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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26 홍시-날파리 6
  2. 2010.10.25 안녕 2
  3. 2010.10.17 두 발
  4. 2010.10.13 빈자리 3
  5. 2010.10.07 눈으로 희망을 쓰다 1
  6. 2010.10.07 호이안
  7. 2010.09.28 구름카락 2
  8. 2010.09.25 walking
  9. 2010.09.18 부얶 2
  10. 2010.08.31 솨솨솨 3

홍시-날파리

일상 2010. 10. 26. 00:20

  홍시를 먹은 다음 날이면 껍질 주위에 날파리들이 오글거렸다. 어떻게 냄새를 맡고 여기까지 날아 왔을까 아무래도 당연한 일은 아닐 거라고, 날파리를 한마리씩 죽미며 궁금해했다. 그냥, 홍시에서 태어나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홍시-날파리. 이런 거 말이다. 포도-날파리, 이런 거 말이다. (새삼, 마치 처음 날파리를 본 것처럼, 이제야, 그 존재가 눈에 띄었다) 느닷없이 날파리에 사로잡혀선 홍시에서 날파리가 만들어지는 상상을 하며 재밌어 했다. 사로잡힌 이 기분 만으로도 여기에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란 예감도 들었다. 날파리에 대한 생각을 조금씩 굴려가다보면 뭔가 재밌는 게 나올지 않을까,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혼자 즐거워했다. 날파리를 알고 싶었다. 생물을 전공하는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다.  

"날파리에 관한 뭐 재밋는얘긴없나-생물학적으로다가"
"초파리가 유전학의 발전에 엄청난 기여를 하였찌 잼나는거면 암수한몸?"
"왜기여햇노? 오 자웅동체란거가"
"초파리연구하다 돌연변이가 발견되어서 유전형질이 어찌자식에게 전달되는가를 알게되따고나할까 초파리는 돌연변이가 많아 암수한몸이 된거도 돌연변이고 자옹동체랑은 다르지싶은디" 

날파리라고 언급한 질문에 굳이 초파리라고 이름을 바꾸어서는 친절히 답해주던 내 동생. 날파리가 유전학적으로 큰 기여를 하였다니, 암수한몸이라니. 홍시껍질에 달라 붙은 조그만 당분 덩어리 한조각을 빚어 만든 날파리라 하고 싶지만-,

"야.... 날파리는 그냥 생기는 거 아닐까"
"? 그런 건 없다. 걘유충이잖아. 어디서 날아왔거나 과일에 알을 낳았겠지." 
"그럼 대체 어디서 어떻게 날아왔지, 들어올 구멍도 없었는데. 과일 껍질에 알을 낳았다치면 왜 하필 홍시 다 먹은 다음 날 알에서 깨어난 걸까.

그러니까... 니가 모르는 게 있을거야, 미스터리야."   
"아 생물 중에 그런 건 없다니까" 
동생님은, 누나가 지금 생각하는 건 "날파리가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났다고 보고 있는 것"이라 했다. 
순간 번득 뭔 생각이 들어 동생에게 물었다. 

"그럼... 그건 창조론 같은 거가?" 
"그래 뭐 그런거지." 
어쨌든 동생님은 "그 어떤 생물도 저절로 생겨나는 건 없다"고 재차 강조하며 교과서에 나온거라 했다. 
전혀 기억안나.  

시무룩해졌다. 
내 빙글빙글함이 창조론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었다니. 좀 심통났다. 평소 창조론을 허무맹랑하게 보았던 나로서는 '진화론 아님 창조론으로 단순하게 나뉠수있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또 그렇게 생각해 보니 '세상의 만물은 그리 빚어졌나?' 싶기도 하고, 그럼 나는 어느 정도 창조론을 인정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왜 그동안 그걸 무시하기만 했을까 싶기도 하고, 복잡했다.  
 
