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린 상처

일상 2010. 5. 11. 02:21

 응급처치에 대해 강의하는 걸 찍어주러 갔었다, 지난 주에.
뭘 먹다가 목에 막혔을 때나 화상 입었을 때, 뼈가 부러졌을 때 등등 상황 하나하나를 친절히 설명해주더라. 거의 마지막 항목에 '잘린 상처'가 나왔다. 스크린에 크게 적힌 잘린 상처 응급 처치법. 그 순간 강의 내용은 하나도 안 들리고 불현듯 영상 하나가 눈 앞에 탁 하니 켜졌다.
지난 촛불집회 때 떠돌아다니던 영상. 진짜 너무 서럽게 울던 한 소년. 전경들 방패에 아버지 손가락이 잘렸다고, 쳐다도 안 보고 막아서고 있는 전경들에게 제발 좀 비켜달라고 그 안에서 빨리 아버지 손가락 찾아서 병원에 가져가야 한다고, 울면서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소년의 모습. 그래도 무심하던 전경들의 얼굴. 온 몸에 소름이 좍 돋았다. 계속됐다. 의도하지 않은 이미지의 연상이 빠르게 이어졌다. 그때 촛불집회 당시 보았던 폭력적인 상황들. 피 묻은 손으로 신발을 들고 있던 양복입은 아저씨, 물대포에 맞아 새하얗게 질린 한 학생의 얼굴, 돌을 들고 달려들던 아저씨, 바닥에 방패찍는 소리, 우르르 달려오던 전경. 위협적인 방패소리들이 달리는 운동화 소리로 바뀌는 그 찰나의 소스라치게 만드는 기운. 곤봉을 팔꿈치에 맞았을 때 그 쟁-하게 쟈글거리면서 아픈 느낌.  
왜 끔찍한 것들만 떠오르는지. 싫지만은 않은 사건이었는데, 그런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그것도 폭력적인 이미지들만 나타나서는 자꾸 우울하게 만드는가. 악, 하는 분노도 아니고 미적지근하게 자꾸 쿡쿡 쑤신다.  지난 일주일동안 내 머릿속을 들락날락하던 잘린 상처, 촛불집회, 잘린 상처, 촛불집회. 나쁜 추억만.

좀 쓰면 덜 생각날까 싶어서, 사실 여지껏 계속 맴도는 그 단어와 이미지를 조금 걷어내고 싶어져서.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