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노테

영화가아니었다면 2021. 8. 12. 12:21

  오다 카오리 감독의 영화 <세노테>에는 몇 가지 죽음이 나온다. 마야 문명이 생성된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천연샘 ‘세노테’. 이 샘들은 한때 이 일대의 유일한 수원이자, 이 세상과 내세를 연결하는 종교적인 장소로 여겨지는 곳이다. 16세기까지는 세노테에 사는 신을 위해 살아 있는 사람을 바치기도 했단다. 신을 위해 제물로 희생된 사람들, 어느 밤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재운 뒤 세노테에 뛰어들었다는 여자, 헤엄치기 위해 들어갔다가 다시는 나오지 못했다는 아이들... 영화는 죽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목소리로 들려준다.

그리고 영화에는 보이는 죽음도 있다. 축제 현장에서 발이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뱅글뱅글 돌아가는 닭, 막 죽어 배가 갈린 돼지, 투우장을 배회하는 소, 여러 투우사들이 소를 결박하기 시작하고, 그 소가 죽어가며 흘렸을 바닥의 흥건한 피. 세노테의 주변에서 인간의 얼굴과 삶과 문화를, 세노테의 안에서 산란하는 빛과 솟아오르는 물과 유영하는 물살이들을, 그리고 이 둘을 가로지르는 소리와 목소리를 들려주던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어떤 의식을 보여준다. 아마도 죽은 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듯한, 누군가 해골을 정성스럽게 닦고, 인간들의 죽음이다. 나는 이 영화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내 평소의 고민이 겹쳐지며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왜 동물들의 죽음은 위로받지 못할까.
동물의 죽음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영화가 있다. 신경은 쓰이지만 연출자가 고려하지 않았기에 외면해도 괜찮겠다 싶은 영화도 있다. 하지만 영화 <세노테>에는 죽은 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죽은 자들을 위하는 의식을 보여줄 때에도 인간들의 모습과 행위에만 붙들리지 않으려는 시선과 마음이 분명 있다. 나는 알듯 말듯한 채로, 죽은 동물들과 인간과 동물의 삶과 자연 만물과 이 모두를 바라보는 연출자의 태도를 오래 곱씹어 본다. 어떤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기대에. 그것은 삶과 죽음을 잇는다는 장소, 이미지를 담는 카메라의 움직임, 모호한 시제 등이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비현실적이고 비인간적인 듯한 영화의 형식이 그저 스타일에만 머물지 않고 자연 만물을 대하는 하나의 태도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인간이기에 인간중심적일 수밖에 없는 구심력과 그럼에도 인간중심적인 것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원심력이 공존하는 영화, 정확히는 그런 논픽션 영화는 어떻게 가능할까.     

카메라가 세노테에서 잠수하고 있는 관광객들을 멀찍이서 오래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닌, 죽은 존재들로 만들어진 무엇이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 시선이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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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자유에 있다> 왕빙의 신작 제목이다. 4시간 30분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 중국 정부로부터 반동 지식인으로 찍혀 고난을 겪고 지금은 미국으로 망명해서 25년째 살고 있는 가오 에르타이의 얼굴이 나온다. 영화의 대부분은 그의 인터뷰다. 두 가지 장면에서 나는 코끝이 찡해졌는데, 분명 좋은 감동이었다. 가오 에르타이가 반동으로 처음 찍힌 건 미(美)에 대한 논문 때문이었다. 무언가를 보고 누군가는 아름답다고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추하다고 한다.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것이다. 아름다움은 개인의 자유다. 새가 우는 건 객관적이지만 새가 우는 걸 두고 아름답다고 하는 건 주관적이라는 거다. 어쩌면 당연한 이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는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일에 대해 억압받으며 살진 않았다. 마음껏 아름다워하고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름다움은 개인의 자유에 있다'고 주장하는 순간 유심론자가 되고 유심론자는 유물론에 반대되니 곧 반동으로 찍혀 갖은 노역과 해고와 추방을 반복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 내가 아름답다고 느낄 자유와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들을 더 소중히 지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오 에르타이가 공안에게 뺏기지 않기 위해 자신의 경험을 아주 글씨로 적어 신발 밑창과 낡은 옷의 튿어진 틈 사이에 넣어서 끝내 지켰다는 작은 쪽지들이 아름다웠다.

