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을 내딛기가 두려웠다. 온통 진흙탕이었다. 아침부터 많은 비가 내렸었지. 그래서였나. 다른 학살현장에서는 애써 상상을 해야 했다. 아무 것도 말하지 않는 평범한 장소에서 그 참혹한 사건을 애써 떠올려야만 했다. 하지만 구랑실재에 들어서는 순간, 비의 비릿내마저 피비릿내로 느껴질 만큼 오싹했다. 그 공간은 모습 자체로 참혹한 역사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붉은 진흙의 그 말갛던 공간이 왜 그렇게도 황량했을까. 그래 그래 비까지 왔었기 때문이리라.

 집단 학살.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자주 접하는 말이라 쉽게 익숙해질 수 있는 단어다. 그런데 갑자기 이 단어가 낯설어진다. 집단 학살이라. 감히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이전에 그 누구는 이 일을 상상했던 적이 있었을까. 그리고 실행에 옮겼던 걸까.

50년 7월 순천 경찰서에 수감된 자들이 트럭에 콩나물처럼 실려서는 이 장소로 왔다. 당시 수감된 자들은 여순사건 이후 국가의 좌익 색출 작업 과정에서 잡히거나 고발당한 사람들이었다. 증언을 해주신 허귀구 할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이후 한국 전쟁이 일어나고 인민군들이 자꾸 남하하자 좌익이라고 잡힌 수감자들이 혹시 합류하지 않을까 해서 이들을 학살했을 것이라 했다. 트럭에 실려 도착한 곳엔 이미 그들을 위한 무덤이 만들어져 있었다. 아아 상상조차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나는 이미 상상하고 있다. 충분히 상상된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가. 세 구덩이에다 사람들을 몰아넣고 총알을 퍼붓기 시작한다. 죽음 앞에서 한 없이 무기력해진 인간. 아무런 성찰도 몸부림도 허용되지 않은 채 짧은 공포와 함께 사라졌을 사람들. 집단 학살이라. 인간이기를 포기한 사회의 모습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지. '사회 속에서 인간은 동물과 같다'고.

 해방정국은 너무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하나의 권력이라는 의자를 둔 채 서로 다른 이념들이 피 튀기는 게임을 벌였다. 그쯤 권력이야 누가 가진들 상관없다. 그저 그들만의 게임이었다면 말이다. 하지만 누군가 희생돼야 했다. 권력은 진정 민중에게 있다는 사실을 아는 자들은 그 사실이 두렵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민중을 존중하고 위하는 길보다 억눌러 봉쇄하는 쪽으로 가기 쉽다. 말 그대로 그게 더 쉬우니까. 악을 규정하면 된다. 그 악은 공포정치로 가능하다. 악을 믿고 동조하면 죽는다는 것을 본 자들은 알아서 각자 선악분리장치를 가동시킨다. 하지만 복종으로 끝나지 않는다. 광기였다. 살고자 하는 욕구를 넘어 적극적으로 죽음을 이용하기도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고 그 때 당시에 자기가 살려고 허위로 상대방을 밀고해서, 억울하게 들어간 사람들이 태반이야. 예를 들어서 말하자면, 친구 사이에 좀 싸웠다고 서로 밀고하기로 했단 말이여, 요새는 그럴 일 없겠지만. 친구가 친구 잡아먹는단 말도 있었어. 그래갖고 저 사람이 반란군한테 길 가르쳐 줬다, 저분이 반란군한테 신발 한개 줬다 해서 그 죄목으로 잽혀들어간 거여. 그러도 않았는디. 이북계에 동조했다고 해서 그렇게 잡혀 들어가거든. 그러고 또 경찰은 동조했다고 하니 죄로 취급해야 했거든. 그렇게 해갖고 억울하게 들어간 사람들이 태반이여. 뭐 아까 보도연맹이나 이런 지식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뭘 알고 한 경우도 있었지만, 반은 억울하게 들어갔다는 말이여."

  여순사건을 둘러싼 학살에 대한 공동증언 중 하나가 (우리가 쉽게 규정하는) ‘무고한’ 피해자들 내부의 또 다른 가해자들이었다. 시대가 만든 광기 속에서 국가에 죽고 이념에 죽고 또 친구에게까지 죽어 하는 이 상황이 광기가 아니고 무엇일까. 이것이 이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일까. 아니 이것이 이성의 결과물인가. 여기서 내가 조심스러운 건 이념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됐다.’ 고 말하는 것이다. 안이한 생각이다. ‘무고하다’는 말 자체가 여전히 누군가 설치해준 선악분리장치를 가동시키며 ‘나는 죄 없다’라고 하는 인정 욕망을 넘어설 수 없는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념을 가진 것이 죄인가. 살면서 내가 갖게 된 믿음으로 행동하며 사는 것이 죄가 되는가. 문제적인 것은 이념을 주장하는 것이 폭력이 되고 전쟁이 되는 사회의 분위기다. 대체 왜 그렇게 죽이고 죽어야 했는가. 어쩔 수 없는 인간사일까. 그렇다면 나는 역사 없는 인간이 되겠다.

  다행인 것은 구랑실재의 학살이 발견되었다는 것. 몇 십년간 묻혀 있던 유골들이 도로공사를 하던 중 포크레인에 무더기로 실려 나왔다. 나무뿌리와 뒤섞여 수십 구의 뼈들이 허옇게 드러났다. 당시 가족을 잃었던 자들이 유해 발굴 소식을 듣고 몰려 들었다. 하지만 찾아 가지 않은 시체, 아직도 많단다. 그날을 기억하는 그 숨 막히는 흙 속에서 빠져 나왔으니 그대들 이제 마음 좀 나아졌을까. 이제 마음 편안히 쉴 수 있는 다른 곳에서 다시 잠들어야 할텐데. 죽은 그 당사자들을 위해서 해줄 건 그것밖에 없는데 산 자들은 그것도 제대로 못한다. 자연은 여전히 다 기억하고 있는데 그 기억에 귀 기울이려는 사람들은 너무 귀하다. 자금이 부족해서 유해 발굴을 못한다는 것이 상식적인가. 하루라도 빨리 더 많은 유골들이 발굴되어야 할 것이다. 가족을 잃은 자들마저 생을 다하기 전에 말이다. 

 
구랑실재에서 내려와 신발에 잔뜩 낀 진흙을 털어내느라 풀에다 시멘트에다 정신없이 발바닥을 비볐다. 하지만 아무리 털어도 짓눌러 꽉 배인 진흙들은 빠질 생각을 않고 진흙물마저 배인 신발은 얼룩덜룩 해졌다. 그 신발 모습이 싫진 않다. 신발의 얼룩처럼 역사의 현장에 제 발로 찾아간 우리들에게 이날 보고 들은 것들은 날 것 그대로 혹은 다른 것들과 접속하여 불쑥 불쑥 나타나겠지. 정말이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