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은 날아야 하고

일상 2010. 8. 24. 02:30

 누울 채비를 하고 벽에 기대 앉아 보네커트의 소설을 읽는다. 인간의 공허감으로 만든 끈적끈적한 그물 
불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천장을 보니 나방 하나가 형광등을 때리고 있다.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보다 요란하다. 선풍기를 잠시 끄고 다시 천장을 올려다 보니 나방 하나 불에 다가갔다 놀라 도망치고 또 불에 접근하다 튕겨 나오고, 그러기를 계속 반복한다. 멍청아. 그러지말고 그냥 불에 몸을 던져.
다시 선풍기를 돌리고 마저 책을 읽는다. 호랑이는 사냥을 해야 하고, 새는 날아야 하고, 인간은 앉아서 이상히 여겨야 하지요. 왜, 왜, 왜? 호랑이는 자야 하고, 새는 내려앉아야 하고, 인간은 이해했노라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하지요.  날개짓이 시끄럽다. 멍청이 겁쟁이 나방은 좁은
방 여기저기를 휘젓고 다닌다. 그러고보니 처음보는 놈인데 어떻게 여길 들어왔을까. 방충망도 있건만. 화장실 창문을 타고 방 안으로 들어왔나 보다. 늘 열어두던 화장실 문인데 자기 전 소변을 보곤 웬일인지 우연히도-발생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던 것처럼  문을 닫고 나왔다. 웬일이네, 별 수 있나, 다시 열어둘 성의는 내게 없다. 잠시 이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나방은 짜증스런 날개짓을 하고 있다. 네 날개짓은 내 엉덩이 하나 떼질 못 하는 구나. 나방은 내 옆 흰 벽에 고요히 안착한다. 야무지게 붙어 있다. 생각보다 몸집이 작구나. 하필 내 근처에 붙어 있다니. 내가 널 죽일지도 모르는데. 읽고 있던 책으로 벽 한번 때리면 너는 바로 표본이 되는 걸. 너희들은 모기 처럼 잽싸게 도망가지도 않아 스릴이 없어, 시시해. 어딜 보고 있는 걸까. 어쩜 나를 흘겨 보고 있을까. 라는 생각에 혼자 낄낄 거린다. 그래 그 뿐. 더 재밌는 보네커트의 소설을 읽는다. 인간이 오랫동안 알아왔던 생의 비밀 가운데 하나는, 동물들은 동물들이 내쉰 것을 들이쉬고 또 그 반대로 한다는 것. 전 몰랐어요. 이제 알지요. 고마워요. 천만에요. 그래 그뿐. 아무리 생각해도 느끼진 못 하는 생의 비밀. 손을 뻗어 불을 끄고 누웠다. 덥다. 자는 와중에도 계속 돌아갈 선풍기. 선풍기를 밤새 돌리면 전기세는 얼마나 더 많이 나올까를 잠시 고민한다. 미지근한 바람을 쐬기는 뭣하고 안 쐴수도 없는, 안 피곤해서 바로 잠에 들지도 않는데 딱히 오래 생각할 거리도 없어 참 뭣한 이 여름 밤. 잠에 들려 아무것도 떠올리지 않으려 머릿속 공백의 상태에 도달하려는 노력, 마침내 그걸 찢는 선풍기에서 뭔가 갈리는 소리. 
어린 나는 엄마 준다고 토마토를 믹서기에 구겨 넣었다. 이미 고장나 있던 믹서기. 뚜껑을 닫고 돌리자 믹서기는 토마토 덩어리와 칼날을 뱉어 버렸다. 힘 좋은 칼날이 날아 들어 내 새끼 손가락의 살을 툭 터뜨렸다. 터진 토마토 위에 한 없이 떨어지던 피. 손가락이 갈리는 꿈을 꿨다.  
불현듯 떠오른 기억에 여름밤이 빠르게 지나가고, 여전히 잠은 안 온다.
설마 밤눈이 어두워 선풍기로 날아든 건 아니겠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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