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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화

2016. 8. 21. 00:02


자꾸 내 신발이 신경쓰였다. 오른쪽이었던가 왼쪽이었던가 아마 왼쪽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왼발에 더 힘을 주어 걷는지 내 신발들은 왼쪽의 뒷축이 더 낡아있으니까. 아무래도 왼쪽이었던 내 신발의 밑창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지는 꽤 오래되어서 신발을 허공에서 흔들면 밑창이 덜렁거리고는 했다. 평지에서 빠르게 걸으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산을 오르는 것은 달랐다. 단풍이 가장 예쁘다는 시절에 사람들과 서울의 북쪽 끝에 있는 산을 올랐다. 무릎에 힘을 주어 한걸음씩 오를 때마다 뒷축이 벌어졌다 닫히는 것을 느꼈다. 그날 내 뒤에서 걸었던 동행을 기억한다. 뒷꿈치에 힘을 주며 올랐지만 그런다고 떨어진 밑창을 감출 수는 없었다. 나는 부끄러웠고 가난했다. 부끄러우니까 내가 가난하단 걸 알았다. 많은 것들이 내게 사치였고, 사치를 못부리는 내 가난이 좋았다.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그날은 내가 조금 부끄러웠다. 꼭대기까지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사람들과 막걸리를 마셨다.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살짝 취한 동행 중 한 명이 내 어깨에 기대 중얼거렸다. 지금 이 사람들이 너무 좋다고, 함께 집회에 나가고 공부도 할 수 있어서 참 좋다고. 이내 우리는 잠들었고, 결국은 좋은 날이었다. 신발을 바로 버렸는지 그러고도 오래 신었는지는 기억나질 않는다. 지하 매장에서 산, 굽이 낮은 감청색의 캔버스화였다. 끈이 있었지만 신고 벗을 때마다 손대지 않아도 되었다. 밑창이 딱딱해서 발이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었는데 적응되고 나니 너무 편해 일 년 내내 그 신발만 신고 다녔다. 그래서 빨리 낡았다. 사실 그 시절엔 신발이 늘 한켤레였다. 그 신발의 모양은 지금도 꽤나 선명한데, 내가 한걸음씩 돌계단을 딛고 오를 때마다 신발 밑창이 벌어졌다 닫히는 느낌이 아직도 생생한데, 왠지 그 신발이 내게서 영영 떠났던 순간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김 숨의 『L의 운동화』를 읽다가 한때 내 운동화였던 그것이 떠올랐다. L과 L의 운동화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내 운동화 역시 떠올리지 않을 수는 없는 소설이다. 영영 잃어버린 L의 왼발 운동화도, 밑창 떨어졌던 내 운동화도 지금은 손에 잡히지 않을 무언가가 되어 모두 같은 곳에 있을 것만 같다. 신발에 영혼이 있다면 말이다. 가끔은 그렇다는 걸 믿어야만 한다. L의 운동화 복원가가 그리고 이 책의 작가가, L의 운동화를 “지켜보고, 기다리며, 말을 걸어오길” 기다렸듯이, 그랬듯이. <이한열기념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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