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 중 하나는 거짓이었다. 그가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병이 들었을 뿐이고 안정을 취하고 치료만 잘한다면 곧 아주 좋아질 것이라고 모두들 빤한 거짓말을 해댔다. 아무리 무슨 짓을 하더라도 갈수록 심해지는 고통과 죽음밖에 남은 것이 없다는 사실을 그 자신도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의 거짓말은 그를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알고 있고 이반 일리치 자신도 알고 있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끔찍한 그의 상태를 감추려고만 했다. 게다가 이반 일리치마저 그런 거짓말에 동참하게 하려고 했다. 거짓말, 죽기 직전까지도 멈추지 않을 이런 거짓말, 이 무섭고 장엄한 죽음의 의식을 인사차 들렀다든지, 커튼이 어떻다든지, 오찬 자리의 철갑상어 요리가 어떻다는 따위의 일상의 사소한 것들과 같은 수준으로 격하하는 이런 거짓말, 바로 이런 거짓말이 이반 일리치는 소름이 끼치도록 끔찍하고 싫었다. 그는 사람들이 그런 거짓말을 늘어놓을 때마다 ‘이제 그만 거짓말은 집어치워. 내가 죽어간다는 건 당신들이나 나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그러니까 제발 이제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 말란 말이야’라는 절규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이상하게도 그걸 내뱉지는 않았다. 그가 보기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이 무섭고 끔찍한 죽음의 의식을 그저 있을 수 있는 기분 나쁜 일, 특히 조금 품위가 없는(온몸에 더러운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 응접실에 들어온 것 같은) 일 정도로 격하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그가 평생 지키려고 애써온 ‘품위’라는 것이었다. 그 누구도 진심으로 그를 안타까워하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의 상태를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애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의 상태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오직 게라심뿐이었다. 그래서 게라심과 함께 있을 때 이반 일리치는 한결 마음이 편안했다. 특히 게라심이 다리를 들어올려주고 있을 때가 좋았다. 어떤 때에는 게라심이 잠자지 않고 거의 밤새도록 그의 다리를 들어올리고 있었다. 이럴 때면 게라심은 “아무 걱정 마십시오, 이반 일리치 나리. 저야 언제든 자면 됩니다요”라고 말하곤 했다. 혹은 “아프지 않다고 해도 이렇게 다 해줄게요”라고 느닷없이 친근한 어투와 편한 말로 이반 일리치의 마음을 특별히 위로해주었다. 게라심만이 거짓말하지 않았다. 모든 정황으로 보아 사태의 본질을 깨닫고 그걸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게라심뿐으로, 그만이 뼈만 앙상하게 남은 쇠약해진 주인 나리를 진정으로 가엿게 여기고 있었다. 한번은 이반 일리치가 이제 그만 가라고 하자 게라심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린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요. 그러니 수고를 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그의 이런 말에는 자기는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수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금도 힘들지 않으며 또 언젠가 자기가 죽어갈 때에는 누군가가 자기를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을 것 아니겠냐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거짓말 외에, 아니 그런 거짓말 때문에 사람들이 이반 일리치가 바라는 만큼 그를 위해 마음 아파하고 안타까워하지 않는다는 점이 무엇보다 괴로웠다. 오랜 기간 병마에 시달리던 중 어떤 때에는, 사실대로 고백하기 좀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누군가 자신을 아픈 어린아이 대하듯이 그렇게 가엾게 여기며 보살펴주기를 가장 간절히 소원했다. 어린애를 어루만지고 달래듯이 다정하게 쓰다듬어주고 입을 맞추고 자기를 위해 울어주기를 그는 바랐다. 지위가 높은 관리이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나이였던 그에게 누구도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게라심과의 관계에서는 그 비슷한 무언가가 들어 있었던 것이고 그래서 게라심과 있으면 한결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소리내어 울고 싶었고 그런 자신을 누군가 다정하게 어루만지며 같이 울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법원 동료인 셰베끄 판사자 찾아오자 울며 동정을 구하는 대신 이반 일리치는 심각하고 엄하게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타성적으로 대법원 판결의 의미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표하고는 거듭 자신의 견해를 고집했다. 그 주변의, 그리고 그 자신의 이런 거짓말이 이반 일리치의 생의 마지막 순간들을 해치는 가장 무서운 독이었다.