어쨌거나 내가 신기해하는 것들 중 많은 것들이 과학에 대한 무지로부터 오는 것일 게다. 이미 꽤 많이 설명된 이야기들을 내가 잘 알지 못 해서, 신기해하고 기어코 내멋대로 상상해보고 혼자 재미있어한다는 것도 알겠다. 그래도 난 여전히, 결코 어떠한 결론에도 가닿지 않고 호기심에만 머물며 꿈 속처럼 빙글거리고 싶어 한다.
 
사실 진지한 건 아닌데, 미끄덩, 삐끗, 하니 좀 재미가 없어진 기분이다.



 그래 홍시너도 저 감일 적이 있었는데
 근데 홍시너 그런 적 있었니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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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일상 2010. 10. 25. 00:32



오랜만에 진심어린 인사. 
안녕?
딱 한 순간의 진심.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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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발

일상 2010. 10. 17. 23:31
두발로 금강 여울을 건너다
녹색연합의 ‘사대강 귀하다 지키자 프로젝트’를 다녀와서


말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 시체가 된 물고기와 포크레인 사진을 보면 화가 나고 4대강 살리기 사업 그건 그저 안 되는 것이라 믿긴 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이라는 내 말은 너무나 무기력해 보였다. 내뱉을수록 허무함과 죄책감만 더했다. 

보아야 했다. 둔한 내 몸을 일부러라도 채찍질 해야겠다 싶었다. 사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게 자연에 대한 향수는 거의 없다. 할머니가 계신 시골의 커다란 나무와 강물 소리들이 아릿하게 떠오르긴 해도 그게 절실하진 않았다. 도시에서 벗어나야만, 그래야만 내 몸과 마음에 닿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반대한다 해도 다만 그 뿐, 도시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나는 어항 속의 물고기였다. 아프리카의 굶어 죽는 아이 소식에 마음이 아픈 누군가는 ‘사람에게 날개가 있다면 좀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라고 적었다. 아무래도 그게 내 일 같지는 않으니까, 날아다닐 수 있다면 경계 없이 서로를 도울 수 있을 거라 믿어서였다. 도시인 역시 마찬가지. 난 움직거려야 했다. 




녹색연합에선 ‘사귀자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4대강 살리기란 명목 하에 이뤄지는 공사로 이미 파괴될 대로 파괴된 습지와 강변의 모래사장들. 그것들이 더 파괴되기 전에 자연의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현장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대강 귀하다 지키자'다. 도시에 사는 열여섯 명의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금강의 현장으로 출발했다. 




여행 잡지사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한창 여행을 다니고 찬양 글을 쓰면서도, 난 여행이 불편하게 다가온 적이 많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4대강 사업을 반대할 거란 내 순진한 기대가 무너져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인간의 이기를 위한 관광사업이 눈에 보여서였다. 인간의 여행 혹은 관광을 위해 자연은 과연 어느 정도 까지 훼손 가능한가. 아니 훼손 불가능한가. 인간의 눈요기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러 '관광지화' 시키는 움직임들은 무조건 다 용인되는 것일까. 선과 정도가 있으면 싶었다. 

처음 방문한 충남 서천군의 신성리 갈대밭에서 특히나 이런 고민이 많았다. 정부에서는 신성리 갈대밭에 공원 너댓개를 만들고 흙길을 포장해 자전거 도로를 만들거라 했다. 이미 이곳은 충분히 사람 손 때가 많이 탔다. 관광할 수 있도록 길을 냈고 그래서 이미 많은 갈대가 사라졌다. 바닷물이 드나들지 못 하게 강에 둑을 막아서 해수를 통한 자연적인 잡초제거도 불가능하다. 매년 돈을 들여 갈대밭에 소금을 뿌린다고 했다. 

