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1건

  1. 2018.12.14 자리
  2. 2018.08.08 너와의 거리
  3. 2018.07.07 20180707
  4. 2016.06.01 할머니
  5. 2016.05.25
  6. 2016.01.16 놀이터에는 풀이 무성하게 자랐고
  7. 2015.12.08 2011년의 사소한 이야기들
  8. 2015.12.02 사진과 순간들
  9. 2015.11.30 사진들 기억들
  10. 2015.08.19 범뜰 (2)
  11. 2015.08.16 7, 8월 메모
  12. 2015.08.13 메모
  13. 2015.06.15 헌정 (2)
  14. 2015.06.10 요즘
  15. 2015.05.15 위하여 (2)
  16. 2015.05.07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17. 2015.03.30 꿈을 꾸었다 빛을 보았다
  18. 2015.03.14 어긋나 버렸다.
  19. 2015.03.09 죽음
  20. 2015.01.26 물뿌리

자리

일상 2018.12.14 01:12


어제는 노란뿔테였는데, 오늘은 테가 없는 안경을 끼고 있다. 남자는 최근 안경을 끼기 시작했다. 한 달 새 안경이 바뀐 건 세 번째다. 하나같이 얼굴에 맞지 않아 보인다. 내가 남자를 지켜본 지도 일 년이 지났다. 퇴근이 빠르면 8시, 늦으면 9시, 10시, 때로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그를 만난다. 아니 본다. 지하철 2호선에서 내려 발뒤꿈치들을 따라 계단을 오른 뒤 화장실로 몰려가는 사람들을 피해 조금씩 뒷걸음질 치며 개찰구를 통과하고, 그러고도 열 걸음 정도 더 걸으면 집으로 가는 방향의 출구가 나온다. 그 출구로 나가기 위해 오른쪽으로 꺾기 직전, 뚜렷한 이목구비에 짙게 화장한 모델의 얼굴이 커다랗게 박힌 화장품 광고판 아래가 바로 남자의 자리다. 나는 오늘도 남자를 스쳐 지나간다. 스쳐 지나가면서 본다. 보는 걸 들키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보고 싶다. 오늘은 어떤 안경을 꼈는지, 어떤 옷을 입었는지, 물론 옷이 바뀌는 일은 거의 없지만, 어떤 모양으로 앉아 있는지, 곁에 얼마나 많은 봉지를 늘어놓았는지, 머리카락이, 눈썹이 얼마나 자랐는지 구두코는 얼마나 닳았는지 나는 매일 그런 것들을 빠르게 탐색한다. 남자는 보통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있거나 모로 누워 주위를 응시한다. 가끔 잠을 자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꼭 바닥에 볼을 대고 있는 채로다. 바닥의 서늘함이 좋거나 어쩌면 신발 굽 소리를 듣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 남자는 검은 봉지에 얼굴을 박고 무언가를 먹고 있다. 얼굴에 맞지 않은 안경은 흘러내릴 것 같다. 그 위로 희끗하고 풍성한 눈썹이 꿈틀거린다. 봉지가 커졌다 줄어들 때마다 눈썹이 흩날린다. 남자의 몸에서 유일하게 생명력이 느껴지는 존재. 눈썹은 계속 자라고 언젠가 머리카락보다 더 길어질 게 분명하다. 사람들은 부드럽게 포물선을 그리며 남자의 주위를 지나간다. 오늘도 주위에는 봉지들이 늘어져 있다. 퇴근이 늦은 언젠가의 밤이었다. 한적한 역사 안을 한 남자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잘 보이지 않는지 바닥을 노려보며 손으로 뭔가를 붙잡고, 붙잡고 하며 헛손질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의 발에 채이곤 하는 먼지와 머리카락 뭉치였다. 남자는 먼지를 붙잡아 봉지 안에 가두었다. 형형색색의 봉지들이 남자를 따라다녔다. 이렇게 더운 날씨에 파카를 입은 사람을 보는 건 괴로운 일이라고, 아니 슬프다고, 아니 그보다는 우울해진다고, 생각했다. 이내 발길을 돌려 출구로 가는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을 때 등 뒤에서 남자가 뒤따라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서서히 걸음을 늦춰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번화한 역 주변을 걸으며 남자는 봉지와 담배꽁초를 주웠다. 봉지는 야무지게 말아 주머니 깊숙이 넣었고 담배는 구석에 앉아 피웠다. 남자는 담배를 피우며 무언가를 계속 응시했는데 거리에는 너무 많은 것들이 펼쳐져 있어서 그가 무엇을 보는지는 알 수 없었다. 남자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상품 매대 사이에서 남자가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남자는 컵라면을 집어 계산대로 가서는 지폐를 건넸다. 건넸다가 도로 가져가서는 손으로 여러 번 잘 펼쳐서 다시 건넸다. 점원이 동전을 거슬러줬고, 남자는 동전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가만히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보였고, 주머니 깊숙한 곳을 탐색하는 손을 따라 고개는 점점 바닥을 향했다. 계산대 앞을 막은 남자를 점원이 더 이상 못 참아줄 즈음 그가 다시 신중하게 꺼낸 손에는 한가득 동전이 있었다. 남자는 손바닥을 좌우로 몇 번 흔들어 동전을 정렬시킨 뒤 계산대 앞의 기부함에 동전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점점 주변의 소음이 사라지고 툭 툭 동전이 동전들 위로 하나씩 떨어지는, 신속하게 낙하하는 소리만이 내 귀를 울렸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받아 밖으로 나온 남자는 익숙하게 건물의 귀퉁이에 쪼그려 앉았다. 라면을 먹는 남자를 계속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걸 멈출 수 없었다. 그 이후 퇴근할 때마다 남자를 본다. 남자는 며칠 자리를 비우기도 하는데 전보다는 깨끗해진 모습으로 돌아온다. 한 달째 남자는 자리를 비우지 않는다. 먼지를 줍느라 손끝이 까맣다. 이제 남자를 스쳐 출구로 올라가는 찰나, 무심코 남자의 자리에 발을 디뎠다. 선 채로 내려다보이는 남자는, 작다. 무척 작다. 누구에게도 위협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작다. 가까이 다가선 나를 남자가 올려다보려는 순간 나는 광고판의 모델로 눈길을 돌린다. 가지런한 눈썹 아래 크고 까만 눈동자 안으로 사람들이 지나다닌다. 난 모델에게 시선을 유지한 채 빠르게 자리를 피한다. 나는 매일 그를 관찰하며 남자가 살아온 시간을 가늠해본다. 지금의 자리를 잡게 된 사연을 짐작해본다. 기부함으로 동전을 하나씩 떨어트리던 그 마음을 궁금해한다. 다만 궁금해하고 짐작해볼 뿐 나는 그저 포물선을 따라 남자 주위를 지나갈 뿐이다. 남자의 시선이 되어보고 싶지만 남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것은 두렵다. 지금처럼 매일 남자를 스쳐 지나가겠지만 만나지는 않을 작정이다. 사람들의 발뒤꿈치를 따라 지상으로 가는 계단을 오른다. 바깥의 더운 열기가 전해지자 하루의 피로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너와의 거리