일반 일리치의 죽음 중/ 똘스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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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그저 존재

인용 2012. 12. 10. 16:01

나는 그 숲에 들어가 있고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가장 깊은 곳, 하늘을 받치고 선 키 큰 나무들과 투명한 햇빛이 큰 품이 되어 껴안는, 가장 오래된 시간의 정적 속에 들어가 있고 싶었다. 그곳에서라면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고, 무엇에도 쫓기는 일 없이 그저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그루
나무처럼 햇빛에 휩싸인 채 다만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그곳에서라면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할 말이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 같았다.


 - 이승우, 한낮의 시선 1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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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야 세컨드 1


            김경미


누구를 만나든 나는 그들의 세컨드다

,라고 생각하고자 한다

부모든 남편이든 친구든

봄날 드라이브 나가자던 자든 여자든

그러니까 나는 저들의 세컨드야, 다짐한다

아니, 강변의 모텔의 주차장 같은

숨겨놓은 우윳빛 살결의

세컨드,가 아니라 그냥 영어로 두 번째,

첫 번째가 아닌, 순수하게 수학적인

세컨드, 그러니까 이번,이 아니라 늘 다음,인

언제나 나중,인 홍길동 같은 서자,인 변방,인

부적합,인 그러니까 결국 꼴찌,


그러니까 세컨드의 법칙을 아시는지

삶이 본처인 양 목 졸라도 결코 목숨 놓지 말 것

일상더러 자고 가라고 애원하지 말 것

적자생존을 믿지 말 것 세컨드,속에서라야

정직함 비로소 처절하니

진실의 아름다운, 그리움의 흡반, 생의 뇌관은,

가 있게 마련이다 더욱 그곳에

그러므로 자주 새끼손가락을 슬쩍슬쩍 올리며

조용히 웃곤 할 것 밀교인 듯

나는야 세상의 이거야 이거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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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일까 궁지일까

인용 2012. 8. 7. 18:41

              쪽팔리는 일

                      정한아

 

우리를 웃게 하는 것이 끝내는
우리를 웃게 한다 그것이
중독의 정해진 회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행을 견디어낼 수 있는가
우리는 진화의 극점에 있다

더는 나올 돌연변이가 없다고 판단했을 때
지긋지긋하게 새로운 약물이 도착했다
얼리어답터들의 혀끝에서 시험되는
또 하나의 모더니티 엄마,

이게 그거였으면 여기가 거기였으면
엄마가 계모였으면, 해
쟤가 나였으면 내가 딴사람이었으면 이 모든 게
무(無)였으면, 해
여기가 천국이었다면 나는
태어나지 않았겠지 그것도
괜찮다고, 해, 엄마,
제발제발제발나를낳아주세요, 라고
우리는 빌지 않았지만
빌어먹을 삶

민주주의의 스승들은 언제나
네 맘대로 하렴, 자상한 음성으로 말했지

하지만 모든 걸 취소하는 건 너무나 힘든 일
자기를 포함한 모든 것과 싸우고 있는 이
독, 정수일까 궁지일까

우리는 울다가 웃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불행을 견디어낼 수 있는가
견딜 수 없을 때 견디지 않는 건
너무나도 쪽팔리는 일이니까
우리는 필사적으로 웃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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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제게 묻습니다. 이따금 왜 그렇게 '말(言)', '말(言)'하는 거냐고. 머쓱해 머리를 몇 번 긁적이다가 '소설의 기본재료니까요'라고 대답해 놓고는, 돌아서 이내 충분치 않다고 주저합니다. 그러고보니 저는 이 단어를 제 다른 소설에서도 꽤 많이 썼더군요. 저에게 말은 문장이기도 하고, 사유이기도 하고, 가치이기도,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생각 그 자체이기도 하고 생각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고, 그 그릇에 뚫린 구멍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결국에는 이렇게 얘기할 수밖에 없겠네요. 저에게 있어 '말을 대하는 태도'란 '사람을 대하는 자세'와 같다고...그러나 매번 쩔쩔매며, 가능한 한 섬세하게, 그리고 성실하게 다루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에요. 물론 잘 못 해낼 때도 있습니다. 많습니다. 그렇지만 제게 주어진 낱말들을 갖고, 관념으로 너무 멀리 달아나지 않으면서도, 사실 안에 꼼짝 갇혀버리지 않을, 인사를, 편지를, 이야기를 여러분께 종종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애쓰겠습니다.