또 하나의 장면은 아니 이야기는, 그의 누나에 관한 것이다. 결국 그의 집안은 죄다 우익으로 찍혀서 재산을 몰수당하고 아버지는 노역을 살다 과로사했다. 누나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외지에서 그림을 배우던 가오 에르타이와 달리 누나는 고향에서 어머니와 계속 지냈다. 우익으로 찍힌 가족은 주민들이 부르면 광장으로 불려나가 공개 비판을 받아야 했다. 어느 날 누나는 비판대로 끌려가고 있었다. 가는 차 안에서 누나는 잠이 들었고, 공안은 화를 내며 깨웠다고 한다. 그런데도 누나는 금세 또 졸았단다. "누나는 그런 사람이라고, 마음에 담아두질 않고 누굴 원망하지도 않는다고." 구십이 넘은 누나는 여전히 고향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남동생이 망명을 떠나며 두고 갈 수밖에 없었던 병이 든 조카를 끝까지 돌보고 장례를 치러주었다. 무심하고 묵묵하게 끈질긴 한 인간을 아름답다고 느꼈다. 비록 내 눈으로 볼 수 없어도.

딸의 죽음을 말한 후 안절부절 못하는 가오 에르타이가 약을 먹고 집안을 계속 서성이다 밖으로 나가고, 영화은 그가 정원의 나무를 손질하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무엇을 잘라내고 싶은지 그는 계속해서 잘라내고 또 잘라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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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본 영화들 중에서 가장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고 하면 이승준 감독의 <달에 부는 바람>에 있다. 시각과 청각 장애를 가진 예지가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대한 영화이고 무엇보다 예지의 엄마가 예지와 소통하려는 노력에 관한 영화다. 
영화가 끝에 다다를 즈음 예지네 가족이 바다에 가는 씬이 나온다. 예지는 바다에서 튜브를 타고 누워 있는 걸 좋아한다. 튜브 위에 몸을 축 늘어뜨리고는 따가운 햇볕을 그대로 받으며 예지가 짓던 표정, 그게 잊혀지지 않는다. 아 그것은 ‘지었다’고 말할 수 없다. 보여주기 위한 표정이 아닌, 타인에게 보여진다는 것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얼굴이었기에. 나는 감히 그 얼굴에서 해방감을 느꼈다. 보여지는 대상으로서, 보여지는 것을 의식하는 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내 안의 어떤 갈망을 (역설적이게도 보여주는 도구로서의) 카메라가 담은 그 한 장면을 통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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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저도 장애를 타자화하는 시선일까. 일단은 비장애의 한계와 장애의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를 비장애인이라 규정했을 때의 한계와 내가 가진 장애의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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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같이 내가 널 유치원에 데려다줬지. 공립유치원이었는데 3년 내내 매일같이 데려가고 데려오고. 내가 가기만 하면 울었어. 어쩔 수 없이 유치원 끝날 때까지 밖에서 가만히 기다렸지. 3년 내내 말이야 매일같이. 네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얼마나 소중히 소중히 키웠는지 모른다.

 

