과 죽음에 대해 자각을 하기 시작한 듯하다. 장필이 고시원방에서 실제사람 같은 여자 인형에 장필은 화장을 하는 뜬금없는 장면처럼.

장필은 물고기 한마리를 키웠다. 좁은 방에서 유일하게 생명력이 느껴지는 건 어항 속 물고기였다. 그 물고기가 죽자 장필은 아주 정성스럽게 금붕어를 산에 묻는다. 마치 자신도 그렇게 곱게 묻히고 싶다는 듯이. 자기가 죽인 여자처럼 자신도 그렇게 비참하게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을까. 그래서 영화의 후반부는 전반부에서 묘사한 장필의 가난한 일상생활에선 느껴지지 않았던 슬픔이 느껴진다.

  그 사이 고시원의 젊은 친구는 불성실한 탓으로 쫓겨나고 이제 장필이 고시원 총무가 된다. 성실한 그는 아주 꼼꼼하게 바닥을 비질한다. 빗자루가 될 정도로 비질에 집중하는 장필의 모습을 마지막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제목처럼 그는 금붕어가 될 수 있을까. 빗자루와 금붕어라는 전혀 상관없는 물건처럼 그건 그냥 재밌는 언어의 조합처럼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더 신비롭고 쓸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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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원이야기가나오니까말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고시원을 집으로 살아간다(여기서말하는고시원은비싼고시텔같은데말고열악한고시원) 하루종일 밖을 떠돌다 쪽방으로들어가 웅크려 자는 노인들을 많이 만났다. 또 어떻게든독립해야하는 20대들이 부모에게 손벌리지 않고 굴러 들어가는 곳도 고시원일 수 밖에 없다. 박민규소설 갑을고시원체류기엔 가난한20대의 고시원생활을 끔찍하리만치 우스꽝스럽게 묘사한다 눈물난다.

고시원 생활을 해보면 가장 열악하다 느낄 수 밖에 없는 건 화장실 공동사용이다. 이 영화를 보면 장필이 주전자에다 소변을 보는 장면이 있다. 방에 있다보면 화장실까지 이동하는 것조차 귀찮은 일이 된다.
그렇게일상의동선이짧아지는만큼 삶의동선도짧아지는것만같다. 벗어날수없는굴레.

또 고시원에서의 인간관계는 영화처럼 서로가 서로를 갉아먹는 짜증스런 존재가 되기싶다. 서로에게 미묘한 동질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을 노출시키거나 부대끼고 싶진 않아 한다. 작은방으로 들어가버리면 그만이다. 장필에게 죽임을 당한 여자가 내가이런동네에살고싶어사는줄아냐며 소리지른것처럼. 그래도 장필은 가난한 환경 속에서도 부대끼는 사람들과 정을 나누며 인간미를 잃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는데 그것마저 깨지는 순간 살인이 일어난게 아닐까 싶다.

고시원도 주거권침해라면서 그런 공간들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열악한 환경이나 재난의 위험이 높은데도 얼기설기 지어진 고시원이 많다. 아예 최저주거환경의 기준을 제도로 높이잔거다.
맞는 말이다.

벨라 테르의 영화 '페밀리 네스트'에선 가난한 부부가 시부모댁에 얹혀살며 겪는 불화 속에서 자주 울고 자주 하소연한다. 그리고  '우리들만의 집만 있었더라면' 이란 말을 지루하도록 꺼낸다. 영화제작당시 헝가리에는 집이 남아돌아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집은 없었다고 한다.
적당히 뒹굴수 있고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화장실과 부엌이 있는 집은 너무 중요한 삶의 조건이다. 집이 투기의 대상이 되고 그래서 밤이면 불꺼진 아파트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 넓은 땅에서 그런 공간 하나 없는 사람들은 그럴만하니까 그런 걸까.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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