일상 2018.08.08 23:10

불을 끄고 누워 고요히 기다리면 잰걸음으로 다가와 곁에 눕는 너. 곁이라고 하기에는 내 팔 길이만큼 떨어져 눕지만, 네가 잠들면 네 몸에 가만히 손을 대고 솟았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는 숨은 느낄 수는 있는 거리. 가끔은 바로 잠에 들지 않고 새카만 눈으로 한참이나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너. 맑은 눈동자를, 명료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무슨 생각하고 있어?"라고 물어보게 된다. 영영 들을 수 없을 대답, 풀리지 않을 신비. 그게 슬프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하다. 너는 너. 오롯이 너. 그리고 노력 없이 깨닫는 어떤 불가능함, 그게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하지만 들을 수도 알 수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매번 주문처럼 묻는다. "무슨 생각했어?" "무슨 생각하고 있어?" 반복되는 이 소리는 너에게 어떤 신호로 가 닿을까. 어제는 네 말랑한 발바닥을 손에 꼭 쥐고 잤다. 네 기분이 괜찮았는지 다행히 나는 깨물리지 않았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20180707

일상 2018.07.07 22:19

길냥이들을 보면 가엾다. 몰골이 지저분하거나 마른 몸으로 쓰레기봉투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고양이를 보면 특히 그렇다. 며칠 전에는 너무 늙어 수염도 몇 가닥 남지 않고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계속 침이 흐르는 고양이를 보았는데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마음만 너무 아팠다. 불쌍했다. 그러고보면 나는 언제부턴가 사람에게는 불쌍하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쓰지 않으려 주의한다. 누군가에게 동정이나 또 연민마저도 갖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건 내 오래된 윤리적인 고민이 지금의 태도로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이 생각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고양이에게 느끼는 무한한 연민과 동정에서 나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고. 그런 대상이, 생명체가 생겼다. 한없이 불쌍해하고 마음 아파하는데서 느끼는 이 이상한 자유는 뭘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할머니

일상 2016.06.01 00:07


그냥 주위를 한번 둘러보고 갈 참이었다. 촬영을 해야겠다는 작정을 하지 않고 온 터라 마음이 편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208호 할머니댁에도 들려볼까 싶었지만 이건 근처에 가서 충동적으로 결정해야지 싶었다. 사실 조금 귀찮기도 하였다. 이런 생각을 하며 아파트를 돌고 있는데 할머니가 사는 아파트 동 앞에서 정면으로 마주쳤다. 바퀴가 달린 장바구니를 밀며 올라오시는 중이었다. 순간 나는 너무 놀랐고 할머니는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이내 나인 것을 알아보고 얼굴이 환해졌다. 신기하고 막상 뵈니 참으로 반가워서 나도 웃었다. 그러잖아도 마침 어제 이 아가씨 언제 오는가 싶었단다.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는 할머니를 뒤따랐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요구르트를 내오셨다. 지난 번에는 나 혼자만 마셨는데 이번에는 같이 마셨다. 대문을 열어두니 시원한 바람이 잘 들어왔다. 좀 더 건강해지신 것 같다고 하니 딸네서 주는 것 잘 먹고 병원을 다녀 그런가보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이라 산책도 못하고 집에만 있었더니 빨리 집에 오고 싶었단다. 그래도 무리하지 마시라고 하니, 나 같은 늙은이야 가까운 곳만 살살 다니지만 자네같이 젊은 사람들은 천지 겁없이 다니다가 사고가 훨씬 많이 난다고 조심하라 하셨다. 그러더니 할머니는 갑자기 박수를 한번 딱 치면서 그러잖아도 어제 꿈에 내가 나왔다고 했다. 바쁠 텐데 어떻게 여길 왔느냐고 말을 건넸는데 그 말이 입밖으로 정말 튀어나와서 자신의 목소리에 놀라서 깨셨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5월에 다시 오겠다고 한 게 생각이 나셨단다. 오는 길에 근처 성당엘 들러 선물받은 이 묵주에 축성을 받으려고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내가 거기 사람들을 잘 아니까 도와주었을텐데 하고 아쉬워 하셨다. 성당엘 다니는 할머니는 일요일 대부분의 시간은 그곳에서 보낸다. 교회도 가고 절에도 다녀봤지만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성당이 좋다고 했다. 저도 성당의 그런 점이 좋다고 하니까 기도 열심히 하라고 하셨다. 나는 예, 예, 예 답했다. 매번 해주시는 이야기들, 국가와 국회의원에 대한 비판과 성당과 교육과 결혼에 대해 말하셨고, 이야기가 길어지면 나는 눈이 자꾸 감기고 겨우 하품을 숨기고 저린 발을 꼼지락 거렸다. 듣기 좋은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좋고 나와 생각이 다른 이야기도 열심히 들어볼라치면 의미가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인사를 드리며 8월에 또 놀러오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불편한 다리를 끌며 주방으로 가더니 유기농 차와 말린 귤 껍질을 꺼내오셨다. 선물을 담아 크게 부푼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었다. 그때 아파트 마당에서 다른 집 할머니가 놀자고 부르셨다. 누가 부른다고 말씀드리니 이제 기도시간이 되어서 나는 안 놀겠다고 하셨다. 그럼 그동안 건강하시라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방 안에 있던 꽃나무들은 현관 앞에서 싱싱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내가 적극적으로 할머니께 질문을 드리면서 대화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여행 중에 작은 선물이라도 사와야겠다. 이렇게 할머니와 친해질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우연히 마주쳤을 때 할머니가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뭉클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일상 2016.05.25 09:55


