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궁'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1.04.05 자궁 병동

자궁 병동

2011. 4. 5. 23:00

 

 

도리스 레싱의 단편 모음집 <런던 스케치> 그 안의 <자궁 병동> 

  결혼하고 이십 오년 동안 단 한 번도 남편과 떨어져 밤을 보내본 적이 없다는 여자가 입원했다. 산부인과, 여자들이 농담처럼 부르는 ‘자궁 병동’에. 보호자도 없는 조용한 오후 2시의 병실, 소설은 이곳에서 일어나는 반나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덟 명의 ‘늙은 여자’들이 모인 좁은 병실. 정말로 늙지는 않았지만, 젊은 여자 간호사들에게 그저 늙은 여자에 불과한 이 환자들은, 다닥다닥 붙은 침실에 나란히 그리고 밀어내며 누워 있다. 서로가 낯선 존재이면서 동시에 비슷한 병을 앓고 있어 친밀한 관계. 그렇게, 다른 세계들이 기묘하게 공존해 있다. 그들은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계급도 달랐으며, 아이가 여럿 있는 여자이기도 또 얼마 전 유산을 한 여자도 있으며, 누군가는 이미 남편과 사별했고 어떤 여자는 평생 남편을 가져본 적이 없다.
 
오후에 입원했다던 여자는 아직도 남편과 함께 있다. 저녁 시간이 될 때까지 남편의 손을 놓지 못 하다 기어코 울기 시작한다. 밥을 떠먹여 주는 남편 앞에서 몇 번이고 눈물이 뚝뚝 흘리고 닦아내고 스스로 불행하다는 걸 참지 못 하는 듯 이내 행복해 보이는 표정을 짓길 반복한다. 남편이 떠나야 할 시간이 되자 여자는 눈물을 줄줄 흘리고, 혼자 보내야 할 밤이 다가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 남편을 놓지 않으려 한다. 이제 다른 일곱 명의 여자들은 슬슬 그런 그녀를 짜증내 한다. 그녀의 우는 모습에서 되려 그녀가 얼마나 행복한 여자인지를 보는 다른 여자들. 남편은 결심한 듯 냉정하게 병실을 나가버렸고 간호사에게 핀잔까지 들은 그 여자는 기가 죽어 이젠 소리를 죽이고 흐느낀다. 그 사이 퇴근한 남편들은 아내를 찾아 병실을 찾고 안부를 묻고 아이들 얘기를 하다 집으로 간다. 이내 병실은 조용해졌다. 공허하고 막막한 병동의 공기.
 
잠에 들어야 할 시간, 예민한 여자들이 잠에 잘 들도록 따뜻한 우유들이 전해진 후 병실의 불은 꺼졌다. 그럼에도 그 여자(여자의 이름은 마일드리드 그랜트다)는 흐느낌을 멈추지 않는다. 대체 언제까지 울고만 있을 작정인지, 짜증이 나면서도 측은함을 느끼던 여자들은 이내 기계처럼 이어지는 그녀의 흐느낌에 익숙해지고 그때 즈음, 여자들은 어떤 감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각자의 내부에 자신의 권리와 요구 사항을 가진 달랠 수 없는 어린 아이가 들어 있었으며 그들은 그 아이를, 그리고 그 아이를 누르기 위해 자신들이 얼마나 큰 대가를 치렀는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음”을 느낀다. 저마다의 침대에서, 가까이 밀접해선 툭툭 침범하는 타인을, 그로인해 또 다른 자신을 느끼며.
 
무엇을 참을 수 없었는지 귀부인인 한 여자가 몸을 일으키며 그랜트를 내보내겠다고 말을 꺼냈고 그와 동시에 한 여자가 무거운 몸을 일으키곤 자신의 침대에서 걸어 나오기 시작한다. 그녀는 평생 남편을 가져본 적이 없는 여자, 미스 쿡이다. 그녀는 그랜트에게 다가간다.
 “이봐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울지 마, 정말로 그러면 안 돼....”
 