(달팽이, 가와세 나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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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 벤더스와 훌리아노 리베이로 살가두가 공동 연출한 <제네시스>. 사진가 세바스치앙 살가두를 다룬 다큐멘터리다. 훌리아노 리베이로 살가두는 세바스치앙 살가두의 아들. 공동 연출이라 그런지 아마도 빔 벤더스가 모든 걸 장악하지 않았기에 가능했을, 힘을 뺀 연출이 좋았다. (특히 예술가 삼부작의 이전 작품인 <피나>와 비교해보면.) 그럼에도 아마 빔 벤더스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이 다큐멘터리의 기본 구성인, 자신의 사진을 두고 살가두가 이야기하는 장면은 영화가 끝나고서도 가장 오래 남는 이미지다. 연출자는 살가두의 사진을 보여주고 살가두의 목소리를 나레이션으로 흘리는데, 그사이 간간이 마치 수면에 얼굴이 비치듯 살가두의 얼굴을 사진에 통과시킨다. 그가 자신의 사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고개를 앞으로 내밀 때 사진을 쑥 통과해 그의 얼굴이 눈앞에 등장하는 식이다. 이미지와 이미지를, 그것도 긴밀히 연결된 두 이미지를 이렇게 맞대는 방식이 흥미로웠다.  

살가두를 다룬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 아니 이야기. 젊은 시절의 살가두는 ‘다른 아메리카’ 프로젝트를 위해 남미의 오지 마을에 들어가 있었다. 당시 머리카락을 길게 기르고 수염도 깎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어느 날 마을의 한 주민과 같이 길을 걷고 있는데 그가 살가두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신은 지구의 모습을 신에게 전하기 위해 내려온 ‘신의 사도’일 거라고. 살가두는 그가 자신을 정말 그런 존재라고 믿었던 것 같다고 했다.

 

생각보다 이 말은 무척 강렬했는데, 그건 나 역시 정말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지구를 알고 싶어하는 어떤 존재에게 이곳을 소개한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거라고, 이유로는 설명되지 않지만 그 말 자체로 느낌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그가 진행한 프로젝트들이 지구라는 세상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주제라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그의 사진은 슬프고도 아름다운 데서도 오는 것 같다. 현장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가 몸으로 부딪치며 찍은 끔찍한 사진들에서 느껴지는 가느다란 아름다움은 어떤 거리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 거리는 특별하다. 설명할 수 없지만 특별하다는 걸 느낀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그가 신의 사도라는 걸 믿어보고 싶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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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가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의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가는 즈음 나오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어느 밤 한 남자가 정신병원으로 ‘끌려’ 온다. 어둑한 복도에 서서 쇠창살 너머로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사람에게 울먹이며 말한다. “왜 날 여기에 데려왔어.” “여기 있기 싫어.” “다시 날 데려가줘.”

정신병원에서 4개월간 촬영해서 만들어진 이 다큐멘터리는, 인물들이 이곳에 머문 기간과 이름만을 자막으로 보여줄 뿐, 왜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그저 카메라를 따라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넘어가며 그들의 행동, 말, 공간을 막연히 지켜본다. 원형 감옥과 비슷하게 생긴 그 정신병동이라는 공간을, 쇠창살에 갇힌 그들을, 그안에서의 비위생적이고 무기력한 생활을, 이상하고 멀쩡한 말과 행동을. 

그렇게 총 네 시간 분량의 반이 지나갈 즈음 위 장면을 만났고, 난 감정의 동요를 느꼈다. 정신병원으로 끌려 온 그가 가여웠고, 억울할 것 같았다. 그가 느낄 막막함을 나도 느꼈다. 호기심으로 골똘하게 지켜보던 마음이 점점 물러지면서 어느새 이 정신병원의 인물들에게 이입해가는 시점이었다. 이들은 피해자들이었다. 사회로부터, 정상성이라는 것으로부터, 무엇으로부터의 피해자라 콕 집을 수는 없지만 ‘자유롭지 못한’ 이들이 점점 불쌍해졌다. 그리고 이들이 가엾은 피해자라는 생각은, 다음 장면이 아니었다면 끝까지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 날, 어젯밤 갇힌 이 남자의 딸이 정신병원으로 찾아 온다.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아빠 괜찮아?” “아빠는 아파서 여기서 당분간 지내야 한대.” “엄마는 안 왔어.” 불안하고 슬픈 모습이었다. 딸과 남자는 마주보고 조금 훌쩍인다. 

