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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12.28 릴리슈슈의 모든 것 6
  2. 2009.11.04 여기에서 저기로, 이것과 저것이 1












아아, 이 영화 정말.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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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하면서도 까물 잠들 때가 있다. 수업 시간에 안 졸려고 안 졸려고 용을 쓰다가 깜빡 졸 때면 눈앞에 어떤 이미지들이 불쑥 들어온다. 눈을 뜨면 선생님이 앞에 있고 다시 눈을 떠보면 나는 이상한 길목 위에 서 있다가 다시 눈 뜨면 나를 흔드는 친구가, 또 눈을 감았다 다시 뜨면 나는 누군가의 등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있다. 아주 잠시 정신을 놓았을 때나 너무 졸려 고개가 휘떡휘떡 넘어질 때는 눈꺼풀 밖의 세계와 눈꺼풀 안의 세계가 뒤죽박죽되면서 교차편집된다. 아주 긴 이야기를 본 것 같은데 눈을 뜨면 시간은 겨우 삼 분이 지났다. 시간이 뒤틀리고 공간의 경계가 지워지는 이상한 경험. 

  그 이미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추억이 되지 못 한 기억일까? 주파수로 만들어지는 이미지일까, 누군가가 수신하는? 졸음에서 깨고 나면 이미 달아나버린 이미지들을 기억해내려 애쓰는 것. 딱히 목적도 없이 난 늘 그런 것들을 좇아다닌다. 

  영화 러브레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시퀀스는 병원에서의 사건이다.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간 이즈키가 대기실에 앉아 깜빡 존다. 조는 사이에 복도 끝에서 병상 하나가 들어온다. 복도를 달리는 병상을 붙잡고 달리는 간호사들이 보이고, 병상이 가까이 다가오자 보이는 건 이즈키의 죽은 아빠다. 놀란 이즈키가 자리에서 일어서고 그때 이즈키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눈앞에 엄마와 할아버지가 보인다. 이즈키에게 어서 오라고 부른다. 이즈키는 아빠가 실려 가는 병상을 향해 달린다. 달린 끝에 문이 있다. 다다른 이즈키가 문을 열자 보이는 건 또 다른 풍경이다. 어린 이즈키, 그리고 또 다른 이즈키, 히로코의 연인이었던 그 어린 이즈키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책을 들고 문 앞에 서 있다. 다시 후지이 이즈키라 부르는 소리가 들리고 이즈키는 놀라 잠에서 깬다. 



  이 시퀀스에서 이야기는 여기서 저기로 훌쩍 이동한다. 아니 이건 이야기로 할 수는 없는 것 같다. 이미지? 이미지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호흡이 긴, 아니면, 연출자는 리듬을 잘 타는 걸까. 여기서 저기로 넘어가는 리듬, 거친 이 반죽과 저 반죽을 잘 주물거리는 영상음악가 같은? 감정의 흐름을 따라 가다보니 자연스레 새로운 이미지가 튀어나오는 건가? 하여튼. 

  이와이 슌지가 이것과 저것을 주무르는 걸 좋아한다고 느낀 또 다른 장면이 있다. 이건 좀 소소한 장면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기가 막히게 귀엽다고 생각했다. 이즈키가 히로코가 보낸 약봉지를 펼치자 가루가 포록 올라오면서 기침을 하는데, 이게 도서관에서 책을 들고 있다가 막 기침을 하려하는 이즈키의 모습과 교차 편집되면서 기침으로 장면을 끝맺는다.

하나 더, 긴 눈길을 타고 내려온 이즈키는 눈 위에 아주 곱게 누워있는 잠자리를 보고 “아빠가 죽었구나” 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그 넘어가는 과정을 굳이 이해하라고 하면 말이 안 되기도 하지만 그 순간에 이입되는 감정이란! 그리고 그 이미지가 하나의 ‘기억’이 되어 잠자리를 볼 때마다 나는 영화 러브레터를 생각할 것이다.    





  조각난 이미지들을 내가 좇는 것은 퍼즐 같은 그것들을 끼워 맞춰서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그냥 내버려두어야 할 것인지도, 같은 판 안에 있던 이미지 조각들이 아닌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와이 슈운지는 그걸 조화롭게 만드는 쪽에 가까운 것 같다. 그는 자유 연상을 관객들이 이해 가능한 수준에서 전개한다. 가끔 이 장면과 이 장면이 왜 붙는지 감이 안 오는 쌩뚱 맞은 영화들도 있잖은가. 그러면 이해불가능하고 어려운 영화로 분류된다. 이와이 슈운지는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정도, 달리 말하면 상업성 있게! 잘 만드는 것 같다.

러브레터를 다 보고 난 후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잠시 졸면서 보는 잠깐 잠깐의 이미지들이 어쩌면 다른 누군가의 삶일지도 모른다고. 혹시 나와 이름이 같은 다른 사람은 아닐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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