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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1.19 원주민 고양이

원주민 고양이

일상 2020. 1. 19. 19:58

"어떤 대상을 불쌍한 존재로 보면 여러분들은 뭘 하겠어요? 길고양이가 불쌍하니 어떻게든 구조하고, 입양 보내고, 집고양이처럼 다들 편하게 사는 쪽에 에너지를 쏟고 몰두하게 되실 거예요. 또는 길고양이를 아주 천덕꾸러기, 민원만 일으키는 그런 존재로만 본다면 어떤 접근을 하겠어요? 민원 해결하기에 급급한 대상으로 보고, 그 이상의 해결책을 찾는 방향으로는 발전이 안 된다는 거죠. 그런 부분에 있어서 오랜 기간 저희 관악길고양이보호협회와 관악구에서는 많은 고민을 해왔어요. 이 길고양이를 어떤 존재로 볼 것이고 길고양이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접근해야 되는지. 가장 핵심적인 건 이거였던 것 같아요. 길고양이는 영역 동물이에요. 영역 동물이라는 건 무슨 얘기냐면요, 고양이들이 살고 있는 그 땅에 주민들이 다 이사를 가도, 캣맘이 한 명도 없어도, 공무원이 구의원이 다 바뀌고 모든 게 다 사라져도 거기서 살아간다는 뜻이에요. 우리보다 더 원주민이에요. 없어지지 않아요. 주민은 이사 갈 수 있고 환경을 바꿀 수도 있어요. 하지만 길고양이들은 그곳을 영역으로 삼고 원주민처럼 사는 아이들이라는 거예요. 그러면 적어도 고양이는 민원유발자도 아니고 천덕꾸러기도 아닌, 살아 있는 생명으로서 그냥 우리보다 더 앞서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원주민으로서의 대우를 받아야 하는 거죠. 뒤늦게 들어와서 인간 위주와 편의대로 환경을 만들어놓고 고양이들이 살지 못하게 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겠어요. 우리가 흔히 하는 얘기 있잖아요, 공존. 또 요즘 우리가 많이 듣는 말 있잖아요. 길고양이는 길에 사는 우리의 작은 이웃이라고. 작은 이웃으로 보고 길고양이와 함께 살고자 모색하는 길은 주민이 다 떠나고 캣맘이 하나도 없어도 이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삶의 환경과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관악길보협 서유진 대표의 발언 중, 2020년 1월 8일 서대문구 동물정책 토론회에서)

+관악길고양이보호협회(관악길보협) https://cafe.naver.com/gwanakani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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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고양이를 보면 반갑다. 매일 채워두는 사료를 한그릇 싹싹 비운 걸 확인할 때마다 보람되고 안심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내 마음을 가장 많이 지배하는 건 가엾고 불쌍하다는 마음이다. 아픈 고양이를, 죽은 고양이를 볼까봐 두렵다. 이미 겪은 슬픈 일들을 잊지 않는 걸로도 마음이 버거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다친 고양이를 구조하는 일로는, 나 혼자 전전긍긍하며 동네에서 몰래 밥주는 걸로는, 이 상황이 별로 나아지지 않는다는 걸 안다. 사실 이건 인간사도 마찬가지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건의하고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갈 것이다. 그러다 보면 비슷한 뜻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될 테고. 이 과정을 관악길보협이 앞서 해나가고 있다. 많은 도움을 받는다.    
고양이 덕분에 나는 주위를, 동네를 돌아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좋은 시민이 되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고마운 고양이들. 그런데 나는 어쩌다 이렇게 고양이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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