충분하다.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관광객들은 이곳을 찾아 갈대밭과 강을 즐기고 간다. 하지만 이 정도서 멈추지 않고 말 그대로 '무분별하게' 계속되는 개발. 그건 곧 자연 파괴, 인간 중심적인 생각들. 서 있는 곳 멀리에 삽질하는 포크레인이 보였다. 도시에선 늘 익숙했던 포크레인, 그 당연했던 풍경을 넓은 강변에서 바라 보니 새삼 낯설었다. 부자연스러웠다. 어쨌든 인간들이 좋아해 마지 않는 산, 강, 나무, 꽃들. 이 자연을 인간은 얼마나 누릴 수 있고 그 '선'은 어느 정도인가. 털끝 하나 대지 말아야 할 것 같다가도 어느 정도 개발해서 누리고 가는 것이 역사라는 생각도 들어 머리가 복잡했다. 

문득 옆 사람에게 물었다.
"근데 4대강 사업 주장하는 사람들도 산 좋아하고 물 좋아할 텐데 왜 자꾸 망가뜨리는 방향으로만 갈까요, 공사하려는 이유가 대부분 엉터리란 반박도 많은데."
"돈 이죠." 

이미 알고 있는 답이지만 언제 들어도 이 사실은 허무하고 시시하다. 


"여길 어떻게 혼자 오게 됐어요?" 
"그냥.. 말로만 반대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대단한 것 같아요. 마음이 끌려 여기까지 왔다는 게."
"... 이렇게 해도 마음 깊은 곳에는 어차피 잘 안 될 거라는 생각이 있는 것 같아요. 어쨌든 공사는 계속 될 거라는 거. 이러는 게 그냥 자기 위로 같아 씁쓸해지기도 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이런 작은 움직임 하나 하나 분명 큰 힘 돼요. 낙동강엘 갔는데 꾸준히 강 길 걷는 사람들 있어서 짠했어요. 그런 거 절대 무시할 거 아니에요. 절대."

처음 만난 우리들은 느닷없이 말을 걸었고, 금방 서로에게 진심을 털어놨다. 본능적으로 통할 뭔가가 있을 거란 서로의 기대 때문이었을 거다. 대화를 하다 번뜩했다. ‘그건 아닌 것 같다’는 대답을 듣는 순간 보이는 내 오만함, 곳곳에서 소박하게 제 할 수 있는 것을 해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안 될 거라고 해서 하지 않을 수는 없는 일들, 또 내 입으로 안 될 거라 쉽게 단정지을 수도 없다는 걸, 지나간 그 어떤 역사도 그러하다고 증명한 적은 없다.




우리가 찾아간 두 번째 장소는 바로 금강을 끼고 있는 금산 천내습지였다. 이 곳에서 만난 금산참여연대의 최병조 사무국장님 덕분에 더 많이 생각할 수 있었던 ‘단단한’ 희망. 그는 천내습지를 거의 지켜냈다. 정부는 금강 살리기 사업 중의 하나로 천내습지를 꽃밭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사무국장님은 다양한 생물이 살고 있는 이 습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정부를 상대로 싸웠고, 그나마 이곳은 공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일단 구두로까지 받아 냈다고 한다. 

금강 상류에는 습지가 많지만 천내습지처럼 다양한 식생과 동물이 갖춰진 데는 드물다고 한다. 우린 길이 2km, 폭 200m의 천내습지를 걸었다. 가는 길에 고라니똥이 보이고 진흙엔 뉘인지 모를 동물 발자국도 있었다. 보이진 않아도 곳곳에 형성된 둠벙에서는 두꺼비나 개구리가 알을 부화하곤 다시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30년 전에 이곳을 골재채취 한다고 다 파냈었대요. 그런데 삼십 년 만에 그때 모습 그대로 다시 복원이 된 거예요. 자연은 그냥 이 모습이 맞는 거예요. 이것보다 더 크지도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냥 물 고여 있는 이 습지가 뭐가 그리 대단한 거냐 싶겠지만, 이 습지가 없어지면 생물도 다 같이 없어지고 마는 거다. 사무국장님은 덧붙였다. 이 곳이 꼭 관광지가 돼 줄 필요는 없는 거라고. 공사해서 지역 활성화 하고 싶은 거라면 그냥 그 지역에 예산을 주는 게 맞다고, 있는 거 자꾸 망가뜨리지 말고 말이다. 