눈을 뜨자마자 낯선 기운에 몸을 빠르게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가끔 촬영을 위해 들리는 아파트, 그것도 208호 집 안이었다. 이 자리에 앉아 집주인 할머니와 수다를 떨곤 했었지. 난 대체 언제부터 여기서 잠을 잤던 걸까. 몸이 몹시 무거웠다. 너무 피곤해서 내일 출근할 일이 걱정되었다. 그냥 이대로 다시 잠들고 싶었다. 하지만 행여 아침잠 없는 옆집 할머니가 새벽에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를 본다면? 침입자로 생각해 그 무뚝뚝한 얼굴로 호되게 소리를 지를 게 뻔했다. 그런데 왜 208호 할머니는 아직도 집에 돌아오시지 않은 걸까?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딸이 사는 곳에 몇 일 가있을 거라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그 기간이 길어지나 보다. 아니면,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이 집으로 몰래 들어온 걸까? 하지만 이 생각마저 압도하는 것은 할머니가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시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다. 방은 할머니의 손을 타 몹시 깔끔했고 곰팡이 자국이 흘러내리는 한쪽 벽에 꽃나무들도 싱싱한 그대로였다. 다음 날 나는 여전히 무거운 몸으로 출근하고 있었다. 이미 회사 사람들은 점심 식사를 준비 중이었다. 대표가 사람들을 위해 음식을 많이 만들어왔다. 사람들은 식탁을 만들고 식기와 음식을 날랐다. 같이 작업하는 디자인팀들도 와서 작은 사무실이 복닥거렸다. 음식이 다 차려지고 배가 고픈 나는 서둘러 의자에 앉으려는데 다른 사람들이 일어선 채 그대로였다. 그때 벽 한쪽에 걸려 있던 텔레비전에서 소리가 났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이미 그쪽으로 시선이 향해 있었다. 화면에서는 아프리카 부족인 듯 보이는 사람들이 군무를 추고 있었다. 지금껏 본 부족민들의 춤은 질서는 있되 각자의 움직임이 자유로웠는데 화면 속에서는 똑같이 각을 잡고 움직이는 모습이 영 낯설었다. 사람들이 서서히 부족민들을 따라 추기 시작했다. 나 역시 따라 출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따라하는 게 어색했지만 이내 익숙해지고 나도 모르는 새 안무를 익혀 능숙하게 추고 있었다. 자꾸 늘어지던 몸이 가벼워지고 있었다. 모두들 춤에 취한 그때 회사문이 벌컥 열리더니 한 여자가 들어왔다. 전해줄 게 있다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무언가를 툭 던졌다. 그러고는 가엾은 표정을 지었다. 여자의 등뒤에는 작은 사내 아이가 있었다. 아들이라고 했다. 여자는 밥을 좀 먹고 가면 안되겠냐고 하였다. 그러면서 더욱 가엾은 표정을 짓는데 아이는 여전히 이런 생활에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작은 몸을 움츠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대표는 한발 앞으로 걸어나오더니, 그럴 수는 없다고 했다. 이 음식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 말에 여자는 갑자기 표정이 사납게 변하더니 사무실 주위를 계속해서 빙빙 돌았다. 모두가 그 말에 동의하는 건지 확인하고 싶은 듯 한 사람 한 사람을 노려보았다. 나는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여자는 갑자기 신경질적인 몸짓을 멈추고는 아이의 팔을 낚아채서 문 밖으로 나갔다. 그때 내가 몸을 날려 아이의 팔을 잡았다. 이 아이에게 먹을 것을 조금이라도 주고 싶다면서 음식을 입에 넣었다. 아이는 슬픈 표정으로 음식을 삼켰다. 그런 나를 여자는 흘겨보았다. 그리고 더 힘을 주어 아이를 잡아 데려갔다. 하지만 아이의 신발 한 짝이 없었다. 여자는 신발의 행방을 추궁하며 아이의 머리를 쥐어박기 시작했다. 끝나지 않을 듯 일정한 간격으로 주먹이 아이의 작은 머리를 쳤다. 그 행동이 반복될수록 모자가 서있는 자리가 조금씩 내려앉았다. 나는 땅밑으로 멀어져가는 그들을 향해 이것은 다 내 잘못이니 때리지 말라고 울며 애원하였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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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추석 고향에 내려갔을 때 어릴 적 살았던 아파트에 들렀다. 국민학교 입학할 즈음부터 살아서 6학년 2학기가 되기 전에 떠났으니까, 5년을 이곳에서 살았다. 4층짜리 건물이 세 개 동 있는 작은 단지였다. 외삼촌 명의로 된 집에 우리 가족이 월세를 내며 살던 곳, 어느 날 같은 반 친구가 ‘너희집은 스무 평도 안 되냐’라고 말해서 상처받았던 열일곱 평의 집, 다들 좌변기를 들일 때 아직은 화변식 변기라 오래 똥을 누고 있으면 다리가 저려 일어서기가 힘들었던, 한동안은 우리 네식구에 막내 이모까지 같이 살았던 그런 집이었다.
아직은 볕이 뜨거운 낮이었다. 그날 나는 캠코더를 들고 아파트 단지 구석구석을 찍었다. 놀이터에 쭈그리고 앉아 숨죽여 고양이를 찍고 있는 나를 두고 엄마와 남동생은 ‘쟤는 왜 저렇게 쓸데없는 고생을 하나’라고 한마디씩 했다.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자꾸 탄식이 나서 어느 곳이든 쉽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엄마가 소리칠 때까지 뛰놀았던 놀이터는 반으로 나뉘어 한쪽은 주차장으로 쓰이고, 나머지 반은 풀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 쓰지 않았을지 모를 시소에는 버린 의자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네의 줄들은 모두 끊어졌다. 이것들 사이를 고양이들만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파트 입구에는 재개발추진사무소가 있었고 그래서 이곳 자체의 발전은 더이상 도모하지 않는 듯했다. 내가 살 적에 부모님이 종이 한 장을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이 난다. 이곳이 재개발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이십 년이 더 지났지만 변한 것은 없다. 이제 이곳에는 주민들이 모일 만한 곳이 없다. 하물며 쉬고 떠들만한 벤치가 없다. 건물은 참 많이도 낡았다. 외벽의 낡은 아파트 이름에 새칠을 해주면 참 좋을 텐데, 그러지 않을 거라는 걸 아는 듯이 페인트칠은 조금씩 낡아가려고 애쓰는 듯했다. 아파트 이름이 얄궂게 보였다. 불현듯 찾아와 이렇게 낡고 황량해진 모습을 보니 당연한 건데도 탄식이 자꾸 났다. 당연한 건가. 하나의 공동체이기도 했던 아파트 단지들도 언젠가는 사라지는 걸까. 콘크리트의 수명이 다하면 사라지고 마는 걸까. 그럼 여긴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가을이면 무성하게 대추를 맺던 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가 아직 있었다. 어릴 적엔 참 크게 느껴지던 그 나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내가 자랐기 때문이겠지. 책으로만 보던 이런 뻔한 이야기를 직접 겪으니 생명과 시간에 대한 경이는 두 배가 되는 기분. 대추나무에 대추는 여전히 많이 열리고 있었다. 아파트 계단에 놓여 있던 작고 깨끗한 자전거와 더불어 가장 생기를 느낀 장면이었다. 

내 또래 중에는 작은 아파트 단지가 마음의 고향인 사람이 많지 않을까. 아버지가 어릴 적에 집 앞 실개천에서 친구들과 수영을 했다던 이야를 해주었듯이, 나는 2층 창문에서 아파트 단지가 울리게 나를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를 배경으로 모래 날리는 놀이터에서 공을 차던 나와 친구들 모습을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
우리는 세입자인데다 건설업에 종사하던 아버지가 돈을 꽤 벌어 도시의 끝 외곽에 집을 샀고 미련 없이 이곳을 떠났다. 집을 사겠다는 부모의 악착같은 욕심이 있었다. 하지만 집을 소유하던 사람들은 딱히 이곳을 떠날 이유가 없었을 것 같다.
재개발이 된다고도 했기에 그 기대도 컸을 것이다. 내가 알던 주민들이 아직 많이 살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정릉의 낡은 아파트를 방문했다. 무너지기 직전의 이 아파트에 아직 사는 사람들은 집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한때 재개발에 대한 기대로 버티다가 이제는 그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고 지금의 집값으로는 다른 곳으로 이사갈 수가 없는 형편이라고 한다. 내가 살던 아파트의 사정과 많이 닮아있었다. 아파트의 수명과 수명을 다해가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의 한때의 욕망과 지금의 사정들에 대한 관심이 머리 한쪽을 채우고 있는 요즘.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1.

연필이 지저분하게 꽂힌 상자 사이를 뒤져 커피 믹스를 하나 꺼낸다. 바닥에 흩어진 슬리퍼를 발로 찾아 신고는 엉덩이로 의자를 밀어 자리에서 일어선다. 오른손에 커피믹스를 쥐고, 왼손으로는 아까의 상자에서 가위를 꺼내 봉지 끝을 자른다. 바닥에 떨어지는 봉지를 슬쩍 보고는 컴퓨터 모니터 옆에 놓인 종이컵을 집어 정수기로 향한다. 사무실에 일렬로 늘어선 책상들 끝에 놓인 정수기를 향해, 오직 그것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슬리퍼 끄는 소리를 내며 걸어 간다. 정수기 앞에 도착하자 오른손에 쥔 커피믹스를 종이컵에 한번에 털어 넣고는 지저분한 휴지통으로 빈봉지를 구겨넣는다. 종이컵을 온수가 나오는 꼭지 아래 두고 오른손으로 온수 버튼을 누른다. 커피믹스가 갓 잠길 만큼만 담은 후 종이컵을 오른손으로 옮겨쥔다. 그리고 정수기에서 옆으로 두 발 정도 물러난다. 우선 허리를 살짝 구부린 후 팔꿈치를 수평으로 유지하고는 컵을 둥글게 그리고 빠르게 돌린다. 다섯 번 정도 돌린 후 컵을 좌우로 기울여 앙금이 없는지 확인한 후 처음 받은 온수의 양만큼 물을 더 받는다. 그리고 한 모금 마신 후 만족스런 표정으로 슬리퍼를 끌며 자리로 돌아가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인다. 엉덩이에 힘을 줘 의자를 당겨 책상에 배를 바짝 붙인 후 발에서 슬리퍼를 털어 낸다. 이제 집중해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다.


