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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5.30 그것

그것

일상 2010. 5. 30. 00:59


김진영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 반의 반은 자고 반의 반은 글을 쓰고 반의 반은 선생님의 말을 열중하며 듣는다. 내 노트를 보면, 선생님 말보다 별 상관없는 듯한 단상이 더 많다. 어떤 식으로든 수업을 듣긴 듣는다. 어쨌든 나는 강의를 들으면서 딴짓을 참 많이 한다. 어떤 선생님은, 내가 실컷 졸다가 깨서는 안 잔척 골똘히 듣더니 노트에 세 명의 인간을 그리는 걸 보고 기가 막혔다고 하니, 뭐 늘 나는 그런 식이다.. 
웃긴 건 강의 때 늘 딴짓을 하면서도 사람들에게 "김진영 선생님 강의 정말 좋아!" 라고 홍보하고 다닌다는 것이다. 가식같지만 절대 거짓 아니다. 그러다 그저께 선생님께선 (나로선 너무나 전율을 일으키는)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   


"강의라는 게 뭐냐. 어느땐가부터 나의 강의라고 하는 것은 일종의 콘서트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정보전달하는 사람은 아니다. 지식전달자는 아니다. 난 그런 건 못 한다. 대신 강의라는 현장 속에서 (내가 준비를 해오긴 하지만) 나도 모르게 더불어서 나오어서 나오는게 있는데 그게 중요하다. 그걸 저는 경험이라고 하고, 이건 문자 층위에서 일어나는 강의와는 다른 계기를 마련할 것이다.

뭘 배웠다가 아니고, "사실 저는 선생님 강의를 듣다가 제 생각을 막 썼거든요. 왜냐면 뭐가 막 떠올라서요." 그게 진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강의가 그런 유발효과를 가져오길 진정으로 바래요. 이런 건 있을 수 있어요. 김진영이가 하는 강의가 아니면 결코 유발될 수 없는 그 어떤 효과가 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중요한 건 '그것'이라는 거예요. 프루스트 식으론 그게 우연이에요. 계획돼서 만들어진 게 결코 아니에요."




이 말에서 드러나는 이런 세계가 너무 좋다. 이런 세상, 이게 표현이 되는 걸까. 이렇게 보는 것.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이 말을 듣고 소름끼치는 느낌, 이 모든 것들, 아 이런 세상, 세상, 세상 말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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