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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01 제로 포커스


                                                                사치코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장면을 이야기하려 한다. 사실 <제로포커스>는 할 수 있는 얘기가 너무 많은 영화이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딱히 뾰족하게 튀어오르는 얘깃거리가 없는 영화이기도 했다. 하지만 단 한 장면, 뇌리에 박히는 단 한 장면있다. 계속 그 장면을 생각하며 이 글을 쓴다.

사치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나카타니 미키가 맡은 사치코란 인물이다. 그녀는 데이코(히료세 료꼬)의 남편을 죽였고 자신의 친구 히사코(키무라 타에)도 죽음으로 내몰며 통제할 수 없는 자신 때문에 미쳐간다. 

전쟁 이후 어떻게든 먹고 살기 위해 뭐든 해야 했던 사치코. 전쟁으로 부모가 죽고 동생을 먹여 살려야 하는 사치코는 미군의 팡팡걸(양공주)이 된다. 사회현실상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일이지만 짐은 고스란히 그녀 스스로에게만 지어지고, 그러한 일을 했다는 사실은 미치도록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가 된다. 사업가와 결혼하고 돈 많은 사모님이 되면서, 사치코는 일본 최초의 여성시장을 만들어내기 위해 열심히 선거운동을 한다, 양공주를 하던 시기, 히사코와 이런 얘길 나누었다. 분명 좋은 시대가 올 거라고, 여자들이 이런 일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누구나 저마다의 트라우마가 있을 것이다. 불현듯 떠오르는 어떤 이미지 때문에 괴로워하고, 몸에 기억된 상처가 가끔씩 마음에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그 강도야 저마다 다르겠지만 누구나 잊고 싶은 트라우마가 있다. 누군가는 그걸 품어 더 강해지기도 하겠지만, 누군가는 그것 때문에 미치고 환장해 버릴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사치코가 그런 사람이었다. 지워지지도 않는 것을 지우기 위해 뭐든 했던 사람. 그래서 죽인 사람이 (자신의 과거 즉 양공주를 했던 걸 아는) 데이코의 남편이었고 그 살인을 시작으로 끔찍한 운명이 작동되면서 하나 밖에 없는 친구까지 죽음으로 내몬다. 양공주 시절 사겨 하나밖에 없던 친구인 히사코(조금 복잡한데, 데이코와 결혼했고 시사코가 살인한 남자 겐이치는 과거에 히사코의 동거남이었다)는 과거를 지우기 위해 자신의 동거남을 죽이고 지금은 자신마저 죽이려 하는 사치코 앞에서 벼랑으로 떨어진다. 그 착한 얼굴로 이런 말을 던지며서.
 
"잘 살아봐. 내 몫까지." 


                                                 그냥, 그저, 한없이 선량해보였던  히사코


 무조건 새 삶을 사는 게 강박처럼 되어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고 앞으로 내달린 여자. 친한 친구가 제 눈 앞에서 죽자,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유리를 다 부수고 그 유리조각을 몸을 비비고 벽에 머리를 찧으면서 내가 죽이지 않았다고 울며 소리지른다.

(히사코를 차에 태우고 그녀를 죽이기 위해 어디론가 운전해가는 사치코의 얼굴은 그 어떤 공포영화보다 섬.뜩.하다. 진짜 보면 안다. 아무도 없는 극장 한 가운데서 그 시사코의 얼굴과 대면 했을 때 순식간에 나는 스크린에서 툭 튕겨져나왔고 난 서둘러 내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는 극장 안이 더 공포스러워졌다;)

상처받은 자신의 삶을 치유하고 더 강해지기보다, 여성시장 선거운동을 악착같이 도우면서(저 자신은 결코 시장선거에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어설픈 자기 위로를 해야했던 사람. 쉽게 어리석다 말할 수 없다. 사치코는 너의 과거를 안다는 얘기만 들어도 온몸이 덜덜 떨리고 눈앞에 깜깜해지는 사람이었다.

그 장면,
사치코가 자신의 친구 히사코를 죽음으로 내몬 다음 날, 일본에서는 최초의 여성시장이 탄생한다. 유리조각에 얼굴과 몸을 짓이겨 상처투성이인 사치코는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손에 붕대를 감고 그 현장으로 간다. 
여성시장의 후원인으로 묵묵히 일했던 사치코는 한사코 한마디 해달라는 여자들의 성원에 강단에 오르고, 이제 떨리는 목소리로 축사를 시작한다. 조심스레 말을 시작한 사치코는 점점 도취되어 여성이 승리했다는 말과 감격어린 얼굴로 연설을 끝낸다. (아아 이때 사치코의 감정은 어떠했을까, 과연.)
그리고 그 장소엔 사치코의 과거와 그 때문에 살인까지 했던 사실을 알게 된 데이코가 와 있다. 뻔뻔하게 축사를 하는 사치코를 향해 데이코는 분노한 얼굴로 크게 소리친다

"마리이!" 


마리이. 마리이. 강당을 울리는 목소리. 마리는 팡팡걸이었던 시절 불리었던 사치코의 가명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리이자 사치코인 여자의 눈엔 점점 눈물이 차오르고 목은 뻣뻣해져 고개를 제대로 돌리지도 못한다. 그리고 온몸이 돌처럼 마비되어선 바닥에 쿵하고 떨어진다. 강단 위에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게 굳어 누워 있는 마리이자 사치코. 