나는 쇠창살을 두고 아버지와 마주선 딸을 보았을 때에 ‘정신이 들었다.’ 왜 가족을 정신병원에 보냈을까, 맞아 이 사람들은 그저 피해자가 아니구나, 가령 가족에겐 가해자겠구나. 시달리는 폭력이고 함께 할 수 없는 존재였겠구나, 그렇다면 범죄를 저지르고 여기 끌려 온 사람도 있겠구나, 이런 생각에 미치니 난 더 이상 그들의 자유롭지 못함을, 갇힌 그들을 그저 안타깝다고 볼 수만은 없었다. 하지만 연민은 쉽게 걷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이 불편했다. 사실 여기까지, 한 사람이 피해자이기도 하고 가해자일 수 있다는 것은 단순한 진실이다. 이런 순간이 없었다면 이 당연한 진실도 잊고 살기 쉽지만 말이다. 

그러자 중요해지는 질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유를 지지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병실 안에 들어오는 유일한 외부자가 있다. 어느 환자의 부인이다. 간간이 찾아와 남편에게 옷가지와 먹을 거리를 챙겨주는 모양이다. 찾아올 때마다 부인에게 내 짜증을 부리던 남자는 우물쭈물하다 “나를 데리고 나가 달라.”고 하지만 여자는 “그럴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이 장면을 지켜보는 것을 넘어, 스스로에게 질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가길 원하는 저 남자의 바람에 끄덕일 수 있는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힐 지도 모를 그 자유를 지지할 수 있는가.  나는 물론 여전히, 그에 대한 연민까지 거둘 수는 없다. 계속해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되는 건 어쨌거나 내가 인물과 상황에 책임감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생기는 어떤 관계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극영화보다는 다큐멘터리가, 그것도 이 왕빙이라는 감독이자 촬영자의 다큐멘터리가 나와 인물 사이에 만들어 내는 더욱 특별한 관계. 그리고 이런 관계는 아마 내 아버지라면, 내 남편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는 구체적인 현실로, 절실한 질문으로 옮겨갈지도 모르겠다.

이런 일련의 질문을 던지면서도 계속해서 남는 찝찝함이 있다. 왕빙이라는 감독이 애초에 왜 정신병원에 들어왔는지를 알려주지 않은 건, 결국 그가 만들어낸 다큐가, 내가 던지는 것과 같은 질문들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라는 짐작 때문이다. 그저 이들의 모습을 보라고. 인생이 아닌 생활을, 가족과 사회가 아닌 관계 자체를,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영혼을, 생명을. 하지만 이것은 어떻게 보는 방식인가. 차라리 인물들의 ‘사연’을 알아서, 내가 지지할 수 있는 자유를 고르고 대책 없는 연민을 분배할 수 있으면 편하겠다 싶던 내 마음은 찝찝함을 더 증폭시킨다. (하지만 내 대책 없는 연민이, 자문하는 질문들에 대한 거칠은 하나의 해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든다.)

