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에 자필로 쓴 여행 메모. 

-2월15일 밤11시 15분에 인천공항에서 이륙했다. 지금은 16일 자정이 조금 넘었다. 이번 여행은 전혀 예열하지 못하고 그저 약속 지키듯 떠난다. 소중한 존재들을 두고 다른 곳으로 간다. 이번 여행의 목표는 심적으로 차분해지기. 미술관과 박물관 많이 가기. 함피, 시킴, 케다르나스에 가기. 그리고 다시 맥간에 머물기. 사실 너무너무 가고 싶던 곳들이잖아. 

-새벽 5시경 싱가폴 공항에 도착했다. 허리가 아파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아직까지도 떠나왔다는 실감이 안 나고 덤덤하다. 설렘이 없는 여행의 장점은? 

-어제 인천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입구에서 바로 보이던 항공사에 많은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는데도. 무슨 항공인가 보았더니 Turkish. 터키 항공. 긴 대기줄 옆에서는 사람들이 옷과 각종 물품을 박스에 싸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큰 지진이 난 터키에 더 이상 피해가 없기를, 더 많은 사람들이 구조되기를.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애쓰는 것에 마음 한편 위로가 된다. 

-읽는다. 
“볼라뇨의 용기는 작가가 자기도 모르는 곳에 고개를 들이밀 줄 아는 것, 뒤샹의 무관심은 기성 미술계가 뭐라 하든 관심 없다, 나는 그냥 내가 하는 것을 한다는 것입니다.” (정지돈)

-지금은 뭄바이로 가는 비행기 안이다. 지난 16년도의 여행 이후 크게 달라진 건 내가 고양이와 산다는 것, 그리고 캣맘 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건 매일매일 돌봄을 해야 하는 일이다. 그걸 떨치고 여행을 왔다(물론 Y가 해주기에 가능하다).

-이번 여행은 일상처럼 이어진다. 떠나기 직전까지 해야 할 일이 많아 여행 준비를 충분히 못했다. 그래서... 그런 점에서 기대된다. 이번 여행에서는 구글지도의 덕을 많이 볼 것 같다. 모든 배낭여행자들이 사용한다는 그 흔한 구글지도도 안 보고 돌아다녔다. 그래서 손발이 고생했지.  

- 비행기는 땅에 닿지 않고 이동하는 운송수단이잖아. 하지만 불안정한 대기 때문에 덜컹거릴 때만은 중력 같은 걸 느껴. 이 생각을 하다가 잊고 있던 곤붕이가 생각났다. 한때 내가 속해 있던 공동체의 로고였던 곤붕이. 물살이이기도 하고, 새이기도 한 곤붕이.   

전설적인 큰 물고기인 鯤(곤)과 큰 새인 鵬(붕). 북극 바다에 사는 곤이 새로 변하여 붕이 되는데, 그 크기는 몇 천 리인지 알 수 없고 태풍이 불면 하늘 9만 리를 날아 올라 6개월만에 남극 바다로 간다 함.<장자莊子 내편 소요유內篇逍遙遊>
[네이버 지식백과] 곤붕 [鯤鵬] (한시어사전, 2007. 7. 9., 전관수)

-승객 모두 착륙 준비를 마친 뒤 잔잔한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고, 이제 땅에 닿을 듯 말 듯 하면서도 끝없이 지연되는 시간이다. 가장 졸릴 때. 

-2/16~17. 뭄바이. 
어제는 17,000보, 오늘은 20,000보 넘게 걸었다. 구글지도를 사용할 수 있어서 끝내 목적지를 찾기는 한다만 찾는 과정에서 헤매는 건 여전하다. 7년 전 중국 여행에서 정말 많이 헤맸다. 그곳은 더 더웠고, 결국 목적지를 찾지 못 한 적이 많았다.

-도시 뭄바이에서는 낮동안 소들이 길가에 묶여 있다가 저녁이 되면 그 자리에 사라지고 없다. 어디로? 거기서도 묶어두나?

-사람이 대접 받는 만큼 동물도 그래야 한다.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걸 동물도 누려야 한다. 이게 동물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본 바람일 것이다. 

-천차만별인 인간들의 인식을 평균적으로나마 강제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게 법과 제도일 텐데, 세상 어느 국가 중에 '무엇에 대한 인식이 가장 높은 사람의 기준'에 맞춰 법을 만드는 곳이 있을까? 아니, 이건 파시즘의 문제와는 다르다고. 

-다라비 투어를 했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빈민가 중 하나이고 세계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곳. 웬만해서는 이런 투어 잘 하지 않는데 거주민들이 만든 NGO라고 해서 도움이 될까 하여 신청해 보았다. 다라비에는 수많은 가계 기업이 있고, 거주자를 고용하는 비공식 경제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일해도 일해도 가난한 곳. 

-동물들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고양이도.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이건 정말 큰 차이 같다. 

-이틀째 인도의 거리 음식만 먹었는데 속이 멀쩡하다. 더위에 하도 걸었더니 손이 좀 부었네. Y가 길냥이 급식소를 처음 챙기는 날인데 잘 완료하면 근심 하나 덜겠다. 

-뭄바이에는 나무가 많고 무척 높다. 이곳은 점점 더 더워지겠지. 길에 사는 동물들도 얼마나 더울까? 소는 왜 묶어 두는 걸까?

-엄청난 차, 매연, 소음. 숨 막힐 것 같아도 도시 사이사이에 녹지가 많다. 

- 아마도 퇴근 시간. 대도시의 거리에 사람들의 수가 많아졌다. 횡단보도도 없는, 8차선은 되는 넓은 도로 가운데에 분수대와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곳이 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을 따라 이곳으로 들어왔다. 분수대의 동상 위에 한 남자가 물을 뿌리며 청소를 하고 있고 온 사방에 물빛이 퍼진다.   
 