말 한마디로 사람 죽이는 게 이런 거구나. 끝까지 숨기려했던 자신의 트라우마를 살짝 건드리는 순간, 이미 조각날대로 다 조각나버렸던 사치코는 그 자리에서 와르르 무너져버린다. 사치코의 동생은 데이코에게 애원한다. 누나를 용서해줄 수 없느냐고, 전쟁 이후 누나는 자기를 다 부셔가면서 여기까지 온 거라고.


     데이코의 남편이자 히사코의 동거남인 겐이치. 전쟁 후 무기력함에 빠져살다 데이코를 만나고 새 삶을 시작하려하지만 벼랑 끝에서 사치코에게 떠밀려 죽는다


  왜 그랬을까 왜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 연민과 호기심이 뒤섞인 마음으로 나는 사치코를 생각한다. 그렇게 죽도록 숨기고 싶었을까. 전쟁에, 그 전쟁통에 죽은 부모의 시신까지 봐야했던 그녀를 내 어찌 다 이해할 수 있겠냐마는, 나는 조금이라도 이해하고 싶다. 
한 사람을 그렇게 만든 건 사회 탓이 크고 또 개인의 탓도 있고 서로 다 맞물리는 것 같기도 한데 그렇다고 그걸 딱 나누어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나는
살짝 떨어져 나와선 쉽게 '그게 운명',이라 붙이고 만다. 팔자다, 팔자. 죽어도 극복안 되는 게 있다면, 누굴 죽이거나 자기가 죽어야만 극복할 수 있는 거니까. 아. 그렇지만 나는 또 생각한다. 전쟁만 없었다면, 양공주를 그렇게 보는 시선만 덜했다면, 아아, 사치코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기 성장으로 승화할 수 있었다면..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흘러나오는 노래는 상당히 인상적인데, 이런 한 소절이 있다. "선택한 것 같지만 선택당한 속임수. 약한 자여 떳떳하게 이름을 밝혀라. 강한 자여 부드럽게 이름을 밝혀라."

선택한 것 같지만 선택당한 속임수. 열심히 살아서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싶다가도 뭐그리 용껏 파닥거리나도 싶은데, 사실 내가 하는 선택들이란 별로 보잘 것 없다는 허무가 밀려올 때가 조금 더 많아서인 것 같다. 

사치코는 자살한다. 자살해버린다는 건 모든 책임을 다 자기한테 돌리는 거라는데, 그래서 죽으면 지는 거라는데, 나는 사치코에게 모든 화살을 돌리고 싶지 않은데, 그녀는 죽음을 택한다. 택했을까? 영화가 사치코를 죽여버린다에 더 가깝다, 영화가 혹은 운명 같은 것이(같은 것이). 망망대해에 돛단배가 둥둥 떠다닌다. 화면 위로 '일주일 후 바다에서 사치코의 시체가 발견됐다'는 단 한줄의 문구가 뜬다. 아낌없이 돈을 쓰며 당시 전후 일본을 재현해냈던 이 영화는, 결정적인 사치코의 죽음에 대해선 이런 태도를 취한다. 그래서 더 먹먹하다.

데이코(히료세 료꼬)를 빼고 극중 주요 인물은 모두 죽는다. 그토록 새 삶을 바라던 사람들이었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라면 어떻게든 살아남은 것에 위안을 삼고 살아갈 것 같지만,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는 게 꼭 그들의 말이었을 거다. 그런 사람들이 우수수 벼랑 끝에 떨어져 죽어버릴 때, 이런 세상에선 다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던 개인들이었어라고 하는 것만 같아 개인적인 아쉬움도 든다. 아쉬움? 무엇에 대한 아쉬움인가? 그렇게 결말을 낸 이야기에 대한? 나는 거짓 희망이라도 바라는 건가?

                     데이코, 그저 좋은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라고 했던 그녀는 결혼 일주일만에 남편을 잃었다


 사치코를 생각한다. 주위를 둘러본다. 나를 본다. 있다, 분명 있다. 밑도 끝도 없이 슬퍼만 하고 있는 내가 있다는 걸, 대충 눈물을 닦아주고 우는 입을 막고 저 구석에 치워버려둔 어떤 나. 이건 대체 내개 무엇인가 싶다. 잘못 건드리면 온몸이 반응할만큼의 강한 트라우마는 아니지만, 살았다면 누구나 품고 있을 트라우마 같은 것. 그래, 같은 것. 이건 내게 대체 뭔가 싶다. 내 고통에 대한 내 태도에 대해서 나는 자꾸 생각해보게 된다. 고통보다는 고통에 대한 내 태도. 따지고 보면 트라우마라고 하는 것들은 지나치게 너무 상투적인 것 같다. 고통 자체의 개성은 없다. 그것 때문에 아픈 건 사실인데 그 고통이 사실인 건 모르겠는 마음. 그래서 나는 고통에 대한 내 태도가 더 중요해진다.   
생각의 끝에 드는 생각, 사치코나 데이코처럼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져버리지 않기를 난 그런 운명아니기를 바랄수밖에 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약한 인간일 뿐인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