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움은 자유에 있다> 왕빙의 신작 제목이다. 4시간 30분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 중국 정부로부터 반동 지식인으로 찍혀 고난을 겪고 지금은 미국으로 망명해서 25년째 살고 있는 가오 에르타이의 얼굴이 나온다. 영화의 대부분은 그의 인터뷰다. 두 가지 장면에서 나는 코끝이 찡해졌는데, 분명 좋은 감동이었다. 가오 에르타이가 반동으로 처음 찍힌 건 미(美)에 대한 논문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보고 누군가는 아름답다고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추하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것이다. 아름다움은 개인의 자유다. 새가 우는 건 객관적이지만 새가 우는 걸 두고 아름답다고 하는 건 주관적이라는 거다. 어쩌면 당연한 이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일에 대해 억압받으며 살진 않았다. 마음껏 아름다워하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름다움은 개인의 자유에 있다'고 주장하는 순간 유심론자가 되고 유심론자는 유물론에 반대되니 곧 반동으로 찍혀 갖은 노역과 해고와 추방을 반복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낄 자유와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을 더 소중히 지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오 에르타이가 공안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아주 글씨로 적어 신발 밑창과 낡은 옷의 튿어진 틈 사이에 넣어서 끝내 지켰다는 작은 쪽지들이 아름다웠다.

또 하나의 장면은 아니 이야기는, 그의 누나에 관한 것이다. 결국 그의 집안은 죄다 우익으로 찍혀서 재산을 몰수당하고 아버지는 노역을 살다 과로사했다. 누나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외지에서 그림을 배우던 가오 에르타이와 달리 누나는 고향에서 어머니와 계속 지냈다. 우익으로 찍힌 가족은 주민들이 부르면 광장으로 불려나가 공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어느 날 누나는 비판대로 끌려가고 있었다. 가는 차 안에서 누나는 잠이 들었고, 공안은 화를 내며 깨웠다고 한다. 그런데도 누나는 금세 또 졸았단다. "누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마음에 담아두질 않고 누굴 원망하지도 않는다고." 구십이 넘은 누나는 여전히 고향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남동생이 망명을 떠나며 두고 갈 수밖에 없었던 병이 든 조카를 끝까지 돌보고 장례를 치러주었다. 무심하고 묵묵하게 끈질긴 한 인간을 아름답다고 느꼈다. 비록 내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딸의 죽음을 말한 후 안절부절 못하는 가오 에르타이가 약을 먹고 집안을 계속 서성이다 밖으로 나가고, 영화은 그가 정원의 나무를 손질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무엇을 잘라내고 싶은지 그는 계속해서 잘라내고 또 잘라낸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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