                                                                                                           소설가 김애란

 

읽을 수록 좋다. 읽을 수록 달다. 맨 밥 오래 씹듯, 읽고 또 읽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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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고독들

인용 2012. 3. 13. 10:14


생의 작은 고독들로 만들어지는 또 하나의 삶이 있다. 
                                                  롤랑 바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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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전후에 결혼을 하는
라오스의 어리디 어린 아기엄마들.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을 찍어도 좋겠느냐 물으면
모두들 수줍은 듯 이쪽을 쳐다보지 못하면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는 아기에게는
자꾸 카메라를 바라보라 한다.

이들 마음의 평화는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일까?

라오스를 여행하는 동안
숱하게 이들과 마주쳤건만,
밭을 갈거나
물동이를 나르면서도
나는 이들이 아기에게 언성을 높이는 것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도시보다는 시골일수록,
옷차림이 더 남루할수록,
필시 한 권의 육아서도 읽은 적 없었을 이들은
그 어떤 아동학자보다도 여유 있게
아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한 치의 당위나 앞선 염려도 없이.


                                          욕망이 멈추는 곳, LAOS/ 오소희



한 치의 당위나 앞선 염려도 없이.


조금씩 여물어 가는 내 소망이 하나 있는데,
아이를 낳으면 낯선 곳에 함께 가
평안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네가 내 품을 떠날 때까지는, 함께.
아마 이런 건 가르쳐줄 수 있을 것 같다
도망치는 삶이 얼마나 위태로우며 그리하여 잘 도망치는 삶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우리의 이 평안은 정말 가치로운 것이라고.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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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님들 왜 그래 부끄러워요, 했어야지!"
[비키니, 섹슈얼리티②] 여성학 강사 권김현영의 애정있는 충고 

12.02.11 21:04 ㅣ최종 업데이트 12.02.12 19:42  홍현진 (hong698)
출처 : "누님들 왜 그래 부끄러워요, 했어야지!" - 오마이뉴스
 
 

"성적대상화, 당연히 일어났지. 순간적으로. 사람이니까. 그런데 동시에 같은 뜻을 가진 동지로도 감정이입을 했다고. 진짜 문제는 욕망을 가진 자연인이면서도 상대를 정치적 동지로 이해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대등한 인간으로 감정이입 할 수 있느냐다."

'비키니 시위' 관련 발언에 대해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지난 10일 <나는 꼼수다-봉주 5회>에서 해명한 내용이다. 김 총수는 "비키니 시위 사진을 올린 여성의 생물학적 완성도에 탄성을 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시위의 발랄함, 통쾌함에 감탄했다"면서 "이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섹시한 동지'는 존재할 수 없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총수의 발언이 나오기 전날인 지난 9일, 홍대의 한 사무실에서 여성학 강사 권김현영씨를 만났다. 여러 대학과 단체에서 여성학 강의를 하고 있는 권김현영씨는 지난해 <남성성과 젠더>라는 책을 공동집필했다. 

