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 해당되는 글 398건

  1. 2011.06.10 * 1
  2. 2011.05.11 비온뒤 공기맑은날 9
  3. 2011.05.10 맨발 2
  4. 2011.05.10 도래
  5. 2011.05.06 이 봄의 끝자락
  6. 2011.04.18 려행字 2
  7. 2011.04.04 마치 다 보고 있었다는 듯, 2
  8. 2011.04.03 오오오 4
  9. 2011.03.24 그러고보니,
  10. 2011.03.24 미지의,

*

일상 2011. 6. 10. 16:44



절실하지만 지겨운,

지겹지만 나는 지겹지만 너는 절실하다는 걸 알기에  
고개를 돌릴 수 없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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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뒤 공기맑은날

일상 2011. 5. 11. 23:01

1. 복잡한 버스 안, 젖은 우산을 방치해 기어코 내 엉덩이를 적시게 하는 그런 사람들에게 너무 화가 난다. 내가 정말 못 견디는 몇 가지 것들. 내릴 정거장이 아닌데도 뒷문 앞에 떡 버티고 서서 하차 방해하는 사람들, 어떻게든 피해주지 않으려는 노력 없이 젖은 우산을 허공에 그대로 노출시켜두는 사람들. 정말 화가 난다. 


2. 김진영 선생님의 글을 읽다,
김수영과 김지하 사이: <김수영이 우리 시에서 모더니즘의 부정적 측면을 극복하고 그 강점을 현실비판의 방향으로 발전시킨 것은 훌륭하다. ...한마디로 醜를 양성(釀成)시킨 점은 더없이 높이 칭찬해야 할 업적이다. 추야말로... 비애의 참모습이고, 폭력의 안이면서 밖이요, 모순에 찬 현실의 적나라한 현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민중 속에서, 그 긍정적인 것의 사랑을 통하여 민중으로서 느끼고 생각하느냐, 아니면 민중 밖에서 선택된 자아의식으로 사고하느냐의 차이에 있다. 김수영 문학의 풍자에는 시인의 비애는 바닥에 깔려있으되 민중적 비애가 없다.> (김지하, 풍자냐 자살이냐, in, 생명으로 쓰는 시, 43) - 시인의 비애와 민중의 비애는 본질적으로 변별될 수 있는 걸까.
[출처] 독서 노트: 김 수영|작성자 김진영

그러니까 말이다. 계속해서 생각해 보고 싶은 질문. 답을 구하는 게 아닌 질문 그 자체로 사유하기. 이끌려 나올 더 많은 질문들.


3. 철학책에 밑줄 박박 긋다 생각했다. 나는 의미를 알고 끌리는가. 잘 알지도 못 하면서 밑줄 긋게 하는 끌림은 어디서 오는 걸까. 끌리지만 깨달음은 여전히 멀고,,, (깨닫고 싶은가?)
 
 
4. 동료랑 터널을 걷다 한 대화.
-에잇. 아파서 병원오진 말아야지
-근데 몸에 대해 해부학적으로 공부하면 할수록 느끼는 건, 이 복잡한 몸 안에 병 하나 없다는 게 더 신기한 일이라는 거야. 
 

5. 한참이나 그 곳에 서성이다 돌아 왔다.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거나 잠을 자며 제 영역 안에서 꼼짝않던 그가 반경 50미터 안의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있었다. 입으로 빨아들일 듯이 고개를 구석에 처박고 먼지를 긁어 내고 있었다. 오랜 세월 치우지 않은 작은 부피의 쓰레기와 먼지 뭉치들이 그의 손에 집혀 나왔다. 
이제야 알았다. 내가 당신을 너무너무 기록하고 싶어한다는 걸..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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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일상 2011. 5. 10. 23:28

아침이 밝았고 학교는 가야 했다. 가방을 메고 한 손에 실내화주머니를 또 한 손엔 동생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학교로 가는 길목에 경찰차가 있었다. 차창을 내리더니 아저씨가 말을 걸었다. 학교 가니?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한 번 훑어 보더니 물었다. 왜 양말은 신지 않았니? 아차 싶었다. 난 누가 챙겨주지 않으면 양말 신는 걸 꼭 잊었다. 실내화로 갈아 신으면 내 맨발이 더 훤히 드러날 터였다. 반 아이들은 놀렸다. 꼭 그런 걸로 놀렸다. 양말에 구멍나면 놀렸고 옷에 단추 하나 없는 걸로 놀렸다. 맨발에 실내화를 신고 있으면 양말도 없는 애 취급했다. 이른 아침인데 낮처럼 더웠다. 나는 슬픈데 학교는 가야 했다. 학교엔 가기 싫었다. 차라리 학교에 가지 못 할 만큼 불행해 질 순 없는 걸까. 이것저것 다 서럽고 짜증이 났다. 동생 손을 놓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어 버렸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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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

일상 2011. 5. 10. 19:00


익숙한 것과 결별할 수 있는 '용기'는 들뢰즈의 표현을 빌리면, 한계라기보다 '임계점'(threshold)에서 비로소 발현한다. 능동성이 갑자기 수동성으로 전화하는 지점에서 예측할 수 없었던 '임계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사유는 더 이상 과거의 정상성을 지탱할 수 없는 그 순간에 도래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는 '집'을 떠나야 한다.    _이택광




