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엄마.

일상 2013. 8. 15. 21:30

아무래도 아프기 전의 엄마, 흐트러짐 없이 예쁜 얼굴의 엄마, 빠알간 복주머니 하나를 내 손에 쥐어 준다. 열심히 모아둔 거야, 절에 가서 스님들한테 드려.    

응, 엄마.
이제 다시 못 볼 거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등을 돌렸다. 여기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어, 아마 엄마는 나를 붙잡지도 않을 걸. 갓 볶았는지 머리에서 파마 냄새가 났다. 아마 내일 학교엘 간다면 난 브로콜리처럼 책상에 고개를 파묻고 있거나, 쓰레기를 줍는 척 책상 밑으로 들어가 수업종이 치고 아이들이 입을 다물 때까지 그러고 있을 것이다. 그것마저 조금 그립다니 내가 자라긴 자랐나 보구나. 그래도 난 인디언 같다고 놀리는 아이들이 싫은 것보다 갓 파마한 머리를 보고 정말 좋아하는 엄마의 얼굴이 좋았다. 무엇보다 뭐든 이겨내는 게 좋았다. 하지만 내일은 오지 않을 것이다. 

구슬로 꿴 발을 걷고 들어간 방엔 스님 네 명이 앉아 있다. 한 스님이 온화한 얼굴로 내 손에서 주머니를 가져간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내 머리에 얹는다. 쓰다듬어 주진 않는다. 주머니에서 꺼낸 돈은 비에 젖었는지 눅눅해져서 한 장을 떼기도 쉽지 않다. 순간 엄마가 너무나 가여워졌다.
이제 스님들은 나를 잡아 가둘 것이다.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내 몸에서 물을 몽땅 빼앗아 가버릴 거라고 했다. 도망쳐야 한다. 살아남아야 한다. 이렇게 죽어버려 나마저 가여워질 순 없다. 
 

슬프지만 꼭 슬프지만도 않다. 도망쳐야 한다는 절실함과 함께, 도망치는 나는, 도망치기 위해 하늘로 날 수 있게 되리란 걸 예감했으니까. 내달려 절에서 벗어나는 순간 나는 힘껏 날아 담장을 넘었다. 더 높이, 더 멀리, 바다와 사막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다면 그런 곳에 닿고 싶었다. 점점 동네에서 멀어졌다. 이제 정말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못 할 거라는 예감이 들자 어서 빨리 숨을 곳을 찾아 울고 싶었다. 흐트러짐 없던 엄마의 예쁜 얼굴을 한 번만 더 보고 싶었다. 

도시의 밤을 날아 다니는 건 쉽지 않았다. 높은 건물에 부딪치지 않기 위해 더 높이 높이 높이 더 높이 하늘로 솟아야 했다. 힘이 빠져 자꾸 땅에 가까워지려하면 다시 안간힘을 쓰며 속력을 높였다. 150, 160, 200, 250, 힘껏 소리쳤다. 제발, 제발, 제발. 밤새 메말라 있던 내 입에서 소리가 터져 나왔다. 

(2010. 08)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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