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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18.06.24 노룬이
  4. 2018.05.10 종소리/ 송승언
  5. 2018.03.31 지상의 낙원
  6. 2018.03.04 현기증. 감정들(제발트)
  7. 2017.12.30 최초의 영화적 이미지
  8. 2017.12.25 교차로에서
  9. 2017.11.20 장례식장에서
  10. 2017.10.09 그렇게 해야

오기, 오만,

여행 2018. 7. 10. 11:25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이제는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아마 국제 바자르 비슷한 이름이었는데, 가이드북에 위구르족의 생활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첫날에는 가이드북에 적힌 대로 버스를 탔는데 알고 보니 반대 방향이었다. 그냥 포기하고 종점까지 가서는 좀 걷다가 돌아왔다. 부채를 좌우로 아주 천천히 부치던 한 여자만 기억에 남아 있다. 다음 날에는 제대로 버스를 탔는데도 헤맸다. 지도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부지런히 움직였는데도 원하는 곳에 가닿질 않았다. 더위에 체력은 금방 바닥났다. 땀을 내는 게 아닌 몸을 바짝 말려버리는 더위였다. 6월의 우루무치가 그랬다. 나는 화가 난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길을 묻지 않았다. 중국어를 모르기도 했고 더위에 기운을 빼고 싶지도 않았는데 어쨌거나 오기를 부리는 거였다. 정말 화가 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나는 중국에서 자꾸 중국이 아닌 것을 찾고 있었으니까. 중국 표준시로는 밤 열 시가 다 되도록 해가 지지 않는 이 땅에서 진짜, 아니 이 표현보다는 자연스러운, 시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온통 한족뿐이었다. 당연했다, 중국 땅이니까. 그럼에도 신장위구르 자치구 시내 어디에서도 위구르인 한 명 보기 힘들다는 사실에 의아했다. 놀랍게도 나는 떠나기 전 날까지 헤맸고 결국 허겁지겁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에게 중국어로 하나부터 열까지 셀 수 있다며 오기를 부린 기억이 남아있다. 찾던 바자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은 후였다. 상상했던 곳은 아니었다. 관광객들을 위한 쇼핑몰에 가까웠으니까. 근처의 큰 마트에 들어가 에어컨만 실컷 쑀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물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면 어느 방향에서 버스를 타야 할까, 만일 택시를 타면 어디로 가자고 해야 하나, 낯선 곳에서 조금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자 나는 그런 생각을 떨치고 싶어 그냥 낯선 방향으로 걸어버리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을 막 다 먹은 즈음이었던가 몸통에 회칠을 한 나무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마법처럼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 거리에 위구르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에, 벤치에, 주택가에, 나와는 완전히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도시의 변두리였다. 더위가 좀 꺾이는 해 질 녘, 피부를 식히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그 밑으로 낯선 언어가 낮게 깔렸다. 조용하고 묵직한 활기가 내 발을 이끌었다. 사람들이 모인 벤치에 가 앉았다. 이상하게 배밑에서부터 조금씩 안도감이 차올랐다. 

우루무치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본 건 무장한 군인들이다. 그때 내가 공포스러웠던 건 일어날지도 모를 위구르족의 테러보다 눈앞의 총을 든 군인들과 장갑차였다. 감시와 억압이라는 말을 조금은 실감했다. 겨우 여행자일 뿐이었는데도, 아니 여행자이기에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루무치에서 삼일을 머물고 기차로 열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카슈카르에서 나처럼 계속 서쪽으로 이동 중인 한 한국인을 만났다. 그도 우루무치에서 위구르인을 만나고 싶었고 그래서 그들이 사는 구역에서 묵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그는 공무원 학원을 많이 보았는데, 그게 좀 씁쓸했다고. “어쨌든 중국 사회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고자 애쓰는 위구르족 청년들이 많다는 거 아니겠어요. 부모도 자식이 안전하게 편입되길 바랄 거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자 하는 건 당연한 마음일 텐데, 어쩐지 나는 그 애쓴다는 말이 오래 맴돌았다. 나로서는 가늠하기도, 판단하기도 어려운 문제들이 그 땅에 있다. 문제가 단순한 것 같지는 않다. 샤허에서 란저우로 가던 버스에서 티벳 청년을 만났을 때 나는 반가운 마음에 질문을 쏟아냈다.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앞으로 티벳은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내 호들갑에 그는 조금 시큰둥하게 답했다. 지킬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고. 