-분수대 앞 난간에 노인이 걸터 앉아 있다. 개가 다가온다. 노인은 종이에 싼 무언가를 건네고 개는 그걸 받아 먹는다. 묵묵이 진득하게 먹는다. 크고 희고 검은 무늬를 가진 개. 밥이 사라지자 무게 잃은 종이가 날아가려는 찰나 노인이 그걸 붙잡아 가방에 넣는다. 개는 자기 앞에 놓인 우유까지 다 마시고는 뒤돌아 벤치 너머의 작은 풀밭으로 걸어간다. 그리고 누워 있는 한 남자의 옆에 자리를 잡는다. 눈을 감은 남자는 손만 뻗어 개를 쓰다 듬는다. 둘은 바짝 붙어 있다. 이제 한 여자가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여자는 옆가방에서 작은 통을 꺼내 손바닥에 사료를 부어 노인에게 건넨다. 노인이 그걸 받아 바닥에 두자 어디선가 고양이가 나타나 먹기 시작한다. 아마 매일 반복됐을 듯한 익숙한 행동, 오래된 관계. 크고 희고 검은 무늬의 개가 있던 자리에 이번엔 갈색 개가 다가온다. 노인은 두 번째 종이 뭉치를 꺼낸다. 개가 밥을 먹는다. 이때 한 무리의 서양인들이 지나간다. 밥을 먹는 갈색 개를 발견하고 예쁘다고 환호한다. 이들 바로 뒤로 두 인도 아이들이 뒤따르며 말한다. “기브 미 머니~”, “기브 미 머니~” 약간의 정적 후 그들 뒤에 대고 노인이 소리친다. “돈 기브 머니!”. 노인이 눈을 크게 떴다 감는다. 일순간 빛나던 회색빛 눈동자. 노인은 혼탁한 눈을 다시 감았다 천천히 뜨며 갈색 개 앞에 우유 그릇을 건넨다. 

-2/19 일. 뭄바이에서 함피로 왔다. 버스로 17시간이 걸렸다. 지금은 함피 TRISHUL 레스토랑에서 바나나 포리지를 먹고 있다. 방금 짜이도 시켰다. 『달걀과 닭』을 마저 읽으며 이 레스토랑에서 시간을 좀 더 보내려 한다. 그리고 숙소로 가 낮잠을 자고 볕이 좀 순해지면 바위산을 보러가야지. 여행의 리듬을 찾아야 한다. 

-여행지에서도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는 편히 머물 수 있는 숙소, 식당, 카페가 있어야 한다. 마음 둘 데 없이 부유한 상태에서는 오히려 무엇도 즐기기 어렵다.  

-동물운동을 하는 지인이 피고로 기소된 동물보호법 관련 재판 결과를 읽다가 “수단은 목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는 익숙한 문장에 멈춘다. 수단은 목적으로 정당화 될 수 없다. 즉,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라... 법의 심판을 받더라도 운동에 있어 목적을 달성하는 것은 중요하다. 물론 그 목적에 대해 치열하게 점검하고 성찰해야 할 테고. 어쨌거나 법의 처벌을 감수하고도 운동하는 게 활동가들이고, 난 여전히 거기에 끌린다.  

-정해진 날짜에 생리를 한다. 첫 배낭여행 때는 첫달에 생리를 안했었다. 7년 만에 다시 이곳에 왔는데도 몸이 인도를 익숙하게 느끼나 봐. 

-어제 사원 안을 걷다가 오래 전 여행에서 썼던 문장이 생각났다. "하루하루 행복하고 싶어서". 

-2/21 화. 함피에서 비탈라 사원으로 가는 길이 너무 좋다. 한적해. 눈앞의 보이는 뷰의 구도가 완벽해. 보이는 곳 어디에 프레임을 만들어도 훌륭해. 그렇게 보고 싶던 큰 돌들 맘껏 본다. 아, 유구하다. 장구하다. 

-벤야민의 글을 읽다가 ‘동물원’ 얘기가 많이 나와서 기본소득당의 어스링스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기억이 났다. 동물권 활동으로 동물원에 갔는데 마음 한켠은 놀러가는 것마냥 살짝 설레서 부끄러웠다. 같이 걸었던 사람들이 동물들의 처지에 대해 한탄, 한숨, 경악 등을 멈추지 않아서 ‘난 저 정도는 아닌데...’ 생각했지. 그들의 반응이 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어서 주변 보기에 살짝 민망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내가 너무 바꼈네?!.

-어제 비루팍사원에서 인간들의 머리에 코를 갖다대며 은총을 내리는 ‘제스처’를 하던 코끼리를 보며 이건 일종의 학대가 아닌가 싶었고 난 도저히 즐길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이런 내가 불편하겠지. 어제 알게 된 인도인 제리에게 elephant is hard, maybe.라고 말했더니 그는 “음... 그럴 수도 있지만 그의 눈은 행복해보였다”고 말하더라. 아무래도 그런 답은 좀 이상하지만. 

-2/23 목. 함피에서 마지막 날. 
비탈라 사원으로 가는 길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무 아래에 앉아 있다. 새소리, 새소리, 새소리... 아무도 없다. 인간은 없다. 등 뒤로 먼 사원에서 경전을 외는 소리만이 들린다. 다양한 새소리. 살아 있는 나무, 흙, 돌, 바람, 공기. 이 장소에서 보고 들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고 듣기보다 서둘러 사진과 영상만 남기려 하게 되네. 떠나려니 아쉬운 곳. 함피.

-2/26 일. 힘들게 콜카타행 기차표를 구해 가는 중이다. 30시간 넘게 걸릴 것이다. 내 자리에 두 노인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나는 몸이 구겨진 채 가고 있다. 굳이 비켜달라 하지는 않았다. 아까부터 내앞에서 인도인들끼리 말싸움을 한다. 한 인도 남자가 나를 위하려는지 노인들에게 화를 냈다. 돈 주고 자리를 산 외국인을 존중해야 한다?  뭐 그런 것 같다. 노인에게 화를 내는 남자에게 또 다른 남자가 언성을 높이며 그에게 뭐라 했다. 노인을 공경해야 한다? 그런 걸까. 남자 노인은 화를 내고 여자 노인은 모른 척 한다.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아니 논쟁하는 것 같다. 아니, 싸우나? 힌디어라 못 알아듣지만 지금 어떤 분위기인지 알겠고, 말의 뉘앙스만으로도 내용마저 대충 알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난 멀뚱히 그들을 쳐다보다 문득 동물의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니까 개, 고양이처럼 인간의 감정을 예민하게 느끼게 되는 동물들의 입장 말이다. 그들이 인간 사이에 있으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정도는 파악하겠구나 싶다. 그렇다면 가축이라 불리는 동물은? 인간 사회 안에 있으면서도 교감의 기회는 차단된 채 그냥 당하기만 하는 동물들 말이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돼지, 닭, 소, 염소 등과 같은 가축은 인간과의 관계맺음 자체가 없잖아. 이들에게 인간이란 존재는 뭘까? 밥 주는 사람, 죽이는 사람, 이렇게만 존재할 텐데.

