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8건

  1. 2011.12.31 어제오늘내일
  2. 2011.12.18 평안
  3. 2011.10.28 부모자식 1
  4. 2011.10.22 원하면, 1
  5. 2011.10.15 보편. 2
  6. 2011.09.05 2
  7. 2011.08.08 BOMBA ESTEREO
  8. 2011.08.04 지구별미소공포
  9. 2011.07.25 얼마나 사랑하면 그럴까. 2
  10. 2011.06.12 왜냐하면, 난 춤을 추고 있었으니까. 6

어제오늘내일

일상 2011. 12. 31. 21:01

 
스물 아홉을 앞두고서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게 없다,는 생각이 불현듯 찾아온 건
그냥 오늘이라서 하필 오늘이니까 농담처럼 스쳐가는 생각이겠지.
어쨌거나 변명 말고 핑계 없이

당당하고 꿋꿋하게.



잠시 엎드려 자고 일어나 쿵쿵대는 심장소리 한참 듣고 나면 꽤 많은 것들이 나아져 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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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

일상 2011. 12. 18. 22:31


길상사엘 갔다. 극락전 법당엘 올라 부처님한테 절 세 번을 하고, 문간을 넘어 법정 스님 초상화 앞에 가 앉았다. 무릎을 꿇고 왼발은 오른 발 위에 나직이 포개고 무릎 위에 두 손 반듯이 얹고는 스님 한 번 올려다 보았다.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스님, 마음이 평안하게 해주세요.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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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자식

일상 2011. 10. 28. 23:30

  샐쭉하니 또래보다 키가 크고 마른 여자 아이가 교탁 앞에 서 있다. 머리는 한갈래로 단정하게 묶었다. 수업이 모두 끝났고 아이들은 교실 여기저기를 분주하게 돌아 다닌다. 책상 위에 뒤집힌 걸상들이 위태롭게 바들거리고, 오후 햇살에 비치는 먼지들은 분주하게 빛을 피해 달아난다. 
여자 아이가 왼손 바닥으로 칠판을 탁탁 두드린다. 얘들아, 불러 본다. 일순간의 정적, 하나둘씩 돌아 가는 아이들의 얼굴. 보이는 곳에 여자 아이가 오른손에 든 칠판 지우개를 들어 보인다. '칠판 청소 하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볼래' 하고 물어 본다.  
감쪽같은 정적 뒤 금세 고개를 돌리는 아이들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몇몇이 여자 아이 주위로 모여든다. 다시 분주해 지는 교실. 여자 아이의 살짝 웃는 얼굴을 보고서야 그녀가 긴장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교실 뒷문에는 자신의 딸을 바라 보는 한 여자가 있다. 그녀는 말한다. 
내 딸이지만 반장이었던 그 아이가 그렇게 다정하게 말하는 모습이 참 기특하더라고. 친구들에게 뭐하라 명령하지 않고, 하고 싶은 사람 손 들어 보라 말하는 그 마음이 그리 좋더라고. 
 

이미 늙어 버린 여자는 끝도 없이 운다. 이십대에 죽어 버린 제 딸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딸의 죽음을 보지 못한 엄마는 남은 시체만을 붙잡고 억울한 죽음을 풀겠다며 몇 년 간을 미친듯 살았다. 살고 싶어 미친 게 아닌 자신을 완전히 놓아 버렸을 때의 그 온전한 미침. 그럴수록 정신은 더 또렷해졌을까 한 가지에 오롯히 집중할 수 있었던 걸까. 

6년 전 이 이야기를 처음 듣고 떠올렸던, 나는 겪지 못 한 어떤 순간의 이미지. 이 이미지가 불현듯 떠오를 때마다 그녀의 외로운 싸움에 함께 하고 있지 않다는 대책없는 죄책감이 든다. 며칠 전, 무거운 짐을 들고 육교를 오르며 힘들단 생각을 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이 장면이 보였고 특히나 이번에는 몹시 오래 머릿속을 맴돈다. 이런 마주침에는 내성도 안 생긴다. 행동과 실천이 줄어들수록 대책없는 감정들은 더욱 오래 붙어 있다. 무심해지지 않고 함께 무거워진다. 함께 가라 앉는다.