이 영화를 보며 새삼 느낀 건 내가 관객이라는 것이었다. 카메라 근육을 떠올렸다. 마치 근육처럼 움직이는 카메라였다. 그렇게 느낄수록, 내가 지금 움직이는 건 겨우 눈과 조금씩 뒤척이는 다리 정도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했다. 정신병원 복도를 달리는 저 환자와, 따라 달리는 저 카메라와 내가 같은 근육을 쓰고 있진 않구나. 이 사실이 왜 그리 새삼스러웠을까.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를 통해 더 많은 세계를 알고 싶고 태도를 배우고 싶은 나는, 규정하지 않고, 평가하지 않고,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을 답습하지 않고, 무엇보다 연민으로 귀결되지 않고 ‘볼 수 있을까’ 새삼 아니 처음일지도 모를 이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본다는 건 무엇인가. 내게 막연하고 대책 없는, 그래서 벅찬 질문들을 남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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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 시간은 해가 완전히 사라진 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어둠에 잠기지는 않은 짙푸른 풍경의 시간이었다. 이건 해뜨기 전의 짙푸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길게 구부러진 도로 위로 헤드라이트를 켠 오토바이 한 대가 오른쪽 끝에서 등장하여 오른쪽 아래로 빠져나간다. 아마 30초가 안 되는 이 하나의 컷에서 나는 평소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어떤 감정과 맞닥뜨렸다. 몇 년 전 홀로 떠난 배낭여행 이후 나는 줄곧 이 여행을 그리워했고 다시 떠날 수 있기를 바랐다. 다시 낯선 곳으로 떨어져 그 익숙지 않은 공기를 질릴 때까지 마시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언더 더 스킨>의 초반에 만난 저 하나의 컷을 보는 동안, 해가 진 뒤 컴컴하고 설핏한 풍경 속에서 장소도 사물도 왔던 길도 잘 분간이 안 되던 그 시간 동안의 불안했고 외로웠고 막연히 슬펐던 마음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난 마냥 ‘행복’이라는 감정으로 내 지난 여행의 시간을 되돌아보곤 했었는데, 몸에 배어 있었지만 머리로는 떠올리지 못했던 그 행복하지 않았던 시간을 이제야 떠올렸던 것이다. 그 시간 동안만은 겪고 싶지 않았던 멀미 같은 것이었다. 아마 이랬던 시간이 훨씬 많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내 난, 이 느낌마저 통틀어 여행의 시간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눈앞에서 오토바이가 등장하고 사라지는 이 짧은 시간 동안, 순간 훅 올라온 새삼 낯선 이 감정을 붙잡고 저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생각과 느낌이 <언더 더 스킨>이라는 영화 자체에 대한 감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영화가 끝난 뒤에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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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의 이중생활 La double vie de Veronique/키에슬로프스키

아름답다, 아름다운 영화. 홀린듯 바라 본 장면. 

같은 두 개의 인형을 만든 알렉상드르에게 베로니끄가 묻는다. 왜 두개죠?
너무 만져서 닳을까봐, 하나가 망가질 걸 대비해서 두 개를 만들어 두는 거라고. 

나 그리고 또 다른 나. 세상 어디에 존재하고 있을 혹은 이미 부재한 나. 연결된 두 명 결국은 하나.   

내 인생은, 닳아가며 또 하나의 나를 죽음으로부터 조금씩 밀어내고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나의 희생으로부터 겨우겨우 살아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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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플 라이프A SIMPLE LIFE/허안화 감독/유덕화, 엽덕한 주연

 
  영화를 보기 전 가장 궁금했던 건 이 문구에 관한 거였다. “그녀를 돌보는 로저는 자신에게 타오가 얼마나 큰 의미인지 깨닫게 된다.” 글로라면 흔히 볼 수 있는 문장이었고 관계를 다루는 대부분의 영화들도 이런 뉘앙스의 한 줄 요약을 할 수 있을 텐데, 왠지 이 영화 앞에서 유독 호기심이 났다. 드러내기 쉽지 않을 것이고 많은 영화들에서 그 표현 방식에 실망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소중한지를 깨닫는 걸 영화로 어떻게 표현했을까. 그 디테일이 어떻게 드러날까, 그 순간들에 집중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감탄했던 건, 정확히 그런 순간들에서 코끝이 짠해졌다는 거다. 그리고 짠해지기 이전에, 그런 순간을 느낄 수 있었다는 거다. 

영화제작자 로저, 그리고 그의 집안에서 60년째 가정부로, 특히 로저를 아들처럼 키우다시피 한 노인 아타오. 로저의 집안은 모두 미국으로 이민 갔고 그는 홍콩에 남아 아타오와 함께 아파트에 산다. 아타오는 로저가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챙기며 까다롭게 그를 돌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타오는 갑자기 중풍으로 쓰러졌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그녀가 자청하여 노인요양병원으로 들어간다. 그러고 난 후 로저가 틈틈이 아타오를 돌보게 되면서 로저는 당연하던 아타오의 존재를 새삼 느낀다. (느낀다, 느끼도록 하는 영화의 무수한 디테일들-사소한 몸짓, 눈빛, 변화들-이 참 좋다) 그동안 로저는 아타오에게 다정하지도 그렇다고 냉랭하지도 않았다. 무관심한 것에 가까웠겠다 대부분의 가족들이 그렇듯 말이다. 그러니까 둘은 가족이었다. 