-그러니까 콜카타행 기차를 타기 전 세쿤데라바드에서의 일이다. YMCA 숙소에 이틀을 묵었는데, 첫 날 새벽에 잠을 자다가 복도에서 여자의 비명 소리와 개들이 짖는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반쯤 잠든 상태로 그 소리에 집중하던 나는 ‘이제 도와주려는 사람들의 움직임이나 말소리가 들리겠지’ 하고 기다렸다. ‘누가 도와줘야 하는데...’ 하지만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반무의식의 상태로 소리에 집중했던 여파가 잠에서 깬 아침까지 계속됐고, 아마도 실제 있었던 일이 아니라 환청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이틀째 콜카타로 가는 기차표 구하려고 reservation complex이라는 곳에 왔다. 외국인 전용 창구는 없다고 한다. 한참 줄을 섰다 매표원을 만나면 대답은 노 티켓, 노 티켓, 노 티켓.... 분명 이런 방식이 아니라 덜 고생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도, 나는 노력해서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 미련함. 이 미련함을 의식하고도 내버려두는 내 게으름. 혹은 짓궂음.

-열어두기. 나를 더욱 더. 

-2/28 화. 세쿤데라바드에서 콜카타로 넘어오지 못할 줄 알았다. 어찌저찌 표를 구했고(어떻게든 해낸다!) 지금은 콜카타다. 도시만 오면 많이 걷는다. 2주째 정말 많이 걷고 있다. 하루 2만보 정도. 

-책 읽고 글을 쓰게 1주 이상 안착할 곳이 생겨야 할텐데. 그러고 보니 콜카타에는 모기가 없네. 내일은 시킴으로 떠난다. 

-거쳐온 도시에 대한 감상을 잊기 전에 메모. 
뭄바이: 시끄럽고 더럽긴 해도 품격 있다/ 함피: 절대 개발될 일 없을 것 같아/ 호스펫: 굉장히 번화한/ 하이데라바드: 강하게 각인되는 느낌은 없다/ 세쿤데라바드: 이슬람 도시라 특유의 느낌이 있을 줄 알았는데 경기도의 발전해가는 도시 같았다. 도시 뒷골목의 노는 젊은이들 모습이 뇌리에 남아 있네. 시끄러운 와중에 조용한 곳들이 좋았다. 교회나 골목들/ 콜카타: 많은 게 뒤섞여 있는데 뒤죽박죽은 아니고 질서가 있다. 식민지 시대의 오래된 건물들이 많은데 공중의 그 모습이 부각되기보다 땅 위의 혼란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여행에서는 ‘소리’에 집중. 이곳의 냄새는 이미 익숙하다. 

-“유년시절에 대한 글을 마치면서 벤야민은 이제 꼽추 난쟁이는 그의 일을 끝마쳤다고 적는다. 왜 벤야민은 자신의 유년시절 기록의 주체를 꼽추 난쟁이라는 상징적 인물에게 전가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한편에서는 망각 속에서 사물이 취하는 왜곡된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서, 다른 한편에서는 망각된 과거에 대해 느끼는 이질감 혹은 낯섦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3/1 수. 친구 s를 만남. 우리는 약속 장소를 서로 다른 곳으로 생각해 한 번 어긋났다. 친구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고... 뒤늦게 그는 내가 있는 곳으로 찾아 왔는데 높고 높은 계단을 올라와 나를 부르는 그 친구를 돌아봤을 때, 아아 몹시 반가움. 우리는 시킴으로 갈 표를 사기 위해 뉴잘패구리역에 들렀다가 콜카타 여기저기를 돌아 다녔다. 오늘 s와 많이 걷고 쉴 때마다 이런저런 대화를 했는데 그중 내 마음에 남은 건 “경마장의 말이 몹시 추운 날 뛰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다”는 얘기다. s는 경마장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한다. 경마장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나에게 경마장은 일종의 학대 현장이다. 나는 과도한 육식 보다 놀이나 유흥으로 동물을 이용하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경마도 결국 도박에 말이 이용되는 건데 ‘소싸움처럼 싸움을 시키지는 않아서’, ‘원래 말은 뛰는 거니까’라는 이유로 사람들이 덜 잔인하게 느끼는 걸까?  

-s는 수박을 좋아한다. 좌판에 썰어두고 파는 수박을 사먹다가 접시 아래로 너댓 조각이 후두둑 떨어졌다. 우리가 불쌍한 표정을 짓자 주인은 ‘어쩌라고’ 표정을 짓더니 이내 여러 조각을 다시 얹어 준다. 

-3/5 일. 어제 시킴으로 넘어 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오고 싶던 지역이다. 수도인 갱톡에서 근교로 나가면 히말라야를 볼 수 있을 텐데 날이 흐려서 나간다고 해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난 도시에서 바로 히말라야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제 아침이니 밖으로 나가 봐야지. 새벽 6시 좀 넘어 일어나서 한국에서 하던 동물 단체 활동을 체크했다. 여행 왔다고 해서 동물에 관한 일을 잠시 중단할 수가 없네. 내가 관여돼 있고 내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 싶으면 계속 신경 쓰고 살펴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위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응? 왜 이렇게 생각했지? 운동에 있어서 나 개인의 힘을 너무 믿는 걸 경계했던 걸까)

-여기 와서 영화 생각은 거의 안 하는 것 같다. 이번 여행에서 하고 싶던 일은 현재 작업 중인 영화에 삽입될 글을 쓰는 거였는데. 맥간에서 오래 머물며 쓸까 싶다. 

-동료 감독의 부고를 들었다. 충격이고 슬프다. 친구랑 통화하다 조금 울었다. 개인적인 친분은 없지만 같은 창작자로서 친밀감을 느끼던 감독. 

-과거를 생각하고 미래를 생각하고. 

-고양이 없는 일상. 

-오늘은 쏘공호수에 다녀왔다. 중국과 맞붙은 곳이다. “여기”라고 가이드가 내리라는 순간 주변 풍경에 당황스러웠다. 관광객들로 소란스러운 도로가였기 때문이다. 인적 없는, 오직 히말라야 설산과 눈부신 빛깔의 호수가 기다릴 거라 상상했기에, 그래서 꽤 비싼 돈을 내고 여기까지 왔기에. 중국 국경에서 퍼밋을 까다롭게 검사해서 더 기대했는데, 실망스러웠다. 다즐링에서부터 칸첸중가를 못 보고 있다. 날이 흐리기 때문이다. 날이 흐려서 히말라야를 보지 못한다. 히말라야는 높기 때문이다. 산이 높으면 구름에 가려지기 쉽다. 가리기 쉬운 것들은 보기 어렵다. 