2.  

35도는 된다는 일본 소주를 쥐고 있던 컵에 3분의 1쯤 받아든다. 한모금을 들이키는데 목이 바로 삼키는 걸 거부해서 일단 입 안에 머금는다. 5초쯤 그러고 있다 한번에 삼킨다.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다른 한 손으로 화닥거리는 목을 부여잡고 이마에 주름을 짠뜩 잡는다. 얼굴에 혈액이 돌고 광대뼈가 위치한 피부는 불그스룸해지며 입은 자꾸만 처진다. 중력에 끌려 내려가는 입술을 그대로 내버려 둔다. 마치 화가난 듯한 표정이다. 사람들이 말을 걸지만 그저 눈동자만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할 뿐이다. 타이밍에 맞지 않는 웃음을 터뜨리고는 이내 입꼬리를 늘어 뜨린다. 괜찮냐고 물어보는 사람들, 허공에 자욱을 남길 정도로 느리고 묵직하게 고개를 돌리고는 위아래로 주억거린다.


 

3.

화면에는 전역을 출발한 지하철이 이번 역을 향해 떠듬 떠듬 움직이는 것을 확인한다. 발을 쭉쭉 뻗어 환승통로를 걷는다. 빽빽한 무리의 사람들 사이에서 틈을 찾아 운전하듯 차선을 갈아탄다. 오른쪽 어깨를 비틀어 빠르게 지나치기도 하고 속도를 냈다 줄였다 하며 최대한 타인의 몸에 닿지 않으며 걷는다. 왼쪽으로 코너를 돌자 계단이 보이고 무릎과 허벅지는 고정시킨 채 오직 발 만을 이용하여 빠르게 계단을 내려간다. 오른발이 계단 한 칸을 내려서는 것과 동시에 왼발이 받쳐주듯이 뒤따르는 식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왼발이 받쳐주어야 몸의 형태가 무너지지 않는다. 이때 손은 주머니를 뒤지며 동전의 수를 헤아린다. 계단을 내려서면 지하철을 타는 곳, 눈 앞에는 매점이 보이고 나는 그 매점의 냉장고로 직행해 층층이 쌓인 우유들 사이에서 커피우유를 골라낸다. 주인에게 동전 아홉 개를 건넨다. 빨대는 사양한다. 이미 지하철은 도착했고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있다. 내리는 사람과 타려는 사람들이 뒤엉킨 승강장에서 나는 우유를 뜯으며 사람들 사이를 유연하게 비집고 들어가 비어 있는 자리에 앉는다. 앉자마자 우유를 들이키기 시작한다.

 

 

4.

하루 내내 뭐에 눌린 듯 갑갑했던 명치가 저녁이 되자 일정한 박자로 꾹꾹 눌리기 시작했다. 그 고통은 이내 온 몸으로 퍼져 나가고 살갗이 아플 정도로 추워졌다. 팔과 다리는 무력하게 자꾸 아래로 늘어진다. 주변의 소음보다 심장 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생각들은 사라지고 몸의 고통에만 예민해진 뇌는 빠르게 팔과 다리를 움직여 화장실로 뛰게 한다. 화장실 문을 닫자마자 변기 뚜껑을 들어 올리고 오른손 검지를 그대로 목구멍에 넣는다. 시커먼 덩어리들이 툭툭 떨어진다. 재빠르게 왼손으로 물을 내리고 손가락을 목구멍에 더 깊숙히 넣는다. 몸을 거슬러 꾸덕꾸덕 올라 오는 음식물들. 남은 음식물들이 다 나오자 누런 색의 물들이 쏟아진다. 신맛 나는 이것들이 내 목을 태운다. 변기를 내려다보고 있자니 눈 앞이 흐려지고 눈을 감자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코 끝에는 콧물이 매달려 있다. 왜 몸 안에 들어 갔다 나오는 것들은 다 더러워지는가. 입 안에 고인 침을 뱉고는 물을 내렸다. 물을 타고 두어 번 휘감으며 사라지는 음식물들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5.
병원에 일렬로 늘어 선 의자들 가운데에 늙은 남자가 앉아있다. 오른손에는 지팡이를 꼭 쥐고 있고 연신 떨어대는 왼손은 옆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은 한에서 공중에 띄워 두고 있다. 혹은 방치하고 있다. 온 몸의 힘이 실린 지팡이가 순간 균형을 잃고 미끄려져 대리석 바닥에 고꾸라진다. 남자는 귀찮은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상반신을 한번 숙이고 그다음 조금 더 숙이고 마지막으로 한번 더 숙여서 지팡이를 손에 쥔다. 지팡이를 집고는 삼 초 정도 가만히 있더니 다시 한 번, 두 번, 세 번 만에 상반신을 세운다. 이마가 간지러운지 덜덜 떨리는 왼손을 팔꿈치의 힘으로 이마를 향해 들어 올리다가 거의 닿았을쯤 다시 팔을 떨어트린다. 못마땅한 얼굴을 지어보이더니 지팡이를 오른손으로 꽉 쥐고는 엉덩이에 힘을 주어 의자에서 들어올린 후 오른발을 한걸음 앞으로 옮긴다. 그리고 왼발을 끌어 오른발과 나란하게 이동시킨다. 지팡이가 대리석 바닥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꾹 눌러찧으며 그렇게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6.
내시경 앞에 앉아 있는 그의 뒷통수는 미세하게 계속해서 떨리고 있다. 이 떨림은 불규칙이고 무규칙적인 방향으로 정수리를 중심으로 반경 일이센치 이내에서 지속된다. 앞으로 굽은 어깨에 쭉 빠진 목. 그의 시선은 내시경 렌즈에 갇혀 있고 이 렌즈는 수술대 위의 뇌를 향해 있다. 그의 커다란 손은 1,2mm의 수술기구를 미세하게 움직이며 뇌의 깊숙한 곳으로 접근하는 중이다. 고요한 수술실에서 가장 분주한 것은 수술 모자를 쓴 그의 머리통. 그의 집중력이 높아질수록 머리는 점점 더 빠르게 떨리고 너무 빨라서 그것은 마치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다.


 

7.  
손바닥이 크고 손가락이 길다. 늙은 남자는 그 손으로 입을 가리고는 고개를 젖히며 웃는다. 소리 내 웃는다. 울림이 좋은 성대로 아하하하하하하 웃는다. 문자 그대로 아하하하하하하. 말하는 상대를 만족시키는 시원한 웃음. 손가락들 사이로 임플란트를 한 새하얀 이들이 빛나고 있다. 이내 손을 치우고 입을 벌린 채 마저 하하하하 웃는다. 파문이 인듯 볼과 눈에 주름이 퍼진다. 점점 웃음소리가 잦아 들고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으로 웃음을 마무리한다. 


