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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3.16 뚜끼뚜끼

뚜끼뚜끼

일상 2008. 3. 16. 23:15

걷는다
봄이라 그런지 참 많이 걷는다
바람나도 봄 탓 우울해도 봄 탓, 하지만 좋은 것도 다 봄 탓이야
마음 좋은 봄은 황사바람에 찔끔거리며 눈 비비면서도 능글 웃고 있어서 좋다
걷는다
주위에서도 걷는 사람이 많다 요즘 엄마는 통화할 때마다 걷고 있다하고
친구는 오늘도 어디까지 걸었어 하며 바람냄새 폴폴 나는 문자를 보낸다

나도 많이 걷는다
'내가 세상에 저항하는 방식은 지칠 때까지 걷는 것이다'
잠수종과 나비라는 책에 나오는 그 평범한 한 문장에 멍해진 적이 있다
우아 걷는 게 이렇게 멋있는 거구나  

걷는다
버스로만 보던 길 가의 간판들을 직접 보는 것은 영화의 세트장을 걷는 것만 같고
누군가와 여기에 꼭 같이 와야지 하며 설레하고
걷는 동안 머릿 속에 떨어지는 이런저런 상념들이 좋고
가사 아는 노래들을 끝까지 부르는 것도
아무도 없는 데선 괜히 큰소리로 아!아! 복식하고
무엇보다 바람에 마모되는 내 살들이여 안녕

종로에서 경복궁을 거쳐 자하문 터널을 지난 적이 있는데
꽤 늦은 밤이었다
준비된 마스크를 쓰곤 터널 안을 걷는데
차 지나는 소음이 어찌나 센 지 어찌나 빨리 달리는지
터널을 지나는 동안 내가 바스스 소멸해 버리는 건 아닌가 두려워질 정도였다
아무 흔적없이 실종되겠구나
왠지 슬프다 그래 터널처럼 외로워진다
나 참 별 거 아니다 지금 생각하고 있다고 별 건가 생각을 하고 있는데도 왜 이리 하찮아질까
주황 빛 조명 아래를 걸으며 정육점에 쓸쓸하게 걸린 고깃덩어리가 된 듯한 기분

터널을 지나고 마스크를 벗는 순간 상쾌한 밤바람이 입과 코의 먼지를 확 쓸어 가는.
하늘을 보니 별도 있다 그 별들이 우수수 떨어지면서 내 가슴에 훈장처럼 박힌다
고마워 별아 다시 어깨를 펴는 자아

그렇게 혼자 커졌다 작아졌다를 반복하며 (이것저것)걷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피로감이 확 몰려 온다
그리곤 버스에 실려 집으로 간다


..가끔 지친 몸으로 라면을 뽀작뽀작 부셔 먹기도 한다


여하튼 정말 걷는 데에 재미들렸다

바람을 가르는 날개 같은 팔의 힘을 조종한다
발이 능동적인건지 수동적인 건지도 알 수 없게 되는 순간에 다다르면
나는 태옆감은 인형이 된다
코와 입의 역동적인 펌프질은 온 몸의 땀 구멍으로 무기력함을 폭폭 밀어내어 준다

아- 이- 아름다운 운동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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