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리 : <해변의 여인> 마지막 장면은 개펄에 빠진 문숙의 차가 모르는 남자들의 도움으로 빠져
            나오는 장면입니다. 그처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사소한 친절로 마음의 매듭이 풀린 경험
            이 혹시 있나요?

고현정 : 많아요. 그리고 자주 울컥해요. 이런 것 때문에 세상이 돌아가는 걸 거야. 그래 그냥
            이렇게 사는 거야 하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결말장면을 감독님한테 받고 깜짝 놀랐죠.
            우리가 친구나 지인과는 만남의 수준보다 깊은 이야기를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도
            해보곤 하지만, 가끔 아주 단순하게 그런 일로 마음이 정리가 될 때가 있잖아요.


씨네21, 김혜리가만난사람시즌2 <배우 고현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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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

인용 2008. 9. 6. 02:51

 

우린 당신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써
막혀서 답답한 우리의 코를 쳐듭니다
우리를 깨끗이 씻을 수 있도록, 손수건께 축복을 보냅니다

이제 우리는 열렬한 기대로 기다립니다
주께 우리를 인도할 그들 손수건을..

손수건이 오시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그가 우리 모두에게 온정의 숨결을 내뿜기를 기도합시다

우리는 주의 귀하고 두운체 이름으로,
이와 모든 것을 구하니라

모두 다함께

팽 -

                                           영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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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나의 세계관과 갈등을 일으키는 현실이 나타났을 때, 두 가지 태도가 가능하다.
하나는,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본다'. 그래서 결국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된다'.
다른 방법은 자기 단절을 통해 자신을 현실에 개방하는 것이다.
문화 연구의 고전, <교육 현장과 계급 재생산-반학교문화, 일상, 저항>의 저자 폴 윌리스는,
연구자가 새로운 사실의 도출을 미루고 직접 관찰할 수 있는 것과 강조함으로써 질적 연구가
실증주의적 경향을 띠는 것은 '실증주의와의 데이트'라고 비판한다.

모든 대상과의 소통은 새로운 관계에 들어감을 의미한다. 대화의 과정이란 나와 상대방의 의도적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기 보다는, 나와 상대방이 대화의 관계에 몰입하는 것을 통해
가능하다. 대화의 관계에서는 누구도 상대를 지배하려 하지 않으며, 다만 이해하려고 한다.
대화로부터 무엇이 드러나는지는 대화에 들어가기 전에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따라서 대화는 단순한 수용이 아니라 의미의 재창조이다.

                                                                             
정희진_페미니즘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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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대제국을 짓는데 동원됐을 노동력이나 기술력은 실로 대단했겠지만
더 놀라운 것은
페르세폴리스의 기틀이 되었을 그들의 정신문화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저에게 감동을 주는 부분은
이 도시가 힘과 채찍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
포용과 이해 상호간에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지어졌다는 것
폭력이 아니었다는 것. 그것이 무척이나 인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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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둘러보니 하페즈의 시 한구절이 떠오릅니다
"희망으로 이루어진 궁전은 그 토대가 모래라는 것을 알아야 하니
인생이란 것도 어쩌면 한낱 바람위에 지어진 것과 같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다르게 읽어봅니다
희망의 궁전들이 바람에 다 날아가 버릴지라도
그 포용과 관용의 정신을 잊지 않는다면
이 곳은 다만 허공에 흩어진 폐허만은 아니리.


                         EBS세계테마기행 이란 2부 '페르세폴리스로 가는 길' _ 유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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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라즈니쉬(인도 철학자)가 좋아서 계속 라즈니쉬 책만 찾아서 보고 그러기도 했어. 그러면서 라즈니쉬 수행법도 해보고. 그 바람에 제주도를 안먹고 안 자고 걸어서 한 바퀴 돌았잖아. 쓰러질 때까지 돈다는 게 라즈니쉬 수행법이거든.

3일. 쉬지 않고 먹지 않고, 물은 마셔. 목적은 쓰러지는 거야. 휴대폰 1번에 연락할 사람 번호 넣어두고 배낭에 야광 붙이고 물통 하나 차고 신발 하나 더 달고. 근데 참 재밌더라. 제주도는 한 바퀴 돌면 딱 그 자리로 오잖아.

