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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7.20 <과거가 없는 남자>_아키 카우리스마키





기차 안의 '남자'는 담배를 말고 있다. 헬싱키에 도착한 남자는 벤치에 앉아 잠시 쉰다. 그러다 느닷없이 깡패들에게 사정없이 맞는다.

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사망 선고를 받는다. 사망 시각을 확인한 의사와 간호사가 병실을 나가자 갑자기 '남자'가 벌떡 일어나 앉는다. 그리고 다음 장면, 어느 마을 강가에 쓰러져 있는 '남자'. 그를 본 한 노인은 자신의 신발과 남자의 신발을 바꿔치기 한다. 지독히 가난한 어느 마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남자, 연유도 없이 어느 마을에 가 있다. 그리고 그의 삶이 다시 시작된다.


카우리스마키가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


지난 시간에 살펴본 영화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역시 장면마다 인과관계가 느슨하다. 특히 아주 결정적인 부분에서 그렇다. 아니, 죽었다고 판명받은 남자가 어떻게 다시 살아나는가. 더구나 그 다음 장면에서 이 남자는 왜 어떤 마을에 바로 쓰러져 있는가. 어찌보면 억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를 '다시 살게 하기 위해서' 죽이고 '그를 가난한 마을에 보내기 위해서' 죽인 것처럼 보인다. 주인공의 행로를 어떤 목적에 맞추어 버리는 방식. 그는 죽어야만 했고 영화 속 그 마을에 떨어져야만 했다. 

나의 경우 주인공이 빈민가에 떨어지는 상황을 그리고 싶었다면, 어떤 경로를 통해 그가 빈민가에 떨어지게 되는 지 그 과정을 개연성있게 그리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냥 떨어뜨려 놓는다. 카우리스마키는 아주 효율적으로 또 절제하며 쓰고자 하는 장면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는 왜 죽어야만 했을까. 죽었다 살아난 그는 왜 가난한 마을에서 다시 깨어나게 됐을까. 감독에게 중요한 것은 얼마나 완성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영화를 빌어, 인물이 반드시 어떤 상황을 겪도록 하는데 치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 캐릭터가 있으면 그가 어떤 상황에 떨어지는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한 인물에 대한 구구절절함은 없고 주인공이 겪어야만 하는 상황만 있다. 이 사람이 어떤 캐릭터인가보다 그가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요하다.

효율적으로 장면을 갖다 쓰는 그의 영화는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선명하다. 행복하지 않은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삶을 찾는 것. 그리고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 아무것도 없이 빈 손으로 새 인생을 시작한 '남자'가 불평없이 자연스레 행복해진 것처럼. 

말하고자 하는 바가 선명하면 선동적이거나 노골적으로 계몽적일 수 있다. 그런데 선동이나 계몽은 감동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카우리스마키는 감동을 주진 않는다.  그래서 불편하지 않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영화는 아주 건조하게 지켜본다. 






세계의 어떤 단면을 보여주기 위해 "동원"되는 인물들

이 영화엔 조연들이 많다. 하지만 이 조연들의 캐릭터 하나 하나가 개별적으로 살아 있다기보다는 영화 전체적으로 어떤 분위기를 형성하는 동원되는 '일반'으로 보인다. 극 중 인물들은 모두 삶이 무의미한듯 말투가 아주 건조하고 어떤 위급한 상황이 벌어져도 무력하게 대처한다. 말투가 하나같이 어찌 다 똑같은지. 그렇다고 일반일 뿐,은 아니다. 극중 인물들이 단순히 자동인형처럼 보이진 않는다는 것이다.

감독이 바라보는 세계의 단면을 잘라 보여주기 위해 인물들은 동원된다. 그렇다고 동원될 뿐,이 아니라 그 인물들이 모여서 영화 전체의 뭔가 어색한 분위기를 잘 연출해낸다.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다. '남자'는 가는 곳마다 황당한 일을 당한다. 월급을 받고 싶으면 통장을 하나 만들라는 말에 남자는 은행으로 간다. 그런데 그 장소에 하필 은행강도가 침입니다.  다른 영화에서라면 긴박하고 사람들은 두려워할텐데. 은행원은 초연하게 돈을 꺼내주고 남자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처한다.



강도 왈 : 미안하지만 문을 잠그고 가야 겠어.
남자 왈 : 강도니까 그럴만도 하죠.
강도 왈 : 이해해주니까 고맙군


강도 : 요구한 액수만 주면 돼
여자 :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더 줘봤자 나만 손해죠.




과거가 없는 남자의 과거

영화를 보면서 한 가지 남는 의문이 있었다. 왜 영화 말미에 남자의 과거를 넣었을까. 그때 우리는 남자가 과거엔 도박에 빠지고 부인과 이혼을 한 상태였다는 정보를 알 수 있다. 그 시절을 왜 굳이 '남자'에게 환기시켜주었을까. 그의 전 부인이 왜 꼭 등장해야 했을까. 

남자는 전 부인을 찾아가지만 그녀와 다시 살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남자가 과거에 전혀 미련이 없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 과거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 효과는, 그의 과거를 보여줌으로써 비로소 그가 다시 시작된 그의 삶이 꿈이나 환상이 아니라 '남자'가 진짜 겪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이다. 만약 그의 과거를 알 수 있는 장면이 없이 남자가 새 삶을 꾸려서 잘 사는 것으로만 끝났다면, 마치 하나의 '꿈' 어쩌면 남자가 상상했을지도 모르는 환상같은 일로, 하나의 일장춘몽같은 것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의 과거가 소환되는 순간 그의 새 삶도 현실의 일상과 같은 위치가 된다.

내가 가장 좋았던 장면은 '남자'가 감자를 심는 장면이었다. 그는 빈 손으로 그것도 아주 가난한 마을에 떨어졌다. 콘테이너 박스를 깨끗이 청소한 그는 집 앞에 감자를 심는다. 
계속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감자심는 것으로 표현한 이 소박함.



 



나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평소 나와 아빠는 서로 대화를 거의 하지 않지만, 한번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 굉장히 솔직해진다. 지난 번 일 하시는 중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고 일이 끝나면 다시 연락하겠다 하셨다. 며칠이 지난 후 일이 끝나시고 내가 생각나셨는지 전화가 왔다.

사는 게 너무 재미 없다던 아빠. 삶에 낙이 없다던 당신. 나는 나름대로 진심을 다해 말했지만 교과서적이기만 했던 내 말들, 뭐 따로 하고 싶은 건 없으세요, 다른 재밌는 걸 찾아보세요.

"딸램아. 여유나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른 시간에 할 만한 것들 찾아보기야 하겠지만 니가 지금 하는 말은 나한테 해당이 안되는 말 같다. 사실 그런 말은 아무런 위로가 안 된다" 고 말이다.

허둥지둥. 난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 했고 목이 콱 메였다. 그냥 이렇게 사는 게 사는 것이라고 쓸쓸히 말하시던 아빠. <과거가 없는 남자>의 '남자'가 중년의 나이인 걸 생각하면 나는 내 아빠가 슬프고 또 슬프다.  

새로운 삶을 찾은 남자가 사랑에 빠진 여자와 함께 걸어가는 뒷모습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의 이 영화가 그저 담담하기만 한 것은 한편 또 슬픈 일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