다정한 이 여자 아이가 보일 때마다 나는 그녀의 불행한 미래를 예견하며 시간을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여자 아이의 모습에 늘 뒤이어 보이는 건 제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이다.
 부모 자식 간에 인간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아름다운 순간. 하지만. 
어린 여자, 젊은 엄마, 젊은 여자, 늙은 엄마, 늙은 여자. 빠른 죽음, 긴 삶, 그 틈에서의 그리움, 남은 삶, 끝없는 죽음.
누군가의 삶을 예전 같지 않게 만드는 죽음들은, 그 종류가 어떤 것이든 늘 마음에 메인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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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면,

일상 2011. 10. 22. 00:45

 
성숙해 진다는 건,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건가
아니면 

그 감정을 온전히 다 받아들일 수, 이때의 감정은 구질구질할 수밖에 없는, 이 감정을 받아 들여 느끼며 붙들리고 또 끌어안고 간다는 건가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고작 이것 뿐이어서)


원하면 선택할 수 있는 건가
통제 안 되는 감정이 언제까지고 기분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까, 시간이 나를 지겹게 할 텐데.  

아니면, 다스린다고 매순간 평정심이 가능한가. 
원한다면,  


이 평정심은,
능동적인 끝장,
혹은
수동적인 무심함,
으로밖에 가능하지 않은 건가

원하는 것도 없고
내 행동을 통제할 자신도 없다,

나, 원해 본다면, 
기분의 바닥을 치고서라도
이 구질구질한 감정의, 상황을 종료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행복함, 같은 순간은 갖지 않아도 좋다고. 
순수한 행복감 같은 건 기대하지도 않지만
그렇다면 행복 따윈 믿지 않는 편이 낫지, 
불순한 이 행복감이 나는 영 만족스럽지 못 하다.  


하지만 아무래도 나는
관계, 그래 관계, 이것은 관계고 만남이다. 
이 관계를 끝장낼 능동이, 시간을 견뎌낼 수동도.
내가 해낼 수 있는 힘이 아니다 

행복함, 같은 순간을
기억하지 않을 도리도 없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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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일상 2011. 10. 15. 22:25


조금씩 거짓말 하며 간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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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2011. 9. 5. 01:17


제가 좀 졸리긴 했지만 꽤나 진지한 말이 튀어 나왔습니다. 
"이상하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일부러 더 더 힘든 일 겪으며 고생하고 싶단 욕심이 생겨요."
 

수화기 너머로 그의  답변이 돌아 왔지요, 이미 다 알고 있는 자, 체험이 깃든 말의 리듬. 
"일부러 그럴 필요는 전혀 없다. 가만히 있어도 니 앞 일에 닥칠 힘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전혀 망설임 없이 내뱉은 그 대답은, 따져보면 당연한 사실,- 하지만 체험해야만 알 수 있는 종류의 사실.  
 

물 흐르듯 살아도 겪게 될 힘든 일들, 그것들을 하나 둘 꼽게 되더라고요. 아 인간사, 하고 한숨이 났습니다. 툭 튀어나오는 한숨에 놀라고 내 겁에 실망했습니다. 욕심만 부리는 거지요. 이런 걸 치기라고 하는 겁니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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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MBA ESTEREO

일상 2011. 8. 8.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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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들을 걷어내는 목소리
노  래  한 다 
용감하게, 시간 위에 올라 타 마디마디 밟는다 
고요하고 평온한 시간
 

목소리 잦아들면
제자리를 찾아가는 소리들 
어렴풋, 자리 찾지 못 한 것이 우는 소리를 낸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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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미소공포

일상 2011. 8. 4. 23:00
*



**
 밤에 길을 걷고 있었다. 옆에 누가 지나가는 줄을 알고 무심코 쳐다 보는데 그의 품에 안긴 시커먼 개가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그것이 나를 향해 고개를 쑥 들이 미는데 어찌나 놀랐는지 나는 재빠르게 크고 환한 미소를 개에게 지어 보였다.

