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 동물원

슈레버 일기


임경섭



세살 된 아이를 데리고

내가 찾아간 곳은 동물원이었다

그곳은 가질 수 없는 것들로 가득했다


어제 내린 비로

하늘빛이 무척 푸른날이었지만

군데군데 얕은 물웅덩이들이 놓여 있어

나는 말간 하늘보다는

앞서 내달리는 아이를 주로 쳐다보며

숲처럼 우거진 포장길을 걸어야 했다


말을 막 배우기 시작한 내 아이는

처음 보는 동물을 마주할 때마다

그것들을 갖고 싶다 했지만

나는 그때마다

그것들을 가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있었다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설명하는 대신

나는 아이에게 동물원에 대해 말해주고 싶었다


내가 알기로 동물원은 움직이는 사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동물원 안에선 그 어떤 사물도 움직이지 않았으니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동물원은 움직이지 않는 동물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동물도 스스로 그곳을 선택한 적 없었으니

나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동물원은 움직이지 않는 동물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모아놓은 주체가 빠졌으니

나는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

동물원은 인간이 움직이지 않는 동물들을 모아놓은 곳이었다

그러나 인간도 동물이었으니

나는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

동물원은 스스로가 스스로를 모아놓은 곳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가둔 테두리는 보이지 않을 만큼 넓었으니

나는 더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세살 된 아이가

아무 말 하지 않는 나를 데려간 곳은

동물원이었다

그곳은 경계와 경계들이 놓여 있는

경계의 안쪽이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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