 

8. 
지하철에 남자와 여자가 나란히 앉아있다. 남자는 오른손 검지에 붙여 놓은 밴드를 연신 만지작거린다. 살짝 떼어냈다 붙이고는 이번엔 상처가 보일 때까지 뜯어내더니 손가락으로 상처를 꾹 눌러 보고 다시 밴드를 붙인다. 여자가가 계속 말을 거는 와중에도 그는 밴드만 쳐다보며 떼어냈다 붙이기를 반복하더니 이제는 밴드 끄트머리의 때를 벗겨내고 있다. 여자가 대답을 원하는지 고개를 숙인 남자를 향해 고개를 더 숙여서 바라보면 그제야 남자는 여자를 쳐다보는데, 밴드를 계속 만지작 거리는 채로다. 그렇게 한 번 쳐다봐주고는 다시 고개를 떨군다.


 

9.
어린 나는 항상 나만의 아지트를 꿈꿨다. 혼자 살고 싶었고, 어떻게든 집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다 떠올렸던 것이 철로 만든 사각형의 집이다. 비가 와도 끄떡없고 원하면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나의 작은 집. 천장은 내 머리 크기 하나 정도 더 높고 너비는 누울 수 있을 정도면 된다. 그리고 삼단짜리 나무 진열대를 만들어서 내가 앉은 오른편에 둔다. 첫 칸에는 만화 위인전을, 짐이 많으면 안 되니 <퀴리부인>, <나이팅게일>, <세종대왕> 정도만 두도록 하자. 그리고 오십 번은 더 읽었을 <수지는 멋쟁이>와 <작은 아씨들>도 챙긴다. 두 번째 칸에는 조리하지 않아도 되는 먹을 거리를 둔다. 통조림이나 과자, 빵, 음료수 등이다. 과자를 먹으며 책을 읽는 것이 내 가장 큰 즐거움이다. 내가 앉은 왼편에는 아기 인형 재롱이와 곰인형, 개인형을 둔다. 그리고 그 위에는 적당한 크기로 창문을 만든다. 아빠의 장비를 빌려 철을 사각형으로 잘라내고 문구점에서 아크릴판을 사와 오초본드로 덮는다. 그럼 밖을 볼 수 있겠지. 필요하면 커튼을 달아 남에게 나를 보이지 않게 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중요한 건 머리 맡의 마이마이. 평소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노래들을 녹음해 둔 테입들을 들을 거다. 촛불도 잔뜩 챙겨야 한다. 어두워지면 불을 켜야 하니까. 가끔 비가 오면 천장을 보고 누워 빗물이 철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혼자 있을 공간이어야 하고 몸을 구기지만 않을 정도면 된다. 이 철통집을 들고 어디든지 돌아다니고 그리고 혼자 있으면 좋겠다.  

 

 

10.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는 지하철 환승 통로. 백발에 털코트를 단정하게 차려 입은 노인이 지나가는 남자를 붙잡는다. 키가 크고 바바리 코트를 입은 남자는 몸을 숙여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노인은 뭐라고 말을 하더니 울상이 된 표정을 짓는다. 남자가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넨다. 노인의 표정이 밝아진다. 남자는 인사를 하고 급하게 이동한다. 노인은 구부정한 허리로 조금 걷더니 발길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타는 곳으로 간다. 다른 노인들에 섞여 엘리베이터를 타 문 앞에 자리잡고는 B2, B1, 1, 2 숫자가 바뀌는 것을 뚫어지게 올려다 본다. 문이 열리자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눈 앞에 보이는 편의점을 향한다. 작은 편의점 안을 서성거리며 몇 바퀴를 돈다. 팥빵을 집어 든다. 직원에게 만 원을 준다. 구천원의 거스름돈을 받아 주머니에 돈을 넣고는 점원을 빤히 바라본다. 얼굴이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의 아가씨다. 노인은 자상하게 웃어 보인다. 밖으로 나와 버스 정류장을 찾는다. 담배를 피고 있는 젊은 남자에게 묻는다. “상일동이 어디오.” 남자는 지하철이 빠를 거라고 답한다. “난 버스를 타고 싶은데.” 남자는 모른다고 말한다. 그때 노인의 발 밑으로 비둘기가 다가와 부리로 바닥을 찧는다. 노인이 천천히 무릎을 접어 쪼그려 앉는다. 그리고 비둘기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러면서 바라 본 비둘기의 눈에는 눈꼽이 잔뜩 꼈다. 노인은 빵봉지에서 빵을 꺼내 잘게 찢는다. 손바닥에 얹자 비둘기가 다가와 먹는다. 그리고 노인의 무릎으로 팔뚝으로 그리고 어깨로 올라 자리를 잡는다. 노인이 휘청거리며 일어서려 한다. 하지만 현기증이 나는지 다리가 꺾이고 바닥에 넘어진다. 비둘기가 놀라 날아간다. 젊은 남자가 다가와 부축한다. 그때 눈 앞에 버스 한 대가 온다. 남자의 팔을 뿌리치고 노인은 절룩거리며 그 버스로 다가간다. “이 버스는 종점이 어디지?” 기사가 상일동이라고 답한다. 낑낑대며 버스에 올라선 노인이 좌석에 앉는다. 기사는 요금을 내라고 한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기사에게 다가가 천원을 준다. 버스에는 세 명의 승객이 있다. 나란히 앉은 둘과 이어폰을 낀 채로 노인을 주시하는 교복입은 여학생. 노인은 다시 좌석으로 향하고 막 출발한 버스에 내팽겨치듯이 자리에 앉는다. 노인이 중얼거린다. “내 친구가 상일동에 살아. 그 친구를 만나러 가는 거야.” 계속 중얼거리던 노인의 얼굴에 햇살과 졸음이 번지고 이내 고개를 떨군다. 더 이상 누구도 이 버스를 타지 않는다. 버스의 움직임에 맞춰 노인의 숙인 고개는 힘없이 출렁거린다. 그 앞에서 바라보던 비둘기가 노인의 머리를 찧는다. 노인이 서서히 고개를 들어 바라본다. 비둘기가 말한다. “자는 모양이 그게 뭔가. 나이값 좀 하게.” 비둘기는 콩 한 쪽을 노인의 무릎에 두고 간다. 햇빛 가득한 곳에 자리잡은 콩은 뿌리를 내려 노인의 무릎뼈에 단단히 자리를 잡고 서서히 자라기 시작한다. 버스 천장을 뚫고 하늘을 향해 높이 높이 자란다. 버스 기사는 차를 세우고 콩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 뒷자리에 앉아있던 커플도 손을 잡고 콩나무를 탄다. 교복 입은 학생이 이어폰을 귀에서 빼고 가방을 벗고 뒤따라 오른다. 노인이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대체 상일동에는 언제 도착하는 건가!” 비둘기가 콩나무를 타고 내려온다. 비둘기의 눈썹이 새하얗다. 노인은 눈꼽 낀 비둘기의 눈을 오래도록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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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순간들

일상 2015.12.02 23:41


옛날 사진들을 찾아보게 된다. 담긴 이야기는 올리지 못하는 사진들에 더 많지만 그리고 잊을 수도 없는 순간이지만, 이렇게 올리게 되는 사진들은 잊고 있던 촬영의 그 순간을 환기시키고 사진 그 자체로 새로운 기분을 불러 일으킨다. 내가 관심있고 좋아하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더 각별하다. 아직은 더 많이 찍고 찍은 것을 더 자주 볼 때이다. 