영화는 인물의 성격을 두드러지게 하거나 극적으로 전개하는 방식으로 연출하지 않는다. 깨닫는 순간들은 잔잔하게 찾아오며 그 깨닫기까지의 자잘한 디테일들이, 사소한 것들에도 마음 쓰는 연출이, 단단하게 이야기를 엮어 나간다. 영화는 꼭 보여주어야 할 것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여분의 장면들이 정말 필요했다고 느껴지게 만든다. 결국엔 그 여분의 장면들이 정서 즉 분위기를 만든다. 로저가 아타오의 소중함을 새삼, 문득, 그리고 진심,으로 느끼게 하는 정서, 감정보다는 정서를 만들어 내는 감독의 연출이 감탄스럽다. 흔히 일상을 닮은 이 영화를 다큐멘터리 같다고도 하지만, 매 상황에서의 파르르한 정서적인 느낌 때문에, 그래서 연출의 힘이 느껴지기 때문에, 훨씬 더 영화적이다. (이 정서라는 것은 친밀할 수도 있고 낯설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영화는 스크린 안과 밖의 공기를 다르게 하지 않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리고 그 방식이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꼭 알맞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는 다큐멘터리의 요소도 갖고 있겠다) 

로저는 아타오와 떨어져서 쓸쓸해졌고 그런 이유로 아타오 역시 쓸쓸해졌다. 하지만 아타오의 쓸쓸함은 로저의 것과는 조금 달라서 그 쓸쓸함보다 좀 더 깊고 무거운 것이었다. 내가 죽음에 가까워져 간다는 인식, 거기에서 오는 쓸쓸함이었다. 일평생 누군가들을 돌보여 헌신했던 그녀는, 열심히 살았기에 스스로를 아꼈고 사람을 사랑했기에 밝았다. 병 앞에서 조금씩 무너지면서 그래서 많이 슬퍼하면서도 잘 웃고 남을 배려하고 소녀 같은 그녀가 참 좋았다. 그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죽음 앞에서 품위를 유지한다. 로저도 그런 그녀가 보이기 시작했기에 곧 떠나갈 아타오가 많이 슬펐을 거다. 로저도 제 최선의 예의를 갖춰 아타오의 품위를 지켜준다. 죽기 얼마 전 휠체어에 앉아 몸을 못 가누는 아타오가 구운 거위 볶음면이 먹고 싶다고 하자 로저는 별 반응도 않고 돌아서서 쓰레기를 버리러 걸어간다. 그러는 그의 뒷모습을 카메라는 바라본다. 로저가 전혀 티를 내지 않지만 알 것 같았다. 아마 그는 눈물이 났을 거라고. 

감정에 북받친 로저가 아타오의 품에 안겨 울지도, 죽어가는 아타오가 결국 무너지며 외롭다고 외치지도, 그러지 않아서 그래서 참 좋았던 영화. 사람과 사람 간의 친밀함, 친밀한 만큼의 거리, 인간을 바라보는 이 영화의, 그만큼의 거리.

*가장 좋았던 장면은, 밤거리 걸어가는 둘의 뒷모습 그리고 로저가 아타오의 손을 잡아 뒷짐을 질 때, 그 다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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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임 : 그런데요, 김동원 감독님의 이 다큐멘터리를 보다 보면, 아 이쯤에서 더 들어가서 더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도 있는데 멈추셨구나 하는 부분들이 많이 보이거든요. 그 이유도 알긴 알겠어요. 왜냐면 보니까 굉장히 그분들을 많이 배려하시는 것 같아요. 

