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레트 메나헤미 감독(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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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를 다시 떠올리면, 무엇보다 화면 색감이 너무 예뻐서. 내 눈에 보이는 풍경을 저런 필름의 색깔로 다시 채색할 수 있다면?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팔레스타인과의 전시상황 때문에 군에서 남편을 두 번이나 잃은 승무원 미리. 중국인 이주노동자의 아이로 태어나 엄마와 떨어질지도 모르는 불안 상태에 늘 놓여 있는 아이, 누들. 삶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슬픈 운명에 놓인 두 사람이 떠밀리듯 만나서 만들어 내는 관계에 관한 이야기.

통하지도 않는 몇 마디 말과 눈짓손짓으로 미리가 갖고 있는 아픈 이별을 누들에게 말해주고, 그걸 알아차린 누들이 아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위로를 해주는 장면.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시간이라는 건 어그러지기 쉬워서 난 몇 번이고 얼그러진 시간의 틈으로 불쑥 나타난 어린 시절의 나와 대면하곤 하니까. 다르지만 같은 아이와 어른의 마주침. 그 짧은 순간에 두 사람이 (단지 언어만이 아닌) 대화로 치유를 할 수 있다는 것이야 말로 기적이 아닐까. 미리의 눈에서 똑 떨어지는 눈물이 내 마음에서도 똑 떨어지는 기분이란. 더구나 그것이 내가 아주 좋아하는 통통한 포도알의 즙만 같다면. 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미리와 누들의 관계를 큰 줄기로, 가지 친 주변 인물들의 관계 역시 흥미로웠다.
처제를 좋아하는 형부,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미리의 언니. 그들 삶의 공허함은 그 때문이었을까. 별거상태인 부부의 복잡한 감정. 삶이 엉망이 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지만 그래도 끌림에 충실하고픈 것이 사람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붙으면 붙고 밀어내면 밀어내지는 자석과 같지 않아서 불은 면발처럼 엉키고 설켜있다. 불어버린 면발을 먹어야 하는 그 서글픔.
하지만 그 시간을 온전히 살아내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은 아픔과 고통을 딛고 더 나아진다.
'진부하기 짝이 없는 명제들, 그래도 그것은 진실.'  자신을 들여다 보려는 노력을 끝까지 해내는 영화 속 그들의 모습이 좋았다.

섣부른 결말이었지만 이 영화의 해피엔딩은 내게 정당했다. 아니 고맙다. 미리가 법을 어기면서까지 누들을 친엄마에게 데려다 주었을 때((아. 오히려 부정되어 마땅한 법이라면 어겨야 한다. 우리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데. 그렇다는데.)) ,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준 아이를 떠나보내야 할 때, 또 반복되는 이별 앞에서 미리는 슬프기보다 한결 나아진 자신의 모습을 본다.

누들을 보내고 야무지게 가방을 끌며 여유롭게 걸어가는 하나의 풍경 같은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본다. 그 순간, 젓가락을 사용해서 한번에 후루룩 국수를 빨아 먹는 법을 누들에게 배워선 미리가 그걸 해내자 식당 손님들이 다같이 박수치는 장면이 오버랩되며, 나는 짝짝짝 박수쳐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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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없이 타인을 위해 도움을 주는 관계를 맺는 것. 그런 관계가 또 나를 위하게 된다는 평범한 관계의 진리를 우린 너무 잊고 산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 국가 혹 우리와 이주노동자의 관계처럼 '관계'라고 이름붙이기도 큰 논쟁거리일수록 이런 진리에 대한 믿음이 더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우리 모두 좋아진 누들과 미리의 모습은 세상에게 자꾸만 새로운 관계 맺기를 하자고 말하는 것만 같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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