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눈 여겨볼만 한 부문은 바로 ‘베트남영화 특별상영전’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선 지난 4년 간 비서구 지역의 영화를 발굴하자는 목표로 쿠바, 마그렙, 소비에트 연방, 터키 영화들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올해 베트남 영화로 이어졌다.

비서구 영화들을 발견하는 건 ‘서구의 시선’으로 혹 ‘우리의 시선으로’ 만 타자를 보았던 것에서 벗어나서 비서구 영화인들 당사자의 시선을 볼 수 있다는 데서 의미 있다. 비서구 영화인들에게도 자신들이 관찰의 대상으로만 타자화되는 것을 끊임없이 밀어내는 작업을 하도록 돕는다.

영화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영화를 제작하기 어려울 뿐더러 타국에서 그들의 영화를 접하기도 어렵다. 현재 베트남에선 한류열풍 영향으로 한국 영화가 많이 상영되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서 베트남 영화는 굉장히 생소하지 않은가.

50년대부터 시작된 베트남 영화의 역사는 총 세 시기로 나뉜다. 전쟁 시기의 영화, 통일 후의 영화 그리고 1986년 개혁 이후의 영화이다.

베트남은 1953년 영화산업이 공식적으로 탄생한다. 당시 영화들의 목표는 외부 침략자를 몰아내고 국가의 독립과 통일을 성취하는 것이었고 전쟁 시기 혁명적 영화제작은 그 자체로 독립투쟁이었다. 두번째는 1975년부터로 남베트남이 미국으로부터 해방된 시기다. 이후로 베트남 영화는 비로소 전쟁이란 소재에서 점점 벗어나 현실 생활을 주제로 한 내용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시기는 1986년부터 지금까지의 영화들. 12월 제 6차 베트남공산당의회는 국가의 상황을 포괄적으로 변혁시키기 위한 정책(도이모이)를 발표한다. 이 개혁정책의 핵심은 국가경제를 국가제원체계에서 국영시장경제체제로 바꾸는 것이었다. 영화가 다루는 주제는 더 다양해졌고 새로운 영화형식과 기법들이 이 시기에 탄생한다.

이번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7편의 영화들은 5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대표작들을 꼽아 베트남 영화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상영작들을 살펴보면, 주제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일관 되게 포함되는 소재는 ‘베트남 전쟁’이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도 서구나 우리의 시선에서만 보았지 ‘베트남이 바라본 베트남’ 의 모습을 접하긴 힘들었다. 베트남 전쟁은 우리의 역사 속에서도 끊임없이 평가해야만 하는 부끄러움이자 상처이다. 베트남 감독이 만든 베트남 전쟁 영화를 보면서, 가해자로서의 반성하고 피해자로서의 감성을 공유하며 더 나은 미래를 함께 만들자고 생각할 수 있다면 가장 큰 수확이 아닐까.

그 중 전쟁 시기에 만들어진 ‘하노이에서 온 소녀’ (1974)와 아직 치유되지 않고 있는 베트남 전쟁의 상처를 다룬 ‘미세스 남’(2000) 두 편의 영화를 소개한다.

‘하노이에서 온 소녀’  1974  (감독/응우엔 하이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작품은 전쟁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연일 미국의 폭격이 일어났던 1968년 하노이에서 살아가는 응옥 하 라는 소녀에 대한 이야기다. 응옥 하가 가족들과 보낸 행복한 시간과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도시을 대비시켜 전쟁이 어떻게 베트남 가정을 파괴하는 지를 보여 준다. 특히 응옥 하가 가족과 행복했던 때를 묘사할 때 애니메이션 기법들을 삽입해 행복했던 기억을 꿈과 환상적인 느낌으로 표현해 더욱 애틋함이 느껴진다.

감독은 폭격 당시 하노이에 있었으며 가족들과 함께 지하 방공호로 대피했던 기억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응우엔 하이닌 감독은 전쟁에 대한 기억을 여전히 아쉬워했다. 그는 그 기간동안 미국의 폭격이 얼마나 잔인했는지를 우리는 알아야 한다고 계속 강조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한 아픔을 생각하는 건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들에게 말이다.

전쟁시기에 만들어진 선전선동식의 베트남 영화와는 다르게 이 영화는 어린 소녀를 주체로 그 아이의 눈망울에 담긴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을 담는다. 그리고 그 어린 소녀는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마저 전쟁때문에 멀리 떠나버린 상태에서 잃어버린 동생을 찾아 나선다. 희망을 암시하는 결말은 굉장히 비장하게 느껴진다. 이유없이 무자비하게 우리를 죽이는 전쟁이여, 죽는 개개인을 넌 신경도 쓰지 않겠지만 그래 우리도 널 무시하고 끝까지 살아내리라.


‘미세스 남’ 2000 (감독/라이 반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남홍은 자신이 어떻게 전쟁에서 살아남았는지 몰랐다. 다만 동료들이 자신을 구해줬다는 것 뿐. 베트남 전쟁 때 간호사로 일하던 그녀는 폭격으로 심하게 다쳤는데 다행히 동료들의 노력으로 구사일생했다.

전쟁은 끝났고 상처가 남았다. 전쟁 후 급속도로 성장해가는 호치민 시에서 남 홍은 전쟁 이전의 평온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녀는 그냥 살아갈 수 없었다. 그녀의 일상은 두 개다. 먹고 살 정도의 기본적인 경제생활만 영위하는 그녀는 그 외 대부분의 시간을 베트남 전쟁 전사자들의 유골을 찾는데 보낸다.
자신의 동료들이 수없이 죽었다. 그녀는 안다. 베트남의 도시가 발달하고 사람들이 개개인의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게 된 건 전사자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란 걸. 그녀는 숲 속을 뒤지며 무덤의 흔적을 찾는다.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며 절망 속에서 쓴 군인의 일기와 유골을 비닐에 곱게 싼다.

아직도 숲에서 전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녀는 자신의 일이 영혼 깊은 곳에서의 부름과 같은 것이라고 믿는다. 그녀는 오늘도 초에 불을 밝히고 전사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상처는 남았다. 그 누군가는 동료들의 죽음을 잊지 않기 위해 매일 숲 속으로 간다. 하지만 남 홍처럼 전사자들의 유골 발굴 작업 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이들은 가족을 잃은 전쟁의 피해자들일 뿐이다. 땅을 파느라 손이 다 닳아가면서 전쟁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사람은 남 홍 같은 늙어가는 개인일 뿐인 것이다. 유골을 찾는데 드는 비용을 개인들이 충당하기엔 벅차다. 하지만 정부는 도시를 개발하는데 집중한다. 개발이 전쟁의 상처를 다 잊게 해줄 것이라 믿는걸까. 가족의 유골을 찾지 못한 자들에겐 발전만 하는 국가의 모습이 위로가 되진 않는다. 
아직 추스려야 할 전쟁의 고통이 많다. 그건 전쟁 가해국의 사과만이 아니라 자국 정부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이 영화는 전쟁을 겪고 난 베트남이 스스로를 반성하는 영화다.

다큐의 나레이션은 영어로 했다. 그건 감독이 이 다큐를 통해 남 홍의 이야기를 '세계’ 에 알리고자 하는 욕심이 크기 때문이다. 베트남 영화 감독들은 여전히 목마르다. 아직 전쟁에 대해 할 말이 너무나 많고 치유되지 않은 채 봉합돼 가고 있는 전쟁의 상처를 자꾸 드러내 곪지 않길 바란다. 그리고 전쟁을 반성하고 다시금 반복하지 않도록 현재의 잘못된 점을 부단히 고쳐 나가길 간절히 원하고 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