쓰러졌지. 암튼 너무 좋더라. 이런 걸 제주도니까 하지 어디서 하겠어. 여긴 해안도로만 따라서 돌면 그 자리로 오니까. 다음엔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려고. 근데 확실히 명상을 하면 생이 풍요로워져. 맑아지니까. 집착하고 화내고 그런 것이 줄어드니까. 사심이 없어지니까 마음이 열리고 자유로워지니까 풍요로워질 수밖에 없지."

Film2.0 장선우 감독 인터뷰 중



어맛. 저런 수행법이 있단 말이야. 솔깃. 하고 싶다. 쓰러지는 게 목적이라니.
그럼 쓰러지지 않고 하염없이 걷다가 지구에서 사라지는 수행법은 없으려나. 육체의 흔적도 없이 말이야. 근데 서울에서 저거 하면 다 돌기도 전에 호흡기 질환으로 쓰러지겠지? 

그나저나. 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장선우 감독 특별전을 한답니다. 방글방글.


김영진 영화평론가는 장선우 감독에 대해 '더 이상 영화를 찍고 있지 않지만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는 영화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부럽다.' 라고 말하더라.
나 역시 부럽다. 그리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놀기 위하여 한없이 자유롭기 위하여 그는 그만큼 얼마나 치열해야 했고 굳건해야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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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것은사건이다

인용 2008. 8. 20. 11:58

"훌륭한 울음터로다! 크게 한번 통곡할 만한 곳이로구나!"
                연암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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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만들었을까

인용 2008. 8. 20. 10:57


 위대한 장성이여!
 지도에는 조그맣게 그려져 있으나 조금이라도 지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리장성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많은 인부들이 이 장성 때문에 고역에 시달리다 죽기만 했지, 장성 덕분에 오랑캐를 물리쳐본 적은 없다.
 오늘날 장성은 고적으로 남아 있다. 당분간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며 보존될 것이다.
 나는 언제나 장성이 내 주위를 에워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장성은 예부터 있던 벽돌과 새로 보수한 벽돌로 되어 있다. 이 둘이 합쳐 하나의 성벽을 이루며 사람들을 포위하고 있다.
언제쯤 장성에서 새 벽돌을 더 보태지 않아도 될까.

  위대하고도 저주스러운 장성이여! <루쉰, 장성> 


  올림픽 시즌이다. 평소 스포츠를 즐기지 않던 사람들도 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쉽게 열광하고 흥분하고 안타까워한다. 각본없는 드라마라는 둥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둥, 언론은 과장된 수사를 동원해가며 앞다퉈 올림픽 소식을 전해온다. 하지만 '전 지구인의 축제'라는 올림픽을 보면서 가슴 한쪽이 뻐근해짐을 어쩔 수 없다.
  베이징올림픽 때문에 베이징의 수많은 '인민들'이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소수민족의 탄압을 규탄하는 시위자들이며 생존권을 주장하는 인민들은 이 '축제'에 낄 자리가 없다. 비단 중국뿐인가. 88올림픽 때도 이 보름간의 '축제' 때문에 엄청난 수의 '판자촌'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올림픽은 축제가 아니라 재난이다.
  만리장성의 스케일에 압도된 관광객들이 '이걸 왜 만들었을까' 라는 질문을 놓치게 되듯이, 올림픽의 폭죽 소리에 많은 질문과 목소리들이 가려져 버렸다. 언론탄압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탄압이 가속화되고 있고, 미국산 쇠고기가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올림픽 덕에 잠시나마 이 모든 근심을 잊었으니 고마워해야 하는 것인가.
아. 고맙고도 저주스러운 올림픽이여!
                                                                            채운. 연구공간 '수유+너머'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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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인용 2008. 8. 12. 15:17