 

2013년 상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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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들 기억들

일상 2015.11.30 00:31

2014년 4월 19일부터 2015년 2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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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뜰

일상 2015.08.19 23:30

 

엄마가 휴대폰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어쩜 참 좋다. 

 

 

 

 

 

 

 

처음 사진은 외할아버지.

외할아버지의 고향 범뜰은 물에 잠겼다. 엄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댐을 만드느라고 그곳에 살던 모든 주민들이 이주를 했다. 그 자리에 지금의 성주호가 생겼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풍경도 이름도 참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범뜰이라는 지명은 검색되지 않는다. 하지만 외가 사람들은 다들 그렇게 부른다. 실제 명칭인 봉두리에서 나온 것 같다.) 물에 잠기기 전, 내 나이로 열 살이 되기 전까지는 범뜰에 자주 갔다. 사촌들과 온동네를 뛰어다니며 놀았다. 막내 이모부가 우리 노는 모습을 사진으로 자주 찍어주던 기억이 난다. 내가 걷고 뛰고 잠자기도 했던 곳이 지금은 물 속으로 사라졌다는 것은 가만히 생각할수록 신기하다. 그곳에서의 기억은 갖고 있지만 그 기억은 죽음으로 이어진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생에서의 기억들이 아니라 마치 전생의 기억처럼, 전생을 기억한다는 것은 죽음으로 단절된 것이라 아니라 죽음으로 이어진 거니까. 

집집마다 우물이 있었다. 초가집들이었다. 나는 외가의 작은 마루에 모로 누워선 먼 풍경을 오래 바라보기도 했다. 동네에 소가 참 많았는데 그 소들은 다 데리고 나왔을까. 나무 한포기도 다 돈으로 매겨 보상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엄마로부터 들었다. 나는 저 첫 사진이 물에 잠긴 범뜰에서 찍은 거라 착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범뜰 외가댁으로 가는 길과 몹시 닮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닌 것도 알겠다. 처음 사진을 보았을 땐 순간 범뜰이 물에 잠긴 것도, 그게 이십 년도 더 된 일이란 것도 잊었던 거다.

어느 날 수확이 끝난 논에서 사촌들과 뛰어 놀다 해가 질무렵 외가로 돌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뭔지 모를 요란한 소리와 함께 송아지 한마리가 우리에게 정확히는 내 쪽으로 달려들었다. 나는 그대로 주저 앉았고 그런 나를 송아지가 뛰어 넘었는지 옆으로 피했는지, 원치 않게 나를 만났는지 결국엔 나를 피하기로 작정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 순간이 지나고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닫고서야 난 펑펑 울기 시작했다. 그 송아지를 뒤쫓던 외할머니가 다가와서 아이고 괜찮냐 아이고 아이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 길이 그 길이다. 내가 순간 착각했던 길. 물에 잠긴 길. 

사진들은 외가가 이주한 집에서 찍은 것들이다. 외할아버지는 여든이 넘어서도 산에서 나무를 해오고 장작을 패고 사슴과 소를 길렀다. 농사 지을 땅은 마땅찮아서 그만두셨다. 어느 날은 사슴이 들이받아 갈비뼈가 부러지셨는데도 일을 하러 나가겠다고 그러셨단다. 사슴이 밉기도 할텐데 두 마리가 서로 뽀뽀하면 와서 보라고 저것들 참 이쁘다고 그러셨다. 이것도 몇 년 전의 일이고 이제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이주한 집도 팔고 도시의 빌라에서 사신다. 세월이 많이 지났다. 점점 잊혀지던 물 속에 잠긴 마을이 다시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잊고 지내던 것들이 새삼 떠오르면 왠지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7, 8월 메모

일상 2015.08.16 15:00

1.

<인사이드 아웃>

슬픔이 없는, 오직 기쁨만으로 순수한 기억을 갖고 싶다. 난 되려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는 슬픔 없이 떠올릴 수 없는 내 모든 기억들이 슬펐다.

기쁨이 캐릭터가 참 좋았다. 라일리를 위하듯 그렇게 내가 행복하기를 진심을 다해 노력해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모든 사람들에게 그런 기쁨이란 존재가 있었을 거라는 상상에, 삶이 끔찍해져버린 숱한 사람들을 떠올리며 더욱 슬퍼졌다.

 

 

2.

<잡식가족의 딜레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다. 과하게 느껴질 법한 순간마다 결코 그 과함의 경계를 넘지 않는 연출의 노련함에 감동했다. 고기와 살아있는 돼지가 붙는 몽타쥬는 맥락을 아무리 다듬어도 과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잡식동물 인간의 마음일 것이다. 불편은 하되 그 불편의 정도를 미세하게 조정하면서 원하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다큐. 오로지 먹기 위해 가축을 가혹하게 사육시키는 문제에 대한 충격은 이미 예전에 받고 이내 잊었는데, 이번엔 차분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그나저나 감독은 마지막의 두 컷(돼지고기와 살아있는 돼지)을 이어붙이는 데 용기와 결단이 필요했을까? 

 

감독의 “돼지가 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이후에 이어지는 일들이 이 다큐의 중심 이야기이지만 역시나 내 관심은 저 말에 더 오래 머문다. 저 마음을 강하게 와닿게 하는 디테일을 더 보고 싶다.  

 

 

3. 옮긴 것들.

나는 세계가 영화에 의해 구원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 나에게 있어 영화는 세상이고 나의 여행이다. 나는 나를 경탄케 할 수 있는 작은 이상향을 발견하고자 노력하며 영화와 함께 그 여행을 생각한다. _테오 앙겔로풀로스

 

‘소멸되어 사라지는 것보다 시간 앞에 옅어져 가는 삶’이 펼쳐진 우리의 공간에 관한 작업을 해 나갈 예정이다. _<재>를 만든 오민욱 감독 소개 중에서

 

 

4.

아버지가 말했다. “너는 산전수전 다 겪어봤으니 내 심정을 더 잘 이해하지 않겠나.”

그 순간 내가 놀라웠던 것은 갑자기 이해가 되어서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도 아닌 내가 산전수전을 다 겪어봤다고, 사실 여부를 떠나 딸에 대한 당신 나름의 이해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메모

일상 2015.08.13 18:00

 

신기주: 모든 젊은 세대가 과거 세대의 잘못에 반기를 드는 건 아닙니다. 2000년 12월 월간 『말』에 기고한 글에서 보니까, 젊은 교수 한 분이 등장하더군요. 교수님께서 진중권 교수의 용어를 빌려서 비유한 마이크로 파시즘을 행한 직접적인 당사자였죠. 그 젊은 교수는 이명원을 탄압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지적 신념을 지키는 것처럼 굴었어요.

 

이명원: 그래서 진실에 대해선 단순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그렇게 복잡하게 계산하면 자기 자신부터가 왜곡되니까요. 대학에서 학생들한테 리포트를 써오라고 하면 가끔 어딘가에서 베껴서 제출해요. 그 젊은 교수는 학부 1학년생의 리포트 표절은 문제 삼으면서 학계 전체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에 대해선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는 태도였죠. 오히려 학부 1학년생과 달리 문학계를 상징하는 사람의 표절에는 가중치가 붙어야 하는데도 말입니다.