글을 쓰는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티벳 자치구에 점점 더 많은 한족들이 몰려들고 더 높은 건물들이 지어지고 어떤 종류의 편리함들이 늘어갈 것이다.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하고 딱지 붙일 수는 없는 변화들이 그곳에서 복잡다단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감시와 억압이 여전히 그곳에 있다. 반발할 수도 없게 만드는 무서운 기운이. 얼마 전 신장 위구르를 검색하다가 중국 정부가 그 지역에 새 모양의 드론을 띄워 위구르족의 분리투쟁운동을 더 치밀히 감시하게 됐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를 보고 상기된 몇 년 전의 중국 여행, 중국 아닌 것을 더 찾았던 당시의 오기와 고작 여행자일 뿐인 나의 오만, 그럼에도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배 밑에서부터 묵직이 떠오르는 화는 여전히 떨쳐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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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07

일상 2018. 7. 7. 22:19

길냥이들을 보면 가엾다. 몰골이 지저분하거나 마른 몸으로 쓰레기봉투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고양이를 보면 특히 그렇다. 며칠 전에는 너무 늙어 수염도 몇 가닥 남지 않고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계속 침이 흐르는 고양이를 보았는데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마음만 너무 아팠다. 불쌍했다. 그러고보면 나는 언제부턴가 사람에게는 불쌍하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쓰지 않으려 주의한다. 누군가에게 동정이나 또 연민마저도 갖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건 내 오래된 윤리적인 고민이 지금의 태도로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이 생각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고양이에게 느끼는 무한한 연민과 동정에서 나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고. 그런 대상이, 생명체가 생겼다. 한없이 불쌍해하고 마음 아파하는데서 느끼는 이 이상한 자유는 뭘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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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룬이