"“정부는 환경영향평가를 했다고 합니다. 생태계를 위한다면 최소 3,4년 걸려요. 아무리 짧아도 사계절은 봐야할 거 아닙니까. 정부가 환경영향평가 한 거 보고 놀랐습니다. 얼마나 부실한지 절차에 지나지 않아요. 환경영향평가만 하면 공사가 합법이니까 그냥 했다는 거만 보여주는 겁니다. 4대강 사업 자체가 안고 있는 맹점이 그런 거예요.” 

천내습지의 끝에 금강이 흐르고 있었다. 우린 강을 건넜다. 이 두 발로 직접 금강 상류를 건넜다. 산소가 많아 물이 소리 내며 흐른다는 여울이었다. 물이 얕아 사람이 그냥 건널 수 있는 곳이다. 맨발에 자갈이 밟히는데 발바닥이 어찌나 아픈지 한 걸음 내딛기도 쉽지 않았다. 지압 효과로 온 몸에 피가 돌아 얼굴은 벌개지고 뒤뚱거리며 걷는 사이 비가 내려 옷이 젖는 줄도 몰랐다. 문득, 내가 강을 건너고는 있는데 이곳이 강이란 건 실감이 안 나 멈춰 섰다. 왼쪽에서 물이 흘러 내려와 내 다리를 휘감고 오른쪽으로 흘렀다. 돌돌돌돌. 그렇게 강이 흐르고 있었다. 




강을 건너는 동안에는 발바닥에 온 신경이 묶여 아무 생각도 나질 않았다. 머리는 텅 비었고 그저 귀가 물소리를, 코가 물 냄새를, 눈은 흐르는 물을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강을 다 건너자 또 이유 없는 이런 저런 의문들, 나는 왜 자연이 파괴되는 게 싫을까, 왜 무분별한 개발에 속이 상할까, 왜 나는 어떤 사람들보다 이 강물을 더 믿는 걸까. 

한 친구에게 고집스럽도록 캐물은 적이 있다. “너 왜 4대강 사업 반대해?” “너 왜 자연이 좋아?” 친구는 “좋으니까 좋은 건데, 그리고 자연 앞에 서면 내가 작아져서 좋아.” 그래서 친구는 이리 말할 수 있는 거다.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사라져 가는 거 보면 마음이 쿡쿡 쑤시는 거지.” 

죽음을 반대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슬픈 사실 때문이라고 하는데, 나는 사랑하는 것들의 죽음 앞에서, 더욱이 대책 없이 억울한 사라짐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다시 서울로 돌아와 이 글을 쓰며,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움직거림을 고민해 본다. (인권오름)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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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

일상 2010. 10. 13. 01:42

거기 없습니다. 여기 있습니까? 
 

바작거리는 수건들. 그대들에겐 이 햇볕이 얼마나 익숙할까. 
오래된 수건을 보고 있으면 세수하고 건조해진 얼굴이 마구 땡기는 기분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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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 희망을 쓰다

일상 2010. 10. 7. 10:27

‘루게릭과 맞서 싸운 기적의 거인 박승일의 희망일기’


여름엔모기가내가보는앞에서 

당당히내피를포식해도

불난집구경하듯

바라만볼수밖에없다


박승일. 그는 지금 루게릭병에 걸렸다. 연세대 농구팀에서 활동하다 2002년 유학을 다녀온 후 31살에 국내 최연소 농구 코치가 되었던 승일. 한창 인생의 상승 곡선을 타려던 차 바로 맞물리며 찾아온 병.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병’이라 불리는 루게릭. 정신은 멀쩡한데 전신은 모두 마비될 것이라 했다.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고통은 정신으로 모두 느낀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승일은 그 몸이 다 할 때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여전히, 더 많은 것을 해내고 있다.