 

“이명원 인터뷰: 신경숙 표절과 문학권력”에서, <인물과 사상> 208호

 

내가 복잡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이건 충분히 알고 있던 것이고 이제는 그런 생각의 습관에서 좀 벗어나보려 노력해야 하지 않나 싶다. 사실 나는 이것이 내 미덕이라고 생각해왔다. 언제나 늘 기준, 어떤 지점을 바라볼 것이냐 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자주 판단을 유보하고 복잡한 상태로 두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해야 할 일들도 있을 것이다. 그걸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새로운 문제겠지만.) 하지만 적어도 내가 가까이에서 ‘겪었던’ 사태들에 관해선 진실이 무언지 충분히 잘 알고 있다고 믿는다. 후에 느꼈던 절망감이 이를 증명하는 것 같다. 이 절망감과 마주해야 한다. 바라보는 것을 넘어 내가 문제 제기를 할 수도 있어야겠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헌정

일상 2015.06.15 00:53


최근 수업에서 들은 ‘헌정의 글쓰기’가 자주 생각난다. 선생님은 앞으로 그런 글쓰기를 해보고 싶고, 그것이야말로 글쓰기의 원천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변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신문을 읽다 시인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의 생일마다 생일시를 쓰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마지막에 나오는 시인의 말이 관련해서 생각해 보게 한다.


“이런 글쓰기는 처음 해보는 거라 놀라웠어요. ‘나’를 생각하지 않고, 자의식으로 언어를 고르지도 않고, 오로지 ‘대상’을 생각하고, 이 마음이 읽는 이에게 잘 전달될까를 고민하는 글쓰기요.” (박연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요즘

일상 2015.06.10 00:14



1.
지난 한 해의 경험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면 성추행사건 해결을 위한 대책위에 참여한 것이다. 고민했던 것을 남기고 솔직한 심정을 글로 정리해보고도 싶다. 되지 않는다. 시도조차, 시도하고자 하는 마음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다시 마음이 조급해지는 건 경험의 이전과 별반 달라진 게 없는 채로 성폭력 문제들과 다시 대면하게 되면 어쩌나 싶은 걱정 때문이다. 나는 내 변화가 새로운 각성과 다짐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느꼈던 무수한 회의와 혼란까지 포함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더 정리가 되지 않는 것 같다.


2. 
책의 어느 구절을 읽다가 엄마의 일기장이 생각나서 오랜만에 꺼내보았다. 서울에 지내는 동안 쓴 일기들이다. 그걸 두고 간 것도 잊어버리고 신경쓰지 않는 게 내 엄마. 일기는 온통 화, 우울, 슬픔으로 가득했다. 그래서 한 번 읽고 다시 꺼내 읽지 않았다. 다시 읽으며 새삼 마음이 먹먹해지는데 많지 않은 일기들에서 “윤미 좋아하는 과일, 고구마를 사러 시장에 가야겠다.”가 두 번이나 나와 혼자 웃었다. 나는 과일이 정말 좋다. 할머니가 되었을 때 과일 장사를 하고 있으면 좋겠다. 그럴 형편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엄마는 늘 과일을 넉넉하게 챙겨주었다. 어릴 적엔 대문밖엘 나서기 직전까지 입에 과일을 물고 있었다. 내가 엄마에 관한 다큐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건 참 뻔한 말이지만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언제나 늘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만들다 보니 내 욕심까지 투명하게 드러나 버려서 좀 쑥스러웠다. 나와 엄마 사이의 지나치게 가깝지 않은 거리가 우리의 연대를 더 강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3.
아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을 때가 있다. 최근 들어 그렇게 되었다. 이유 없는 증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들자 언제고 이 화를 꼭 풀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4.
어제 수박을 많이 먹고 자서 새벽에 두어 번 깼다. 가장 마지막에 깬 것은 새벽 다섯 시경이었는데 다시 이불 위에 누우니 창문 너머로 하늘이 파랗게 변하는 것이 보였다. 반수면 상태로 오래도록 쳐다보았다. 불어온 바람이 얼굴에 닿았다. 살짝 더 깨어난 정신으로 새소리를 들었다. 기분이 좋았다. 이런 종류의 기쁨은 여행 내내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배낭여행을 가고 싶다는 생각을 부쩍 자주한다. 더 오래오래 떠나 있고 싶다. 거기에 머무르고 싶다.  


5.
롤랑 바르트 수업에서 선생님이 “생은 아이들 같은 것, 화초 같은 것”이라고 하셨다. 자주 살피고 꾸준히 물을 공급하는 것. 아직은 아이들과 화초의 긍정적인 면만 보고 싶다.


6.
욕망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 것만으로도 구질구질해서 그동안 들여다 보기도 싫었던 내 욕망들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게 되는 걸까. 생각 이상으로 이 수업이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위하여

일상 2015.05.15 19:46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에서. 



머릿속을 환하게 하는 말들. 근래 만난 그 어떤 문구들보다 좋았다. 그리고 내가 아직까지 이런 말에 설렐 수 있다는 것이 기쁘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매일 아침 병원에서 그저 세상을 관찰하던 소년 볼탕스키는 어느 날, 대로를 지나는 사람들을 세기 시작했다. 한 명, 두 명, 세 명, 그러다 600만 명이 됐을 때 그는 중얼거린다. “모두 죽었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죽은 사람이 600만명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이해하려 했다. 그는 아티스트가 된 후, 전쟁 속 죽음을 넘어 보편적인 죽음이라는 근원으로 들어갔고, 거대한 집단학살이 반복되는 인간의 역사를 꿰둟어 보고자 탐구했다.

 

-“세상엔 선명한 진실이 별로 없잖아요. 또 그래야 이 사람 저 사람 다 자기를 투영해 볼 수 있고요. 예술은 정교하지 않을 때 포용력이 커지고, 보는 이들이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져갈 수 있어요. 너무 꽉 차고 선명하면 관객이 마음 붙일 데가 없어집니다.”

 

-“우리 인간들은 매우 착한 일을 할 수도 있고, 아주 악한 일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권력이 생기면 두려움이 없어져요. 예전에 파리는 ‘유대인은 반려동물을 키우지 못한다’는 고약한 법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우리집 고양이가 이웃 아주머니댁에 오줌을 싼 거예요. 정말 좋은 이웃이었는데, 그날 저녁 찾아왔더라고요. 오늘 밤 안에 당장 고양이를 죽이지 않으면 경찰에 고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날 우리 고양이는 죽었어요. 이는 권한을 갖게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네 살, 다섯 살 그때일 거예요. 사람들은 모두 위험할 수 있다는 말을 무수히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무서웠죠. 그래서 생각했어요. ‘그 사람들이 나쁜 사람일까? 왜 그랬을까?’ 그때부터 이해하려고 노력한 거죠. 분명히 그들은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라면 어떨까요? 권한을 갖게 된다면 나 또한 어린아이를 죽일 수 있는 거죠. 멀쩡한 이웃이 고발하는 것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과연 우리 안에 있는 착한 모습과 악한 모습을 조정하는 권력이 무엇인지 그걸 주시하게 됐습니다. 사람이 원인이 아니에요. 우리 내면의 단추를 누르는 자가 종교인인지, 정치인지, 기업인인지, 언론인지 그걸 살펴야 합니다.”

