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8건

  1. 2008.01.14 내게 여행이란 건.
  2. 2008.01.14 이곳은 후쿠시마
  3. 2008.01.14 日本 080107
  4. 2008.01.03 post2007
  5. 2007.12.28 이곳은
  6. 2007.12.08 모든 것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었다 1
  7. 2007.12.05 너희 마저도.
  8. 2006.09.18 굉장히보고싶어요 1

내게 여행이란 건.

일상 2008. 1. 14. 19:45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게 여행이란 건 기억을 길어올리는 작업과도 같다. 일상과 뚝 떨어진 그 곳에서 나는 더 이상 삶을 만들지 않는다. 다만 내 지난 과거의 우물에서 난 한 조각 한 조각 기억들을 길어 올린다. 의도하지 않았고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그런 것들은 여행 중에 문득문득 내게 다가온다. 그것들을 마치 남의 이야기였던 듯 지긋이 관망해 본다. 그러다보면 가끔 마음 깊숙이 안아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건 용서일까 화해일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이곳은 후쿠시마

일상 2008. 1. 14. 11:30


 후쿠시마 공항이다. 역시 일본은 검색이 집요하다. 1년 전부터 시작된 지문과 얼굴인식검사. 혹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는 검사다. 말로만 듣던 생체여권이구나. 테러막겠다고 사람들을 다 죄인취급하냐느니 범죄를 막을 좋은 방법은 생각안하고 허구한날 감시만 심해진다느니 한참을 투덜거리니 친구는 옆에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며 핀잔을 준다. 정부도 구실이 필요할테고 우리도 협조해줘서 나쁠건 없지 않냐고 한다. 머쓱해졌지만 영 찜찜하다. 그렇다고 저는 이런거 거부합니다 했다가는 따로 별실로 가서 집요하게 상담받고 추방된다는데 뭐 어쩌랴. 그럴 만한 용기도 없다. 20분 넘게 기다렸는데 검지로 기계를 꾹 누르고 모니터 한번 쳐다보고 사진찍으면 끝난다. 투덜투덜. 어쩐지 내 삶이 자꾸 억압당하는 기분이다.

어쨌든,
후지산도 식후경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첫 발은 디딘 후쿠시마에서 한 첫 일본식 식사
양이 적고 깔끔하다. 야끼니꾸 벤또 라고 일본식 구운고기라는데 몇 인분씩 시켜서 한가운데 불판놓고 지글지글 구워먹는 한국과 달리 1인당 고기 양을 정해주고 구워 먹는다. 소식하는거 나쁘지 않다 싶다. 하지만 막 퍼주는 김치와 밑반찬도 돈을 지불하고 추가할 수 있다니 인심야박하네 하지만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겠다. 여튼 음식물 낭비는 적지 않겠나.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식당 앞에 사과 나무에 통통한 사과들이 종종 매달려 있었다. 이 곳이 사과로 유명한 곳이랜다.
과일가게의 간판이 아기자기하게 예쁘다. 기계적이고 도식적으로 뚝딱만드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개성있어 보여 좋다. 사과의 맛은 어떠냐하면, 사과 가운데 꿀이 껄쩍하게 가득차 있어서 베어물면 시원함과 달콤함이 입안 가득 퍼진다. 정말 맛있었다.

그게 바로 이 사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페인트 칠이 벗겨져 낡은 품위를 드러내는 벤치 위에 홍시 두개가 정숙하게 바구니에 담겨 있더라.
아- 정갈하다.
그리고 어딜가든 느끼는 이 정갈함은 일본에서 느낀 기분좋음이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日本 080107

일상 2008. 1. 14. 09:01

사용자 삽입 이미지

4박 5일 간의 일본 여행. 비행기 타는 일은 언제나 설레는 일이다. 아주 일찍 아침을 시작해서 그런지 따뜻한 비행기 안의 공기에 잠시 졸았다. 그 꿈에서 선명한 글자들을 꼼꼼하게 읽었다. 잊지 않으려고 말이다. 졸음에서 깨고선 한참이나 그 글귀들을 찾아 다녔다. 분명 뇌리 속에 박혀 있을 말들이지만 이미 희미해진 것들을 막연하고 서글프게 길어 올리는 일. 딱히 목적도 없이 난 늘 그런 것들을 좇아다닌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릴 적엔 저 비행기에 난 창문 하나가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브라운관에서 본 끝이 예쁘게 둥근 조그마한 저 창문 하나가 주는 설레임과 해방감을 난 늘 잊을 수 없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태평양을 건너 어느 덧 일본이 하늘 아래 펼쳐 지기 시작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반갑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post2007

