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6.09.22 <파도의 목소리> 연출 의도 1
  2. 2016.09.06 행운아(존 버거)
  3. 2016.09.01 그래, 믿을 수가 없었겠지

요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한 다큐라면 꼭 챙겨보려 한다. <파도의 소리>는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특히 단순하지만 특별해보이는 카메라의 이동이 감동적인데, 인터뷰만으로 이뤄진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대화하는 두 명을(인터뷰이+인터뷰이, 인터뷰이+인터뷰어) 사선에서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각 인물들의 정면으로 옮겨가고 그때부터는 두 인물을 번갈아 보여주는 식이다. 카메라가 사선에서 정면으로 이동하는 그 편집점이 이 영화에서는 중요한 사건처럼 느껴지는데, 연출 의도를 참고해보자면 어색함이 어느 정도 누그러지고 평상시 대화하는 것처럼(카메라가 그들에게서 잊혀질 즈음) 친밀감이 감돌 때에를 염두에 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가 시작되고 초반에 좀 졸다가 깨었는데 스크린에서는 나이든 여자분이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이번 지진으로 죽은 가장 친한 친구와의 일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린 둘 다 역사소설을 좋아했는데 늘 일본 역사소설만 보던 자신에게 중국와 한국의 역사소설도 즐겨 읽던 그 친구가 관련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해주었고, 그 후로 그런 소설도 재밌게 읽게 되었다고 한다. 살면서 그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다고, 눈물이 흐르지 않게 연신 손수건으로 눈을 닦으며 말한다. 졸음으로 말랑해진 내 온몸을 따뜻하게 주무르던 이야기.       

-<파도의 소리>2011, <파도의 목소리>2013 
-연출: 하마구치 류스케, 사카이 고
-연출의도:

<파도의 목소리>는 2011년에 만들어진 <파도의 소리>에 이어지는 작품이다이 영화는 <파도의 소리>와 같은 접근법으로 진행한동일본 대지진과 이후 이어진 쓰나미 사태 생존자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파도의 소리>가 재난 사태 이후 6개월간 이와테 현에서 후쿠시마 현까지의 광범위한 지역을 다루었던 것과는 달리, <파도의 목소리>는 후쿠시마 현 신치마치와 미야기 현 게센누마시의 두 지역을 일 년에 걸쳐서 다루고 있다.

 

우리는 인터뷰이(interviewee)들을 선정할 때, ‘그들이 얼마나 그 재난으로부터 참혹한 고통을 받았는가.’ 혹은 그들의 경험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가를 기준으로 두고인터뷰이를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우리가 만난 생존자들은 자신들보다 참혹한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이 있고자신들의 이야기보다는 지진으로 생계가 힘들어진 사람들집이 무너졌거나 가족사랑하는 사람들을 파도에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이 재난의 핵심에서 멀어질수록 말할 수 있는 이야기도 적어진다는 것이다우리의 인터뷰이들도 역시 고통을 받고 있는 이들임에도 불구하고그들은 자신보다 더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재앙의 진짜 핵심을 담고 싶다면 우리는 죽은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결코 들을 수 없다. 더구나 이 목소리들은 살아남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억압한다.

이 영화에 나오는 21명의 사람들은 재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지 않는다그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말을 하는 동안그들의 말투 또한 평상시에 대화를 나누는 말투로 변해간다즉 우리는 희생자의 목소리만을 듣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100년 동안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한 세기가 지나가면 우리도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 영화의 목소리들도 죽은 이들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파도의 목소리>를 만들면서 우리의 소망은 100년 후에 인터뷰이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들을 수 없었던, 파도에 휩쓸려간 이들의 목소리와 이어주게 하는 것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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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아(존 버거)