-동물 운동을 하며 새삼 강렬하게 깨달은 것. 관여하기. 관여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인도는 새장에 새를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가봐. 한국도 예전엔 많았던 것 같아. 어릴 적 엄마도 새를 키웠다. 새장에 있던 새들이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 새들은 무엇을 보았을까. 

-여행을 다니더라도 일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아래와 같은 것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 습하지 않은 숙소. 창문이 있는 숙소. 창문은 소중해...
둘. 오래 앉아 있을 수 있는 카페

-박물관을 돌아다니며 문양에 대해 계속 생각한다. 문양으로 영화 형식을 만들 수 있을까? 

“사람의 눈이 공간을 오랫동안 바라보면 어느 한 점으로 중심을 찾아서 안정을 얻고자 하므로, 그 지루함과 불안정감을 없애기 위하여 공간을 메우려는 무늬가 나타나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문양 검색해서 나온 정보. 


-3/7 화. 룸텍 사원에 다녀왔다. 기도하는 스님의 자세를 한참 보았다.
시킴에서 가장 가고 싶던 곳은 룸텍사원이었다. 기대하고 상상했다. 못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다녀왔다. 발을 디뎠다. 보았다. 냄새를 맡았다. 촉감을 느겼다. 
기대하던 곳---------직접 그곳으로 가 마주한다. 나는 이 과정 자체를 즐긴다.  

-지금은 카페. 페북글 읽다가 옮긴다. 

“어쨌거나 뉴질랜드의 성매매법 개정안은 성노동자의 인권보호와 착취금지, 분야 내 개인의 보건 및 복지와 안전 증진을 목적으로 두고 있습니다. 베이어의 의견에 어디까지 동의하건 그녀가 성매매 현장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의 삶을 염려하고 보살피고 개선하려 했던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베이어의 그런 목표는 저도 공유하는 것이고요. 무수히 엇갈리는 의견 속에서도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함께 발을 디딘 공통의 토대를 확인하며 작별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자긍심 속에서 평안하기를.”-신필규

특히 두 문장.
.무수히 엇갈리는 의견 속에서도 우리가 합의할 수 있는 함께 발을 디딘 공통의 토대를 확인하며 작별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자긍심 속에서 평안하기를.


-이번 여행에서 나는 계속 비인간동물을 생각한다. 비인간동물을 본격적으로 염려하고 부터 인간사가 하찮게 느껴졌다.  인간사의 비극이 다소 시시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이 시시하다는 건 인간의 죽음보다 동물의 죽음이 더 슬펐다는 의미다. 그렇게 2년 넘게 보냈다. 지금은 균형을 잡아가고 있다. 무엇이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지 않는 상태. 즉 모든 생각이 다 동물로 환원되는 상태에서 많이 벗어났다. 균형을 잡아간다는 건 예전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는 아니다. 비인간동물에 많은 걸 의지하는 사회인데도 그들의 목숨은 인간에 비해 한없이 하찮다. 이런 시간이 꼭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단단해질 마음과 실천. 

-3/8 수. 시킴에서 실리구리로 왔다. 
여전한 건 세상 돌아가는 걸 알고 싶다는 마음.

-나는 인도에 왜 오지?

-3/10 금. 어제 바라나시로 왔다. 
기억에 대해, 기억이 드러나는 작용에 대해 생각 중. 몇 년 전부터 고양이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그러다 최근에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다. 초등학생 시절, 아이들 한 무리가 술렁이며 노란 고양이가 죽어 있다고, 저기 넘어가는 길에 고양이가 죽어있다고, 아주 큰일이 난 것처럼 말했다. 그리고 누군가 “고양이가 죽으면 꼬리 아홉달린 여우로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고 아이들은 소리를 질렀다. 난 이 이야기를 분명 학교에서나 하교 길에 ‘들었을 텐데’(직접 본 게 아니므로) 최근 이 기억이 떠오른 순간에 보인 이미지는 높은 곳에서 그 고양이가 죽어 있는 장소를 내려다 보는 풀샷이었다. 단층의 건물 위에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고양이가 죽어 있는 곳을 나는 내려다 보고 있다. 고양이는 작은 무덤처럼 누워 있고, 다시 그 무엇으로도 태어날 것 같지 않다. 지금의 내가 그 자리에 서서 내려다본다. 이 장면은 30년 전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상상한 것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걸까, 그동안 무의식이 조금씩 완성해둔 걸까.    

-내가 동물에 관심이 생기고 과거 관련된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평소 각인돼 있던 사건도 아니다. 신기하다. 기억의 작용이란. 얼마 전에는 어릴 적 차를 타고 가다가 운전석에 있던 이모가 창문을 열며 침을 탁 뱉고는 방금 죽은 고양이를 봤다며 재수 붙은 걸 떼내야 한다고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런 미신이 있었다. 아마 그때 난 동물이 가엾다는 생각은 안 했겠지?

-벤야민의 매력. 사람들이 왜 벤야민을 그렇게 좋아하는지 알겠다. 10년 만에 다시 읽는 벤야민의 글이 완전 새롭게 다가온다. 

-앞으로 10년간은 동물 공부, 다큐와 예술에 대한 더 치열한 공부. 이 두 가지를 계속 열심히 하기.

-“‘읽기’는 상당히 복잡한 심리적 인지 과정입니다”
내 다음 작업이 읽기의 형식이어야 하는 이유. 

-3/12 일. 계속 바라나시. 
(예전에 내가 일기에 쓴 표현을 빌리자면) 여행의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온 느낌. 

“강이나 숲, 길도 내게는 살아 있는 고유한 존재들이었습니다.”

“ 우리가 일반적으로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운명의 섭리, 혹은 놀라운 우연의 일치로 인해 어쩌다 실감하는 상호 간의 연결성과 긴밀한 영향 관계. 나는 평생 이러한 것들에 매료되었습니다.”

“ 보편적이고, 포괄적이며, 모든 것을 아우르면서, 자연에 뿌리를 두고, 맥락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동시에 이해하기 쉬운 새로운 이야기의 토대를 발견하는 것이 가능한지 나는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마 당시 읽고 있던 『다정한 서술자』에서 옮겨둔 듯하다)


-3/14 화. 오늘 바라나시를 떠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보기 좋았던 얼굴은 다즐링의 바이크 렌탑샵 여자 주인. 푸지에를 닮은 얼굴. 청자켓. 순한 얼굴. 웃을 때의 모습.