그동안 <나꼼수>를 재미있게 들어왔다는 권김씨는 "비키니 시위 사진에 대해 그 '생물학적 완성도'에 감탄하는 것과 정치적 동지로서 시위의 발랄성에 감탄하는 것, 두 가지가 양립 가능하다"라고 전제한 뒤, "<나꼼수>가 정말로 동지의식을 가졌다면 초기에 그 사진이 올라왔을 때 그 밑에 주렁주렁 달렸던 '그 따위' 댓글로부터 그 여성을 분리해줬어야 한다"라고 아쉬움을 나타냈다(참고로 김 총수가 '봉주 5회'에서 발언한 내용은 지난 2월 4일 <시사인> 토크 콘서트 발언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꼼수>의 '비키니' 관련 발언을 "실패한 농담"으로 규정한 권김씨는 "정봉주의 표현의 자유를 지지하기 위해 비키니 사진을 올린 여성의 '표현의 자유'를 수신하는 방식이 한 마디로 후졌다"면서 "이 실패한 농담이 결국 여성들에게 '우리는 누구였나', '동지의식은 어디로 갔나'라는 역사적으로 반복된 의문을 불러일으켰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권김씨는 "이 사태가 차라리 빨리 터져서 '우리의 상식이 어디여야 하는지'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꼼수>를 비롯한 이른바 '진보진영' 남성들에게 "이명박에 대한 지지율을 가장 낮게 주면서 이명박 정부를 가장 골치 아프게 만든 집단이 20~30대 여성이었다"면서 "이 오랜 반MB 정서를 만들어냈던 20~30대 여성들의 지지 없는 개혁이 가능할까. 그걸 새로운 정치라고 생각하나. 이 여성들을 졸지에 보수주의자 따위로 만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권김현영씨와의 일문일답 전문.

 "'실패한 농담' 문제 커진 이유, 역사가 있다" 

 
  
▲ 2011년 12월 26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정문 앞에서 정봉주 전 의원 지지자들이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 멤버들의 캐리커쳐가 그려진 판넬에 격려의 글을 남기고 있다. 
ⓒ 유성호 

- '비키니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저는 이것은 실패한 농담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을 했다. 어떤 정치적 표현('가슴이 터지도록 나와라 정봉주')이 있었고 이 정치적 표현에 대해서 (나꼼수가) 농담으로 받았는데 이 농담이 실패를 한 거다. 이 농담이 실패한 건 명백하다. 농담이라고 하는 건 같이 웃어야 한다. 그런데 웃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고, 웃을 수 없는 사람들이 '나는 안 웃겨, 너네' 이렇게 이야기 했는데 '너네한테 이야기한 거 아니거든' 이렇게 이야기하는 거다. 농담이 실패했을 때 '아 재미없었나 보다'가 아니라 '너네는 우리 편이 아니다'라고 반응을 했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 <나꼼수> 멤버들의 발언이 문제가 없다고 보는 이들은 '농담인데 뭘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냐'고 한다.

"단지 하나의 농담이 이렇게까지 커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건, 거기에만 문제의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나꼼수>도 약간 분하거나 억울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저는 이 실패한 농담의 문제가 이렇게 커지게 됐던 데는 어떤 역사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처음 이 논쟁은 '우리는 진보의 치어리더가 아니다'라는 한 미권스(정봉주 전 의원 팬카페) 회원의 글로 시작됐다. '여성이 정치적 주체로 등장을 했는데 왜 정치적 주체로 너희들은 인정하지 않느냐'가 핵심이었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몇 가지 징후들이 있었다. 예를 들면 김용민이 여성들이 <나꼼수> 이후로 정치적 주체가 됐다느니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그동안 애써왔던 여성들을 화나게 했다. 물론 김용민은 그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지만 그런 식으로 여성들이 정치적 주체로서 활동해왔던 몇 년 간의 역사를 그들이 전유해 가는 것이 몇 번 반복되었던 역사가 문제였다. 

그동안 얼마나 진보진영에서 여성들의 '정치적 주체성'이라고 하는 것을 얼마나 자기 멋대로 이용했나. 어떤 순간 굉장히 대단한 힘으로 생각했다가, 그 힘이라는 것이 자기 목소리를 가지기도 전에 혹은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했던 그 시점에서 누군가가 '너네가 듣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거지?'라며 대표를 자처하면서 어떤 이야기가 지워지기 시작했는가. 그러한 것에 대한 분노가, 이 실패한 농담의 문제에 대한 분노와 연결됐던 것 아닌가."