인용 2016. 9. 6. 21:19

영국인이 말주변이 없다는 것은 많은 농담의 소재가 되기도 하는데, 사람들은 청교도주의나 소극적인 국민성 등으로 이를 설명하곤 한다. 그런 설명은 더 심각한 사태를 가려 버리는 경향이 있다. 영국의 노동계급이나 중산계급에 속한 사람들 중에는 전반적인 문화적 황폐화의 결과로 말주변이 없게 되어 버린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을 자신들의 사고(思考)로 전환시킬 수 있는 능력을 박탈당해 버렸다. 
그들은 경험을 보다 분명히 밝혀 줄 말을 찾을 때 참고할 수 있는 그런 예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속담의 형태로 구전되던 전통들은 오래 전에 파괴되어 버렸고, 또한 엄격히 기술적인 의미에서는 문맹이 아니라고 해도, 글로 남겨진 문화적 유산들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글을 읽을 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것 이상의 문제다. 일반적 문화라 함은 거기에 비춰 개인이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적어도 자신의 모습 중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부분을 알아볼 수 있는 거울의 역할을 해야 한다. 문화적으로 박탈당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을 훨씬 적게 가지게 되는 셈이다. 그들의 경험 중 많은 부분 ㅡ 특히 감정적이거나 내재적인 경험ㅡ은 그들 자신에게 '이름 지을 수 없는 것'으로 남게 된다. 결국 그들의 주된 자기표현 방식은 행위를 통한 것이다. 이것이 영국 사람들이 '직접 해보기(DIY)' 취미에 그렇게 많이 매달리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때 정원이나 작업대는 만족스러운 자기반성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무엇이 된다.
가장 쉬운ㅡ그리고 가끔은 유일하게 가능한ㅡ 대화의 형식은 행위와 관련된 혹은 행위를 묘사하는 대화이다. 말하자면 행위가 하나의 기술이나 과정으로 여겨지는 상황이다. 그때 이야기되는 것은 말하는 이의 경험이 아니라 완전히 외적인 메커니즘 혹은 사태ㅡ자동차의 엔진이라든지, 축구 경기, 배수로 혹은 위원회의 운영 등ㅡ다. 이런 주제들, 개인적인 부분을 직접 건드리지는 않는 이런 주제들이 오늘날 영국에서 스물다섯 살 이상 된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대화의 내용을 이루고 있다. (더 어린 사람들의 경우에는 그들 자신의 욕망이 가지는 힘 덕택에 이러한 탈인격화를 피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대화에는 따뜻함이 있고, 거기서 우정이 생겨나 계속 유지될 수도 있다. 대화의 주제 자체가 가지는 복잡함 덕택에 대화자들이 가까워질 수 있다. 마치 대화자들이 주제 자체의 아주 작은 세부까지 철저히 살피기 위해 서로 몸을 앞으로 숙이고, 그 과정에서 손을 마주잡는 것만 같다. 그들이 교환하는 전문가적인 의견이 곧 공통의 경험을 상징하게 된다. 이미 죽어 버렸거나 지금 함께 하지 않는 친구를 생각할 때, 남은 친구들은 항상 전륜구동이 더 안전하다고 주장하던 그 친구의 설명을 생각한다. 친구들의 기억 속에서 그 설명은 이제 그들 사이의 친밀함을 나타내는 것이 된다. p.107-108 

-『행운아』, 존 버거 지음, 김현우 옮김, 눈빛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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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있었던 일인지는 기억이 안 나…… 거기가 어디였는지…… 한번은 헛간에 부상자들이 200명 가까이 꽉 찼는데, 위생병은 딱 나 혼자였어. 전쟁터에서 부상자들이 생기는 대로 곧장 헛간으로 데려오다보니 그렇게 많아졌던 거지. 마을 이름은 잊어버렸어…… 그후로 몇 년이나 흘렀는지도 모르겠고…… 꽉 나흘을 잠 한숨 못 자고 잠깐 앉을 새도 없이 뛰어다녔던 것만 기억나. 그 많은 부상자들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나를 불러댔지. ‘간호병! 간호병! 제발, 도와줘요!’ 이 사람 저 사람에게로 정신없이 뛰어다니다가 한번은 발이 걸려 넘어졌는데,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지 뭐야. ‘조용! 명령이다. 모두 조용히 한다!’라는 고함소리에 잠이 깼지. 지휘관인 젊은 중위였어. 역시 부상당해 들어온 그 중위가 다치지 않은 옆구리로 반쯤 몸을 일으켜 소리치고 있더라고. 중위는 내가 쓰러질 지경이라는 걸 안 거야. 하지만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나. 명령이고 뭐고 당장 죽을 것 같은데. ‘간호병! 간호병!’ 부상병들은 계속 나를 불러댔어. 나는 벌떡 일어나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른 채 뛰어다녔지. 그리고 그때 전선에 온 이후 처음으로 울고 말았어.

그리고…… 사실 사람은 자기도 자기 마음을 모를 때가 많아. 한번은 겨울에 우리 부대 옆으로 독일군 포로 행렬이 지나갔어. 포로들은 찢어진 옷으로 머리를 싸매고, 불에 타 구멍이 숭숭 뚫린 외투만 걸친 채 우위에 꽁꽁 얼어 있었어. 그때 날이 얼마나 춥던지 날아가던 새가 다 떨어질 정도였지. 새들이 날다가 그대로 얼어 죽은 거야. 그 행렬 속에 병사 하나가 가는데…… 어린 남자애였어…… 울었는지 뺨에 눈물 자국이 얼어 있더라고…… 그때 마침 나는 손수레에 빵을 담아 식당으로 가져가던 중이었어. 그 아이가 빵수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거야. 옆에 있는 나는 눈에도 들어오지 않는지 수레만 뚫어져라 바라봤지. 빵이다…… 빵…… 나는 큰 빵 하나를 집어들어 좀 떼어서 그 아이에게 줬어. 아이가 받긴 받는데…… 어리둥절한 것 같았어. 믿지 못하는 눈치였지…… 그래, 믿을 수가 없었겠지. 

냐는 행복했어…… 내가 다른 누군가를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기뻤어. 그리고 그런 나 자신에게 스스로도 많이 놀랐지……” 

-나탈리야 이바노브나 세르게예바, 사병, 위생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p.156-157,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속으로 읽다가도 인용의 마지막에 사람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을 입밖으로 소리내 읽는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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