-바라나시에서 많은 한국인들을 만났고 적당히 대화를 나누고 각자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 공유하고 나는 다시 혼자 떠나기. 

-바라나시에서 현지의 다친 개들을 챙기는 한국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개박사님이라 불렸다. 여행지에서는 쉽지 않을 개입일 텐데 존경스러움. 

-바라나시에 작은 매점들이 많이 사라졌다. 정부에서 길을 넓히려고 상인들을 쫓아냈단다. 보상도 없는데, 상인들은 항의하지 않는다고 했다. 데모하면 경찰이 어떤 다른 이유를 걸어서라도 수감시킨다고. 민주주의 국가 맞나?

-special라씨를 먹고 일찍 잠들었다. 자다가 깼을 때 나는 왼쪽으로 모로 누워 있었는데 눈앞의 테이블 위 생수통에 비치는 무언가들이 마치 가까이 있는 듯 아주 크게 보이고, 아래층 리셉션의 소리도 크게 들리고, 등뒤에서도 이상한 소리가 났다. 감각의 교란.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들리는 경험. 이 재미. 

-졸리다. 오전부터... 문득... 식용견과 반려견은 다르다는 말, 그 논리가 화가 나네. 구분 짓고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들에 저항하리. 

-3/15 수. 아그라로 왔다. 다시 혼자. 
인도인들의 얼굴을 관찰한다. 부모와 닮은 아이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자녀 얼굴 한 번, 부모 얼굴 한 번 본다. 

-아까 타지마할에서 잠깐 졸다가 맥간을 생각했다. 맥간을 계속 생각했던 건... 사실 따져보면 특별한 기억이나 사건이 있던 것도 아닌데 맥간에 갔던 여행 이후 돌아오자마자 꿈을 꿨기 때문이다. 꿈에 나는 맥간에 다시 갔다. ‘아, 다시 여기 와서 너무 좋다’ 하며 눈앞의 땅을 밟은 순간 꿈에서 깼다. 꿈 덕분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이곳을 그리워 한다는 걸.   

-바라나시에서의 기억. 동물권에 대한 내 실천을 얘기하며 “난 비건이지만 내 반려동물의 음식으로 육식 사료를 먹인다. 이런 현실이다. 이런 모순을 안고 간다”라고 말하니 개박사님은 그 모순을 해소해야 한다, 그걸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증법적 사고처럼 말이다. 그런데, 해소한다는 건 뭐지? 내 사고에 한정된 노력을 말하는 건가, 아니면 현실에서 더 나은 실천을 위해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는 건가? 

-가수 도마 생각. 여느 인디밴드처럼 좋아하던 도마의 죽음이 아주 슬픈 것도 아니었는데 잔잔한 채로 오래 지속되고 있다. 이게 흔히 말하는 ‘잊지 않는’ 상태인가? 도마 인스타 계정의 바라나시 사진과 '나를 위로해주던 풍경' 두 가지. 

-3/17 금. 
어제 아침에 눈을 떴는데 기분 나쁜 체기가 있었고 하루 내내 몸이 힘들었다. 겨우 일어나 델리 가는 버스표를 사고 아그라포트도 보고 왔다. 아그라포트, 멋있긴 하더라. 아그라에서는 숙소 루프탑에서 아침마다 짜이와 포리지 먹는 낙이 있었다. 옥상에서 맞는 아침의 바람도 참 좋았고. 

-소리. 동물 소리. 

-3/19 일. 10년만의 맥간. 설산으로 맞아주어 고마워. 

-새벽에 다람샬라에 도착해서 합승지프를 타고 맥간으로 왔다. 짐이 많은 스님들과 합승했는데 오는 길 내내 옆자리 스님의 향내가 좋아서 기분이 좋았다. 향. 향의 내. 향 자체. 은은한 향. 몸에 배인 향의 내. 

-최근 들어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한 것. 글을 꼼꼼히 읽자. 덜 읽어서 주요 정보를 놓치거나 대충 읽어서 오독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티벳불교를 좋아하는데 티벳불교에서는 육식을 금지하지 않는다. 세상은 이런 것이다. 모든 게 완벽(?)하기를 바랄 수 없다.(완벽하다는 표현도 내 중심적인 사고일 거라는 경계를 한다) 이런 길을 걸어왔으면 이런 쪽으로 가야 하는데... 하는 것도 나만의 생각일까? 인권 운동 하는 사람들이 왜 동물권에는 관심을 안 갖지? 같은 것. 일단 이것 하나는 주의하자. 덩어리로 사람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그 안의 무수한 차이가 있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기. 

-인도에서 거리 개들에 대한 먹이 급여 기사들 재밌다. 한국 가면 계속 찾아봐야겠다. 

-동물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착취 당하면 안된다(는 지향성)
지금은 이 거리가 너무 먼 것을 지적하고 좁혀가야 하지 않을까.  

-내 유서에 추가할 것: 장례식 음식에 육식은 뺄 것. 꼭 필요하지 않으니까. 

-3/20 월. 사원 주위의 코라를 반대로 걷다가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맞닥뜨렸다. 그 중 사원 입구에서 연주를 하며 구걸하던 가족도 있었다. 그들이 나와 가까워지는 찰나 남자의 품에 있던 세네 살 정도의 여자 아이가 장우산과 함께 바닥에 떨어졌는데, 이내 나는 떨어진 게 아니라 남자의 품에서 내팽개쳐졌다는 걸 알아 챘다. 아이가 주저 앉은 채로 울자 남자는 아이를 일으켜 세워 손으로 얼굴을 ‘가격’했다. 아이는 더 울었다. 아마 부모겠지, 아이를 때린 남자와 여자가 나를 스쳐지나갔고 여자 아이는 바닥의 장우산을 집어 들고 놓칠새라 뒤따라갔다. 스치는 순간 보았던, 무심한 혹은 무심한 척하는 갓난 아기를 든 여자의 표정. 해질녘이었고, 난 이 장면 때문에 하루의 모든 기분을 망쳤다. 이때의 내 감정은 어떻게 저럴 수 있느냐는 분노가 아니었다. 내 안식처인 여행지에서도 가정 폭력을 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짜증남. 이내 여자 아이와 여자 어른에 대한 걱정에, 빈곤의 문제와도 떼어낼 수 없는 그들의 상황에 슬픔이 밀려 왔다.  