 

 

(프랑스 현대미술가 크리스티앙 볼탕스키 인터뷰, 경향신문)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나를 포함한 다섯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푸르게 무성한 잔디를 가진 어느 공원이었다

다들 기쁘게 걸어가고 있다고 느꼈는데

갑자기 두 사람이 멈추더니 그중 남자가 손에서 무언가를 던졌다 빛이었다

두 사람은 재빠르게 뒤를 돌아 왔던 길로 뛰어갔다

빛을 본 우리는 경악하며 달리기 시작했다

작고 동그란 빛은 계속 우리를 따라왔다

우리는 사람이 많은 곳에 다다랐다

그 빛을 피하기 위해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고

도망을 쳤다 하지만 멀리 가진 못했다

막다른 길도 아니었는데

우린 고립되었다

교복을 입은 소녀가 그 빛을 손에 쥐었다

모두들 얼어붙었다

소녀는 달려 숲으로 사라졌다

모두들 울며 그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죽은 소녀가 숲을 나왔다

하지만 나 이외의 죽음을 막진 못했다고

빛을 쥐고 도망친 곳에서 또 사람을 보았다고

그들과 함께 죽을 수밖에 없었다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다같이 또 울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어긋나 버렸다.

일상 2015.03.14 21:45


엄마는 어제 점을 봤다며 신나는 목소리로 전화했다. 물론 나에 대한 것은 이번에도 특별하달 게 없어서 그런 거 믿지 않는다며 지속적으로 대꾸하면서도 늘 “또 뭐 물어봤어? 또 뭐? 이건 어떻대?” 하고 묻게 된다. 그러다 아빠 이야기가 나왔다. 점쟁이는 엄마와 아빠의 궁합이 좋다고 했단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난, 그 점쟁이 못 믿겠네, 라고 답했고, 엄마 역시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했다면서, 그런데 그거 빼곤 기막히게 다 맞혔다니까, 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는데 갑자기 최근 본 클레르 드니의 영화 <돌이킬 수 없는>이 생각났다. 영화에서 “어긋나 버렸다.”는 말이 두 번 나온다. 어긋나 버려서 일이 그렇게 되었다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게 무너진 한 여자가 그 얘길하며 흐느껴 운다. 내용과 상관없이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일에 대한 원인으로 이 말만큼 강력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게, 어긋나 버린 게 아닐까. 궁합으로도 어쩔 수 없는 한순간의 어긋남 때문에 어느 부부는 돌이킬 수 없이 하지만 헤어지지는 못한 채 서로를 무시하며 살아진 게 아닐까. 그 어긋남이라는 게 따지자면 구체적인 사건일 수 있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고 거기에 그 무언가들이 들러붙어 벌어진 일처럼 느껴진다. 운명이 될 만큼은 강력하지 못한 어떤 것들이 항시 노려보고 있다가 때를 노려 악착같이 발에 매달리는 느낌. 그래서 벌어진 일들, 형성된 삶들. 하지만 그것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지는 않다. 좋은 궁함-어긋남이라는 상관관계를 두고 생각하다 보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걸 자꾸 상상하게 되어서 오래 할 생각은 못 된다는 걸 금세 깨닫는다. 점쟁이 말로 아빠는 훌륭한 기술자고 능력도 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내가 그의 노동을 굉장히 존중하고 있다는 건 가끔 느낀다.) 하지만 뭔가에 눌려서 그걸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고, 그래서 엄마가 자꾸 잘한다, 잘한다고 칭찬해줘야 한다고 했다. 그 말이 너무 슬펐는데, 남은 생에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거란 예감과, 실은 내가 굳이 그러길 바라지 않는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다.  



왜인지 요즘은 가족을 자주 이야기하고, 자주 생각하게 된다. 가족 개개인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관계나 관계 맺음 자체가 낯설어진다. 물리적으로 가족과 멀어진 지는 10년이 다 돼 가는데, 이제야 가족과의 거리두기가 가능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죽음

일상 2015.03.09 02:38


꽤 넓은 공터였다. 그곳에 한복을 입은 이모들이 소리내어 울고 있었다. 사람이 서럽게 운다는 것의 느낌은 그때 형성된 것 같다. 공터의 끝엔 초가집이 있었고 그 주위로 꽤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다. 집안의 아이들은 멀찍이 떨어져 놀고 있었다. 난 모래바닥에 이것저것 낙서를 하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사촌동생이 저기 무얼한다고 해서 고개를 들었을 때, 형형색색의 화려하고 큰 무엇을 사람들이 하늘로 띄우고 있었다. 올라가는 그걸 보고 엄마와 이모들은 다시 크게 울었다. 엄마는 손으로 허벅지를 치면서 울었다. 사람이 죽어서 하늘로 간다는 말은 저걸 말하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기억하는 작은 외삼촌의 장례식은 그랬다.

어쩌다 작은 외삼촌 이야기가 나오면 외할머니는 아직도 우신단다.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다 돼간다. 작은 외삼촌이 죽고 나서 외할머니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는 말은 어린 마음에 큰 충격으로 남았다. 외할아버지는 귀가 어두운 외할머니가 주방으로 가 있을 때만 작은 외삼촌 얘길 하신다. 니들 애미 죽으면 기원이 묘를 둘이 같이 있게 옮겨주고 싶다. 이번 설에는 그런 얘길 처음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상경하는 걸 반대하셨고, 막지 못한 걸 두고두고 후회하셨다. 그러지 않으신지는 몇 년 되지 않았다. 서울에 자취하는 니 외삼촌들을 보러 갔는데 기원이가 맨밥에 계란후라이 하나만 얹어 먹고 있더라. 그렇게 먹고 지낸 게 병이 된 것 같다고, 명절에 찾을 때마다 그 얘길 꺼내셨다. 그 얘길 꺼내지 않으신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귀여운 얼굴의 외할머니가 약간 굽은 허리로 종종 걸어와 앉는다. 그러면 외할아버지는 외할머니 손재주 좋다는 칭찬을 시작한다. 어디서 배우지도 않았는데 옷 한 벌을 뚝딱 만들었다고. 흰 비단 한복보다 하얀 외할머니의 머리칼. 그래서 난 온통 새하얀 머리칼만 보면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를 떠올리게 된다. 혼자 밥에 계란후라이를 얹어 먹고 있으면 괜히 죽은 외삼촌을 생각하게 된다. 그후로는 본 적 없는, 그때 서럽게 울던 엄마의 얼굴이 겹쳐진다. 가끔 내가 일찍 죽는 상상을 하는데, 엄마가 얼마나 슬플까를 생각하면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 상상만으로도 그렇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산 자가 죽은 자 때문에 슬픈 것보다 산 자를 향한 죽은 자의 슬픔이 더 크지 않을까, 그런 짐작도 해보게 된다. 어쨌거나 작은 외삼촌이 외할머니의 곁에 있게 된다면 좋아하지 않을까, 괜히 그런 확신은 든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물뿌리

일상 2015.01.26 00:30


꿈에

푸르고 맑은 파도들을 보았다.

느리게 솟아 올랐다 보다 느리게 가라앉는 파도들의 행렬을.
그 푸르고 맑은 파도 하나에 내 친구가 묻혀 있었다.
눈을 감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아주 먼 곳에서부터 오랜 시간 그러고 온 것처럼.
높이 솟아 올랐다 천천히 내려오는 친구를 바라보는 사이

귀가 열리고 파도 소리가 들리고 바람이 불고 발가락들이 젖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가 친구를 건져 바다 위로 날아 올랐다. 

손가락들이 젖었다.
발밑에서 물과 나비가 반짝거렸다.

울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면을 보았다.

친구는 우리가 물뿌리라는 일본의 한 해변에서부터 날기 시작한 거라고 알려줬다. 
조금 더 바다의 중심으로, 계속해서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