동원 : 예 사실 좀 저도 들어가고 싶었는데, 머뭇머뭇거리다가 다음에 하자 다음에 하자 그러다가 결국은 송환되신 거예요. 끝까지 제가 민감한 질문 같은 것들도 던지고 싶었고 논쟁도 하고 싶었고, 그랬었는데 음 그분들에겐 그게 제 본의와 다르게 아픈 질문이 될 수도 있고 또 송환 직전에 너무 바쁘시고 편찮으시고 해서 제가 끝내 질문을 못 드렸는데, 어떻게 보면 참 다행인 것 같아요. 

은임 : 이 다큐멘터리 영화 전편에 흐르는 것이 가끔 사운드가 안 잡히는 것도 있고 화면도 약간 더, 구도가 좀 더 잘 나올 것 같은데 안 그런 것도 있어요. 그런데 그 부분에서 감독님의 나레이션으로 '난 여기서 마이크를 더 가까이 가져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라는 나레이션이 나오더라고요. 사람에 대한 예의를, 영화를 찍으면서도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도 작가 입장에선 그러기가 참 어려울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영화 감독이라면 좀 더 좋은 화면을 잡아 내고 좀 더 좋은 소리를 잡아 내고 싶은 그런 직업 의식 같은 게 있을 텐데, 안 그러셨어요 감독님은.

동원 : 뭐 제가 직무유기를 한 거죠(웃음) 그런 프로페셔널리즘이 좀 저한테 아직 부족한 것 같고요. 저는 독립다큐의 어떤 매력이, 방송국에서는 그러면 쫓겨나겠죠 금방. 근데 저는 독립다큐를 하기 때문에 제가 좀 마음이 약해도 그냥 넘어갈 수 있어서 제가 기술도 부족하고요 장비도 저한텐 없지만, 최대한 다가가려고 하고 어느 순간에는 자제하고 그런 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은임 :  지금 기술도 부족하고 장비도 없고, 라고 말씀하셨지만 사실 <송환>의 힘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감독의 시선이 처음부터 끝까지 드러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진심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남한에 있는 가족들을 찾아갔을 때 그들의 이야기를 더 담아낼 수 있었는데 감독님은 그 자리에 더 오래 계시지 못 하더라고요. '난 더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의 이야기에 카메라를 더 들이댈 수 없었다'고 하면서 나오더라고요. 솔직히 말해서 저는 다큐멘터리를 종종 보는데 특히 <볼링 포 콜럼바인>의 마이클 무어 다큐멘터리도 예전에 많이 봤는데 요즘은 보기가 힘들어요, 왜냐면 너무 조롱하고 너무 비판해요. 그러다 보니까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그 목적이나 그 의도는 분명히 알겠는데 보면서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이 상처 입을 것 같다는 생각이 너무나 강하게 느껴지니까, 좀 힘들어요. 그래서 그것이 저를 변화시키지는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김동원 감독님의 이번 <송환>은 수많은 사람들이 보면서 눈물을 쏟고 감동을 받았고 열정을 되살리게 됐다고 이야기 하는 부분이, 사람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기술적으로 뛰어나지 않으면서 이야기할 것은 다 이야기하고 나즈막하게 비판할 부분은 비판하기 때문에 아닐까 싶거든요. 어떻게 배려하고 겸손하면서 비판은 놓치지 않을 수가 있죠?

동원 : ..... 글쎄요. 제가 뭐 충분히 비판했다고는 생각하지 않고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실은 어떻게 비판해야 하나 하고. 그래서 사실은 일본인 친구를 내세워서 저 대신 비판해달라고 그런 나쁜 역할을 맡긴거고요. 그 친구가 저를 도와줬고 사실은 그 친구한테 미안하죠. 

2004년. 4월 9일 방송. <송환>의 김동원 감독 인터뷰 중에서


 그리고,
인터뷰 마무리를 하면서 정은임이 김동원에게 이런 말을 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묵묵하게 하는 작업, 계속 하셨으면 좋겠다고. 이 말이 오래 남는다. 오롯이 제 의지로 해나가는 일 그렇게 제 의지로 만난 사람과 세상에서 얻은 책임감이 다시 동력이 되는 일.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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