카테고리 없음 2018. 6. 24. 21:41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한 곳에 치워둔 눈처럼 전봇대 곁에 동그랗게 앉아 있는 고양이 한 마리. 혀에 닿으면 금세 녹을 듯 가느다랗고 긴, 곧 탈색 직전의 빛바랜 노란빛의 털을 가진, 그래서 붙여 본 이름 노룬이. 아니 사실 노룬산 시장에 살아서 노룬이. 노룬이는 장사하는 점포가 몇 남지 않은 이 낡은 시장에 딸린 방으로 내가 어제 이사 왔을 때 가장 먼저 만난 생명체다. 가까이 다가갔을 때 올려다보는 얼굴은 앳되지만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었을 때 보이는 이 작은 생명체의 얼굴은 영락없이 노인의 얼굴이다. 팔자주름이 깊게 패었고 생기 없이 처진 수염의 기울기를 따라 눈매도 조금씩 내려앉고 있다.
길 맞은편 가게에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리자 노룬이가 시선을 돌린다. 랩에 감긴 고기 몇 덩어리가 진열장에 성의 없이 놓여 있고 그 앞으로 난 길에 ‘개고기 팝니다’라 쓰인 작은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밖을 내다보려 목을 길게 빼고 있는 큰 개 한 마리가 보인다. 목에 매인 줄이 팽팽해졌다 풀어졌다 한다. 그 모습을 본 노룬이는 다리로 몸을 쭉 들어 올리더니 가게 쪽으로 걸어간다. 사람 발로 네댓 걸음도 안 되는 거리를 느리게 걸어 문 안으로 진입하려는 찰나 어디서 나타난 가게 주인에게 덥석 들어 올려진다. 힘없는 수염이 살짝 날아올랐다가 아까보다 더 아래로 내려앉는다. 우리 나비 밥 먹어야지! 가게 주인의 큰 목소리가 적막한 시장 안을 울린다. 그는 빈 그릇 앞에 노룬이를 내려놓고는 사료를 수북이 부어준다. 아니 고양이가 살이 더 쪘네! 높게 쌓인 사료를 파먹고 있는 노룬이를 보고 지나가는 노인이 한 마디를 했다. 살찐 게 아니라 털이라니까요! 아니 고양이 좀 그만 먹여! 어르신은 누구랑 먹으려고 찐빵을 이렇게 많이 사셨어요! 근황을 나누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노룬이는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개의 마른 앞다리에 머리를 문지르고 다리 사이를 가로질러 뒷다리에 옆구리를 비비더니 주위를 한 바퀴를 돌아 다시 한 번 앞다리에 머리를 부비고는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걷는다. 오후 세 시 방향으로 팽팽하게 부푼 통통한 꼬리를 흔들림 없이 유지하며 느리게 걷는다. 문득 뒤돌아 앳된 얼굴로 나를 한 번 올려다보더니 와웅 하는 소리를 뱉는다. 고개를 돌려 노룬이가 다시 걷기 시작하고 나는 뒤따르던 걸음을 조금 늦춘다. 문 닫힌 점포들을 스쳐 미미수선이라 적힌 간판 아래 팥죽과 호박죽이 끓는 노점을 지난다. 비닐로 좌판을 덮어둔 두 점포를 지나자 소매를 팔꿈치 위까지 말아올린 빵집 주인이 솥에서 노룬이 꼬리처럼 봉긋한 찐빵을 꺼내고 있다. 노룬이는 바닥 곳곳에 고인 물웅덩이를 피해, 바닥을 뒹구는 봉지를 지긋이 밟아가며, 이파리가 온통 노랗게 말라버린 화분에 다다른 순간 왼쪽 샛길로 꺾어 들어간다. 화분 위로 장수약국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오래 그렇게 닫혀 있었을 셔터문에는 주변 약국의 쉬는 날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샛길은 사람 몸뚱이 하나 겨우 지나갈 만큼 좁다. 울퉁불퉁한 아스팔트 바닥을 노룬이가 밟을 때마다 타박- 타박 하는 소리가 바닥으로 퍼져 건물을 타고 울린다. 건물의 벽이 끊어졌다 다시 이어질 때마다 노룬이의 몸이 그늘에 잠겼다 햇빛에 밝아진다. 뭉치다! 길의 끝에 막 다다랐을 때 적막을 깨는 한 마디가 들리고, 순식간에 많은 소리들이 몰려온다. 낮은 주택들이 닥닥 붙은 골목길에 아이들이 펄쩍펄쩍 뛰어다니고 축구공을 뻥뻥 찬다. 어른들이 문 밖으로 나오고 들어가고 계단을 내려가고 올라가고 문이 닫히고 창문이 열린다. 큰 아이가 작은 아이를 이리저리 끌고 다닐 때마다 축구공이 내 쪽으로 날아왔다 다시 돌아간다. 뒷걸음질 쳐보지만 길이 좁아 조금 물러설 수 있을 뿐이다. 몇 아이들이 달려와 노룬이를 쓰다듬고 만지고, 끼익거리는 철제문을 열고 뛰쳐나온 아이는 노룬이에게 먹을 것을 건넨다. 익숙한 듯 노룬이는 아이들을 맞으며 볕이 많은 곳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저 길을 따라 이곳으로 온 건데, 어쩐지 저쪽과 이쪽은 이어진 세상 같지 않다. 붙잡고 있던 손을 놓쳐 강 아래로 떠내려가듯 좀 전까지의 고요한 시간이 아득히 멀어진다. 갑작스러운 활기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몸을 끌고 빛이 많은 곳으로 걸어갔을 때 나무 아래에서 막 다리를 일으킨 노룬이가 나를 향해 다가온다. 내 주위를 한 바퀴, 두 바퀴 돌더니 눈뭉치처럼 몸을 말고 내 앞에 앉는다. 그러더니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는, 마치 나 보란 듯이, 바닥에 댄 엉덩이를 미끌리듯 앞으로 쭉 끈다. 그 뒤로 빨간 선이 묻어있다. 피다. 놀란 나는 황급히 노룬이를 덥석 안아 올린다. 내 몸이 긁히는 것 같은 느낌에 절로 인상이 찌푸러지는데, 노룬이는 아이 같은 얼굴로 나를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 가볍다. 솜사탕처럼 가볍다. 너는 정말 가볍구나! 햇빛에 환하게 열린 노룬이의 동공이 서서히 닫히고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 내 늙은 얼굴이 있다. 노룬이처럼 깊은 아래로 한없이 떨어지는 팔자주름을 가진, 하얗게 탈색된 눈썹을 가진 얼굴. 어떤 앳됨도 남아 있지 않은 늙은 인상. 이내 노룬이는 몸부림치며 내 품에서 떠난다.
투명한 이파리들이 빼곡하게 매달린 크고 푸른 나무가 있다. 그 나무 아래 건포도처럼 검붉은 피가 섞인 누렇고 멀건 똥이 넓게 퍼져나간다. 아마 노룬이는 스스로 제 항문을 닦지 못할 것이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품에 여전한 무게와 온기를 느끼며 노룬이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노룬이는 환호하는 아이들을 지나쳐 다시 샛길 쪽으로 유유히 걸어가고 있다. 그새 꼬리는 오후 다섯 시 방향으로 조금 가라앉았다. 노룬이가 막 샛길로 꺾으면서 눈에서 사라지자 나는 나무 아래에 좀 쉬어가고 싶은 마음을 떨치고 걷기 시작한다. 뒤따르기 위해 걸음을 재촉한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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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송승언