의지도 없이 발이 제멋대로 한 발 놀렸을 뿐인데 그 뒷걸음질에 나는 한 없이 추락했다. 그 높이를 알 수 없는 어느 건물이었다. 나는 이게 꿈이란 걸 알았고, 이 추락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에 몹시 기뻤다. 이것도 체험이라 할 수 있을까. 조금 더, 육체가 부서지는 순간의 고통도 느꼈으면 했다. 하지만 너무도 편안하고 푹신한 대지 위로, 그래 대지는 아주 푹신하고 포근했다, 그 위로 떨어 졌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도 체험이라 할 수 있을까. 눈을 떴을 때, 이 모든 게 다행이란 걸 나는 알아야만 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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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봄의 끝자락

일상 2011. 5. 6. 00:25


울퉁불퉁한 봄볕의 무늬
쓰다듬고 핥아보고 쓱싹 비벼 빨아보고
무섭지 아니하다  
 
















  납작 눌려 버린 알갱이에 살짝 바람 불어 넣기. 오돌토돌. 울퉁불퉁.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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려행字

일상 2011. 4. 18. 01:46

펜 열자루와 공책 서른 권을 들고 여행을 떠나야지
그리고 세상의 모든 글씨체를 발견할 거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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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심장 박동기 시술에 참관했다. 카메라는 돌아가고 나는 주위를 맴돌며 어떻게 심장 박동기가 채워질까 호기심에 차 구경했다. 시술대 위에는 나이 여든에 가까운 노인이 정신이 말똥한 채 누워 있었다. 박동기 삽입은 환자와 대화가 필요한지라 국소마취를 하는 시술이다. 노인은 수시로 의사에게 말을 걸었다. "잘 되고 있지요?" "네, 걱정 마세요. 잘 되고 있습니다." 문장이 길어질라치면 발음이 뭉개져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해독할 수 없는 몇몇 문장들이 무시되고 시술은 계속됐다. 심장 혈관을 따라 철사줄이 내려가고 테스트를 한 후 이제 그것에 심장 박동기를 연결하려는데, 발음 정확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안 죽으면 어떡하지요?" 
마치 이걸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듯 기막힌 타이밍에 나온 말.
"네?" 못 들은 건지 대답을 피하는 건지 몇 박자 느린 의사의 되물음 뒤, 다시 또 한참 뒤 노인은 말을 잇는다. "다 죽고 나만 살아 있으면 뭔 재미로 사나"
나는 살금살금 걸어 나와 시술대에서 멀어졌고, 입을 막곤 참았던 웃음을 살짝 터뜨렸다. 죽지 않으려 하는 시술 현장에서 영영 죽지 않을까 걱정하는 노인의 한 마디. 사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뒷걸음질 쳐 나올 수밖에 없었다. 희극처럼 보고 싶어서.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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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오

일상 2011. 4. 3. 23:16

 
한때 휘파람에 버릇이 들었다. 하지만 휘파람을 불지 말아야 할 상황에 늘 놓여 있게 돼 오래 불지 않았더랬다. 그러다가 방금 무심코 휘파람을 불렀는데, 그 이전보다 훨씬 잘 부르는 걸 확인. 그것도 릴리슈슈의 모든 것 오에스티의 한 곡을. 이 노래도 아주 오랫동안 생각하지 않다가 휘파람을 부르겠다고 생각하고 먼저 입을 오므리고 바람을 뱉는데, 시작된 첫음에 이어 어쩔 수 없이 계속된 멜로디, 그게 이 노래.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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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일상 2011. 3. 24. 00:47



누가 쓰레기 봉투의 매듭을 저리 앙증맞게 다듬어 주었나. 그러고보니 당신은 그 안에서 왜 슬퍼 하고 있나.
잠자리 날개 같은 봉투의 매듭, 뒤늦은 울음 소리에 파르르 떨린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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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일상 2011. 3. 24. 00:20

보인다. 성인 한 명은 족히 들어갈 커다란 캐리어. 그 뒤에 가려져 있을 그. 계속 걷는다. 그에게 향하지 않고 스쳐갈 작정으로, 스치면서 볼 작정으로. 보기 위하여 스쳐 간다. 이발을 했다. 안경을 벗었다. 외투는 그대로다. 조금 말랐다. 이발을 해서인가. 검은 봉지에서 뭔가를 꺼내 먹고 있다. 점점 봉지에 얼굴을 파묻는다. 그리하여 눈에 띄는 건 그의 눈썹. 머리카락 보다 긴 눈썹이 자라고 있다. 계속 자란다. 그의 몸 어딘가 고장난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대체 어딜갔다 며칠만에 나타난 거지. 스쳐 가면서 본다. 보기 위하여 스쳐 간다. 완전히 스친 후 마지막 잔상을 눈 앞에 두고 계속 걷는다. 앞으로 5분 동안은 찬 바닥에 두피가 닿은 것마냥 몹시도 서늘할 것이다.
아마 내가 이 곳을 뜨지 못 하는 이유는 이 사람 때문이 아닐까. 그에 대한 애정이나 그리움 따위의 감정 때문이 아니라 그저 그가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떠날 수 없을 거란 짐작, 그렇게 되리란 저주. 그리 할 수 밖에 없는 계시, 결국 믿게 되고 마는 자기 확신. 
매일 그를 만나 보지만, 결코 만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매일 스쳐갈 작정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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