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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기, 오만,

여행 2018.07.10 11:25

  가고 싶은 곳이 있었다. 이제는 이름이 잘 기억나지 않는, 아마 국제 바자르 비슷한 이름이었는데, 가이드북에 위구르족의 생활과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시장이라고 했다. 그래서 가고 싶었다. 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첫날에는 가이드북에 적힌 대로 버스를 탔는데 알고 보니 반대 방향이었다. 그냥 포기하고 종점까지 가서는 좀 걷다가 돌아왔다. 부채를 좌우로 아주 천천히 부치던 한 여자만 기억에 남아 있다. 다음 날에는 제대로 버스를 탔는데도 헤맸다. 지도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부지런히 움직였는데도 원하는 곳에 가닿질 않았다. 더위에 체력은 금방 바닥났다. 땀을 내는 게 아닌 몸을 바짝 말려버리는 더위였다. 6월의 우루무치가 그랬다. 나는 화가 난 사람처럼 입을 꾹 다물고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길을 묻지 않았다. 중국어를 모르기도 했고 더위에 기운을 빼고 싶지도 않았는데 어쨌거나 오기를 부리는 거였다. 정말 화가 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상하게 나는 중국에서 자꾸 중국이 아닌 것을 찾고 있었으니까. 중국 표준시로는 밤 열 시가 다 되도록 해가 지지 않는 이 땅에서 진짜, 아니 이 표현보다는 자연스러운, 시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온통 한족뿐이었다. 당연했다, 중국 땅이니까. 그럼에도 신장위구르 자치구 시내 어디에서도 위구르인 한 명 보기 힘들다는 사실에 의아했다. 놀랍게도 나는 떠나기 전 날까지 헤맸고 결국 허겁지겁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에게 중국어로 하나부터 열까지 셀 수 있다며 오기를 부린 기억이 남아있다. 찾던 바자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은 후였다. 상상했던 곳은 아니었다. 관광객들을 위한 쇼핑몰에 가까웠으니까. 근처의 큰 마트에 들어가 에어컨만 실컷 쑀다. 그리고 아이스크림 하나를 물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다시 숙소로 돌아가려면 어느 방향에서 버스를 타야 할까, 만일 택시를 타면 어디로 가자고 해야 하나, 낯선 곳에서 조금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자 나는 그런 생각을 떨치고 싶어 그냥 낯선 방향으로 걸어버리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을 막 다 먹은 즈음이었던가 몸통에 회칠을 한 나무가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마법처럼 다른 세계에 들어선 듯 거리에 위구르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리에, 벤치에, 주택가에, 나와는 완전히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었다. 도시의 변두리였다. 더위가 좀 꺾이는 해 질 녘, 피부를 식히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그 밑으로 낯선 언어의 말들이 낮게 깔렸다. 조용하고 묵직한 활기가 내 발을 이끌었다. 사람들이 모인 벤치에 가 앉았다. 이상하게 배밑에서부터 조금씩 안도감이 차올랐다. 

우루무치 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본 건 무장한 군인들이다. 그때 내가 공포스러웠던 건 일어날지도 모를 위구르족의 테러보다 눈앞의 총을 든 군인들과 장갑차였다. 감시와 억압이라는 말을 조금은 실감했다. 겨우 여행자일 뿐이었는데도, 아니 여행자이기에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루무치에서 삼일을 머물고 기차로 열두 시간을 달려 도착한 카슈카르에서 나처럼 계속 서쪽으로 이동 중인 한 한국인을 만났다. 그도 우루무치에서 위구르인을 만나고 싶었고 그래서 그들이 사는 구역에서 묵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그는 공무원 학원을 많이 보았는데, 그게 좀 씁쓸했다고. “어쨌든 중국 사회 안에서 안정적으로 살고자 애쓰는 청년들이 많다는 거 아니겠어요. 부모도 자식이 안전하게 편입되길 바랄 거고.”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자 하는 건 당연한 마음일 텐데, 어쩐지 나는 그 애쓴다는 말이 오래 맴돌았다. 나로서는 가늠하기도, 판단하기도 어려운 문제들이 그 땅에 있다. 문제가 단순한 것 같지는 않다. 샤허에서 란저우로 가던 버스에서 티벳 청년을 만났을 때 나는 반가운 마음에 질문을 쏟아냈다. 중국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앞으로 티벳은 어떻게 될 것 같으냐... 내 호들갑에 그는 조금 시큰둥하게 답했다. 지킬 것은 나이 든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고. 

글을 쓰는 지금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티벳 자치구에 점점 더 많은 한족들이 몰려들고 더 높은 건물들이 지어지고 어떤 종류의 편리함들이 늘어갈 것이다.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 하고 딱지 붙일 수는 없는 변화들이 그곳에서 복잡다단하게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내가 느꼈던 감시와 억압이 여전히 그곳에 있다. 반발할 수도 없게 만드는 무서운 기운이. 얼마 전 신장 위구르를 검색하다가 중국 정부가 그 지역에 새 모양의 드론을 띄워 위구르족의 분리투쟁운동을 더 치밀히 감시하게 됐다는 기사를 보았다. 그 기사를 보고 상기된 몇 년 전의 중국 여행, 중국 아닌 것을 더 찾았던 당시의 오기와 고작 여행자일 뿐인 나의 오만, 그럼에도 이런 기사를 볼 때마다 배 밑에서부터 묵직이 떠오르는 화는 여전히 떨쳐지지가 않는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20180707

일상 2018.07.07 22:19

길냥이들을 보면 가엾다. 몰골이 지저분하거나 마른 몸으로 쓰레기봉투에 머리를 파묻고 있는 고양이를 보면 특히 그렇다. 며칠 전에는 너무 늙어 수염도 몇 가닥 남지 않고 살짝 벌어진 입 사이로 계속 침이 흐르는 고양이를 보았는데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아서 마음만 너무 아팠다. 불쌍했다. 그러고보면 나는 언제부턴가 사람에게는 불쌍하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쓰지 않으려 주의한다. 누군가에게 동정이나 또 연민마저도 갖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건 내 오래된 윤리적인 고민이 지금의 태도로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이 생각은 이렇게 이어진다. 그래서인지 고양이에게 느끼는 무한한 연민과 동정에서 나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끼고 있다고. 그런 대상이, 생명체가 생겼다. 한없이 불쌍해하고 마음 아파하는데서 느끼는 이 이상한 자유는 뭘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