- <나꼼수>의 발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제가 쭉 <나꼼수>를 들었는데, 여자들이 주진우가 나꼼수 중에서 가장 덜 마초적이라고 느꼈다(웃음). 왜냐하면 주진우는 자신의 포지션을 남동생으로 규정했다. 그 주변에 있는 김미화, 공지영, 심상정 이런 그룹의 여성들을 '누님'이라고 부르면서 '누님,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아무리 까불어도 '짜식들, 우쭈쭈'하면서 들어줄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누님들이 '너네들 힘내라'며 사진을 올렸는데 코피 팡? 이상한 거다. 이 농담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이 여성이 올린 사진이 갖고 있는 폭발력이 있었다. 말 그대로 '뉴클리어 밤(핵폭탄)'이었다. 이 명백하게 폭발력을 가지고 있는 사진을 받았을 때 저는 주진우가 '누님들 왜 이러세요. 너무 부끄럽잖아요'라고 이야기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진의 성적인 의미를 무시하지도 않고, 시위 방식의 발랄함을 인정하는 방식. 그들의 지금까지의 워딩에서는 그렇게 이야기가 됐어야 한다. 정봉주는 '저는 부인도 있는 몸입니다. 이러지 마십시오' 이렇게 이야기 했어야 한다.
 
그걸 가지고 갑자기 '대박', '코피 조심'이라느니, '생물학적 완성도'가 어쩌네 하면서 이 여성의 정치적 발랄성을 다른 방식으로 수신했기 때문에 이 농담은 실패했다. 이 실패한 농담은 결국 여성들에게 '진보진영에서 우리는 누구였나'라는 반복된 의문까지 불러일으켰다."
 
"후진 댓글과 '비키니' 여성 분리해줬어야... 동지의식이 없었다" 
 
  
▲ 2011년 12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나는 꼼수다> 멤버인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정봉주 전 의원을 부둥켜 안고 눈물 흘리고 있다. 
ⓒ 유성호   
 

- '비키니 시위'라는 방식을 놓고도 논란이 있다.

"벗은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향해서 어떤 메시지를 어떤 방식으로 던졌냐가 문제다. 슬럿워크(잡년행진)에 참여한 여성들은 벗었지만 이를 남성들이 '성적대상화' 할 수 없도록 자신의 몸을 만들었다. 여성들의 섹시함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 '나는 내 욕망이 뭔지 알고 있어' '나는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을 자유가 있다'는 메시지 그리고 그 자유로움에 근거한 강함을 드러내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그 때('슬럿워크')도 지금('비키니 시위')도 진보진영에서 그 시위의 메시지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비키니 시위'가 이토록 폭발력을 지녔던 건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었기 때문일 거다. 슬럿워크에 와서 기자들이 젊고 아름다운 쭉쭉빵빵한 여자들이 올 줄 알았는데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서웠다는 거야(웃음). 이미 어떤 걸 소비하고자 작정한 미디어의 눈이 있다. '어떤 여자들의 어떤 벗은 몸이 가치 있는가' 이미 그 가치에 최적화되게 코드화된 몸이 있다. 그런데 비키니 시위에 등장한 몸은 그 코드에 너무나 정확하게 들어맞는 몸이었다. 저는 그래서 이 이야기는 '자발적이다', '안 자발적이다'라는 게 아니라 '왜 젊은 여성의 몸이라는 게 메시지를 뒤덮을 만한 파괴력을 갖고 있는 스펙터클로 한국 사회에서 이해되고 있는가' 이걸 질문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러한 몸에 대해 소위 '진보'를 표방하는 <나꼼수> 지지자들이 달아놓은 댓글도 문제가 됐다.

"여자들이 이들(나꼼수)에게는 비키니 사진을 보내도 될 거라고 생각했을 거다. 이렇게 후지게 받을 줄 몰랐으니까. 그런데 이 밑에 댓글이 주렁주렁. 그따위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그 때 나꼼수가 이들(댓글 다는 사람들)과 이 여성들을 분리를 해줬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여성의 가슴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댓글 달지 마라. 이 여성들의 발랄한 정치 표현에 감탄을 한다'라고 이야기를 해줬어야 한다.