-3/24 금. 아직 맥간.

-3/25 토. 밤새 계속 비.
어제 꿈에 여행 직전까지 장애인 활동 보조를 했던 사람이 등장했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도. 근육장애인인 H가 엎드려 자고 있는데 어머니가 나타나 “아니 애를 아직도 안뒤집었냐”며 H의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과 몸이 오래 눌려 있어서 시커매져 있었다. 꿈에서도 내 심장이 쿵 내려 앉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코라를 돌고 있는데 어제 길가의 야채 가게 앞에서 만난 에스토니아인이 아는 척을 했다. 결론은 즐거웠다. 말이 잘 통하지 않는데도 이 정도로 통하다니...하는 경험을 했다. 나를 잘 알아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나저나 이 친구는 어제 야채 가게 앞에서 왜 나에게 아는 척을 했지? 아는 사이도 아닌데.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아듣지 못하는 건 생각보다 편하다. 물론 여기가 이국땅이라 그렇겠지만. 

-맥간에서 작은 개 하나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흔히 요크셔테리어로 불리는 개. 개는 원래 털이 빠져야 하는데 인간에 의해 인위적으로 교배된 이 개는 인간이 잘라주지 않으면 털이 계속 자랐다. 하지만 이 개는 입질을 했다. 털은 계속 자라고 엉키고, 그 무거운 털을 달고 걸어 다닌다. 눈 상태도 나쁘다. 인간의 손길이 전적으로 필요한 동물을 만들어냈다는 게 너무 절망스럽다.

-동물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게 가능한가? “어떻게 하는 것이 진실로 그렇게 하는 것인가”

-동물 운동 단체 대표의 강의를 듣다가, “사람한테 2천만 원 쓸 거 동물한테는 1백만 원이면 된다. 동물한테 돈을 좀 쓰자” 명쾌하다. 공리주의의 쓸모. 

-트리운드에 어느 한국인과 같이 올랐다. 30대 후반 남자이고 제주도에서 감정평가사를 한다고 했다. 본인 소유의 2층 집과 월세 받는 낡은 아파트도 소유하고 있다고 했다. 건축을 전공해서 건축 얘기를 하면 즐거워 보였다. 그래, 부동산과 건축은 다른데 말이지. 그는 15년 전 네팔 히말라야 14박 15일 트레킹을 하다 동행한 네 명 중 한 명이 10일째 갑자기 세상을 떠난 이야기를 불쑥 꺼냈다.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어서 이틀을 돌아가며 업고 다녔다고 한다. 같이 간 포터 중 나이 있는 포터는 죽은 시신을 절대 안 만진다며 가차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고.

-맥간은 춥다. 그래도 지낼만 하다.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가득 담아 침낭 속에 넣고 자면 밤새 버틸만 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런 데서 느끼는 행복감. 전기가 끊기면 물을 데울 수 없다. 그나마 낮동안 데워진 물이 페트병을 하나를 채울 정도는 되길 바라며 귀가한다.   

-에스토니아인과의 대화.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는 처음에 붓다를 sympathetic했다고 말했다. 동정, 연민햇다고? 그게 아니라 좋아하다, 호감을 느꼈다, 겠지? 그런데 붓다를 연민했다는 거 재밌다. 붓다도 연민 받을 수 있어. 

-3/27 월. 맥간 9일째. 테라스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좋아. 오늘이 가장 맑다. 맑다는 건 구름이 없다는 의미. 구름이 없는 걸 보고 사람들은 하늘이 맑다고 말한다. 

-심오하다. 물이 깊다. 겉의 물결이 일더라도 그 안에 있는 진짜 물은 움직이지 않는다. (내 생각이 아니라 어디서 옮긴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질 않네)   

-3/29 수. 달라이 라마를 만났다. 블레싱을 받는다고 표현하더라. 신청한 지 하루만에. 복이다. 복이로소이다. 달라이 라마 존자님과 마주 앉았는데 함박 웃음이 터졌다. 그를 만날 때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나 보다. 정성스러운 외국인들은 티벳 전통 복장을 하고 왔다. 난 그저 편지 쓸 생각이나... 그것도 반입 금지라 전하지 못 했다. 까닥? 그거라도 하나 사왔어야 했다. 편지에는 무슨 티베트 문화 존중하겠다, 프리 티벳 이래놓고... 사실 달라이 라마 만나는 것보다 더 좋았던 건 두 한국인 여성을 만난 것이다. 그 중 한 분과의 깊은 대화는 오래도록 기억날 것. 

-달라이 라마에게 블레싱을 받기 전날, 뭐라도 준비해야 하나 싶어서 엽서에 편지를 썼다. 당일인 오늘은 아침 7시까지 사찰로 갔다. 다들 까닥은 필수로 챙겨 왔고, 전날 만난 한국인은 티벳 전통 복장까지 정성스럽게 차려 입고 왔더라. 그때부터 나의 바보 같은 성격이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미리 잘 준비하지는 않으면서 무리 안에서 내가 튈까봐, 틀렸을까봐 전전긍긍하는 이 마음. 달라이 라마의 거처가 있는 마당에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거의 2시간을 기다렸다. 먼저 티벳인들이 축복을 받고 그다음에 외국인인 우리에게 기회가 올 때까지 나는 그 영광스러운 상황을 즐기지 못하고 여기 올 때 최소한이라도 챙겼어야 하는 까닥을 계속 생각했다. 나처럼 아무것도 챙겨 오지 않은 사람이 없는지 살폈다. 없었다... 집단 안에서 튀는 것. 규범을 지키지 못했을 때(그걸 원하면서도 전전긍긍하는 나 자신) 마음 어딘가 조여오고 초조해지는 걸 느끼고, 또 한편 그러고 있는 나를 반성했다. 그럼 애초에 잘 챙기든가... 아니면 당당하든가! 이런 내 자신이 참 재밌군. 정작 달라이 라마 앞에 섰을 땐 불안했던 마음 까맣게 잊고 빤히 쳐다보며 웃고 말았다. 달라이 라마가 손으로 머리를 만져주는 걸 블레싱이라고 해서 다들 고개부터 숙이던데... 철없다. 철없도다. 