인용 2018. 5. 10. 00:24

돌 위에 앉아 돌을 던지면 흔들리는 수면 아래로

감감 가라앉는 돌이 있었고, 속 모를 깊이로부터 솟

아오르는 불가사리도 있었다 그건 시체였고, 한번

떠오른 시체는 수면을 흔들며 떠오르다 가라앉다

자맥질만 되풀이했다 감감 가라앉는 돌 위로 숙연

히 일그러지는 얼굴도 있었고, 얼굴 뒤로 불처럼 번

지는 그늘도 있었다 맑은 물을 마시고 싶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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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산의 봉우리가 붉게 차오르자마자 아랫마을에는 어둠이 깔렸다. 그제야 불빛들이 서두르며 하나둘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모스크에서 퍼지는 예배 소리에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희미한 불빛들이 동요하고 있었다. 곧 한 달 간의 라마단 기간이 끝나면 우리 마을과 아랫마을은 작은 축제를 연다고, 여행자들에게 소고기를 구워주며 식당주인이 말했다. 나는 오늘 새벽 카림아바드에 도착했다. 중국의 국경도시에서 버스를 타고 파키스탄으로 넘어와 이곳까지 오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다. 여행자들에게는 훈자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지상의 낙원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풍경과 순수한 사람들이 있다는 곳. 눈이 깊고 코가 뾰족한 주민들이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웃어주었고,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설산들이 마을을 감싸고 있었다. 십 년 전부터 막연히 꿈꾸던 곳인데, 도착한 지 하루가 다 돼 가도록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게 잘 실감나지 않았다. 옆 테이블에 앉은 관광객들은 싼 값에 소고기를 원 없이 먹는다며 벌써 다섯 번째 추가 주문을 했다. 식당에서 잠시간 사람들의 목소리가 멈출 때마다 먼 데서 기도하는 소리만이 잔잔히 들렸고, 그때마다 내 마음은 조금씩 더 높이 솟았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아침에 자동차 경적 소리에 잠을 깰 때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죽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죽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달팽이관을 따라 뇌를 왕왕 떠돌아 다녔다. 집 안으로 침범해 귓구멍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오는 그 소리에 내내 긴장하며 사는 기분이었다.
난 어느 순간 집 보증금을 빼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딱히 작정하거나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었고 다만 한계에 다다랐던 것이다. “한 잔 할래요?” 옆 테이블의 나이 든 여성이 페트병에 담긴 액체를 컵에 가득 부으며 건넸다. 훈자에서만 나는 술이라고 했다. “여기 공기가 워낙 맑아 아무리 마셔도 안 취할 거야.” 그 술을 받아 마셨고 반은 남겼다. 탁자에 컵을 내려놓자마자 여자는 소고기를 내 입에 들이밀었다. “여기 너무 좋죠? 한국은 이제 선진국이 돼서 이런 데가 없어.” 여자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난 어떤 대꾸가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술도 고기도 너무 맛있어서 생각을 더 이어갈 의지는 생기지 않았다. 남은 술을 마저 들이켜고 식당을 나섰다. 배웅하는 식당주인이 콧수염을 퍼뜨리며 환하게 웃었다. 난 가로등이 없는 어두운 흙길을 따라 숙소를 향해 걸었다. 흙이 발에 자박거리며 밟히는 소리에, 신발을 끌 때마다 올라오는 마른 흙냄새에 난 기분이 좋아졌고,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았다. 거기서 여기로 왔다는 실감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있다, 있다. 설산이 저기에 있다. 바닥에 흙이 있다. 바람에 포플러 나무가 흔들린다. 그리고 생각했다. 휴대폰 조명 없이도 이 길을 익숙하게 걷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를. 1주? 2주? 한 달? 이 길에 익숙해지고도 한참이나 더 오래 여기에 머물고 싶었다.
숙소 테라스는 여행자들로 붐볐다. 바로 숙소로 들어가려는데 아침에 만난 A가 불렀다. 사업을 위해 파키스탄에 정착한 지 오 년이 넘었다는 A는 여름마다 훈자로 휴가를 온다고 했다. 그는 마주칠 때마다 새로운 여행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밤이 되어도 여전히 지치지 않는 목소리로 또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난 에너지가 넘치는 A가 마냥 신기했다. 그는 숙소 아르바이트생과 함께였다. 아슬람이라고 했다. 콧수염 때문인지 서른 살은 돼 보이는 아슬람을 보며 A는 그가 겨우 열여덟 살이라고 놀리듯 소개했다. 내가 어색하게 자리에 끼자마자 그들은 이어가던 대화를 계속했다. A는 아슬람에게 파키스탄 젊은이들은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돌아보더니 파키스탄과 중국의 교류가 많아지는데 그에 관해 대화하는 중이라고 빠르게 알려주었다. 아슬람은 나이 든 사람들은 싫어해도 젊은 사람들은 좋아한다고 답했다. 자신은 좋은 건지 싫은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인터넷이 잘 들어오니 유튜브로 이것저것 배울 수 있는 건 좋다고 했다. 순간 정전이 됐다. 몇 여행객이 작게 소리를 질렀지만 대부분은 익숙한지 하던 일을 계속 했다. 중국이 도로를 깔아준다, 개발시켜준다, 좋다, 두렵다, 전통이 안전하지 못하다. 그래도 나는 많은 전기와 물이 더 좋다. 반바지…. 화장품…. 총……. 체리……. 들렸다 말았다 하는 영어가 갑자기 귀에서 묵음이 되었다 들리기를 반복했다. 눈을 뜨니 테이블에 촛불이 생겼고 A와 아슬람은 여전히 말하고 있었다. 나는 순간 명치에서 무언가 팔딱거리는 걸 느꼈다. 침을 삼켜도 목에 힘이 잘 안 들어갔다. 말하는 A의 진지한 얼굴이 괴기스럽게 커졌다 멀어졌다. 팔딱대는 몸 안의 물질이 이내 목 너머로 범람할 거라는 예감이 들자 그제야 정신이 든 나는 화장실로 뛰쳐 갔다. 커다란 덩어리가 내 목구멍을 넓히며 한 번, 두 번, 세 번 변기로 떨어지며 물에 가라앉았다 떠올랐고 다음엔 액체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내가 무엇을 쏟아내는지 볼 수 없었다. 고장난 변기 레버는 헛돌기만 했다. 양동이에 담긴 물을 가져오려는데 몸 안에서 커다란 덩어리가 또 한 번 파도를 타며 목구멍을 넘어와 변기 위로 떨어졌고, 파편들이 얼굴로 날아왔다. 순간 참을 수 없는 짜증이 솟구친 내 입 밖으로 튀어나온 건 욕 대신 위액이었다. 목 안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느꼈다. 휴대폰의 조명을 거울에 갖다 대자 눈물과 콧물과 시커먼 소고기 파편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이 있었다.
다시 테라스로 나간 나는 평상에 그대로 누워 버렸다. 등이 뻐근하게 아팠다. 습기 많은 바람이 피부 위로 내려앉자 몸이 좀 진정되는 것 같았다. A가 괜찮냐고 물었지만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속이 텅 비어버리자 이곳에 왔다는 게 완전히 실감났다. 오른 귀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불이 없으니 별이 더 잘 보인다고, 좀 더 기다리면 은하수도 볼 수 있다는 들뜬 목소리들이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Welcome”이라고 외치던 일본 여자는 밤이 되자 울고 있었다. 후추 냄새가 나는 연기가 코밑으로 스며들었다. 어디선가 알 수 없는 언어로 소곤대는 말이 들렸고 그건 노래로 바뀌었다가 합창으로 이어졌다가는 이내 고요해졌다. 간간이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A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며칠 전 이 마을에 사는 누군가가 칼로 온몸을 난도질해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아슬람은 “I know”라고 짧게 답하고는 잠시간 침묵하더니 어쩌면 여기 사람들이 겪는 우울이 그 어디보다 더 심할 거라고 덧붙였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목이 말랐다. 사방을 둘러싼 검은 산들이 마을 쪽으로 바짝 다가와 있었다. 별들은 쏟아져 내릴 듯 가까웠고, 무서우리만치 아름다운 은하수가 서서히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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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만성절과 만령절보다 더 중요하고 의미 깊은 날이 세상에 없을 것만 같았다. 특히 매년 먹었던 만성절 과자가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마이어베크는 일 년에 단 한 차례, 이날에만 그 과자를 구워 모든 남자와 여자, 어린아이에게 딱 한 조각씩 나누어주었다. 흰 밀가루를 반죽해 만든 과자는 사람이 손아귀에 숨겨버릴 수 있을 만큼 작았고, 한 번에 네 조각짜리 한 줄을 구워냈다. 과자에는 밀가루가 뿌려져 있었다. 언젠가 나는 과자를 다 먹고 나서 손가락에 남은 밀가루 흔적을 보면서 일종의 계시라는 생각이 번뜩 들어, 그날 저녁 내내 나무 숟가락으로 조부모님 침실에 있던 밀가루통을 휘저었던 기억이 있다. 그 안에 숨겨진 어떤 비밀을 파헤쳐야 한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p65