 

그런데 처음에 "가슴 응원 대박", "코피 조심"이라며 이 댓글다는 사람들과 똑같이 반응한 것, 그게 분노의 핵심이다. 이러한 반응들에 대해 그 여성은 '어우,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나꼼수는 너네 갈 길 가'라고 반응하며 대단한 의리를 보여주었다. 여기에서 친구라면, 그 의리에 감동하면서 동시에 그런 댓글로 표현되는 의도치 않은 공격을 같이 막아주었어야 한다. 하지만 '섹시한 동지, 올레!'라고 반응한 거지. 정말이지 의리 없는 행동이었다고 본다. 그러니 그런 문맥을 읽고 있던 여성들이 '동지의식은 어디로 갔는가'라는 질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거다. 

여기에서 말하는 이 동지의식에는 목표가 있다. 정봉주의 구속에 반대하는 것. 정봉주의 표현의 자유, 즉 가카를 비판할 자유를 지지하는 것. 이를 위해 여성이 표현의 자유라는 맥락에서 그야말로 폭탄을 던졌다. '내 가슴을 보고 즐겨라'가 아니라, '이것도 안 돼?'라며 성적보수주의를 깨자는 방식으로 폭탄을 던져줬다. 거기에서 '코피 팡!'이라는 식으로 그들의 무의식에 있거나 그들이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수컷성을 드러내는 게 뭐가 그렇게 중요했나, 라는 안타까움이 있다."
 
"이런 사태가 2012년 10월에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 


    
▲ 나꼼수 멤버인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와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10일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정봉주법 통과 촉구 결의대회를 지켜보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 남소연   

- 김어준 총수는 '여성이 약자이기 때문에 예민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피해자 프레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 모든 논쟁을 여성의 피해의식과 관련되어 있다고 논의를 수렴하고 있다. 이것은 여자들의 피해의식 프레임이 아니라 남자들이 여자들의 몸, 정치적 표현, 이 방식의 차이들이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 다른 코드로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방식대로 반응한 것이 문제다. 그들 자신을 성욕만 가지고 있는 남성 수컷 포지션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는 것, 거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저는 굉장히 좋았던 것은 삼국카페 언니들이 사과에 목을 매지 않았다는 게 좋았다. 저는 이 사건이 사과로 얼른 수습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건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 어떠한 측면에서?  

"이 사건이 대선을 앞둔 2012년 10월에 일어났다고 생각해봐라.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박근혜였다고 생각해봐라. 저는 이 사태가 차라리 빨리 터져서 '우리의 상식이 어디여야 하는지'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2012년 대선 때 상대후보 박근혜에 대한 진보마초의 무차별한 성적공격이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나경원 때도 비슷한 방식의 공격이 있었지만, 여자들이 불편해도 일단 참고 넘어간 적이 있다. 하지만 '자위녀' 이런 식의 공격이 계속 목에 걸렸던 건 사실이다. '이런 반복이 어떤 순간에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올텐데'라는 걱정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현재 진보진영에서는 박근혜의 공주성이라고 대표되는 여성성을 비판하거나 독재자의 딸이라는 것. 이 두 가지밖에 박근혜를 공격할 방법을 갖고 있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보진영이 이 싸움을 굉장히 안일하게 만들 수 있고, 그 안이한 싸움으로는 이길 수 없다. 그 안이함 자체를 사람들은 전혀 진보적으로 생각하지 않을 거다.
 
삼국카페 언니들의 '사과 요구 하지 않는다. 니 갈길 가라' 이 의미는 진보 마초들이 그런 식으로 싸움을 흙탕물로 만들어가서 여자들을 다 그 흙탕물로 끌어들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신호였던 게 아닌가 싶다. 이것을 수신해야 한다."

