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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3.07

일상 2010.03.07 14:58

  지하철에서 내려 계단을 오르는데 문득, 내가 오늘 무슨 양말을 신었는지가 몹시 궁금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양말을 신던 순간은 떠오르지가 않았고 가령 잠바를 입거나 가방에 뭘 챙겼는지는 떠오르는데, 아마 잠바를 입고 가방을 메기 전에 했을 것 같은 양말에 대한 기억은 떠오르질 않았다. 지금 내 발의 감촉으로 봐선 분명히 양말을 신긴 신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신었던 기억은 없다. 무슨 양말을 신었는지 그 궁금증에 대한 집착은 커지는데 그렇다고 지금 멈춰서서 바지를 걷고 양말을 들여다보기는 싫었고 왜 싫은진 모르겠다만 싫다는 감정만은 뚜렷해서 도저히 손을 신발에 댈 엄두가 나질 않았으며, 또 계단을 오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잠시 멈추었다가는 뒷사람에게 내 엉덩이를 떠밀릴 거라는 두려움도 있었기에, 그러니까 걸으며 나는 계속 내 양말에 대해 생각하기로 했다. 생각이 나질 않았고 아니 떠올려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결국 기억 속으로는 들어가질 못 한채 어떤 언저리만을 계속 맴돌았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기억나지 않는 건 양말 뿐만 아니라 속옷을 입긴 했는지 세수는 한 것 같은데 이를 닦았는지와 같은 것들이 줄줄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떠오르긴 할 것인가 의심하며 몇 시간 전의 기억을 떠올리려 안간힘을 썼다만 여전히 떠올려야 한다는 생각만 들 뿐 떠올릴 순 없었다. 그 생각을 하다보니 걷고 있던 나를 잊었고 사람들에 떠밀리듯 게이트까지 이른 내 몸을 발견한다. 어쨌든 이곳을 벗어나서 계속 이 생각을 하든가 그렇지 않다면 다른 생각을 해야만 해, 띡, 교통카드를 기계에 대는 순간, 그러니까 기계음의 명징한 소리가 들리고 가로막힌 봉을 배의 힘으로 밀고는 한발 내딛는 순간, 묵직한 육체감이 그것이 가슴인지 배인지 모를 살덩어리가 내 엉덩이에 닿았다. 분명 카드를 찍고 난 후 한 사람씩만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이 게이트에서 난 왜 나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살덩어리를 느껴야 하는건지 의아했고, 놀라 뒤돌아볼새도 없이 봉과 봉 사이에 끼인채 게이트를 통과하면서 밖으로 퉁 튕겨져 나갔다. 바로 뒤에서 키 조그만 아줌마가, 아무래도 이랬을 것이라 추측되는데, 내 엉덩이에 바싹 붙어서는 게이트를 무임통과했을 것이라고 그렇지 않다면 아까 내가 느낀 그 가슴인지 배인지 모를 육체는 무엇이던가 나밖에 통과할 수 없는 그 공간에서 말이다. 여자는 잽싸게 아니 분명 잽싼 행동이었음에도 유유해 보이는 요상한 발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이었다. 쓴다. 쓰지만 순식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쓰고 있는 지금이다.  


Posted by 브로콜리너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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