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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2.21 하얗고 매끈매끈하게

나는 새로이 있다, 나는 혼자 있다고 말하진 않겠다, 아니다,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뭐라고 할까, 모르겠다, 나에게 되돌아온다, 아니다, 나는 나를 떠난 적이 없다, 자유롭다, 그래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쓰이는 것을 흔히 듣는다. 아무 일을 하든 자유롭다, 아무 일을 하지 않든 자유롭다, 아는 데 자유롭다. 뭐랄까. 의식의 법칙을 내 의식의 법칙을, 예를 들면 물은 깊이 빠질수록 올라간다는 것을 마침내, 왜냐하면 여백을 더럽히는 것보다는 본문을 지워버려 모든 것이 하얗고 매끈매끈하게 될 때까지 틀어막아버린다는 것이, 그래서 엉터리가 진면목을 개판의 무의미를 탈출구 없는 무의미를 드러낸다는 것이 더 잘한 일이리라는 것을. 그래서 틀림없이 마침내는 내 관찰 위치를 혼란시키지 않겠다고 결정하엿다. 그러나 관찰하는 대신에, 머릿속으로는, 연약하게도, 지팡이를 든 사내에게서, 딴 것에 쏠리고 말았다. 그때 새로이 속삭임, 침묵을 되끌어온다는 것은 사물들의 역할이다.


베케트 <몰로이> 중에서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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