-다음 기차를 타고 베로나로 갈 생각이었다. 그곳에서 칠 년 전 급작스럽게 중단해버린 베로나 체류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싶었고, 카프카 박사가 1913년 9월 베네치아에서 베로나의 가르다 호수로 향하던 길, 그가 직접 묘사해놓은 바에 따르면 무한한 슬픔에 잠겨 있었다는 어느 날 오후의 여정도 따라가보고 싶었다. 열린 차창으로 바람과 함께 찬란한 빛 속에 고인 풍경이 그대로 밀려들어왔고, 그렇게 한 시간을 채 달리지 않았을 때 시야에 포르타 누오바가 들어왔다. 둥그스름한 산 앞에 자리잡은 도시 베로나를 마주한 나는 기차에서 내릴 수가 없었다. 심지어 몸을 움지일 수조차 없었으므로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스스로도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의아함에 사로잡힌 상태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기차가 다시 베로나를 출발하자 통로를 지나는 차장에게 부탁해 데센차노로 가는 표를 추가로 끊었다. 1913년 9월 21일 일요일 평소 한없이 깊은 우울함에 빠져 있던 카프카 박사가 언젠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는 그 사실 하나만을 유일한 행복으로 느끼며 홀로 누워서 갈대 사이로 일렁이는 물결을 응시하던 장소가 데센차노였다. p84-85