'미루야마 겐지'의 소설<천년동안에>에는 무려 천년동안을 살아온 나무가 등장한다.
그 긴 세월동안 수천가지의 삶을 보아온 나무는 이 세상엔 더 이상 신기해할 것도
놀랄 것도 없다는 듯 모든 삶에 냉소적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여자가 나무 앞에 등장한다.
천년의 나무가 지켜보는 앞에서 나뭇가지에 목을 매다는 여자. 줄이 팽팽해지는 순간,
여자의 몸속에서 갓난아기가 툭 떨어져 나온다.
숲 속에는 아기를 돌보아줄 자가 아무도 없다. 엄마인 여자는 이미 죽어버렸고,
나무는 제 아무리 천년을 살아왔다 한들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한 치도 움직일 수가 없다.
아기가 생존할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 하지만 그 순간, 온갖 회의에 빠져 있던 천년의 나무는
거의 꿈꾸는 듯한 심정으로 저도 모르게 이렇게 외쳐버리고 만다.
"잘 태어났다! 살아라! 겁내지 마라!"



이처럼 일상이란 시간이 중매한 마주침, 그 만남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고 있는 자들은
자신이 원치 않더라도 무엇인가 하게끔 되어 있다. 만남! 그 어떤 의미로도 포획할 수 없는
사건이며, 찬란한 섬광인 마주침에 이끌린 그들은 아무 소용없는 짓이라도 기적처럼
저지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이 만남은 절망을 넘어선 희망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축복도 아니다.
그것은 그저 만남 사이에 터져 나오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의 경이로운 사건일 뿐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메시아적 시간 : 복음인가, 비극인가 / 이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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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당신에게서 돌아설 때가 있었으니

   무논에 들어가 걸음을 옮기며 되돌아보니 내 발자국
뗀 자리 몸을 부풀렸던 흙물이 느리고 느리게 수많은
어깨를 들썩이며 가라앉으며 아, 그리하여 다시 중심
잡는 것이었다

   이 무거운 속도는, 글썽임은 서로에게 사무친다고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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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인용 2008. 8. 1. 11:47



작가 이청준은 삶을 캄캄한 밤에 산길을 더듬어가는 것에 비유하곤 했다. 그런 도정에서 문학은
'방금 누가 지나갔으니 빨리 가면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는 거짓말이란다. 그가 평생을
바친 '소설이란 거짓말'은 그 말의 가치를 믿음으로써 일말의 희망을 안고 남은 삶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위무, 인생의 부끄러운 상처와 아픔을 풀어내는 씻김질이었다.


우찬제 서강대 교수는 "현실에 패배한 사람들이 억압하는 현실과 상처받는 개인이라는 이항대립을
초월해 새로운 억압으로 추락하지 않는 이념의 질서를 창조하는 모색 과정" 을 이청준 소설의
특징으로 든다. 실패하고 갈구하는 개인, 탐색과 추리 기법, 액자구조, 다원적 시점, 열린 결말 등은
그런 문학적 목표에 도달하는 문학적 장치다.
권오룡 한국교원대 교수 역시 "인정이냐, 부정이냐의 양자택일을 요구하는 현실에 저항하는
이청준 문학의 애매성은 손쉬운 선택을 거부하고 모순의 긴장을 끝까지 견뎌내는 힘에서 나온다"
고 지적한다.


이청준을 만나본 사람들은 그의 겸손함과 자상한 배려를 잊지 못한다. 책이 나오면 막내 편집자까
지 꼭 밥상에 초대했고 자신의 문학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 앞에서 늘 겸손했다. 그의 손에는 담배가
꼭 들려있었고 여행을 떠날 때면 배낭에 술병을 반드시 챙겼다. 철저하면서도 조용하고 익살스러웠
으며, 평생 동지로 지낸 문학과지성사 동인들을 만날 때 빼고는 문단 나들이가 잦지 않았다.
자신의 병을 알았을 때 "석양녘 장 보따리 싸는 심정" 이라고 했던 그가 먼 길을 떠났다.
이청준 없는 한국문학, 예정된 일이었지만 슬프다.



경향신문, " 한국 현대소설' 꽃피우고 떠난 대표적 지성 "(한윤정 기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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