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슈비츠의 재앙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혹은, 그러한 증언을 어떻게 취급해야만 할 것인가? 조르주 아감벤은 '증언은 그것의 본성에 본질적인 공백을 갖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생존자는 증언에 구멍을 뚫어 그것을 증언하는 것을 지탱하는 것이 불가능한 무언가를 말해준다'라 말한다. 그는 강제 수용소에 감금되어 살육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증언하는가, 혹은 원래 증언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질문한다. 증언은 자신이 본 것, 혹은 경험한 것의 번역이지만 그러나 이러한 경험이 말을 초월하는 거대한 사태와 직면해서 증언은 스스로의 과거와 증언하는 현재 사이에 찢겨져 탈주체화되어 버린다. 아감벤은 이러한 단절에서 출발해 증언이라는 행위의 곤경이 사건을 목격하는 것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말하려 할 때 발생한다고 말한다. 결국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없이는 성립될 수 없고, 혹은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행위인 것이다. 증언은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는 노력,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는 시도인 셈이다.


'역사의 유령 : 영상, 윤리, 표상의 문제' 수업자료 '표상불가능성의 문제', 김성욱 선생님.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