-회한이라고는 전혀 스며 있지 않는, 담담한 투로 뱉은 그 문장을 끝으로 암브로제 가족사를 종결지은 루카스는, 나에게 무슨 이유로 그토록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그것도 하필이면 11월에 다시 W를 찾을 생각이 들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매우 장황하면서도 군데군데 모순이 섞인 대답을 했는데, 놀랍게도 루카스는 그것을 금방 이해했다. 그는 특히,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일이 내 안에서 저절로 설명되고, 그럼에도 그 일들이 더욱 선명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욱 수수께끼처럼 변해간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나는 이어서 말했다. 과거에서 끌어올린 그림들을 더 많이 모으면 모을수록 그것들이 과연 내가 기억한 대로 흘러갔던 것인지가 더욱 모호해질 뿐이라고, 왜냐하면 과거에 속한 그 무엇도 평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또한 설사 그렇지 않다 해도 최소한 경악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p199

『현기증. 감정들』, W.G. 제발트, 배수아 옮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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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수라’ 내가 기억하는 그 영화의 제목은 막연히 이것이었으나, 그 시절 내가 보았던 이 영화의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국민학교에 막 들어가기 전이거나 갓 지난 후였던 것 같다. 사촌들과 얼굴에 열이 발갛게 오를 때까지 놀던 어느 날 우리는 문득 브라운관에 보이던 어떤 이미지 앞에 홀린 듯 모여 앉았고 금세 빠져들었다. 긴 머리의 반을 묶어 정수리 쪽으로 말아 올렸고 발까지 내려오는 하얀 옷을 입은 한 여성이 브라운관 속에서 햇빛 속의 먼지처럼 부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작고 괴상한 존재들이 그녀의 배 위를 스카이 콩콩 타듯 밟기 시작했다. 그녀의 배는 과연 무엇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작고 괴상한 생명체들은 점점 더 높이 튀어 올랐다. 그때 그 여성의 표정은 고통스러워 보이기도 아니 어쩌면 즐기는 것 같기도 했는데 그래서인지 조금 야릇해 보였다. 신비롭고 빙글거리는 느낌으로 남아있는 그 장면들은 내가 처음 감지한 영화적 이미지다. 여전히 사는 동안 불현듯 그 이미지와 느낌이 떠오르곤 한다. 나는 브라운관 속의 그 여성을 오래도록 좋아했는데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유령처럼 무서운 존재가 서서히 친밀해지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사로잡혔던 것 같다. 낯선 세계의 문 앞에서 처음 만난 그 존재는 공포와 평온함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주며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았다.

아마도 이건 꿈이었을까? 당연히 현실에서 본 영화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시절 꾸었던 꿈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글을 쓰는 동안 문득 들었다. 만약 그렇다면 그 낯선 이미지를 만든 경험이나 영상이 이전에 있었을 것인데, 그건 왜 까맣게 잊고 꿈의 이미지만 남게 됐는지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꿈에서 보는 이미지들이 더 애초의 것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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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차로에서