(이규연, 박승일 지음/웅진지식하우스)

이규연, 박승일 지음/웅진지식하우스

   이십대를 훌쩍 넘은 사람이라면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을 승일의 얼굴이 떠오를 지도 모르겠다. 학창시절 저녁밥을 먹다 눈길을 돌린 텔레비전에서는 아주 키가 큰 남자가 침대에 누워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목에 연결된 호스와 팔에 꽂힌 링거 주사, 무표정 뒤에 감춰진 사람 좋아 보인다는 소리를 들었을 법한 선한 표정. 아마 그때는 겨우 입술을 움직여 사람들에게 미소를 보냈던 것도 같다. 몇 년이 지나고 그는 이제 눈꺼풀만 겨우 움직일 수 있다고 한다. 그가 사람들과 소통하는 그 얇은 막 하나, 눈꺼풀. 그게 영원히 닫힐지도 모르는 위태로운 나날이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아침마다 눈꺼풀을 일으킨다. 그리고 어떻게든 식사를 하고 똥도 싸고 사랑을 하며 세상과 부지런히 대화를 한다. 그 눈꺼풀을 일으켰을 때 보이는 눈동자로, 그는 글을 썼다. 안구 마우스라는 특수 장비를 이용해서다. 이 책은 2005년부터 약 4년간 박승일과 중앙일보 이규연 기자가 주고받은 이메일과 지인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였다. 승일의 이메일은 교정하거나 교열하지 않고 그대로 실렸다. 남들보다 몇 십 배는 더 걸려 쓴 이메일은 띄워 쓰기도 안 돼 있고 글자 하나 지우기도 벅차 곳곳에 맞춤법이 틀려 있다. 그의 이메일은 진정 글자 한땀 한땀으로 보인다.

그가 부지런히 세상과 대화하려 하는 건 자신과 같은 루게릭 환자들을 위해서다. 그는 꼭 루게릭병 환자들을 위한 전용 요양소를 건립하겠다고 다짐한다. 자신의 병을 알리고 루게릭 환자들을 도와 달라 요청한다. 승일은 대한민국에서 루게릭 환자로 살아가는 일이 너무나 끔찍하다는 걸 몸소 느끼고 있다. 사람들은 루게릭병을 무거운 잠수종에 갇힌 신세나 사그라드는 촛불이라 말하지만 승일은 스스로를 물귀신이라 비유한다. 가족들까지 함께 죽음으로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

이 책을 쓴 이규연 기자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형식이었던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이용해 승일의 기사를 썼다. 그 기사는 신문의 일면에 실렸다. 사람들은 그 기사를 보며 감동했다. 마음을 움직였고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여전히 건립되지 않는 요양소를 위해 승일은 기자에게 부탁을 한다. 자신의 대한 책을 써달라고. 몇 번이나 망설였던 기자가 결국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그의 꿈이 단순히 승일의 욕심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라고 믿어서다. 이 책이 꼭 나와야 했던 이유도 무엇보다 승일이 ‘대한민국의 루게릭 환자’이기 때문이다. 치료받고 보조인을 쓸 돈이 부족해서 외롭게 그냥 죽어가는 장애인이, 그런 환자에 대한 부담을 전적으로 도맡으며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가는 장애인의 가족이, 그걸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사회제도가 여전히 있기 때문이다.