- 이번 사태가 <나꼼수>와 진보진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명박에 대한 지지율을 가장 낮게 주면서 이명박 정부를 가장 골치 아프게 만든 집단이 20~30대 여성이었다. 40대 남자들이 이명박을 뽑아줬다면 20~30대 여성들이 이명박 정부를 긴장하게 만들었다. 이 정부에서 그나마 희망이 있었다면 홍대 청소노동자 투쟁과 연대, 김진숙의 크레인 투쟁과 연대였다. 이제 와서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잘난 척들 하지 마라. 지금 이걸 바꾸려고 할 때 이 오랜 반MB 정서를 만들어냈던 20~30대 여성들의 지지 없는 개혁이 가능할까. 그걸 새로운 정치라고 생각하나. 여성들을 졸지에 보수주의자로 만들지 마라.
 
'여자들 중에 괜찮다고 한 사람도 있다'라는 말이 중요한 게 아니다. 비키니 올린 사람, 불편해 하는 사람, 둘 다 다른 방식으로 같은 이야기 했다. 여자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 말이다. 그것을 '성적대상화의 자유'라는 현재 한국 사회의 문맥에서 전혀 금지되고 있지 않은, 하나도 진보적이지 않은 가치 단 한가지로 해석하려고 했을 때 반발이 일어난 거다. 몸의 의미의 다양성이라는 걸 존중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불편함. '그게 뭐가 문제야'라고 하지 말고 '이게 왜 문제가 됐는지'를 궁금해 했으면 한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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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이 필요해 들어가서 한동안 안 나오고 싶어 겨울잠을 푹 자고 싶어 여름이었으면 여름잠을 자고 싶었을 거야 거기서 밤잠과 낮잠과 꽃잠과 새벽잠 견딜 수 없는 모든 잠을 자고 싶어 누가 내 눈꺼풀 좀 꺼줘 내 귀 좀 닫아줘 머릿속에 퓨즈가 녹지 않는 두꺼비집이 있어 퀙 퀙 두꺼비는 보기 싫은 등껍질을 보이고 돌아앉아 움직이지도 않고 잠도 안 자고 그저 하루 종일 보기 싫은 입을 합죽 다물고선 언제까지나 제 앞에 다가올 파리를 생각하느라 피곤한 거야 피곤해 죽겠는 거야 피곤해 죽겠는데 안 자는 거야 머릿속에선 파리가 윙윙 날아다니거든 이놈의 파리가 지치지를 않는 거라 그 거울 속에 들어가고 싶은 내 머릿속의 두꺼비집 속의 두꺼비의 머릿속에는 아무 데도 앉지 않는 파리가 살아

  거울 속에 그냥 걸어들어가 겨울잠이나 잤으면 아무 약속도 없이 아무 바람도 없이 밤도 낮도 없이 그냥 빙하기 동굴 속에 숨어든 어린 쥐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둘이 자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게 쥐포처럼 납작하게 꿈 없는 잠을, 파리가 나오는 꿈 없는 잠을
  파리가 뭔지 잊어버린 두꺼비의 집을 꺼낸 내 머리를 열고 거기서 걸어나오는 건,

아마 내가 아니라 내 잠일 거야
잠아, 흘러가렴 두꺼비와 파리를 용서하고
거울 속에서 흘러가렴

거울 속의 잠/정한아<어른스런 입맞춤>



나는 잠에 숨고 싶은 거지 꿈으로 달아난 게 아닌데
꿈속에서 나는 자주 무언가를 손에 쥐고 있고 
이것은 축축할까 따뜻할까 혹 살아 물컹거리는 것일까 갓 죽어 싸늘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손에 닿은 느낌에 골똘해질때쯤 하지만 호기심이 아니라 공포라는 걸 알아차리고
촉감 보다 빠른 공포는 내 눈꺼풀을 봉인한다 애초부터 보이지 않았으니 나는 손을 놓을 수도 없다
네 손을 놓을 수는 없다
어서 꿈을 깨고 나는 잠을 자고 싶은데. 
제발 나를 잠으로 인도해줘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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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보면 어떤 결정에 도달할 때까지 헤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그게 좋은 결정이라면, 너무 늦었다고 주저할 필요는 없다."


하이킥3에서, 이적이 도로 위를 쌔빠지게 달리며 했던 생각.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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