여행 2017. 12. 25. 22:02

  땀이 그의 등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다. 색이 바랜 티셔츠는 아마 본연의 색이었을 녹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구멍이 난 낡은 티셔츠에 목에 두른 스카프만은 화려하다. 오늘 기온은 사십 도를 넘겼다. 이곳은 인도의 암리차르, 삼십분 후면 나는 마날리로 가는 버스를 타야한다. 여기서 버스로 열다섯 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다. 숙소 앞에서 사이클릭샤를 탔다. 버스정류장에 넉넉히 도착할 줄 알았는데 이 릭샤왈라는 도무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사십 리터짜리 배낭을 메고 내가 자전거에 올라타던 순간 휘청대던 그의 마른 몸을 봤을 때부터 불안했었다. 버스 출발시간까지 십오 분이 채 남지 않았다. 뒤에서 한숨소리만 크게 내던 나는 결국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제발 빨리 가달라’고 말한다. 그는 느리게 안장에서 엉덩이를 떼고 한 발 한 발 페달을 밀어내듯 누르다가 힘에 부치는지 이내 엉덩이를 내린다. 그러고는 목에 두른 스카프를 풀어 이마에 묶는다. 긴 눈썹으로 땀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오토릭샤와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우리를 앞지른다. 시커먼 매연이 우리 쪽으로 날아온다. 그는 ‘저 교차로를 건너 직진하면 오 분 안에 터미널이 나올 거다’며 ‘노 프라블럼. 돈 워리, 돈 워리’ 여러 번 힘주어 말한다. 그가 말을 하려고 고개를 돌릴 때마다 자전거가 휘청거렸다. 왜 나는 돈 몇 푼 아끼자고 오토릭샤나 택시를 타지 않았을까. 네거리에는 신호등이 보이지 않는다. 창문으로 먼저 팔을 내미는 운전사들이 빠르게 제 갈 길을 갔고, 그렇게 차 한 대가 지나갈 때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차도를 건넌다. 곳곳에서 제각기 다른 경적소리가 시끄럽게 울린다. 경찰복을 입은 사람이 있긴 한데 호루라기 소리만 더 정신없게 할 뿐이다. 인도의 이런 혼란을 내가 좋아한다지만 버스를 놓칠지도 모른다는 조급한 마음 앞에서는 짜증만 솟구친다. 여행자의 여유 같은 것도 어느새 잊었다. 릭샤왈라의 힘을 덜어줄 수 있을까 싶어 나는 엉덩이를 의자에서 살짝 뗀 채로 힘을 줘본다. 이젠 그의 검은 팔뚝도 온통 땀으로 반짝인다. 이 교차로를 건너기나 할 수 있을까 싶은데, 그러니까 분명 교차로를 건너면 터미널이 나온다던 그는 느닷없이 자전거 핸들을 왼쪽으로 꺾어버린다. 경사가 낮은 내리막길을 따라 자전거는 스스로 달리기 시작하고 당황한 나는 무슨 일이냐고 그의 등을 툭툭 친다. 그는 ‘웨이트, 웨이트’라고만 말할 뿐이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서 울화가 목 끝까지 치미는데 얼마 안 가 그가 자전거를 세운 곳은 수도 앞이다. 이미 사람들로 북적하다. 그는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플리즈 웨이트’라고 말하고는 내 반응도 살피지 않고 달려가 물을 마신다. 쉬지도 않고 물을 몇 컵 연달아 마시는 걸 보자 짜증났던 선명한 감정이 뭐라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그는 물 한 컵을 가져와 나에게도 내민다. 물이 입에 닿고서야 나도 목이 말랐다는 걸 깨닫는다. 뒤늦게 인도의 수돗물은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는 말이 떠오르지만 이미 어쩔 수 없다. 그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까딱하며 ‘돈 워리’ 하더니 자전거를 방향을 돌린다. 지금 내 표정이 어떤지 모르겠다. 그는 자전거를 끌며 달리기 시작한다. 속도가 붙은 자전거에 그가 올라타자 자전거가 크게 휘청거린다. 순간 놀란 나는 그의 어깨를 꽉 잡는다. 그는 또 한 번 ‘돈 워리, 돈 워리’ 흥얼거리며 오르막길을 오른다. 한 발 한 발 페달을 누를 때마다 자전거 체인이 끊어져버릴 것만 같다. 차라리 이 자전거가 망가져버리면 나는 버스를 포기할 수 있을까. 그래도 아직 버스가 출발하려면 몇 분 남았다. 나도 엉덩이를 들었다. 아수라장과도 같은 교차로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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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의 장례식에 집 나갔던 이모부가 찾아왔다. 껌을 씹고 있었다. 누구보다 내 아버지를 위해 조문하고 싶었을 거란 진심은 알겠지만, 저런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할 정도로 이 사람이 망가진 것은 아닌가 싶었다. 엄마는 화가 나 이모에게 전화를 하러 나가버렸고, 나는 이모부와 마주 앉았다. 내놓은 육개장은 먹을 생각이 없는지 그는 소주부터 깠다. 꽤 미남이었는데, 선명한 쌍꺼풀 수술 자국과 왠지 부자연스러운 얼굴 때문에 대화에 집중이 잘 안 됐다. “윤미야, 내 행복해 보이제?” 이모부는 대뜸 물었다. 그러더니 이내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돈을 벌어도 쓸 데가 없으니까 이제는 나를 위해 산다. 새 삶을 살기 위해 성형수술도 했다. 젊어 보이고 싶었는데 보톡스 수술이 잘된 건가 모르겠다. 얼마 전 첫 해외여행으로 중국을 다녀왔는데 사진 좀 보여줘야겠네. 그나저나 너도 한잔해라. 그래도 너는 이 집안사람들이랑 기질이 좀 다르지 않냐. 그러니 말을 해봐라. 내 행복해 보이제? 나는 대답은 않고 “잘 지내시는 거죠?”라고 물었다. 이모네 가족 사정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이모부가 가족 구성원을 많이 힘들게 하자 자녀들은 약자인 어머니의 편을 들었다. 이제는 아버지가 집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염려된 사촌이 신경을 많이 썼지만 그때마다 이모부는 앙심을 가득 품은 내색만 보였다고 한다. 사촌은 아직도 자신의 결혼식에 아버지를 불러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소주 한 잔을 받아 마시고는 이모부가 보여주는 중국 여행 사진을 보았다. 