-블레싱을 함께 기다렸던 p라는 한국인이 권유해서 오늘 새벽 사원에서 108배 하고 집단 독경을 보기로 했다. 막상 이른 새벽에 일어나 가는 게 쉽진 않았지만 약속을 지키고 싶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사원으로 가서 함께 108배를 하고 사원 안에 앉아 함께 스님들 독경을 듣고 카푸치노를 마시며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념을 중심으로 얘기하는 걸 보니 열심히 공부하고 수련하는 분이다. 힌두-불교-요가가 다 이어져 있다는 걸 배웠다. 그 배움의 계기가 된 아픈 개인사까지 들었다. 공감했고, 위로 받았다. 

-한국에 가면 티벳불교 공부를 열심히 해봐야겠다. 아직 명상은 그리 끌리지 않는다. 순간 호기심은 들지만. 

-오늘 비가 많이 오네... 어제 보았던 어린 소는 내내 배고프겠다. 소들만 챙겨주는 사람이 있을까? 없는 것 같아 슬프다. 하지만 난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니야. 매이지 말자. 너무 가엾어 말자. 가방에 바나나랑 남은 개 간식을 다 주고 가야지. 이번 여행은 마음에 걸리는 동물들이 많네ㅜㅜ 맥간에서 한쪽 눈이 실명되고 털이 길고 엉킨 개랑 새벽에 개밥도 못 얻어먹고 내가 바나나를 주자 6개를 몽땅 받아 먹던 배에 털이 길게 내려온 어린 소. 

-영희, 노랭이, 서준이, 그리고... 잊지 말자. 

-4/6 목. 여행이 끝났다. 사진기에서 다시 소리가 난다. 찰칵찰칵. 인도에서는 폰카를 찍을 때마다 소리가 나지 않아서 좋았다. 그 소리가 어떤 필요에 의해 생겼는지 알지만서도, 어쨌든 막 찍는대서 느끼는 자유로움이 너무 좋았다. 

-이번 여행에서는 물갈이도 하지 않고 아그라에서 체기로 하루 기력 없고 토한 것 빼고는 그냥 일상처럼 잘 다녀왔다. 


*이제부터는 구글 문서에 적힌 여행 메모.

-2.17
여행지에서의 첫 잠. 새벽 6시 45분인데 누운 채 깨어있다. 들어본 적 없는 새소리가 들린다.

-2.18
동물도 인간이 받는 대우만큼, 자원을 배분받고 다양한 감정을 느낄 권리가 있다. 국가로 치면 인도는 어떤가?

-뭄바이에서 함피로 이동 중. 일상의 단절이 아닌 연속인 것 같은 이번 여행. 나이가 들면서 감정이 메마른 건지 내가 변한 건지, 현실에서 여러 바쁜 일들로 충분히 여행을 기다릴 만큼의 마음가짐이 안 된 건지, 서서히 달아오르는 건지. 설렘도, 두려움도 전 같지 않다.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는 어떤가.


-2.19
처음 며칠은 모기 때문에 새벽 늦게서야 겨우 잠들었고, 어제부터 17시간을 버스에서 쭈구려 불편하게 잤으니 난 지금 엄청 피곤해야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 밥도 길거리 음식으로만 먹어서 부실할 텐데 배고픈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 몸 상태는 어떤 거지? 하지만 이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졸음이 쏟아진다.

-2.20
지금 머무는 함피의 kalyan 게스트 하우스의 베드룸은 무척 깨끗하지만 창문으로 멋진 뷰를 볼 수 없다. 이게 아쉬워. 뷰를 중시한다. 이 이유를 새삼 알겠어. 왜 사람들에게 창문 밖 뷰가 중요한가를. 밖을 볼 수 있다는 게 왜 중요한가를.

-2.23
해가 빨리 떨어진다

-2.24
50대 한국 여성인 Y님과의 길고 깊은 대화. "고정된 내가 있지 않다. 어떤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지 지켜본다. 나라는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음악과 같다. 계속 변하는 것이다" 등등. 
그와 대화를 하며 새삼 깨달은 건 나는 자족하며 사는 인간은 못 된다는 것이다. 세상이 좀 더 나아지는 데 기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어로 소통이 원활하지 못 하다. 뭐라고 하는지 대부분은 모르겠다. 흘려들어도 될 게 있지만 잘 알아들어야 일을 진척시킬 수 있는 일도 있다. 어떻게든 들리는 것만 이해하고 더듬더듬 일을 헤쳐 나간다.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하고 사는 느낌? 나쁘진 않다.

-함피에서 만난 제리가 은근 생각난다. 하나의 장면 때문인데, 돌산 한가운데 함께 오래 앉아 있을 때 그는 갑자기 자기 발이 지저분해 보이는지 가방에서 흰 양말을 꺼내 신었다. 그의 움직이는 발, 손 매무새, 표정. 그는 나에게 자신이 어떻게 보일까 의식하면서도 아주 솔직했다. 온 진심을 다해 나를 대하는 느낌을 받았다. 집착으로 변하기 전에 도망쳤다.   

-2.25
사라 정 박물관에서. 문양을 만들듯 형식을 창조해보기. 

-이슬람교가 강한 지역은 여성들끼리 잘 돕는다는 인상을 받았다.

-세쿤데라바드에서. 시끄러운 도로변, 아파 보이는 개들, 지독한 매연만큼은 힘들었지만 시끄러운 곳을 뒤로 하고 조용한 곳을 찾았을 때의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차오르는 기쁨. 교회와 세바스찬 거리. 참을 수 없게 시끄럽고, 믿고 싶을 만큼 고요한, 세쿤데라바드.

-반드시 샛길로 들어가라. 시끄러운 곳에서 고요한 곳으로 밀려들어갈 때의 기쁨. 아난드आनंद

-2.26
기차역에서 쥐 구경하기. 

-3.2
뉴잘패구리역으로 가는 기차 안. 이번 여행에서 꼭 가고 싶던 시킴에 가까워진다. 보고 싶던 곳에 가까이 거의 닿았을 때. 사진으로만 가고 싶어하던 마음이 실행으로 이어져 기어코 대면했을 때.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집착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실망해도 괜찮아.

-3.4
실리구리에서. 바구니에 감금된 닭들. 구겨져 있는 닭들. 삐약삐약 소리가 나는 바구니로 손 하나가 들어가고 닭의 목덜미가 쥐어져 옮겨 진다. 칼이 목을 자르고 피가 푹 나오고, 뒤이어 침을 뱉는 소리. 지형의 모양 때문에 실리구리는 닭모가지라 불린다고. 나에겐 불편한 설명이다. 

