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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떨림

일상 2010. 2. 24. 01:44

의미의 떨림 Le frisson du sens

그의 일 전부가 기호의 도덕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도덕성'은 '도덕'과 다르다). 도덕성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테마인 의미의 떨림은 두 종류의 위치에 나타난다. 제1의 상태는 '자연스러움'이 동요하기 시작하여 의미 작용을 발휘하기 시작할 때이다(재차 상대적, 역사적, 관용어적으로 변해 버린다). '당연히 그렇게 될 일'이라고 하는 (불유쾌한) 착각의 표피가 벗거져 떨어지고 삐걱거리며. 여러 가지 언어 활동의 기계가 작동하기 시작해, '자연'이 그 속에 농축되어 잠자고 있던 모든 사회성에 의하여 흔들려 떤다. 나는 문장들의 '자연스러움' 앞에서 놀란다. 마치 헤겔Hegel의 고대 그리스인이 자연을 눈앞에 두고 놀라며 의미의 떨림을 거기서 청취하는 것같이. 이 의미론적 독서의 최초 상태에서는 사물들이 '참'의 의미(역사의 의미)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지만, 다른 장소에서 그리고 거의 모순되게 또다른 어떤 가치가 이 상태에 대응한다. 즉, 의미가 비-의미화 속에서 소멸되기 전에 또 떨림을 보이는 것이다. '의미가 존재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잡을 수 있지' 않다. 굳지 않고 유체인 채로 가벼운 거품이 일어나 계속 떨린다.
사회성의 이상적 상태는 다음과 같이 선언된다
: 거대하고 지속적인 시끄러움이 무수한 의미에 생기를 부여한다. 그 의미들은 시니피에로 서글프게 무거워진 기호의 결정적 형태를 결코 취하지 않고 다만 작열하고, 불꽃튀는 소리를 내며, 섬광을 내뿜는 것이다. 그것은 행복한 동시에 불가능한 테마이다. 왜냐하면 이상적으로 떨고 있는 이 의미는 고체화한 어떤 의미(독사의 의미) 또는 아무것도 아닌 의미(해방을 외치는 신비주의자들의 의미)에 의하여 무자비하게 회수되고 말기 때문이다.

(이 떨림을 나타내는 형식들 : 텍스트, 의미 산출signiiance, 그리고 아마도 중성neutre.) 


새벽 잠들기 전, 책꽂이의 롤랑바르트가 쓴 롤랑바르트를 꺼내 읽는다. 어느 페이지든 펼쳐 읽으면 되는 짤막한 텍스트들의 엮임이다. 139페이지 중간에서 140페이지의 반을 조금 넘어 차지하는 글을 읽는다. 읽히는 것들만 읽는 것은 그저 내가 아는 것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까, 나는 다시 한번 읽어본다. 두 번 세 번 네 번 ... 예닐곱번쯤 읽었는데, 텍스트를 이해한건지아닌건진 알 도리 없지만 뭔가 화아 밝아지는 기분에 뿌듯한 마음으로 바로 책 덮고는 잠에 들었다. 난 가끔 더 깊게 생각하기 위해 잠을 택한다.
<아, 의미의 떨림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경계도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된다. 경계인으로서 살아가고 싶다던 한 지식인의 바람은 대한민국 시스템 안에서 아주잘근 뭉개진다. 그의 진의를 따져보고말고를 떠나, 내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단순소박절실한 질문으로 건너뛴다. 어떤 사건에 동참하여야 할 때,
나는 '무딘 양자택일자'가 되고 싶지도 '얄미운 관찰자'가 되고 싶지도 않다.  

모든 내 말과 행동이 '실수'라 한다면, 그래도 사건 하나를 겪을 때마다 반발자국만이라도 '성숙'해지고 싶다. 좀 더 괜찮은 태도와 시선이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니까. '뭔가 조금씩 선명해지는 듯한 느낌' 만은 분명 있다. <조금씩 선명해지는 느낌이 있으니까 좀 더 괜찮은 태도와 시선을 기다린다. 찾는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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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내 님이여

인용 2009. 12. 13. 23:41




그리움에서 그림이 나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림 그리다가 그리워하다..
뭔가 통하는 게 아닌가 싶어.
그리워하는 건 계속 반복하는 거잖아 그래서 쓰고 또 쓰고 여러번 쓰고
그래서 틀린 게 훤히 들어다보이게 그런 식으로 표현했는데..


다큐멘터리 <앞산전> 에서.



이진경 화가를 다룬 다큐 앞산전.
이 다큐를 보다 이 장면이 너무 좋아서.
화가의 폼하며 앉은 모양새며,
더욱이
물감이 흘러내리게 글을 쓰고 그걸 어설프게 가려보려 덧칠해둔 저 그림이 너무 좋아서.
저 느낌이 너무 좋은데 뭐라 표현을 못 하겠고나ㅎ


덧칠하다. 고쳐쓰다. 감추지 않는다...
(일부러 의도하는 것이라 해도) 잘못된 것을 뜯어내고 새 종이에 쓰는 게 아니라 흔적을 남기고 계속 가는 그런 방식에 요즘 꽂혀 있음. 

한유주는 그녀의 한 소설에서, 글을 쓰는 도중에 자신이 고쳐쓰고 있다는 사실마저 쓰더라. 지나친 강박증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여튼 그게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일종의 태도의 문제라고 느꼈기 때문인데, 모든 것을 쓸 수 있다고 전제하고 쓰는 것과 쓸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쓰는 것은 다른, 그런 차이랄까..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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