그때, 바로 그 순간, 그랜트는 몸을 돌려 자기 팔로 미스 쿡의 목을 왈칵 안는다. 미스쿡은 당황했을 거면서도 어린 애 달래듯이 도닥여 주며 말한다 “당신은 얼마나 운이 좋은 여자요, 안 그래요? 언제나 톰이 있었으니, 확신하건대 우리 모두는 우리도 그런 말을 할 수 있기를 바래요.” 만지고 토닥거리고 안아줄 사람 아니 대상이란 고양이 한 마리밖에 없는 한 늙은 여자가 칭얼대는 또 다른 늙은 여자를 어설프게 안아 주고 있다. 여자들은 말없이 생각을 나누었고 무슨 말이든 해야만 했던 상황에서 미스 쿡은 말한다. “아,, “살면서 배우는 거지.” 그리고 그들은 곧 자신만의 세계에 잠긴 채 깊이 잠든다. 

  글을 읽고 난 후 잔잔하게 오래 지속되는 감동이 좋아서 이야기가 몸에 밸 때까지 읽고 또 읽었다. 소설의 화자는 마치 병동 위에 고정된 카메라처럼 그 자리에 붙박혀선 각자의 인물들에 다가갔다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누군가가 된다거나 옆에 찰싹 붙어 그를 자세하게 드러내는 시점이 아니다. 개입하지 않고, 섣불리 누군가의 대변자가 되어서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무나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건 그게 게으른 시선이 아닌 굉장히 철저하고 전략적인 시선이란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완벽한 관찰자가 되기 위해, 성실하게 그 누군가가 되어 보고 또 되어 보는 과정을 겪은 것 같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그 힘으로 끌어나가는 경우가 많지만 도리스 레싱의 소설에선 특별히 캐릭터를 창조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냥 그저 늘 그곳에 있던 사람처럼, 일상에서 만나듯 소설을 읽다 우연히 만나는 것 같다. 
 
작가는 아주 가볍게 인물과 상황을 묘사하고 치고 빠지면서도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충분한 문장을 쓴다. 도리스 레싱에게 중요한 건 매력적인 인물이나 흥미로운 이야기의 창조보다, 상황을 ‘발견’하는 것이고 그 걸 얼마나 통찰력있게 분석할 수 있는 것이냐로 보인다. 그녀의 단편들이 너무 ‘인상’적인 것도 그 때문이다. 인상적인 건 일상적이어서다. ‘소설을 읽었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좀 전의 시간은 소설을 읽은 시간이 아니라 자궁병동 안의 여자들을 지켜보던 시간으로 기억하게 되는, 이런 느낌 말이다.  

자궁을 하나씩 달고 살았던 각자의 사연을 지닌 여자들이 병동이라는 한 공간에 모여서 그 차이에 부딪치고 또 어쩔 수 없이 끌리게 하는 연민과 연대에 저도 모르게 왈칵 안아 버리게 되는 순간, 그래서 이 단편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 그러니까 그랜트가 미스 쿡을 와락 안고 난 후 이어지는 이 문장. 
 
“그것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이렇게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상기하게 된 것은.
 서로 껴안고 붙들고 키스하고 밤이면 가까이 눕고 꿈에서 깨면 어둠 속에서 자신을 안고 있는 팔을 더듬거나 손을 뻗을 수 있어서 “안아줘, 내가 꿈을 꾸었나 봐.”라고 말하는 세상."  
 
사는 건 어쨌든 사는 것에 계속 도움을 준다. 살면서 배우는 거니까. 그 과정은 아주 단순할 지도 모른다. 자기 세계가 다른 세계와 계속해서 만나는 것. 도리스 레싱은 삶의 무수한 풍경 중에서도 이런 만남을 볼 수 있는 일상, 흔하지만 집중해본 적이 없어 아주 독특해 보이는 짧은 시간들을 예리하게 포착해서 그려내고 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