-3.8
시킴을 떠나 다시 뉴잘패구리역. 이제 바라나시로 간다. 식당에서 릭샤를 타고 역으로 이동하는데 사거리에서 잠시 멈췄다. 내 오른쪽 시선에 한 남자가 무언가를 맞히는 시늉을 하는 게 보였다. 던질듯 말듯 하더니 땅 쪽을 향해 손을 빠르게 뻗었다. 무언가 던진 자리에 개가 자고 있었나 보다. 1, 2초 정도 흘렀나, 개가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서더니 그 남자를 향해 짖었다. 화가 나서, 아프다고, 내가 들어본 적 없는 개의 비명소리로. 남자는 빠르게 뒤돌아 자신의 릭샤로 도망 갔다. 그를 향해 마치 서럽고 화나는 듯 고통의 소리를 지르는 개. 순간 화가 났지만 그 개가 도망가지 않고 인간을 향해 잡아먹을 듯 소리를 지르는 모습이 조금 감격스러웠다. 함부로 대하는 인간을 가만두지마. 항의해! 그 개의 모습과 소리가 안 잊히네.

-3.16
마투라 고고학 박물관. 작품 이름이 ‘적당한 있는 그대로의 설명’인 게 새삼 흥미롭네.
포도송이를 든 여자. 머리 없는 비슈누 상. 네 개의 얼굴 등. 매력적이야. 

-3.18
이번 여행에서는 덩어리였던 인도인들이 개별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많았다. (이제야?) 그리고 보다 안전하게 느낀다. 한 인도인이 해코지 해도 다른 인도인이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아그라에서 델리로 가는 버스. 델리에 가까워지자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승객들이 일어나 운전석 쪽으로 다가가길래 왜인가 했는데, 와이퍼가 없다. 흐릿한 시야로 계속 달리는 버스... 두 직원은 안쪽 창문만 닦는다.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꾸역꾸역 버스는 나아간다. 걱정스러운 건지 비가 신기한 건지 계속 일어서 있는 사람도 있다. 10여분 지나자 갑자기 하늘이 쨍쨍해졌다. 갑자기 신나는 음악이 들리고 뭐가 좋은지 따라 부르는 사람들, 심지어 옆 사람 무릎까지 두들기며 낄낄대고 노래 부른다. 위험한 상황에서도 계속 버스를 몰고 나아가는 힘, 뭘까? 그저 막무가내인 건지, 경험에 의한 건지.

-3.19
오늘 남걀사원에서 문득 생각한 것. 나와 영화의 관계는 평등한가? 혹시 종교처럼 신과 신자의 관계인가? 

-동물이 단지 불쌍해서가 아니라 부당하다고 느낀다구요.

-도덕성 높은 인간이라 비건 실천을 한다: 이 말이 마음에 안든다. 무언가 더 고양된 상태라서 그런 의식을 갖는다고 ‘치부’되기 때문에. 난 동물에 대한 인간의 고려가 당연한 상태가 되길 바라는 거지, 몹시 도덕적인 인간들의 취향이나 활동 같은 걸로 다루려는 게 싫다.

-인도에서는 운전자에게 길거리 동물을 치지 못하게 규제하는데 한국은? 왜 운전자에게 조심하라고는 하지 않나?

-이미지의 위계 없음, 평등함을 얘기하는 게 왜 공부가 덜 된 생각인지 공부하기.

-3.22
맥간에서 다람콧에 올라왔다가 비가 내리고 우박이 내려서 못 내려가고 있다. 티샵에서 짜이 마시고 매기라면도 먹고 오줌이 마려워서 투시타 명상센터로 와 시원하게 해결하고 지금은 천막 아래에 앉아 있다. 아, 춥다. 여긴 아무도 없나? 이 넓은 곳이 이토록 고요하다는 게 신기해.

-4.1
나의 카르마. 운명이자 업보. 

-한국인 wh의 이야기들. 스스로도 망상이라고 표현한 이야기들이 난 너무 흥미로웠고, 이 이야기들을 이따 밤에 친구에게 영상 통화로 들려줘야지 싶어 온 집중으로 다해 외우며 들었다.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높여주는 집중력. 영화 일도 그렇지. 

-4.3
Chamba에서 Jassur로 이동했다. 나란히 붙은 설산의 봉우리들이 멋졌다. 

-Jassur에서 강가의 천막촌을 향해 걸었다가 몹시 아파 하는 개를 봤다. 주변에 몇몇 청년과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천막촌의 주민들이 뭐라고 소리치고, 이내 한 남자가 포대를 갖고 왔다. 동행이 쉰소리를 내며 누워 있는 개의 상태를 본다고 귀를 한번 뒤집었는데 개는 꿱 소리를 지르더니 죽는 소리를 냈다. 남자는 쓰다듬어 주었고. 아프다고 아프다고 소리를 내던 개... 그런 건 처음 봤다. 쓰레기로 가득한 강가에서 뭘 잘못 주워 먹은 걸까. 그때 그 개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포대 위로 올라갔다. 아... 대체 이게 뭔지 어떻게 알고 그 위로 올라가는 걸까… 두 남자가 들것처럼 포대를 양쪽에서 들고 개를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강가의 구석에다 두었다. 여기서 아끼며 돌보는 개 같았다. 은빛 목걸이도 하고 있었으니까. 어디 아픈 거냐고, 아니면 임신을 한 거냐고 했는데 힌디어로 해서 못 알아들었다. 그때 영어로 “우리는 이 개를 치료할 돈이 없다”는 한 청년의 말. 우리는 걸어가며 멀찍이서 포대 위의 개가 있는 곳을 보았다. 아픈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는 게 너무 가여웠다. 부디 그저 체한 거라서 크게 토하고 다시 회복하기를, 그게 아니면 크게 고통 겪지 않고 떠났기를. 아프다고 소리 지르던 모습, 목소리. 비틀거리며 일어나 스스로 포대 위로 올라가던 모습…

-우리는 그 장소에서 멀어졌고 강가 바위에 앉아 인도 담배를 나눠 피우며 천막 위를 날아다니는 까마귀와 매를 한참 보았다. 내가 보는 것들을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통스러워 하던 검은 개의 몸. 은빛 목걸이를 달고 친구들과 맘껏 달렸을 검은 개의 행복했던 시간도 그 강가에 영원히 남아있겠지.



(끝)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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