 너무 쉽게 희망을 말하고 너무 쉽게 희망을 버리고 마는 사람들. 이 흔하디 흔해져버린 희망이란 말이, 이 책을 통해 제 본연의 모습을 보여 준다. 그 희망은 승일과 같은 불치병 환자들이 한때 절실하게 꿈꾸었지만 이내 실망해야 했던, 황우석 박사가 보여준 그런 희망이 아니다. 누군가의 말처럼, ‘휠체어에 앉아 있는 사람을 벌떡 일으켜 주겠다고 하기보다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서도 차별 없이 덜 불편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말하는 게 맞는 거라고’, 그런 희망에 나 역시 더 끄덕여 본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그 상황에서 뭘 버려야 하고 뭘 꿈꾸어야 할이지 알았던 지혜로운 사람, 그리고 자신이 믿는 꿈을 위해 어쨌든 이승의 개똥밭을 구르며 싸운 사람, 이런 그를 알게 된 사람들이 왜 다들 감동하고 마는 걸까. 이 책을 읽고 나면 드는 마음들, 삶의 의욕이 생기고, 타인도 돕고 싶고, 내 주위 사람도 한 번 돌아보게 만들고, 그냥 그런 마음이 들게 하는 게 그저 ‘희망’ 일지도 모르겠다. 사지가 멀쩡해도 무기력해지고 마는 게 사람인데,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도록 되어버렸는데도 그렇지 않은 사람을 통해, 특히 비장애인들은 더욱 감동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야 비로소 ‘발견’하는 나의 살아있음 같은 것. (그렇다면 어쩌면 비겁한 위로일는지도)

그에게 보이는 ‘세상’은 작지만 그가 볼 수 있는 ‘세계’는 넓다. 그게 부럽다. 나이 먹는 것도, 철드는 것도, 더 나아지는 과정이란 이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보고 또 다짐해본다.


‘난 산다’라는 문구를매일같이써나갈 것이다

만약내가쓰지못하는날이생기더라도

그것은포기의뜻이아닌

잠시몸이불편해진것이라생각하면된다

대신누가날대신하여계속써주면된다

하루에한문구

‘난 산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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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이안

일상 2010. 10. 7. 00:24

 

  여행을 가면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꼭 있다. 지나고 나서 문득 떠올라 아스라한 것 말고 겪는 순간에 잊지 않으려고 온 감각이 몸부림치는 때, 그런 순간. 이번 베트남 여행에서의 그 순간은 해질 무렵 씨클로를 타고 호이안 구시가지 근처를 누빈 경험이다. 세트장 같은 구시가지에서 한 블럭만 넘어가면 강을 끼고 있는 '사람 사는 집'들이 나타난다. 그 흙길을 씨클로를 타고 배회했다. 여기저기 마른 닭들이 뛰어다니고 마른 개들은 늘어져 잠을 잔다. 집들의 대문은 활짝 열려 있다. 그 안에서 빨래하는 사람을, 텔레비전 보는 사람들, 아이의 오줌을 누이는 엄마가 보인다. 문득 집 안의 사람들과 스치며 눈이 마주친다. 사진을 찍으려다 그만둔다. 사실 그 어느 곳도 그 안의 삶은 다들 비슷할 것이다. 호이안 시내를 지나다 장례차를 봤을 때도 들었던 느낌, 생사고락은 어디나 같을 거라는 걸. 여행자는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가볍게 체험하고 말아서도 안 되고, 쉽게 익숙해지지도 않아야 할 경계의 위치. 언제나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할 풍경, 사람들. 하지만 환히 열린 대문 안 누군가와의 느닷없는 눈 마주침에, 그냥 저 안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단 생각이 불쑥 들었다. 

 

@ 호이안 구시가지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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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카락

일상 2010. 9. 28. 00:17

@안동초등학교

뒷목이 뻐근해 벤치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만 있으니
하늘로 부는 바람, 머리칼을 낚아채 뽑아낼 듯 잡아 당긴다
곤두선 구름카락이 되었다
구성진 카락을 뽑아라
물을 먹어 머리통이 버석버석 불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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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lking

일상 2010. 9. 25. 01:30





  우우우웅 우우우웅 
거러 가흐 네흐네이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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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얶

일상 2010. 9. 18. 01:06





물그림자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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솨솨솨

일상 2010. 8. 31. 01:30


나뭇가지 한오라기 미끄러지고 

나뭇잎들은 유리에 얼굴을 묻는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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