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8.02.25 내가 버린 것은 신앙이 아니라 광신이었다/ 진중권


벌써 10년 전의 일이다. 책을 쓰며 지새우던 밤. 자판기 커피를 뽑으러 나와서 올려보던 하늘의 희미한 별들만 기억에 남아 있다. 여느 ‘386세대’처럼 당시 나도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으로 인한 정신적 충격을 내적으로 방어하는 중이었다. 거의 10년 동안 나를 지탱해주던 하나의 신념체계가 무너졌다. 그 황량한 폐허 속에서 세계관의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처절하게 고민하던 시절. ‘미학 오디세이’는 그 시기에 내가 했던 독서와 고민의 초상이라 할 수 있다. 1권에 나오는 <장미의 이름>은 80년대의 독단에 대한 나의 개인적 반성이라 할 수 있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의 사명은 진리를 보고 웃도록, 진리가 웃도록 만드는 데 있는 거야. 유일한 진리는 진리에 대한 광적인 정열에서 우리가 해방되는 길을 배우는 데에 있기 때문이지.

80년대의 우리는 도서관의 호르헤 수사와 다르지 않아, “트리에르 지방에서 발생한 묵시론의 일파”를 광적으로 신봉했다. 언제더라? 내 친구 가운데 하나가 그 장의 함의를 간취하고는, 마르크스를 쉽게 내버린 나의 사상적 변절을 나무라기도 했다. 그는 제법 눈치가 빨랐으나, 정작 중요한 것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윌리엄과 아드소는 호르헤의 광신을 갖고 있지 않으나 신앙을 버리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 장은 “찬미예수”라는 아드소의 독백으로 끝난다. 내가 버린 것은 신앙이 아니라 광신이며, 마르크스가 아니라 그를 대하는 특정한 태도다.

진중권, 미학 오디세이 작가의 말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