이렇게 마주보고 있으면 성형수술로도 늙은 얼굴을 감출 수가 없는데, 바다를 배경으로 웃고 있는 사진 속 이모부는 십 년 이상은 젊어 보였다. 행복해 보였다. “윤미야 말해봐라. 내 행복해 보이제?”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순진한 질문을 계속 하는가. 그냥 그렇게 보인다고 해줄 만도 한데 나는 계속 대답을 미뤘다. 그때 아버지가 내 옆에 앉았다. 아버지가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묻자 다 아는 수가 있다며 이모부는 웃었다. 그 사람 속에 능구렁이가 들었다고, 우리를 괴롭히려고 온 거라며 이모는 어서 그를 쫓아내라고 했다. “그래도 아버지 위로해 주고 싶어서 일부러 조문 온 것 같아요.” 내 말에 이모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이모와 사촌들이 번갈아 계속 전화를 했다. 걱정해주는 건 고마웠지만 이 상황을 빨리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았다. 그냥 이모부가 떠나고 싶을 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형님, 많이 힘드시죠. 나 진짜 형님 때문에 멀리서 왔어요. 형님 얼마나 힘들지 아니까.” 아버지는 고개를 숙인 채 끄덕거리기만 했다. 이럴 때 보면 정말 어머니 말대로 아버지는 곰 같아 보였다. 친척이 급하게 불러 아버지는 다시 일어났다. 이모부는 그새 소주 한 병을 비웠다. “가족들이 나를 버렸잖아. 그래서 나는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행복하다. 진짜. 그래서 고맙다.” 나는 왠지 이 말이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이모부 왜 자신이 피해자인 것처럼만 말해요?” 이모부는 술 한 잔을 따르고는 몇 초간 조용하더니 말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독한지 모른다.” 그 말을 들으니 이 주제로 대화를 이어나가기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사실 내가 많이 반성하고 있다.”고, 나에게만이라도 그 말을 해주길 기대했던 것 같다. 그저 행복하냐고 계속 물어대는 이 사람에게 연민이 들면서도 자신의 고통만 중요해 보이는 게 답답했다. 그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자기정당화를 거쳤으며 그래서 굳어졌을 마음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때 아버지가 내 옆자리로 돌아왔다. 자리에 앉는 아버지를 무심코 돌아보았는데 눈에서 커다란 눈물방울이 후드드 떨어지고 있었다. “왜 울어요.” 휴지를 건넸다. 나는 아버지가 우는 걸 본 적이 없다. 나는 아버지에게 화가 나면 울었고 또 내 인생을 존중받기 위해 많이도 울었는데 말이다. 두 사람이 소주 한 잔을 주고받는 사이 나는 아버지와 이모부를 번갈아 보았다. 두 사람이 행여나 느낄 연대감을 생각하면 심란하면서도 그 마음에 대해 관심이 가게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이모부는 쉽게 떠났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애인이 두 시간을 넘기자 계속해서 전화를 했다. 결국 이모부는 일어섰다. 떠나면서 내 손을 꼭 잡더니 또 한 번 물었다. “내 행복해 보이제? 나 행복하데이.” 이모부의 순진함에 나는 결국 져버렸다. 엄청 행복해보여요. 그러니까 꼭 잘 지내세요. 이모부가 탄 차가 떠나고 옆에 서 있던 아버지가 말했다. “김 서방은 좀 별나제. 나는 저렇진 않다.” 그 말에 나는 그만 푹 웃어버렸다. 웃고 나니 심란했던 기분도 좀 나아지는 듯했다. 조문객들을 다 돌려보내고 사람들은 곳곳으로 흩어져 잠자리를 만들었다. 나는 할머니 영정사진이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장례식장의 탁 트인 공간에서 자는 게 적응되지 않아 몸을 잔뜩 웅크렸다. 너무 피곤한데 빨리 잠에 들지 않았다. 이모부의 행복 타령과 아버지의 눈물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오래 마음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마음을 쓴다 해도 좁혀지지 않을 그 두 사람과 나와의 어떤 거리에 대해 가늠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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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야

인용 2017. 10. 9. 21:46


“식물들은 우리와 같지 않다. 그들은 중대하고도 기초적인 면에서 우리와 다르다. 동물과 식물 사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자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지평선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수십 년 동안 식물을 연구한 후 나는 결국 그들은 우리가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 그리고 결국 이전보다 더 깊이 그 사실을 이해하고 끝날 운명을 타고났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깊은 의미에서 식물과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우리 자신을 식물에게 투영하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다. 그렇게 해야 마침내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인식하기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p399)

[랩걸: 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 호프 자런 지음, 김희정 옮김, 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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