공포의 순간에 반사적으로 짓는 미소라니. 아니 대체 언제부터 내게 생긴 습관이란 말인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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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으로 가는 KTX를 타러 승강장을 걷고 있었는데, 저만치 앞에서 죽어라 지르는 고함 소리가 들렸다. 싸움이 난 걸까 해서 살짝 긴장하며 걸어 가는데 점점 가까워지는 소리와 함께 한 할아버지가 보였다. 이 여편네 대체 어디 가 있었냐고 무식하게 길도 모른다고 삿대질을 해가며 바락바락 악을 쓰는데 그 앞엔 주눅 든 자세로 왜 그렇게 화내냐며 마른 목소리를 내는 할머니가 있었다. 두리번 대는 자세가 주눅 들었다기보단 이 상황이 너무 부끄러운 듯 했다. 아마 할머니는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다본데 표에 적힌 차량번호를 제대로 찾지 못 했나 보다. 그 할머니를 할아버지는 찾아 다녔을테고. 저러다가 오히려 기차를 떠나보내겠다 싶은데도 할아버지는 고함 지르길 멈추지 않았다. 그것도 못 찾냐고 기차 놓치면 니가 다 책임질거냐, 나는 정말 듣기 싫어 참을 수가 없었다. 아내를 막 대하는 그 태도가 혐오스러웠다. 나는 바짝붙어 몇 번이나 할아버지를 부라려 보았지만 그는 주위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저 할머니는 몇 십 년간 저렇게 권위적인 남편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짧은 순간 본 그 풍경만으로도 고생스러웠을 그녀의 지난 인생이 상상됐다. 기차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도 한참이나 속이 상해 있었다. 함께 가던 다른 이들에게도 그건 잊혀지지 않는 풍경이었나 보다. 그게 무슨 민폐냐 할머니가 참 안됐다는 등의 오고 가는 말들.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의외였다. "난 그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하면 그럴까 싶더라고." 

그런가요 그건 사랑일까요. 그래도 그런 태도는 용납할 수 없는 거다 싶었지만, 순간적으로 그 노인네가 할머니 잃어버릴까봐 쩔쩔매며 겁이 났을 장면이 상상되는데 이미 상상해 버린 이상 나는 그 노인네가 가여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그거 사랑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요.
미진한 분노는 연민 때문인 경우가 많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 그러했듯이.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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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때 중학생이었지.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어. 도로에 초록 신호등이 켜졌고 길을 건너기 시작했는데 딴 데 정신이 팔려 주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어. 그 때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선 선거에 늦은 국회의원 후보 일당의 차 한대가 빠른 속도로 달려 오고 있었지. 뭐 많이 급했던가 보더군. 그들 눈에 붉은 신호등이 보였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나도 보였지만 멈출 생각은 없었던 거야. 벌금은 나중 문제였고 그들은 정해진 시간에 늦지 않는 게 중요했으니. 어쨌든 별 문제될 건 없었어. 내가 그들 시야에서 막 벗어 났거든.
그래, 그랬던 거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난 주위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어, 왜냐하면, 난 춤을 추고 있었으니까.
마이클 잭슨은 내 우상이었어. 언제 어디서든 난 그의 음악을 흥얼거렸고 그의 춤을 연습했지. 그 사람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면 기분이 좋았어. 그 기분 좋은 순간에 모든 게 멈춘 거지. 그러니까 내가 그들 시야에서 막 벗어났을 때 그때, 그 순간에 나는 백스탭을 밟은 거야. 나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었지. 난 리듬을 타고 있었으니까.
웃을 일이 아니야. 난 죽을 뻔 했지. 우린 스쳐갈 인연이 아니었나봐. 갑자기 재등장한 나 때문에 차 안에 있던 그들도 얼마나 놀랐을까. 어쨌든 난 많이 다쳤고 비장이란 걸 떼어 내야 했어. 훗날 비장 없는 덕에 군면제를 받았으니 일종의 보상이라면 보상이겠다. 뭐 비장이 없어서 사는데 지장은 없었어. 
 
최근 마이클 잭슨의 사망 소식을 듣는데, 기분 참 이상하더라. 잊고 있던 비장의 존재가 서글프게 느껴지는데, 그 부재 때문에 그제야 많이 허전해 지는 기분. 근데 왜 하필 나는 그 순간 백스텝을 밟았을까. 뒤집어 생각하면 내가 차에 뛰어들었다고 할 수 밖에 없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었거든."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 내가 되어 다시 쓰는 이야기. 
-p감독의 비장을 기리며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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