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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4.26 그녀는 그녀를 모른다

버스 정류장엘 내려서도 오른쪽 길로 7분 여 정도 오르막길을 가다보면 낡은 주택들이 닥닥 붙어있는 골목길이 나온다. 그 골목길이 갈라지는 지점에서 오른쪽 첫 번째 집이 그녀가 사는 곳이다. 파란 쇠문을, 철문이 아니라 꼭 쇠문이라고 하여야 할 것 같은데 육중한 느낌의 철문이라고 하기에는 대문의 여닫음이 너무 촐랑거리므로, 그러니까 24시간 내내 활짝 열려 있는 그 파란 쇠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마주 보이는 조그마한 방이 그녀의 거주지다.  

최근 두 달 동안 그녀 방의 불은 밤내 켜져 있다. 그녀는 늘상 밤늦게 집에 들어가서는 무언가라도 하려 꼼지락 거리지만 이내 바닥에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대충 발로 밀어 내고는 누워 버리기 일쑤다. 그리고선 천장을 보며 중얼거리기도 하고 뭔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자주색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는 잠에 들어 버린다. 그것도 귀찮으면 대충 팔등으로 눈을 덮고는 잠에 든다. 

재밌는 건 잠들기 전까지도 그녀는 '자는 거 아니라'는 유치한 자기기만을 한다는 거다. 한두 번도 아니고, 시험기간에만 그런 것도 아니고, 매일 밤 이런 버릇이 반복되자 그녀는 진지하게 자신의 행동에 문제가 있음을 느꼈다. 사실 이런 행동은 평소 그녀의 행태를 보아도 충분히 나타날 법한데, 가령 보지도 않을 책들을 기어코 가방에 많이 넣어 다니는 딸을 보며 그녀의 엄마는 “병이다 병” 이라고 진단내렸다. 그녀의 자취방을 찾은 엄마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는 그녀를 보고는 단번에 이불을 끌어내려선 다 큰 딸의 이마빡을 따악 때리며 말했다. "그렇게 자면 팔자가 재수없다"
그녀는 가방을
무겁게 들고 다니는 것도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자는 것도 그럴 수 있을 만한 습관이라고 무시했지만 불을 켜두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건 아무래도 버릇 아닌 증상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아침 그녀는 빨아둔 양말이 없어 어제 신은 양말을 탈탈 털어 다시 신으려 하다 양말에 붙은 머리카락
한 뭉치를 보고 울컥했다. 그녀 스스로도 내기 두려워하는 짜증이 난 것이다. 별 것도 아닌데, 내가 이렇게 예민했던가. 내 생활에 문제가 좀 있지 않은가 싶었다. 그러고보니 그렇게 잠에 들면서부터 밤에 씻지 않는 횟수가 잦아지고 빨래를 하지 않는 횟수도 잦아졌다. 내일 아침에는 저기 장판을 기어가는 한 마리의 개미가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그녀가 개미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따뜻한 그녀는 밤거리를 걸을 때마다 늘 나무들을 걱정한다. 밤이 되고 도시에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질 때마다 가로수들이 불빛에 아파하며 제대로 잠들지 못할까봐 안타까워 한다. 도시의 불빛이 식물에 얼마나 해로운지를 같이 걷는 사람에게 얘기해주곤 했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모습은 식물보다 조금 더 안타까워 보인다. 오르막길을 7분 여 걸어 올라가 빛이 새어나오는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서 두 길로 갈라지는 오른쪽 골목 첫 번째 집의 파란 대문을 들어서면 마주 보이는 그 작은 방에 들어가기만 하면 말이다.  

하루는 잠들지 않고 가만히 누워서 자신의 행동을 반성해 보았다. 그리곤 일종의 속죄의식일 거라 결론을 내렸다. 아침이면 하겠다고 적은 목록을 다 해내지 못한 채 잠에 드는 것이 죄스러워 나를 안심시키려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 싱거운 이유이지 않은가 하면서 잠을 줄이자고 결심했다. 불을 끄고 자겠다는 결심도 아닌 잠을 줄이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날마다 10분씩 자는 시간을 미루고는 논문이라도 한 줄 더, 작문이라도 한 줄 더 쓰기로 마음 먹고는 뿌듯해 했다. 하지만 자는 시간을 미뤄도 미뤄도 시간은 밀리지 않고 여전히 그녀는 방의 불을 끄지 못 했고 또 그 불빛이 싫어서 이불을 뒤집어쓰곤 잠에 들었다. 그렇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면 밤새 이불 안에 고인 숨에서 파다 만 축축한 흙냄새가 났다.  

대체 왜 기어코 불을 끄지 않는 것일까. 이게 몸에 붙은 습관도 아닌지라 엉덩이로 다섯 걸음만 가서 스위치를 내리기만 하면 되는데 말이다.

“그건 마치 헤비메탈 음악을 크게 틀어두고는 귀마개를 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대체 자기가 왜 그런지 모르겠다는 그녀에개 친구거 말했다. 불을 켜두고는 이불까지 덮어쓰고 자는 그녀의 정신적 신체적 상태가 염려된 친구는 어느 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냐' '아니' '누웠잖아' '생각하는 거야' '그냥 자' '안 잔다니까' '전화 통화하고 있을 때 불 꺼' '아 왜' '일단 불 꺼' '불 끄면 너무 깊이 잠들 것 같아.' '그게 정상이잖아' '중간에 한번이라도 안 깨면 불안해' '문제있다'
걱정하는 친구가 간섭 같아 '잔다' 하고는 전화를 끊고 뒤집어 누워버렸다. '아이고' 결국은 고작 불안 때문인 건가. 하긴 말로 둘러댈 건 불안하다밖에 없으니까. 그녀는 여전히 스위치를 내리지 못한다.

오늘 밤도 그녀는 생각한다. 나는 분명 나에게 배신당할 것이다. 분명해. 하지만 나는 왜 자지 않을 거라 위로하며 잠에 드는가. 자신을 믿을수록 자신을 무너뜨리는 이 짓을 왜 매일 밤 반복하는 걸까. 일부러라도 울면 반성을 좀 할까 싶어서 팔등으로 눈을 가려서 울 시늉을 했다. 시계에서 썩은 가죽 냄새가 났다. 울고 싶은 마음이 싹 가셨다.  ‘이건 말이지’, 일부러 상황을 만들고는 그 안에 나를 던져 놓고 번뇌를 강요하는 꼴이잖아. 

생각하는 것도 지겨워진 그녀는 까물 선잠에 들었다. 한 5분쯤 지났을까. 그녀가 경련을 일으키며 벌떡 일어나 앉는다. 자다가 계단에서 넘어지는 꿈을 꾼 게다. 오죽 놀랬으면 허리를 접어 앉아 버렸을까. 그런데도 놀라 주위를 돌아볼 생각도 않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채 가만히 있다. 우는 모양이다. 무릎에 얼굴을 파묻은 김에 울려는 모양이다. 그래봤자 내일이 되면 그녀는 시덥잖은 자아 몇몇이 칭얼댄 것 정도로 생각하고 말 것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