일상 2008. 1. 3. 14:35



추석 연휴 이후 오랜만의 고향 나들이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좌석버스를 타고서도 한 시간 가량 달려 왔다. 버스에서 내리면 시골 냄새가 나겠지 하는 기대감으로 땅으로 발을 내딛는다 내리자마자 잠시 덤덤하게 정면을 바라 본다

고등학생 때 버스에서 내리면 횡단보도를 기다리다말고는 뒤돌아서선 너른 논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지평선이 보였다 생채기 난 마음에 논에 고여 있던 바람이 다가와 마음 고루고루 보듬아 주었다
나이를 먹고 드문드문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이제 이곳도 어중간한 시골이 되어가는구나 했다 논을 끼고 있던 산이 조금씩 깎이는가 싶던데 집엘 가면 엄마는 동네 사람들이 그곳에 짓는 아파트를 사둔다고 난리라며 빚을 내서라도 살까 고심 중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지하철도 들어온다니 집 값이 뛰는가보구나 그렇군 여전히 이 나라는 집이 모자라는구나 그렇구나 싶었다
하지만 분명 지난 추석까지만 해도 논 위의 산은 반이나 넘게 남아 있었고 아파트가 들어설거라는 불안도 없었는데 참 금방이구나

이제 아파트와 새 건물이 한 가득이다. 팔을 넓게 벌여 그것들을 안아 본다. 그래 너희들도 나쁘지 않아 사람들이 살 집이 많이 부족한가보구나 그랬구나 날은 어두워가는데 불 켜진 집은 거의 없지만 이제 곧 다들 입주하겠지, 많이들 내 집마련해서 다행일지도 몰라. 그런데 저 나머지 집들의 불이 마저 켜지긴 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엄마는 빚을 내 집 한채를 더 마련해두신걸까. 저기 어딘가에 불꺼진 우리집이 있는 걸까. 뒤를 돌아 신호를 기다린다

횡단보도 앞에 서 있으면 뒤에 맑고 시원했,던 시절이 있었다. 뒤통수를 씻어 주는 바람이 좋았다. 그러면 뒤를 돌아 한참이나 너른 돈을 바라보고 지평선 너머도 상상하며 눈을 씻었다

오늘은 그냥 신호등만 뚫어져라 쳐다본다
그래도 다시 한번 돌아본다. 덜 깎인 산은 없는지 덜 덮인 논의 흔적은 없는지 노을이 제 모습을 자랑할 틈이 남아있진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무성하게 꽂인 건물들 뿐. 사람이 많이 살지 않을 것 같은 아파트들이 삭막하게 서 있다. 그리고 눈 앞의 현수막 게시판엔 경제, 꼭 살리겠습니다 라는 플래카드가 이제 막 날아오를 듯이 퍼덕퍼덕 거리며 바람에 휘날린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이곳은

일상 2007. 12. 28. 16:59


맑고 단 해물누룽지탕을 입 안에 가득 문다. 단 기운이 온 몸에 퍼져 주위가 온통 말갛다
누군가는 맥주를 얼굴 가득 빨아들이고는 벌겋다. 또 누구는 사이다를 연신 마시며 2020년에
지구의 위기가 다가올거라는 이야기를 꺼낸다. 종말이 온다는 말은 서글픈 체념의 소리가 아니다. 아직 세상에 대한 기대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말이 사람들에게 호통이 되어주길 바라고 짧은 생에 주어진 운명을 다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지금 이 곳은 그런 욕심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버스 안에서 카프카 소설에 한창 심취해 있는데
갑자기 가스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설마 하며 킁킁 신중히 맡아 보았는데 정말 가스냄새였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왜 가스 냄새가 나는 거지 연료가 새는 건가 버스에 문제가 생겼나
설마, 버스가 폭발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이 깊어질수록 가스 냄새는 더욱 더 짙어 졌다
답답한 건 주위엔 킁킁 거리지 조차 않으며 버스와 함께 무심히 흔들거리는 무표정한 사람들
어떡하지 가스 냄새 난다고 주위에 말해야 하나 버스 폭발할지도 모르니까
사람들 빨리 대피시켜야 하는 건 아닌가
하지만 소심한 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순간 나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되었다
그래 이렇게 죽을 수도 있는 거구나 부여잡을만큼 지금 억울한건 없으니까 그래 괜찮아
그런데 왜 난 위험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소심하게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거지
내 소심함이 죽음보다 중요한 체면인가 말을 해 말을 하라고 왜 이렇게 가스냄새가 심하게 나는 건지 조그만 마음이 높아지는 밀도에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찬바람이 얼굴을 확 때린다
앞에 앉은 아줌마가 창문을 열었다 가스냄새가 내 코로 다 숨어 들어간다 시큼하게 눈으로 확 올라온다
고개를 떨군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아니 변하지도 않았던 내 표정은 그대로 책을 마저 읽어 내려간다

