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일상 2015. 3. 9. 02:38


꽤 넓은 공터였다. 그곳에 한복을 입은 이모들이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사람이 서럽게 운다는 것의 느낌은 그때 형성된 것 같다. 공터의 끝엔 초가집이 있었고 그 주위로 꽤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집안의 아이들은 멀찍이 떨어져 놀고 있었다. 난 모래바닥에 이것저것 낙서를 하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사촌동생이 저기 무얼한다고 해서 고개를 들었을 때, 형형색색의 화려하고 큰 무엇을 사람들이 하늘로 띄우고 있었다. 올라가는 그걸 보고 엄마와 이모들은 다시 크게 울었다. 엄마는 손으로 허벅지를 치면서 울었다. 사람이 죽어서 하늘로 간다는 말은 저걸 말하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작은 외삼촌의 장례식은 그랬다.

어쩌다 작은 외삼촌 이야기가 나오면 외할머니는 아직도 우신단다.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다 돼간다. 작은 외삼촌이 죽고 나서 외할머니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는 말은 어린 마음에 큰 충격으로 남았다. 외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운 외할머니가 주방으로 가 있을 때만 작은 외삼촌 얘길 하신다. 니들 애미 죽으면 기원이 묘를 둘이 같이 있게 옮겨주고 싶다. 이번 설에는 그런 얘길 처음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상경하는 걸 반대하셨고, 막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하셨다. 그러지 않으신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서울에 자취하는 니 외삼촌들을 보러 갔는데 기원이가 맨밥에 계란후라이 하나만 얹어 먹고 있더라. 그렇게 먹고 지낸 게 병이 된 것 같다고, 명절에 찾을 때마다 그 얘길 꺼내셨다. 그 얘길 꺼내지 않으신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귀여운 얼굴의 외할머니가 약간 굽은 허리로 종종 걸어와 앉는다. 그러면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 손재주 좋다는 칭찬을 시작한다. 어디서 배우지도 않았는데 옷 한 벌을 뚝딱 만들었다고. 흰 비단 한복보다 하얀 외할머니의 머리칼. 그래서 난 온통 새하얀 머리칼만 보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를 떠올리게 된다. 혼자 밥에 계란후라이를 얹어 먹고 있으면 괜히 죽은 외삼촌을 생각하게 된다. 그후로는 본 적 없는, 그때 서럽게 울던 엄마의 얼굴이 겹쳐진다. 가끔 내가 일찍 죽는 상상을 하는데, 엄마가 얼마나 슬플까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상상만으로도 그렇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산 자가 죽은 자 때문에 슬픈 것보다 산 자를 향한 죽은 자의 슬픔이 더 크지 않을까, 그런 짐작도 해보게 된다. 어쨌거나 작은 외삼촌이 외할머니의 곁에 있게 된다면 좋아하지 않을까, 괜히 그런 확신은 든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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