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토요일 윤성호 감독의 회고전엘 갔다. 올빼미 영화제라 밤새 이어지는 영화 상영에 눈이 뻑뻑해질뻔도 했지만 영화의 시선과 눈싸움을 하느라 온전한 정신력으로 밤을 샐 수 있었다. 윤성호 감독의 영화들, 특히 이전의 단편영화들, 삼천포 가는 길,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 산만한 제국,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 등 7편의 영화들에서는
은하해방전선 이상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윤성호 감독의 초기 단편들을 보면서 나는 운동을 생각했다. 영화 중 종종 운동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 말은 내게 박혀 제 멋대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나는 운동하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 사회에서는 운동이라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래서 말을 입밖에 꺼내는 순간 사람들의 오해 섞인 편견에 갇히게 된다. 단어 하나가 사람들 생각의 부화를 중지시키고, 톡 하고 깨면 흘러나오는 그 의미만을 받아 먹게 만드니까. 좀 답답하다 싶어도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자꾸 운동이라는 말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겠다. 단어를 되뇌일수록 의미를 알기 보다 더 억압받는 기분이다.  감독의 말대로 이름은 지하 납골당 이름은 뇌의 뚜껑.

어쨌든 난 이념을 말할 때 사용하는 운동을 말하는 건 아니다. 언어의 틀 속에 가둬진 운동을 넘어서는 운동. 운동은 곧 삶이니까. 삶은 운동이고 그건 곧 힘의 작용. 나는 힘들이 촘촘이 맺어진 하나의 무엇.
키보드를 두드리는 내 손 까딱, 어디선가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한데 그래 운동하는 지구, 그리고 너와 나의 수다, 너와 나의 사랑까지. 그래서 삶은 곧 운동이다. 매 순간 새로운 에너지를 흡수하고 내뱉으며 우리는 소통한다.


그의 운동에는 목적이 없어 보인다. 끊임없이 곁가지를 뻗어 나가는. 가령, 좌파인가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아 이념을 넘어서는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싶어서 그 기준으로 영화를 들여다보려 하면 또 그것마저도 넘어서는 것 같은. 어느새 저만큼 달아나 버린다. 그게 앞서 나간다는 이야기라기 보다 무규칙 전방위적인 움직임이랄까.
그의 움직임이 좋다. 그의 운동방식이 좋다. 그의 산만한 운동이. 그 산만함은 자유로워보인다.
아. 나도 저렇게 운동하고 싶다.


내 목소리를 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세상이 좀 달라져야 하지는 않을까도 싶다. 그런데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고 좀 다르게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일단 나는 다르게 살 수 있어야 한다. 다르게 운동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난 윤성호 감독의 단편 영화들을 보면서 '방식'을 만드는데 있어서의 가치관을 탐내고, 해독하기도 힘든 내용들을 알아보려고 영화 속 대사와 텍스트를 기록하고 곱씹어 본다. 그가 운동하면서 희미하게 드러내는 궤적에서 나와 겹치는 것이 있을 때 불안한 위안을 느낀다. 그 과정 자체가 곧 나를 키우는 운동이니까. 즐거우니까.  


나는 영화가 힘이라고 믿는다. 나를 구성하고 있는 힘들은 그의 영화를 보면서 느슨해지고 물러지면서 제멋대로 주물러진다. 영화의 힘이 같이 섞이면서 나는 조금 혹은 아주 다른 사람으로 다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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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



ps. 나는 내가 의천검을 쥐고 있다고 착각하는 걸까요 하지만 내가 살아갈 힘은 이건데요, 그래서 난 마치 내가 의천검을 쥔 것처럼 모든 기존의 윤리를 거부하고 내 생각이 비상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저항하면서  '저항으로 패션을 삼지 말고 패션으로 저항하면서'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