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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일상 2010. 8. 6. 21:41

 배를 깔고 누운 흰 쥐는 수족관 바닥에 잠들어 있는 듯했다. 벌거벗고 움직이지 않는 한 부분만을 남긴 채 모든 것이 이 동물의 일상 영역 밖으로 물결 따라 떠나버리고 없었다. 이제 황홀경의 문턱에 이른 쥐는 최후의 순간, 뻣뻣이 굳은 수염 위로 반쯤 남은 숨이 그치며 또 하나의 삶 같은 것, 철학의 수많은 명암들이 정확히 교차하는 곳으로 그를 영원히 내동댕이칠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담은 쥐가 평온하게 숨쉬는 소리를 들었다. 두려움은 이미 그 짐승의 몸에서 떠나버린 후였다. 쥐는 이제 매우 멀리, 거의 빈사 상태였다. 창백한 두 눈을 뜬 채, 그 짐승은 마지막 당구공들이 맹렬한 공격으로 자신의 두개골을 으깨 자신을 흰 쥐들의 천국으로 보내주기를 기다렸다.
쥐는 신비스러운 환희에 가득 차 조금은 헤엄치고, 조금은 공중을 날아 그곳으로 갈 것이다. 땅바닥에는 자신의 벌거벗은 몸뚱이를 남겨둘 것이다. 한 방울 한 방울 모든 피를 비우기 위하여 그리고 그 피로 하여금 그의 순교가 새겨진 마룻바닥의 그 성스러운 장소를 오래오래 가리키도록 하기 위하여.

 아담으로 하여금 끈기 있게 바닥까지 몸을 낮추어 흩어진 그의 주검을 주워 모으도록 하기 위하여.
아담으로 하여금 한순간 그의 주검을 손에 들고 흔들어 보도록 하기 위하여, 그가 눈물을 흘리며 2층 창문에서 그것을 던저 언덕 바닥까지 긴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도록 하기 위하여. 그리고 가시나무 관목숲이 그의 몸을 받아들여 햇빛 가득한 자유로운 대기 속에서 썩어가도록 내버려두기 위하여.


르 클레지오 <조서>, 조서H  중에서 


소설 조서(調書), 특히 조서H 부분의 힘은 대단하다. 이 부분을 읽는 동안 숨조차 쉴 수 없는 어떤 압박감과 동시에 쾌락을 느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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