검은 얼굴의 카프카가 말한다

내가 시험굴착을 했을 때, 그가 혹 내 소리를 들었을 수 있었으리도 모른다, 비록 내가 파는 방식이 극히 작은 소음을 내지만, 그러나 그가 내 소리를 들었더라면 나 역시도 그 사실을 조금은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그도 귀 기울여 듣자면 적어도 작업중에 이따금씩은 멈추어야 했을테니
-그러나 모든 것은 언제까지나 변함없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너희 마저도.

일상 2007. 12. 5. 13:17

신발끈이 못나서 맥없이 자꾸 풀린다 하루에도 열번 씩은 풀어지는 신발끈과 묶고 풀리는 지루한 싸움을 한다 리본으로 꽁 동여 매고 잛게 남은 끈을 다시 한번 매듭져도 시간이 지나면 또 끈이 발에 밟힌다 때로 풀린 끈이 물에라도 적셔 질척해지면 몇 시간이고 그대로 방치해둬버린다 풀린 끈을 보니 마음이 서글프다

신발에 뒷꿈치가 자꾸 벗겨지는 양말이라든가 두터운 옷에 밀려 자꾸 벗겨지는 가방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요즘 나를 속상하게 한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

굉장히보고싶어요

일상 2006. 9. 18. 22:48


오랜만의 편지네요
갑자기 가을바람이 드세졌어요. 덜컹거리는 창문에 내 마음도
덜컹거리는 것 같아 밤이 깊어 가는 것도 잊고 밖을 나섰네요.
어둑한 운동장을 축 처진 어깨로 거닐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부정없는 긍정은 그저 민들레 홀씨와 같아서
훅-하고 불면 휙-하고 날아가기 십상이라고,
하지만 수십,수백 번의 회의와 허무를 통해 피어난 긍정은
단단한 뿌리를 가지고 있을 거라고, 그 뿌리를 통해 시원한 물을
흠뻑 빨아 들이며 알차고 알차게 여물어 간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네요
당신의 흔들리지 않는 슬픈 눈빛. 그 속에서 저도 살아 가는 힘을 얻거든요.

비가 왔어요.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내리니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아마 당신은 지금쯤 창문에 박히는 빗방울을 하나둘씩 세고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서점에 들어가 평소처럼 마음에 드는 몇 가지 책을 골라들고
쇼파에 앉았습니다. 황경신의 책이 눈에 들어 오더군요
'괜찮아,그 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프로방스 여행기인데
제목에 꽂혔죠. 머리글을 읽으려 하자마자 영업 마감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 나오더군요. 그리고 당신이 좋아하는 교보서점의
마감방송에 흘러 나오는 음악.

우선 아랑곳않고 머릿말을 읽다 참 좋은 글귀를 찾았습니다.
"삶은 표면적으로 고요하고 평화롭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안한 세계를 떠다니고 있다.."

물었었죠. 힘든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일상이 왜 이렇게 불안하고 초조한지 말입니다.
이 글귀를 읽어 주면 분명 당신은 그렇게 말하겠죠.
내 의지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까 사는 거겠죠.
계속 살다보면 가로등에 불 켜지듯 모든 게 하나둘씩 선명해질 거라는 기대 때문에요.

태풍이 온다는 얘길 들은 것 같아요. 누군가는 태풍이 온다는 말의
그 조급하고 불안함이 좋다고 했어요. 당신의 일상도 저의 일상도
조마조마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서로에 대한 기대감에서라면
더 좋겠죠.

굉장히 보고 싶어요.
스산한 가을 바람이 깔깔한 제 가슴을 훝고 지나가며
사정없이 생채기를 냅니다.    
그렇다해도 좋은 가을입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